최근 금융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해외시장은 동남아다. 과거에는 선진 금융시장에서 정보수집, 외환업무 등에 만족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금융시스템을 갖고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으로 동남아시장이 각광받고 있다.
중국의 인건비가 비싸지면서 삼성전자 등 기업들이 해외공장을 동남아 국가로 옮기면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계좌를 만들고 보험을 팔고 카드상품도 제공했다. 이제는 나아가 현지인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지화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화는 생각보다 더디다. 동남아시장 특유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문화'를 깊이 이해하지 않는다면 성공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 "주재기간 평균 1~2년, 띵깜 쌓기엔 짧아"
기자가 찾은 베트남도 예외가 아니다. 베트남에서 어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당국, 현지 업계와 '띵깜'(베트남어 tình cảm·한자 情感)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말로 '정감'란 뜻의 '띵깜'은 단순히 서로 안면을 텄다는 수준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아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해져야 비로소 사업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의리를 중시하는 '띵깜'은 중국의 '꽌시'(关系)와 쏙 빼닮았다. 꽌시나 띵깜을 쌓고 난 뒤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일사천리로 통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것을 쌓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한 국내 금융사 주재원 A씨는 "본사가 베트남의 띵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중간에서 난처하다"고 토로했다.
A씨는 베트남에 온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았다. 현지 금융당국자나 업계 관계자와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본사에서는 당장 올해 실적에 반영할 만한 구체적인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한다. 앞서 주재하던 전임자도 이 상황을 못 버티고 결국 1년만에 한국행을 택했다.
A씨는 "영업망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전략을 통해 현지 사정에 밝고 이곳저곳과 '띵깜'을 쌓은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지만 회사는 1~2년 단위로 주재원을 갈아치워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띵깜 쌓기 이전과 이후 당국자 태도 너무 달라"
성공적으로 베트남 현지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 DB손해보험의 김강욱 베트남 법인장도 띵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DB손보는 2015년 베트남우체국이 보유하던 PTI손해보험 지분 37.32%를 인수하며 성공적인 베트남 진출 사례를 만들어냈다.
이를 주도한 김 법인장은 성공적인 M&A 비결중 하나로 띵깜을 꼽았다. 그는 "2011년 베트남에 왔고 초기 3~4년은 현지 관계자를 사귀는데 집중했다"며 "이 시기는 실적보다는 비용만 발생시키는 상황이었지만 회사에서도 이를 투자라고 보고 기다려준 결과 좋은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띵깜을 쌓기 위해서는 대상자의 생일과 결혼 등 개인적인 경조사도 모두 챙겨야 한다"며 "이곳의 당국자와 호형호제를 하기 전에는 현지 보험사 목록이 적힌 서류 한 장 받기도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 "띵감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 아니다"
그렇다고 한번 쌓은 띵깜이 베트남사업의 자유이용권은 아니다. 띵깜을 쌓더라도 담당자가 바뀌거나 실속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지속적인 띵깜의 관리가 중요하다.
현지 주재원 B씨는 "당국자 집에 가보니 벽 한면이 양주로 가득 찼고 찬장 하나에는 한국산 화장품 상자들이 포장도 안뜯은 채 쌓여있었다"며 "띵깜을 만드는 것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날이 갈수록 현지 사업이 어렵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띵깜만을 믿고 사업의 내실이 없다면 현지 진출에 실패하는 것도 당연하다.
베트남 사무소에서 2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IT업체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관계자와 친분을 쌓고 현지에서 서비스 출시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며 "한국에서 하던 아이템을 그대로 갖고 갔는데 이게 과연 현지에 적합한 것인지 검토하는 과정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호치민 라이프프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