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하는 겨울철은 하늘을 지붕 삼아 거리에서 살아가는 노숙자들에게 눈길이 돌려지는 시기이다. 추위, 비바람, 굶주림, 질병, 폭력 범죄에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된 사회 취약계층이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 하지만, 프랑스 전국에 걸쳐 약 14만 3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 어린이, 임신여성, 젊은 실업자들도 포함
최근 파리의 노숙자들 실태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가 발표됐다. 2018년 2월 15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바람이 유난히 몰아쳤던 추운 밤으로, 자원봉사자들이 노숙자들을 찾으러 길거리로 나섰던 날이다.
이날 밤 그들이 찾아낸 노숙자들은 총 3,035명. 이들 중 2,080명은 노천거리에서 발견됐는데, 밀집지역은 주로 파리 북동쪽이었다. 이어서 매트로 373명, 역 구내 226명, 공용 주차장건물 112명, 공원지대 189명, 55명은 종합병원 응급실 대기실에서 각각 찾아냈다.
실제로 노숙자 숫자는 이보다 훨씬 웃돌 것이라는 추측이다. 자원봉사자들이 모든 공공건물의 지하실과 층계 밑, 공용주차장, 창고, 공사장, 공원 등을 빠짐없이 방문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 파리의 노숙자들 1,834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를 통해 프로필도 대충 그려졌다. 남녀분포도에서 남성 88%, 여성 12% 차지한다. 이들 중 46%는 1년 이상 노숙자 생활을 해왔으며, 5년 이상은 20%에 이른다. 연령층에서는 25세에서 64세 사이가 66%를 차지한다. 25세 미만의 경우도 16%에 이르며, 대부분 젊은 실업자들이다.
노숙자들 72%는 독신자들이며, 커플 3%,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형도 2% 차지한다. 비바람 치던 그 추운 겨울밤 자원봉사자들이 만났던 노숙자들 가운데 어린이 35명, 임신여성 8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 파리의 심각한 주택난과 연결
프랑스에서 노숙자를 두고 SDF(Sans Domicile Fixe)라는 공식표현을 채택한 것은 불과 30년 전부터이다. 이전에는 거지(clochards), 구걸인(mendiants), 넝마주이(chiffonniers) 등으로 혼용하여 표현했다. 19세기에는 떠돌이 유랑자(vagabonds)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오늘날 SDF들이 경찰에서 신원조사를 받을 경우 사회 신분을 적는 칸에는 ‘아웃사이더(marginaux)’로 기입된다.
이들 사회 아웃사이더 이미지에 알콜 중독자와도 오버랩 되기 십상이다. 추위, 고독, 굶주림, 질병 등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먼저 알콜에 의존하는 까닭이다. 또한 이들 아웃사이더들은 흔히 개를 동반한다. 사회적 고립감을 이겨내기 위해서인데, 이 동행자는 외부 공격으로부터 신변을 보호해주는 호위무사 역할을 담당한다.
이처럼 사회 아웃사이더로 연결된 SDF들의 이미지에는 이율배반적인 아이러니도 도사려있다. 오늘날 파리 SDF들 가운데 밥벌이하는 노동자들이 25% 차지하는 까닭이다. 일은 하지만 비싼 월세를 낼만한 소득이 안 되거나, 임대숙소 계약의 높은 문턱을 뛰어넘지 못한 저소득층들이다. 이들은 고정된 주거지 없이 밤이면 잠잘 곳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거나, 낡은 자동차 안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이들 저소득층 SDF들의 삶은 프랑스 언론에서도 간혹 다루는 뜨거운 감자이다. 사회적 아웃사이더로는 취급될 수 없는, 이들 저소득층 SDF들의 상황이 심각한 주택난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 하나의 선택된 삶인가?
노숙자들 가운데는 고정된 주거지나 한 장소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는 성향을 지닌 이들도 존재한다. 즉 떠돌이 유랑자 생활을 삶의 한 스타일로 선택한 이들이다.
바로 시므농(1929~1972년)의 단편추리소설 <메그레 형사와 거지>에서도 잘 반영된 시각이다.
1960년 초 어느 3월의 밤, 파리 오스테를리츠 다리 근처 센 강물에 빠진 혼수상태 거지를 두 선원이 건져낸다. 표면상 지극히 단순한 살인미수사건이었다.
메그레 형사의 예민한 촉각은 즉각 곤두서는데, 거지들끼리의 불화로 빚어진 우발적인 폭력사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거지를 살해하려고 시도했던 것일까? 그는 단순해 보이는 사건배후에 복잡한 퍼즐이 숨겨있음을 감지하고, 동료 거지들을 상대로 집요한 탐문수사를 펼친다.
이어서 중태에 빠진 거지의 본명은 프랑스와 켈레르(Keller), 나이 63세, 부인과 딸을 둔 의사였음이 밝혀진다. 켈레르 의사는 22년 전 부인의 부르주아적 마인드에 거부감을 갖은 채 상류사회와 인연을 끊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파리 센 강의 다리 밑을 떠돌기 전에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던 전력도 지니고 있었다.
메그레의 날카로운 촉각은 거지를 강물에서 건져낸 선장 우트에게로 곤두서진다. 그러나 부유한 선장과 거지의 관계에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었다.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결국 단서 하나를 찾아내는데, 두 사람이 2년 전 베르시 다리근처에서 딱 한번 스친 인연을 지녔던 것이다.
메그레는 우트의 이중범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큰 장벽에 다시 부딪친다. 의식을 되찾은 거지가 침묵을 지키며 증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거지의 삶을 택한 의사의 미스터리는 더욱 부각된다. 켈레르는 아무도 타인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는 신념과 더불어 사회시스템에 전면적인 거부감을 지녔던 것이다.
이렇듯 작가 시므농은 메그레 형사의 휴머니즘이 곁들인 시각을 통해 거지들의 삶을 치밀하게 재조명했다. 사회제도를 거부하고 자기 뜻대로 유랑하는 거지들의 삶에 인간적인 시각마저 던지고 있다.
▶ 노숙자들의 응급구조전화 115
밤이 깊어질수록 사뮈(Samu) 의료 응급차들은 파리 시내를 바쁘게 누비기 마련이다. 노숙자들을 무료 숙박센터로 실어 나르고, 필요한 경우 응급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노숙자들을 위해 115 긴급 다이얼이 마련되어 있다. 하룻밤 혹은 당분간 기거할 장소를 급히 찾거나, 샤워시설, 뜨거운 음식 혹은 의복이 필요한 경우에 115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115 다이얼을 통해 임시숙소를 조달받는 노숙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노숙자들이 115시스템을 모르거나, 설령 구조요청을 하더라도 응급센터들이 대부분 만원이라 더 이상 노숙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사뮈 자선재단의 경우 파리에 14명 입소가 가능한 2개 임시숙박센터, 파리근교 이브리(Ivry)에 52명 숙박이 가능한 센터를 갖추고 있다. LHSS재단 등 다른 자선단체들도 의료시설을 갖춘 응급센터의 문을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가령 남편에게 구타당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지만 오갈 데 없는 여성들도 115로 긴급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여성전용센터, 가족전용센터들도 마련되어 있다. 파리 115는 시청, 철도청(SNCF), 파리교통공사(RATP)와 공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프랑스(파리)=이병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