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2017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이 사건 전 몰래카메라 촬영을 권유한 남성으로부터 김정남이 ‘고용된 배우’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8시간에 걸쳐 이뤄진 흐엉의 진술을 적은 11쪽 분량의 조서를 말레이시아 사법 관계자로부터 입수했다며 그 내용을 31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흐엉은 사건 발생 7주 전 하노이의 바에서 자신을 한국의 몰래카메라 프로그램 카메라맨으로 소개한 ‘미스터 Y(와이)’라는 남성을 만나 출연을 제안받았다.
이 남성은 사람에게 액체를 바르는 동작을 요구받은 흐엉이 테스트 촬영에서 겁내는 모습을 보이자 “촬영을 위해 배우를 고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는 몰래카메라 촬영이 아니라 김정남 암살이었으며 흐엉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와 함께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 남성은 사건 직후 동료와 함께 북한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흐엉은 체포 후 조사에서 “(북한 남성으로부터) 촬영을 위해 고용한 배우라고 들었다”고 말하며 자신은 김정남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아사히는 “북한 남성이 김정남을 배우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며 “흐엉이 사건 전 테스트 촬영에서 주저하고 실패를 반복해 망설임을 없애기 위해선 조심할 필요가 없는 상대라고 생각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분석했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흐엉은 촬영을 제안한 남성이 출연료로 얼마를 원하냐고 묻자 1천 달러라고 답했다. 남성은 “2월 13일의 촬영은 중요하다”며 “유튜브에 올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 김정남의 모습이 보이자 남성은 흐엉의 손에 “다소 노란 오일” 상태의 액체를 떨어뜨렸다.
흐엉은 “먼저 ‘배우’의 눈을 만진 뒤 손바닥을 얼굴에 문질렀다”며 “배우가 놀라 돌아봤기 때문에 얼굴 전체에 (액체를) 바르지는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실로 가 손을 씻은 흐엉은 “손이 아프지 않아 (액체에) 독성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 후 공항 근처 호텔에 숙박한 흐엉은 ‘미스터 Y’가 “공항에서 계속 촬영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출연료를 받으러 공항에서 그를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장에서 체포된 흐엉은 “그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흐엉의 아버지인 도안 반 타인은 “딸이 너무나도 주의가 부족했다. 사람을 쉽게 믿어버렸다”며 “사건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말리고 싶다”고 신문에 말했다.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은 지난 11일 흐엉과 같은 혐의로 기소했던 시티 아이샤에 대해선 공소를 취소하면서 석방했고, 4월 1일 흐엉에 대한 재판을 속행할 예정이다.
[라이프플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