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겨울철 세일행사가 지난 1월 8일 수요일을 개시로 2월 16일 화요일까지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신년벽두 1월과 여름철 입문 6월을 시작으로 두 차례 거행되는 세일행사의 열기는 매번 대단한 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 소비자 95%가 이번 겨울철 세일시즌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의류품목을 보자면 1년 총 매상고의 40%에 해당되는 분량이 두 세일기간에 집중적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통계이다.
매년 전통연례행사가 된 세일행사를 프랑스의 무형문화유산으로 간주하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지구촌 현대인들의 소비활동과 깊숙이 연관된 바겐세일이 19세기 파리에서 처음 출발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중심 도시였던 19세기 파리는 경제, 문화, 지리, 예술차원에서 시대적 요구에 적극 부응하면서 상업적인 면에서도 파격적인 이벤트를 창조해냈다.
▶ 바겐세일의 창시자 시몽 마누리
불어로 바겐세일을 의미하는 ‘솔드(Les soldes)’의 어원 자체에 깊은 유래가 담겨있다. 재고정리 염가대매출을 지칭하는 법률어로 Les soldes 단어가 공식화된 것은 1962년이다. 이후 단수명사로 사용할 때 문법적으로 여성형(une solde)일까, 아니면 남성형(un solde)일까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편이다.
단수형으로 쓰일 때 남성형(un solde)으로 기입해야한다는 의견이 만장일치이다. 그 이유는 ‘솔드’라는 단어는 원래 팔고 남은 ‘천 조각(un coupon de tissu)’을 뜻하는 은어였기 때문이다. 팔다 남은 옷감들을 처분하기 위해 할인판매가 고안됐으며, 자연스럽게 ‘솔드’라는 말도 유행어가 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언제부터 ‘솔드’행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그 근원지는 1830년 파리에 처음 등장한 백화점 ‘쁘티 생-토마(Petit Saint-Thomas)’로 간주한다. 노르망디 지방출신 시몽 마누리(Mannoury, 1788-1862년)는 1830년 파리 7구 생-토마-다쾡 성당에서 가까운 뤼뒤박(Rue du Bac) 거리모퉁이에 원단가게를 차렸다. 가게간판은 성당이름을 빌려 쁘티 생-토마라 내걸었다. 그는 팔다 남은 원단들을 주기적으로 할인 판매했는데, 바로 ‘솔드’의 창시자이다.
시몽 마누리는 상술에서 과히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가게마다 한 특정품목 위주로 소매 판매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옷감을 비롯하여 침대시트 등 가정살림에 필요한 린넨 제품들을 통틀어 판매했다. 게다가 제품을 구입하지 않아도 누구나 마음껏 아이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점포를 열어놓았고, 주문판매, 가격표부착도 도입했다.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상술 혁명이었다.
쁘티 생-토마가 차츰 파리장안의 화제로 떠오르면서 판매제품 종류는 다양해졌고, 더불어 할인판매도 더욱 활발해졌다. 이후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탄생한 파리 명문백화점들이 쁘티 생-토마의 경영방식을 모방했던 것은 물론이다.
▶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쉐
1852년 파리에서 개점한 봉마르쉐(Le Bon Marche)는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바로 쁘티 생-토마의 전신이다. 창업주 아리스티드 부시코(1810~1877년)는 시몽 마누리가 고용했던 여성용 숄 판매담당 점원이었다. 1848년 쁘티 생-토마가 묻을 닫자, 부시코는 봉마르쉐를 개점했고, 1860년 세계에서 최초로 현대감각을 살린 실내시장으로 건물을 확대 신축했다.
1852년 봉마르쉐를 출발로, BHV(1860년), 쁘렝땅(1865년), 사마리텐느(1965년), 라파예트(1895년) 등 파리의 명문 백화점들이 탄생했다. 이어서 미국과 다른 유럽지역에서도 1890년대부터 백화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11년 파리 12개 백화점의 직원숫자만 해도 1만1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쉐는 쁘티 생-토마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새로운 룩을 추구하며 재고품 염가대매출을 주기적으로 시행했고, 정가판매가격과 할인가격을 나란히 표시하면서 고객들의 소비욕구를 만족시켰다.
정가제, 주문배달 이외에도 제품기획전을 주기적으로 펼치면서 대대적인 세일광고도 펼쳤다. 부시코의 첫 기획전 ‘하양색(Le blanc)’ 테마로 마케팅전략을 펼친 할인판매가 유명하다. 당시 판매된 옷감, 리본, 홈웨어를 비롯하여 침대보, 냅킨 등 가정용린넨 제품들의 원단들은 모두 하얀색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1870년 봉마르쉐는 백화점 건물을 고객들에게 휴식공간으로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쇼핑을 여가문화로 정착시키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에 앞서 쁘티 생-토마도 점포에 어린이들이 당나귀를 타도록 놀이터를 제공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터였다. 봉마르쉐는 고객들이 독서를 즐기도록 우아한 원목걸상이 구비된 살롱을 마련했고, 화초와 분수대로 장식되고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여성전용 휴식공간과 화장실을 마련하여 여성손님들을 유혹했다.
