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일 회장, 서울시 세종대왕 동상 이전 계획과,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주역”에 반대되는 내용의 영화 역사 왜곡에 대해 심각한 우려 표명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ㅣ기사입력
2019/08/31 [16:52]
【Seoul(Korea)=GW Biz News】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한글학회(회장 권재일-이사장 김종택)가, 한글학회 창립(1908년 8월 31일) 111돌을 맞아, 하루 앞선 8월 30일 금요일 한글회관 얼말글교육관에서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을 오후 5시부터 거행했다. 이 날, 한글학회는, 창립 111돌을 맞아, 이재인 전 한글학회 총무 간사, 정동환 전 한글학회 연구-출판부장, 하치근 전 한글학회 부산지회장, 강병륜 전 한글학회 충남-세종지회장 등 4명에게 공로 표창패를 각각 수여했으며, 또한, 성낙수 외솔회 회장, 차재경 한글단체모두모임 회장, 김상석 우리한글박물관 회장, 김들풀 한국어인공지능학회 이사 등 4명에게는 감사패를 각각 수여했다. 아울러, 본 현장에서는 오동춘 짚신문학회 회장의 축시 낭송과 그룹 해사한(강순예-전영준)의 축하 공연이 이어졌으며, 한글학회를 빛낸,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떠난) 역대 유명 인사들(최현배-허웅-정인섭-이은상-한갑수)의 예전 육성도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현장 분위기를 사진으로 남겨 둔다.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KLS) 공식 엠블럼.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KLS=Korean Language Society, 회장 권재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58-14)=>한글과 한국어의 연구를 위해 이루어진 학술 단체이다. 1908년 8월 31일 월요일에 김정진을 회장으로 하여 창립한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1921년 12월 3일 토요일 창립됐다. 한글 학회는 1926년에 한글날을, 1933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고, 한글을 보급하고자 노력했다. 8.15 광복 후, 학회는 한글 전용을 주장해 국한문 혼용을 한글 전용으로 쓰는 것을 장려했다. 처음의 명칭은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로서 국문연구소(1907년 설치)를 계승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회원은 장지영-김윤경-최현배-권덕규 등 15~16명이었다. 이들은 동호인들을 규합한 후 학회 활동으로 연구발표회를 여는 한편, 1927년 2월 8일 화요일에는 기관지 “한글”을 발간했다. 1931년에는 학회의 이름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로 고쳤고, 1933년에는 한글맞춤법통일안-외래어표기법을 제정하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했다. 1942년부터 회원들이 여러 차례 독립 운동 죄로 검거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어학회사건이다. 8.15 광복과 더불어 부활되어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 6월 12일 일요일, 당시 한글학회 회장 외솔 최현배(崔鉉培, 1894. 10. 19 ~ 1970. 03. 23) 선생(빨간 원)과 조선어학회 수난자 동지회 회원들(2년에서 6년의 징역형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8.15 광복 이후에야 자유의 몸이 됐다)이 자리를 같이 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윤경, 정세권, 안재홍, 최현배, 이중화, 장지영, 김양수, 신윤국. (둘째 줄 왼쪽부터) 김선기, 백낙준, 정현식, 이병기, 정열모, 방종현, 김법린, 권승욱, 이강래. (뒷줄 왼쪽부터) 민영욱, 임혁규, 정인승, 정태진, 이석린.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이 기념사에 나섰다. 권 회장은 서울시 광화문 광장 개발 계획에 따른 세종대왕 동상 이전 계획과,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주역”이라는 기존의 정설에 반대되는 내용을 담은 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글학회와 입장을 같이 하고 있는 한글문화연대(대표 이건범) 보도 자료 내용을 아래에 전재해 둔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문화연대(대표 이건범) 보도 자료]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주역”=>영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을 제대로 알자=>영화나 연극, 방송극, 만화 등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사실과 다른 허구를 바탕으로 삼는 일은 어쩔 수 없고, 상상력의 작동이라는 측면에서는 허구가 창작의 본질일 수도 있다. 물론 역사의 줄기까지 허구로 지어내는가, 세부 사정만 허구로 그려내는가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 경계가 어디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역사의 줄기마저 허구로 지어내는 순간 우리는 그러한 창작이 심각한 역사 왜곡을 저지를 수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의 주역을 '신미 대사'로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는 이런 가정을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감독의 소신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일반적인 창작의 자유와는 결이 다르고 위험하다. 이미 국어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정설로 자리 잡은 세종의 한글 창제 사실을 뒤집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자칫, 세종을 남의 수고 가로채 자기 위신 세우려는 나쁜 임금, 못난 임금으로 몰아갈 위험이 매우 높다. 세종 시대의 사회 발전을 이루어낸 과학기술, 음악, 의학 등의 성과물에는 장영실, 이천, 박연 등 그 주역이 역사에 등장한다. 그렇듯이 조선왕조실록에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나오는 것은 오로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영화나 방송극에서 역사를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그런 역사물을 볼 때에는 더더욱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길, 대중 매체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함께 다루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밝힌다. 