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찾게 되는 곳이 에트르타(Étretat)이다. 겨울 바다를 좋아해 새해 맞이하듯 찾게 되는 에트르타이자,지인이 프랑스에 놀러올 때 하루 나들이로 다녀오기 좋아서이기도 하다. 자주 찾는 곳이지만, 에트르타는 절벽, 성당, 바다, 파도, 자갈밭, 초록색 풀밭, 하늘, 구름, 모든 것이 특별한 곳이라서 매번 갈 때마다 새롭고, 정겹고, 반갑다.
태초의 바다로 가는 길
에트르타까지 가는 길은 전형적인 노르망디 지방의 모습을 보여준다. 카망베르 치즈로 유명한 만큼, 풀밭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낮잠을 자는 풍경 사이로, 바람막이 나무로 울타리로 사용하는 농장들이 그림이다. 농장의 목장에는 소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 양, 오리, 닭들이 자연의 품 안에서 노니며 목가적 풍경이 다가왔다 멀어졌다 한다.평화로운 풍경을 따라 가다보면 에트르타다. 바다에 도착한 것이다. 차에서 내려 쏴아쏴아하 파도소리를 따라가면 막힌 숨이 탁 트이듯, 숨이 열리듯, 갇혀있던 세포들이 마구잡이로 풀어헤치며 나오듯, ‘살 것 같아’란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바다로부터 받는 특별한 선물이다.
19세기의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알퐁스 카흐가 ‘친구에게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주어야 한다면, 서슴없이 에트르타를 보여 주리라’라 했던 말에 주저 없이 공감하게 되는 그런 바다여서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에트르타
오른쪽으로는 그 유명한 코끼리 모양의 절벽이, 왼쪽으로는 아담한 성당이 있는 절벽이 있다.
절벽 사이에 해변의 자갈들이 뾰쪽한 모서리 없이 몽글몽글 파도에 씻기며 마모되어 파도 소리가 거칠지 않고 힘차지만 부드럽다. 코키리 상아처럼 빛나는 석회암 절벽이 푸른빛 바다와 파도의 하얀 포말에 더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오며 찾아온 사람들을 매료한다.
에트르타는 모네, 부댕, 시슬리, 쿠르베 등 19세기 말부터 인상파 화가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모네는 에트르타의 일몰을 즐겨 그리고, 쿠르베는 사실주의로 기암절벽의 절경을 그렸다.
또한 앙드레 지드가 1895년 결혼식을 올렸던 곳이고,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은 에트르타가 무대였고, 모리스 르블랑의 ‘기암성’의 배경이기도 했다. ‘괴도 루팡의 집’은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여 개방하고 있고, ‘모파상 기념관’도 이곳에 있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마을은 아담하고, 노르망디스타일의 목조 가옥은 고풍스럽고, 가게들은 예쁘게 단장을 하고 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 않는 에트르타만의 운치가 있는 해안마을이다.
치유의 바다에 서다.
사람들의 발길로 난 길을 따라 절벽 위로 올라가 대서양을 바라보면 왜 그토록 화가들이, 작가들이 에트르타를 사랑했는지 가슴으로 이해가 된다.
코끼리가 코로 바닷물을 쑥쑥 마시며, 긴 포효의 소리를 내는 소리를 낸다. 구름조차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는 하나가 되어 광활하다. 수평선 너머로 날던 갈매기가 복잡하게 오가던 상념들도 데리고 날아간다.
서서히 일상에 메말라가며 서걱서걱 소리가 나던 영혼에 수액이 똑똑 들어와 피돌기에 힘을 주는 듯 생기가 돈다.
상처를 입었을 때, 시간은 흘러가며 희석시키지만, 자연은 상처 난 자리에 약을 발라주듯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다정함으로 치유해준다.
어느 덧 수평선 사이로 해가 들어선다. 에트르타의 절벽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황홀한 아름다움과 쓸쓸한 외로움이 씨실과 날실로 곱게 짜인 시간이기에. 모든 소리가 붉디붉은 바다와 하늘에 빨려 들어가 고요만이,정적만이 남는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