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리얼리즘의 대가이자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세상의 기원’ (L’Origine du monde) 모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콩스탕스 케니오(Constance Quéniaux).
10월4일에 발간될 ‘세상의 기원, 어느 모델의 생애’에서 저자인 클로드 숍(Claude Schopp)이 밝혔다.
클로드 숍은 2017년에 공쿠르(Goncourt) 자서전 부문 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다.
한 때 정신분석학자 작크 라캉(Jacques Lacan)이 소유했던 이 그림은 여성의 음부를 그린 도발적인 누드화로 1995년부터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기원’은 미술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많은 논란을 빚었던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체모를 그대로 드러낸 채 누워 있는 여성의 나체를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림이 제작된 1866년부터 지금까지 이 얼굴 없는 누드화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를 둘러싸고 온갖 추측이 제기됐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처음엔 쿠르베의 애인이자 아일랜드인 모델 조애나 히퍼난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었지만, 그림 속 모델의 체모 색과는 달리 히퍼난의 머리는 빨간색이라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정됐다.
미술사의 이 해묵은 미스터리가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모델은 파리 오페라극장 발레단의 댄서였던 콩스탄스 크니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역사학자 클로드 숍은 최근 소설 ‘춘희’의 작가인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와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가 주고받은 편지를 분석하던 중 편지에서 눈에 띄는 구절을 발견했다. “누구도 파리 오페라 크니오의 인터뷰 만큼이나 섬세하고, 말이 많은 그림은 그릴 수는 없어”라는 대목이었다.
숍은 문맥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문서를 꼼꼼히 훑어봤고, 처음에 ‘인터뷰(interview)’라고 읽혔던 단어가 사실은 ‘내부(inte rieur)’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편지의 그 구절은 ‘크니오의 내부를 섬세하게 그렸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은 여성 성기가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숍은 문헌 자료실에서 크니오가 화가들을 위한 모델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한 뒤 “99%의 확률로 그림의 모델은 크니오”라고 주장했다. 그림이 제작됐던 당시 크니오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물러나 고급 창부 겸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파견된 터키 외교관 칼릴-베이(Khalil-Bey)의 정부(情婦)였던 마리 안느 데투르바이의 살롱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칼릴-베이는 쿠르베에게 ‘세상의 기원’ 제작을 의뢰했던 인물이다.
그럼 왜 그녀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와는 달리 자선사업에 몰두하여 ‘존경할 만한 자선가’가 되어 있는 그녀의 과거를 들추는 것은 당시로선 불문율 아닌 불문율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숨어있는 비화는 클로드 숍의 이야기를 뒷받침한다. 1908년 콩스탕스의 사망 당시 경매에서 쿠르베의 ‘꽃다발 그림 한 점’이 발견되었다.
봄꽃인 수선화, 튤립, 앵초가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 화류계 여자들의 상징이 된 동백꽃이 있었다. 특히, 꽃다발 중앙에 활짝 열린 붉고 깊은 암술(pistil)이 보이는데, 이는 콩스탕스에게 헌정하는 최상의 경의의 표시였다고 숍은 결론 짓고 있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이진명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