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베르사이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 등 유명 관광지 못지않게, 요즘 새로운 관광 자산으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나날이 증가하는 관광객들을 맞기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는 산업체들이 바로 그곳이다.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산업 현장을 공개하는 기업체와 수공업체는 프랑스에 약 5천 곳으로 추정되며, 한 해 방문객 숫자는 2천만명에 육박한다.
산업관광을 이끄는 이들 기업체 가운데, 프랑스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굴지의 대기업이나 고급 브랜드들이 포함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86% 가량이 중소기업체(PME)와 지역영세기업(TPE)들이 차지한다는 점은 괄목할만한 의미를 지닌다.
산업관광을 통해 지역기업체와 지역주민들 사이에 원활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놀라운 시너지효과 때문이다. 결국 산업관광은 경제적 애향심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세계화 바람이 유럽선진국 기업체들을 인건비 저렴한 개발도상국으로 이주하도록 부추겼는데, 이에 맞서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 못지않게, 지역기업체도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여기는 새로운 바람이 주목되고 있다.
▶ 관광객들에게 문을 개방하는 기업체들
관광객을 유혹하는 산업체는 주로 비스킷을 비롯한 식료품업계 및 농축산가공업계, 포도주, 샴페인 및 아페리티프 제조업체, 전기에너지, 첨단테크놀로지, 장인정신을 자랑하는 수공업체들이 차지하며, 이어서 의류, 화장품, 향수업계가 전반적으로 뒤따른다. 여행전문 대리점을 통하지 않고, 기업체들이 직접 방문일정과 코스를 정하여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설명을 곁들인다.
프랑스 최대의 전력회사 EDF는 매년 36만 이상의 방문객을 맞이한다. 툴루즈 블라냑 에어버스 항공제작소는 유료방문(일반인 15.5€)이나 지난해 7만5천여 명이 다녀갔다.
생-나제르 STX 조선은 4만7천, 세계적인 염전지대 게랑드 7만7천, 베네딕틴 리큐르 제조업으로 유명한 노르망디 페캉의 베네딕틴 수도원 11만, 브르타뉴 퐁타벤 비스킷 제조공장은 14만 이상의 방문 기록을 자랑한다. 남불 PACA지방 프라고나르 향수 제조업체는 1백만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길이 2,460m의 미오(Millau) 고가교는 2004년 개통된 이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량관리업체의 안내로 유료방문이 가능하며 매년 10만명 이상이 다녀간다.
한편 여행전문가이드 책자 루타르(Routard)는 부록으로 ‘기업방문 가이드’를 발행하고 있다. EDF, 에어버스, STX 조선을 비롯하여 지역경제와 문화를 주도하는 중소기업체와 수공업체 450개 정도를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 EDF 랑스 조력발전소
산업관광의 본격적인 출범은 1980년대 지역주민에게 문을 개방했던 EDF로 간주한다. 주민들에게 원자력발전소의 일부 시설물을 개방하여 전력산업에 관한 이해력을 고취시키고 지역조건에 맞도록 전기에너지를 공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바닷물 조수간만의 차이로 전기를 생산하는 랑스(Rance) 조력발전은 인기가 높은 산업관광단지로 손꼽는다. 세계 150개국에서 매년 6만 명 이상 방문하고 있다. 외국인들 중에는 산업자산에 유독 관심이 많은 독일인들이 상당수 차지한다고 EDF측에서 귀띔했다. 전문연구원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전력산업에 관심을 지닌 일반인들로서 간혹 어린자녀들을 동반하여 견학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유일한 랑스 조력발전은 1966년 댐 공사를 완공했다. 관광명소 생-말로에서 가깝게 흐르는 랑스 강에 걸쳐있는 길이 750m 댐으로, 13.50m에 이르는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하여 1년에 500GWh 전력을 생산한다.
게다가 랑스 댐은 생-말로와 인근 해변휴양도시 디나르를 연결하는 주요 교량이다. 말하자면, 조력발전소 지붕 위로 차량이 통과하는 댐-교량이다.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간혹 차량통행이 잠정적으로 중단되는데, 작은 선박들이 통과하도록 댐의 관문이 열릴 때이다.
