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맞물려 3·1운동을 3·1혁명으로 변경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태동시킨 민족사의 거대한 물결인 3·1 거사를 ‘운동’으로 부르는 것은 낮춰 부르는 것이니 ‘3·1혁명’이라는 바른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1919년 당시 조선의 인구가 1천750만명이었는데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인 220만명 정도가 독립만세 항일투쟁에 참여, 2만3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4만6천여명이 투옥됐다. 남녀·빈부·종교·신분·지역에 상관없이, 모두가 참여했다.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참여한 것은 세계 혁명사에 처음있는 일로, 봉건왕조에서 민주공화제로 바꾼 계기가 된 점, 조선 여성들이 처음으로 역사적 사건에 앞장섰다는 점 등을 봤을 때 당연히 ‘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 독립기념관장은 “역사는 모름지기 정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프랑스 대혁명도 처음에는 반란이라 했었고, 1894년 농민봉기는 동학란, 4·19는 의거, 5·18은 사태라고 하다가 제 이름을 찾았다. 3·1혁명을 ‘운동’이라고 몇 단계 낮춰 부르는 것은 선열들에 대한 모독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930년대 이후 우리 민족진영에서도 대부분 ‘3·1혁명’이라고 불렀다. 임시정부가 1941년 3·1만세 22주년 기념대회에서 3·1 대혁명운동이라 칭하고, 1944년에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도 3·1 대혁명이라고 명시했다.
제헌 의원들이 헌법조문을 만들면서 처음에는 ‘3·1혁명’이라 표현했지만, 혁명, 항쟁, 운동 등의 용어를 두고 논의하다 ‘운동’으로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제 잔재청산을 위해 ‘철도의 날’을 경인선 개통일(9월 18일)에서 철도국 창설일(6월 28일)로 변경하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제정한 국난극복기장령을 폐지했으며, 임시정부 수립기념일도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바꿨다.
이처럼 ‘역사 바로세우기’에 무게를 둔 정부이고,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시점이기에 3·1혁명으로 바꿔 부르자는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촉진제 역할을 했고, 유럽 최초의 한인회 ‘재법한국민회’를 결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이곳 파리에서부터 ‘3.1혁명’의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한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