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사태에서 치러진 12월 6일 1차 지역선거에서 FN 극우당이 최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프랑스 정치판도에 새로운 지도가 그려질 전망이다. 기존의 좌-우 투톱 시스템은 와해되고 치열한 3파전이 예고된다.
이번 선거에서 FN 극우당은 13개 지역 중 6개 선거구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전국득표율 27.73%를 기록했다. 제1야당 LR 우파진영 26.65%, PS 좌파집권당은 23.12%에 머물렀다. 2010년의 1차 지역선거 결과를 보자면, 당시 제1 좌파야당 29.4%, 우파집권당 26.02%, FN 극우당이 11.42%를 각각 차지했다.
이번 FN 극우당의 사상최대 득표율은 현 좌파정권에 대한 반발, 이슬람, 이민, 치안정책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표심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프랑스 국민들은 테러에 맞서는 올랑드 대통령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뒤에서는 현 정권을 질타하는 민심을 투표권 행사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12월 6일 1차 선거의 진짜 패배자는 제1 우파야당이라는 사실도 간과되지 않는다. 우파진영의 푸른 물결이 맥없이 극우파의 블루마린 쓰나미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정통 우파야당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 상황이다.
올랑드 좌파정권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사르코지 전 우파정권보다 더 우회전된 우파 정책들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정통 우파정당은 급부상한 극우파와 우파정책을 채택한 좌파정권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버려, 앞으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노선을 고안해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예고된 블루마린 쓰나미
2012년 좌파정권이 들어섰을 때부터 극우세력의 급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후 FN 극우세력은 좌,우 투톱 정치시스템을 견제하는 제3세력으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블루마린 쓰나미가 예고된 것은 11월 13일 파리연쇄테러가 기점이 된다. 기존 정치권이 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앙금이 되살아났던 때문이다.
파리의 한 음악콘서트장이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정보가 국가기관에 접수되었던 것은 지난 8월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무고한 시민들이 테러에 희생된 후에야 현 정권이 뒤늦게 후속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비탄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1월 13일 130명 테러희생자들의 죽음을 기화로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22% 껑충 치솟았다.
누구보다도 파리연쇄테러라는 비극 앞에서 가장 크게 어부지리를 얻은 쪽은 FN 극우당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인기도를 만회하긴 했지만, 이민과 치안정책에서 극우파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지독한 패러독스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현 좌파정권이 발표한 이민, 치안정책 후속조치들은 그동안 우파와 극우파가 주장했던 정책들을 그대로 수렴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극우파의 강세를 부추기는 노이즈마케팅
12월 지역선거가 가까워지면서 블루마린 쓰나미 현상이 감지되자, 정계뿐만 아니라 사회각층에서 깊은 우려감을 표명했다. 발스 총리는 반극우파 선거참모로 자칭하며, FN 극우당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말 것을 유권자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프랑스 대기업경영자 연합회(Medef) 회장 피에르 카타즈(Gattaz)는 12월 1일 일간지 파리지앵과 인터뷰를 통해 FN 극우당이 제안한 경제정책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밝혔다. 1981년 좌파가 정권을 쥐면서 채택한 경제정책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극좌파 멜랑숑과 극우파 르펜은 같은 경제정책을 공유하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들의 주장과 반대방향으로 나가야된다고 역설했다. 극우파와 극좌파가 같은 맥락을 지닌다는 카타즈 회장의 인터뷰가 대단한 화제를 모았던 터이다.
하지만 이런 반극우파 선거운동들이 FN 극우당이 매스컴의 소프트라이트를 더 많이 받도록 기회를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일종의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거두게 했다는 것이다.
한편 현 좌파정권은 1차 선거에서 3위를 차지한 PS 집권당후보들이 선거구에서 자진사퇴하도록 종용하고, 2위 우파후보들을 위해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좌파지지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2월 13일 2차 결승전에서 FN 극우당의 승리를 완전 봉쇄하기 위한 선거작전이다.
하지만 이런 마키아벨리적인 정치작전들도 긴 안목으로 볼 때 극우파세력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식견도 있다. 주요정치인들이 누구, 누구를 찍으라고 지시를 내린다고 유권자들이 순순히 말을 듣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역한 감정과 반발감만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극우파도 극좌파처럼 국내정치판의 실전에 끼어들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유권자들 스스로가 염증을 느껴 등을 돌리도록 하는 편이 낫다는 견해도 흘러나온다. 일부 유권자들이 기존 정치시스템에 반발하여 제3 세력에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 극우세력의 행정, 정치능력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 2017년 대선을 향한 치열한 3파전
FN 극우당은 주로 젊은이들, 실업자, 노동자들을 흡수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실업률이 높은 고장에서 극우파의 강세를 보인다. 12월 6일 투표에 참가한 실업자들 중 40%가 극우당을 선택했다. 이런 경향을 보자면 프랑스는 동서로 분단된 편이다. 고도실업률과 이민문제에 비교적 덜 노출된 서쪽 대서양쪽 선거구역에는 블루마린 쓰나미 물결이 미치지 못했다.
특히 FN 극우당은 기존 좌, 우파 정당들과 비교하여, 당원 연령층이 낮으며 젊고 다이내믹한 분위기로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정치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18~30세 연령층 34%가 극우당에 투표권을 행사했다. 전국 평균득표율 27.73%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중도우파 성향을 지녔던 정통 가톨릭교도파 유권자들도 극우파에 대거 합류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되지 않는다. 1차 선거 직후에 실시된 Ifop 여론조사에 의하면, 독실한 가톨릭 신도 32%가 FN에 투표권을 행사했다. 지난 3월 실시된 지방도의원선거(Départementales) 1차 투표 에서는 26%를 기록했다.
2월 13일 2차 선거결과는 대단한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있다. 12월 6일 1차전에서 40% 이상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한 FN 후보들이 과연 2차전에서 50% 마지노선을 무너뜨릴지는 미지수이다. 올해 3월의 지방도의원선거 1차전에서도 FN 후보들이 강세를 보였지만, 2차 결승전에서 단 한 명도 도지사를 배출시키지 못했다. 극우파후보 따돌리기 봉쇄작전이 먹혀들어갔던 덕분이다.
이번 13개 지역선거 결과에 정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려있는데, 2017년 대선 이전에 치러지는 마지막 선거로서, 차기대선의 선거향방을 가늠해주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는 까닭이다. 이번 지역선거 1차전 결과를 보자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2017년 대선에서 FN 극우당 후보가 2차 결승전에 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확실한 편이다. 그렇다면 2차 결승전의 한 자리를 놓고 기존정치세력 좌, 우파 진영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야한다는 결론이다.
기존 투톱 시스템은 제 3세력의 강세에 브레이크를 거는데 합세해야 하면서, 동시에 한 좌석 남은 2017년 대선결승전을 놓고 인정사정없는 결투는 불가피해진다. 2017년 대선고지를 향한 정치판의 치열한 삼파전은 빠르면 12월 13일 2차 지역선거를 치룬 즉시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프랑스에는 고도실업률, 골치 아픈 이민정책, 등골을 오싹케 하는 테러위협 앞에서 우파, 좌파라는 정치이념의 경계선은 애매해진 상황이다. ‘나는 좌파, 너는 우파’라는 이념전쟁은 이제는 격동하는 현시대에 뒤쳐진 퇴물에 불과할 뿐이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부상하는 극우세력과 맞서, 기존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어떤 새로운 노선으로 거친 정치판을 헤쳐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