EDF는 작년에 처음으로 랑스 댐-교량 구조물을 일반인에게 개방하여 화제를 모았다. 오는 9월 29일과 30일 ‘전력산업의 날’을 맞아, EDF는 랑스 댐-교량 시설물을 비롯, 60개 전력산업단지를 전격적으로 개방한다.
방문 희망자는 EDF 웹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이 필요하다.(http://www.edf/jie)
▶ '유럽문화유산의 날'에 동참하는 SNCF
오는 9월 15일과 16일 ‘유럽문화유산의 날’을 맞이하여 문을 개방하는 기업체들도 늘고 있다. 올해는 철도공사 SNCF도 동참한다. 베일에 가려진 전국 50개 옛 역사건물과 철도산업의 소중한 자산들을 개방한다.
파리 동부 역에서는 전설적인 열차 ‘오리엔탈-엑스프레스’를 전시한다. 1969년 이후 폐쇄됐던 오를레앙-피티비에(Pithiviers) 구간 철도가 9월 15일 하루 개통, 타임머신을 타고 1950, 60년대로 향하는 여행코스도 준비되어 있다. 이렇듯 대중이 모르는 역사건물들을 비롯하여 과거와 미래로 이어지는 다양한 철도운행 시스템들이 선보인다.
2017년 ‘유럽문화유산의 날’에는 란셀 패션브랜드사가 처음으로 아틀리에를 공개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기업체들의 홍보전략
전형적인 영세기업(TPE)인 한 원예업자는 해마다 봄과 가을철 두 차례에 걸쳐 ‘정원 전시회’라는 타이틀로 5,000m2 화원을 개방한다. 원예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 이날은 방문객들의 눈을 공짜로 즐겁게 해주고 화초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준다.
‘정원 전시회’ 준비 작업만으로 직원 2명과 15일을 꼬박 할애하는데, 하루 맞이하는 방문객은 1천 명을 육박한다. 방문객들은 주로 50km 이내에 거주하는 이 고장 주민들, 원예업자는 이들의 메일주소 등 연락처를 받아놓는 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 원예정보를 틈틈이 전달하며 세밀하게 고객관리를 하는데, 바로 자신의 사업을 인근 지역에 알리는 최고의 홍보마케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1,800여명에 불과한 보즈 지방 시골마을의 오트-보즈 사탕전문 과자제조업체(La confiserie des Hautes-Vosges)의 경우, 한해 19만까지 방문객을 맞이하면서 산업관광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공짜로 과자제조 견학과 시식코너를 제공하는데, 물론 방문객들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누구나 적어도 사탕봉지 하나 정도는 직판매장에서 즉석구입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기업체들이 문을 개방하는 데는 기업과 브랜드 이미지를 격상시키고, 동시에 판매실적도 올린다는 일거양득 마케팅전략이 깔려있다. 대체적으로 기업체를 찾아온 방문객들은 장차 고객이 될 확률이 높은 편이다.
결국 산업관광은 기업체와 방문객 양쪽이 혜택을 누리는 윈윈전략이나 다름없다.
▶ 이색 관광을 즐기려는 현대인의 취향
기업체 방문자 80% 가량은 산업시설과 제조과정에 호기심이 이끌린 여가활동이고, 20% 가량은 관련분야 종사자들의 직업 활동이라는 통계자료도 있다.
현대인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정보를 입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매일 사용하는 전기 공급처 EDF부터 매일 마시는 에비앙, 비시 등 미네랄워터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지갑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제품의 재료와 생산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성향도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욕구와 발맞추어 산업관광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생활제품의 아이덴티티를 알고자하는 지적, 문화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가 있다.
하나 더 지목되는 사항은, 이색적인 산업현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일부 방문객들의 욕구에는 일반적인 관광을 즐기면서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두고자하는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에펠탑 앞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놓는 일은 이제 좀 시시해지고 있는 추세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이병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