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노감독이 평양을 간 까닭
Newsroh=김원일 칼럼니스트
20세기 최고의 기록영화 감독으로 평가받는 클로드 란츠만(프랑스) 감독의 북한영화 ‘네이팜탄’이 최근 러시아에서 초연(初演) 돼 눈길을 끌었다.
‘네이팜탄(Napalm)’은 3000℃의 고열을 내면서 반경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드는 무서운 폭탄이다. 2017년 칸 영화제에 출품한 이 작품에서 란츠만 감독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 지역이 입은 폭격 피해(당시 40만 인구의 평양에 48만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도 소개하면서 1955년 북한을 방문했다가 사랑에 빠졌던 여인을 추억하는 독특한 스토리로 완성했다
러시아 일간 콤메르 산트의 안드레이 플라호프 기자는 국제 영화 페스티벌 ‘Message to man’에 소개된 ‘네이팜탄’이 자신이 본 영화 중 가장 놀라운 영화라 평했다.
다음은 기사의 주요 내용.
곧 92세가 되는 클로드 란츠만은 ‘네이팜탄’ 이전 여섯 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것들은 모두 홀로코스트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있었고 9시간 반 길이의 ‘쇼아(Shoah 1985)’는 다큐멘터리 영화부분의 명작으로 꼽힌다.
‘네이팜탄’은 유대인에 대해 말하지 않은 감독의 첫 영화이자 선택된 민족의 유일한 대표자로 란츠만 자신만이 나오는 영화이다. 1958년 그는 첫 유럽 좌파지식인 방문단에 포함되어 한국전쟁 후 북한을 방문한다. 그 다음 그는 2004년과 2015년에 다시 동양의 사회주의의 요새인 북한을 방문하여 ‘네이팜탄’의 대부분을 촬영한다.
란츠만의 영화는 최근 북한이 전 세계에 도발한 위협의 컨텍스트 속에 처하게 되었다. 북한은 영화산업에서 유행하는 주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최근 몇몇 서방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영화를 촬영한 것은 용감함을 뛰어넘는 것으로 여겨졌다. 비탈리 만스키의 ‘태양 아래’와 같은 영화들은 거의 모두가 장엄한 가짜 형상들만을 찍도록 허락하는 북한의 기만(欺瞞)에 대한 것이었다.
란츠만 또한 마치 태권도에 대한 영상을 찍으러 온 것처럼 북한 가이드를 속인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도 이 격투기의 에이스들로 젊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이 미국과 영국 적군들에게서 빼앗은 무기들이 전시되어있는 전쟁 박물관을 안내하고 적어도 60살은 더 많아 보이는 프랑스 관광객은 분명히 그녀와 잡담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에피소드에서 나르시즘과 자기아이러니 외에 무엇이 있는가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영화의 주요 플롯에 부치는 논리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전주곡이었다. 영화의 주요 플롯은 수십 년 전 젊은 시절 감독이 보았던 평양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한 젊은 프랑스인은 몸이 좋지 않아 비타민 주사를 맞았다. “군모를 쓴 남자”의 감시 하에 북한 적십자 간호사가 주사를 놓았다. 이 일을 계기로 그와 간호사는 같이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지만 낭만적인 조각배를 같이 타기도 했다. 이 때 그 여성은 갑자기 전쟁에서 얻은 가슴의 화상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유일하게 그 둘이 같이 이해할 수 있었던 ‘네이팜탄’이란 단어를 말한다.
그들은 이미 서로 말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금지된 열정(熱情)을 참은 이 남녀의 만남은 “군모를 쓴 사람들”에 의해 중단되고 란츠만은 다른 방문단들과 함께 북한을 떠났다. 파리에서 그 간호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는 검열된(정말 그렇게 쓰여졌을지도) 답장을 받았다. 편지에는 언젠가는 지구에 민족 간 평화와 우정이 넘쳐나기를 바라는 희망이 쓰여 있었다.
란츠만의 영화에는 완전한 파괴의 비극을 경험한 나라에 대한 깊은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다. 평양에 네이팜탄이 쏟아 부어졌고, 45만개의 미국 폭탄이 투하되었다. 그것은 도시 주민 1인당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희생자는 수백만에 달했으며 그 비극은 오랫동안 시간을 멈추고 독재 체제를 유지시켰으며 야생성을 합법화 시켰다. 심지어 반세기가 흐른 후 북한을 다시 찾았을 때 란츠만은 수 킬로를 걸어가야만 하고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상 네이팜탄 홍보영상 캡처
하지만 감독은 비록 위대한 영도자 동상과 170미터의 주체사상탑으로 걸어가는 길을 충분히 아름답게 서술하기는 했지만 만스키 감독과는 다르게 반인륜적인 체계에 대한 폭로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이 시간을 멈추겠다는 즉 죽음을 멈추고 유한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려는 비이성적인 시도는 란츠만을 매혹시켰다.
인문학자이자 존재론자인 란츠만은 커다란 역사와 개인의 삶과 마주한다. 이 경험은 알렝 레네가 란츠만이 1959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바로 그 시기에 ‘히로시마, 나의 사랑’에서 받아들인 방식과 유사하다. 하지만 ‘네이팜탄’의 작가는 비극에 넌센스의 코메디를 섞는다. 여주인공이 물에 빠지고 온몸이 젖은 두 남녀가 폐허의 평양을 지나 유일하게 복원된 대로를 지나 호텔로 돌아오는 에피소드가 그러하다. 비극은 지나간 22세기에 속하고 21세기에는 비극-광대극으로 재현된다.
페테르부르크의 초연에서 사람들은 라츠만을 향해 ‘태양 아래’에 대한 것과 비슷한 비판을 했다. 왜 작가-주인공은 서구의 식민주의자처럼 행동하는지 왜 그녀를 나중에 찾지 않았는지 그녀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는지 젊은 시절의 실수를 참회(懺悔)하지는 않는지. 중요한 것은 만약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라츠만이 비난 받을 참회할 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를 지배했고 시민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던 쌍방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 될 때 정치적으로 예의를 갖춘 도그마적인 조소(嘲笑)가 불합리하게 들린다. 이 이야기의 놀라운 점은 충동적인 열정의 드라마가 강제적으로 멈추어버린 시간을 움직이게 만들었으며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시스템 속에 오류(誤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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