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2일, 프랑스 교육부의 새 규정에 따라 프랑스 대학입학 국가고사인 ‘바칼로레아'(BAC)’에 한국어 과목이 포함됐다는 소식에 교민들은 일제히 환영을 표했다.
이는 역사적인 일로, 바칼로레아에서 한국어가 '임의선택 언어(LV3)’에서 ‘필수선택 언어(LV2)’로 격상되면서 프랑스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선택해 가르치는 비중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혜민 전 대사에 이어 모철민 직전 대사가 이부련 전 교육원장과 함께 프랑스 교육부에 수차례 찾아가,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 한불 교육분야 교류의 중요성 등을 설명하고 설득한 결과였다.
이 전 교육원장은 “학교 자율이 아닌 법제화가 됐기 때문에 한국어의 위상 자체가 달라졌다”며 “교민 자녀들의 바칼로레아 점수 취득도 유리해져 한국 출신이 그랑제콜을 통해 프랑스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야심찬 계획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이미 2017~18년 신학년도가 시작되었는데도 상당수의 교민자녀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 등록은 커녕 이에 대한 명확한 안내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자칫 EIE(고등학교연합수업) 수업을 계속 받을 수 없는 상황에도 처해있다.
파리교육청에 따르면, EIE는 파리 공립학교 학생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사립학교 학생들이나 파리 교외지역 학교 재학생들은 수업참여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교육원의 적극적인 홍보로, 파리지역 공립은 물론, 사립이나 교외지역 학생들 상당수가 등록해 수업에 참여해 왔는데, 이같은 파리교육청의 발표는 그간 교육원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EIE에 등록된 한국 학생들은 사립이나 교외지역 학교 학생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파리지역 사립학교 학생들까지는 가능하다고 알려 왔지만, 교외지역 학생들의 수업참여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장송 드 사이(Janson de Sailly)’ 고등학교에서 시행해왔던 EIE 토요일 수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어 수업은 수요일에 빅토르 뒤리(Victor-Duruy) 고등학교에서만 개설하고 EIE 수업도 수업 시간을 줄여 두 시간씩 세 레벨로 수업을 진행해야한다는 파리교육청의 방침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실제로, 토요일 오후에 수업을 해야 많은 한국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기에 이부련 전 교육원장이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와 파리 교육청을 설득해서 토요일 오후에 수업이 가능한 장송 드 사이에서 EIE를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빅토르 뒤리에서 수요일 수업만 진행할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교 수업 때문에 한국어 수업 참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경우, 장송 드 사이에서 토요일 수업을 들어왔던 학생들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처음부터 이를 진행해왔던 교육원 측은 아무런 설명이나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7~18 신학년도가 시작되어 이미 수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시점인데도 명확한 고지가 없어 학생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한국어가 LV2가 된 기쁨도 잠시, 한국어가 프랑스 중고등학교에 정규과목으로 채택되어 점차 위상을 높여가야 하는 시점에서, 정작 이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교민자녀들의 EIE 수업 차질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몇 달 사이에 교육원장과 담당직원이 바뀌고 수업을 진행했던 교사까지 귀국하면서 문제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대로된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이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파리외 지역의 학생이든 교육은 누구나 공정하고 공평하게 받아야할 권리가 있다.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교민자녀들의 정체성을 심어줄 모국어 교육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책임있는 교육정책과 함께, 문제해결을 위한 주불한국대사관과 한국교육원 측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한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