1880년대 봉마르쉐는 하루에 7만 명이 출입했다는 기록이다. 고객의 90%가 여성들이었으며, 일부 여성들은 여가활동으로 백화점을 매일 출입하다시피 했다.
다른 파리 명문백화점들도 독특하면서 쾌적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고객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쇼핑과 여가활동을 즐기도록 배려했다. 오늘날 세계대형백화점들의 마케팅전략은 사실상 봉마르쉐의 부시코로부터 바턴을 이어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졸라의 소설적 영감
봉마르쉐는 특히 졸라의 소설, ‘여인네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 1883년)’의 창작모체로 유명하다. 소설시점은 1864년과 1868년 사이이며, 중심무대는 파리에 처음 생긴 ‘여인네들의 행복’ 백화점이다.
소설줄거리는 이렇다. 고아가 된 20살 노르망디 시골처녀 드니즈 보뒤는 5살, 16살인 두 어린 남자형제를 데리고 원단가게를 운영하는 삼촌아저씨를 찾아 파리에 상경한다. 삼촌아저씨의 가게점원이 되고자 파리에 왔지만, 일자리가 없음을 깨닫고 곧 실망한다. 1년 전 파리에 생긴 ‘여인네들의 행복’ 백화점 때문이다. 아저씨네 가게 정면에 백화점이 생기면서 주변 소상인들이 찬바람을 맞고 울상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드니즈는 결국 어린동생들과 살아가기 위해 백화점의 점원이 되며, 동료점원들의 비참한 생활상, 젊고 야심찬 백화점경영자 오귀스트 뮈레를 둘러싼 암투 등 온갖 인간군상의 형태를 체험한다. 드니즈는 빼어나게 예쁘지도 않으며 시골뜨기에 촌스런 옷차림으로 여점원들의 우스개 대상이다. 하지만 뮈레는 드니즈에게 특별한 관심을 지니는데 다른 여성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숨은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실 드니즈는 당시 상업혁명이나 다름없던 백화점의 등장과 이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낸 혼란 속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정통성과 현대화물결을 동시에 이해하고 융합하려는 정신력을 지닌 히로인으로 그려진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조직의 최고 권력자 뮈레의 유혹을 거절해왔던 드니즈는 우여곡절 끝에 그의 구혼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해피엔딩으로 소설은 종료된다.
하지만 백화점 밖에서는 소상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에 휘말린다. 소상인들은 백화점에 손님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격경쟁을 벌이며 서로 가격을 낮추지만 결국 망하는 쪽은 소상인들이다. 이렇듯 정통시장의 소상인들과 수공인들이 거대한 괴물, 백화점에 의해 몰락하는 과정이 신랄하게 그려진다.
졸라는 당대 명문 백화점들에 대한 정밀한 자료수집과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부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실태와 경영방식을 실감 있게 묘사했다. 물론 가공인물 뮈레는 봉마르쉐의 부시코에서 착상됐다. 놀라운 점은 19세기 졸라의 소설을 통해 21세기 대형백화점들의 마케팅전략과 실태, 갈수록 심각해지는 정통시장 소상인들의 애환을 그대로 엿보고 있다는 점이다.
▶ 2백년 가까운 전통
프랑스에서 ‘솔드’로 인해 생겨나는 반칙행위를 견제하기 위해 법안이 처음 마련된 것은 110년 전인 1906년이다. 1년에 두 차례 걸쳐 최고 6주 동안 ‘솔드’ 행사를 치르도록 법적으로 규정한 것은 1990년대. 상인들은 ‘프로모션(les promotions)’, ‘개인 판매(les ventes privees)’, ‘재고 몽땅 떨이(les braderies)’ 등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며 할인판매를 자체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솔드’ 행사일 경우 ‘솔드’에 적용된 법률을 지켜야 한다. 중요골자는 ‘솔드’ 적용품목들은 적어도 1달 이전부터 판매장에 진열되었던 제품이어야 한다. 즉 창고에서 잠자던 옛 재고품들, 중고품들을 슬쩍 다시 꺼내 ‘솔드’행사에 동참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또한 가격표에 원래의 매장가격과 할인가격을 동시에 표기해야한다.
현대인들에게는 일상화가 된 세일행사는 19세기와 20세기 분기점에서 산업발전과 더불어 일어났던 소비혁명이었다. 팔다 남은 천들을 처분하기 위해 약 200년 전에 파리에서 처음 시작된 세일행사는 이제는 자동차, 비행기로까지 확산되면서 21세기글로벌 경제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이르렀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