특히 두 가지만은 분명하게 아는 게 좋겠다. 첫째,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은 세종대왕임이 이제는 학계의 정설이다. 신미 대사는 물론이요, 집현전 학자들도 결코 주역이 아니다. 훈민정음을 전공한 국어학자들이 쉽게 쓴 책을 참고하길 권한다. 둘째, 영화 막판에 훈민정음 서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 . . "가 109자였는데 여기서 1자 줄여 108자로 만들어 훈민정음 창제 주역인 신미 대사의 공을 기린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서문은 세종이 아니라 세조 때 나온 '언해본' 즉 우리말로 풀어 한글로 적은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이다. 영화에서는 당초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이 그랬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세종 때 지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 서문은 한자로 적은 한문 문장으로, 글자 수는 54자이다. / 2019년 7월 31일 /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이 축사에 나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김석득 한글학회 명예 이사가 축사에 나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이봉원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 회장이 축사에 나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유운상 전 한글학회 사무국장이 축사에 나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한글학회 공로 표창을 수상한 (좌로부터) 정동환, 하치근, 수여자 권재일 회장, 강병륜, 이재인.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한글학회 감사패를 수상한 (좌로부터) 김상석, 성낙수(외솔회 직원이 대리 수상), 수여자 권재일 회장, 차재경, 김들풀.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오동춘 짚신문학회 회장이 축시 낭송에 나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그룹 해사한(강순예-전영준)이 축하 공연에 나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외솔 최현배 선생(1894 ~ 1970)의 한글 관련 육성이 현장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눈뫼 허웅 선생(1918 ~ 2004)의 한글 관련 육성이 현장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눈솔 정인섭 선생(1905 ~ 1983)의 한글 관련 육성이 현장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노산 이은상 선생(1903 ~ 1982)의 한글 관련 육성이 현장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눈메 한갑수 선생(1913 ~ 2004)의 육성이 현장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김동진 헐버트기념사업회 회장(오른쪽)이 자리를 같이 했다. 참고로, 헐버트 박사는 한민족의 한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헐버트 박사는 주시경 선생과 함께 한글 표기에 띄어쓰기와 점찍기를 도입하고, 고종에게 건의해 국문연구소를 만들도록 한 주인공이다. 바로 이 점이, 한글학회(회장 권재일)에서 한힌샘 주시경을 위시한 여러 근대 국문학자들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으로 이 헐버트 박사를 받들고 있는 곡절이다. 헐버트 박사는 평상시 한국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3년 만에 한국어를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지리서를 한글로 간략하게 정리해 1889년에 ‘사민필지(士民必知)’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이기도 하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한글학회 회원들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서로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기가 힘들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한글회관 옆의 구세군중앙회관 입구에 세워진 한글 관련 조형물이 이채롭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취재 후기=>그동안, 해마다 8월말이면, 본 기자의 소회는 참으로 복잡해지곤 했다. 해마다 8월 31일(<=1908년)이 한글학회(회장 권재일-이사장 김종택<김정진을 회장으로 하여 창립한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하는 단체) 창립일이어서 기쁘긴 했으나, 그 이틀 전인 8월 29일(<=1910년)이 경술국치일(=일본 제국이 대한제국 국권을 강탈했음을 공포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틀 간의 시차를 두고 한민족 일원으로서의 울고, 웃는 날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 한민족 일원으로서 어찌 유쾌한 일이 될 수 있으랴. 경제보복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의 현재 상황을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취재에 나선 한글학회 정회원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가운데), 최용기 몽골민족대학교 부총장(=한글학회 정회원)과 광화문 거리에 굳건히 섰다. 본 기자의 판단으로는 한글학회 몽골지회 발족 가능성이 이미 8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헤어짐이 아쉬웠던 한글학회 정회원들이 광화문의 한 찻집에서 이대로 한글사용성평가위원회 위원장(11시 방향)과 자리를 같이 했다.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향후 한글학회의 무궁한 융성-진흥-발전'이라는 한 가지 방향이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그동안 몽골 대학 캠퍼스의 9월 개강에 맞춰 몽골로 복귀하느라 고국에서의 한글학회 창립일 기념식 참석이 어려웠으나 올해엔 9월 2일 월요일이 개강이라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돼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에 자리를 같이 할 수 있어서 참으로 기뻤다. 본 기자가 한글학회 창립일 기념식에 참석하기는 지난 2014년 8월 한글학회 창립 106돌 기념식을 겸해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치러진 한글학회의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제막식 현장 취재(2014. 08. 29 금요일 오후 5시) 이후 무려 5년 만이다. 본 기자로서는 참으로 가슴이 벅찬 순간이었다.
▲한글학회 창립 111돌 기념식 현장. 이 기쁜 날, 귀갓길에 마주한 세종대왕 동상이 왠지 서글퍼 보였다. 묻노니, 우리 한민족 역사의 상징적 인물이자 서울 광화문의 상징인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제독)의 동상을, 누가 감히, 서울 광화문 광장의 새로운 설계안이라는 구실로,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하는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광화문을 헐고, 그 자리에 장사 잘 되는, 인기 있는, 서양 요릿집을 아예 멋지게 하나 짓는 게 나을 듯하다. 서울시는 떼돈을 벌 것이다. 도대체 국가적인 비전이 있어야지!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글을 쓰면서, 본 기자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굳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지난 1942년에, 한글에 대한 연구를 해 왔던 한글학자들을 "조선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고 한글 사용 금지를 어겼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이 집단으로 체포해 투옥했던 사건이다. '한글학회 사건', 또는 '한글학자 집단 체포 사건' 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을, 조선어학회의 후신인 현 한글학회에서는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지칭하고 있다. 33인의 한글학자들이 옥에 갖혔고,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 끝에 33인 중 두 사람(이윤재-한징)은 함흥 형무소에서 심한 고문과 추위와 굶주림 끝에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우리 한민족의 한글 연구와 활용을 일제가 몽둥이로 때려잡은 것이다. 참으로 지긋지긋하고도 참혹한 시절이었다. 다시는 이런 시대가 오지 않도록 한민족은 두 눈을 부릅떠야 할 때가 지금이리.
한편, 올해 8월 29일(<=1910년) 경술국치일엔 비가 내렸다. 순국선열들의 회한에 찬 눈물일까? 본 기자는 다행히 비를 피해 하루 전인 8월 28일 수요일 오전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다녀왔다. 연희전문 재학 시절, 산책을 좋아했던 윤동주가 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서 하숙하면서 인왕산을 오를 때 걸었던 언덕이라는 게 윤동주문학관을 운영 중인 종로문화재단 측의 전언이다. 이미, 윤동주가 숨졌던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취재(2014. 08)와 윤동주가 태어난 중국 룽징 명동촌 취재(2015. 06)를 다녀온 바 있는 본 기자이긴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서울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방문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빚을 갚은 기분이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 윤동주 시인의 언덕 방문. (2018. 08. 28).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인왕산 자락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서서, 당시 사용이 금지됐던 한국어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됐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은 윤동주 시인을 떠올려 보자니, 본 기자의 심정은 참으로 처연(凄然=기분이 애달프고 구슬프고, 썰렁하고 쓸쓸하다)해지는 것이었다. 어느 유행가에 그런 노랫말이 있었던가?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시인(=사랑)아!" 마치 그런 기분, 그런 느낌 그대로였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 윤동주 시인의 언덕 방문. (2018. 08. 28).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방문 기사는 향후 기회 있을 때 자세하게 별도 기사로 내보낼 예정이거니와, 본 기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표지석 옆에 걸터 앉아 윤동주의 대표작의 하나인 ‘쉽게 씌어진 시’(1942년 작품)를 떠올렸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본 기자의 얼굴은 웃고 있으나,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 1947년 중국 룽징 명동촌 윤동주 시인의 묘소에 가서 앉아 있는 서글프고도 먹먹한 기분이었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 윤동주 시인의 언덕 방문. (2018. 08. 28). 본 기자의 육신은 서울에 있었으나, 마음은 1947년 중국 룽징 명동촌 윤동주 시인의 묘소에 가 있었다. (Photo=YS Univ.).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일본 패망 이후, 세월이 많이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한글은 아직 생동하고 있다. 글을 길게 늘일 생각은 없다. 요컨대, 한민족 구성원들 중, 이미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이나, 현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만고불변의 공통점이 있다면, 한글 사랑의 정신에 있다 할 것이다. 한글 사랑에는 남녀노소, 지위고하, 학연, 지연, 경제력, 권위, 명예, 유무명, 학력과 지식의 차이, 여야 정파, 이념, 기타 등등의 구분이 결코 있을 수 없다. 왜냐. 이것은 총칼로 한민족을 때려잡았던 일본제국주의를 보는 본 기자의 감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니까. 비장한 심정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한글의 앞날을 생각해야 하니까. 본 기자나 한민족 구성원 한 사람과 한글은 다르다. 본 기자나 한민족 구성원 한 사람의 삶은 유한할망정 한글은 대대손손 영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한글학회(회장 권재일-이사장 김종택=김정진을 회장으로 하여 창립한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하는 단체) 창립 111돌(1자가 세 개나 겹친 기가 막힌 행운의 숫자임을 기분 좋게 체감한다)을 진심으로 자축하며 향후 한글학회의 무궁한 융성-진흥-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경축] 한글학회 창립 111돌
현재, 본 기자는 2019년 몽골 대학 캠퍼스 여름 방학을 이용해 잠정 고국 방문 차 서울에 체류 중이나, 몽골로 복귀하는 9월부터는 몽골 관련 소식 보도를 예전처럼 몽골 현지에서 이어갈 예정이다.
▲Reported by Alex E. KANG, who is a Korean Correspondent to Mongolia certified by the MFA led by Foreign Minister D. Tsogtbaatar. ⓒ Alex E. KANG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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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