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이번 여름휴가동안 함께 일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만남의 자리에서다. 방년 27세의 신세대 여성 유학생 A씨는 건강하고, 스스럼없고, 씩씩하다. 본인 자신이 ‘씩씩함’을 빨간 줄로 명기했을 정도.
파리에서 교포 자영업자가 일손을 구하자면 압도적으로 유능한 여성 지원자가 많다. 이 분들은 진취 적극 독립성 세계성(언어) 등을 겸비한 굉장한 분들이다. 우리같은 구멍가게 주인이 황송할 수준의 이력 학력을 가지신 분들이 많아 안타깝다.
-저희 수준이나 분에 넘치는 경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더 나은 자리를 함께 찾아보십시다.
“파리는 다른 나라 교포사회와 달리 영세하여 일자리가 매우 희귀합니다.”
-교포사회의 85%가 젊은 유학생분들이시긴 합니다만.
“복잡다난한 프랑스 행정 때문에 한국 대기업 취업 길도 바늘구멍 찾기죠.”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파리생활 이후의 미래계획은 어떤가요? 함께 일하게 된다 하더라도 서로에게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자리가 되어야 할 터이니까요.
“(27세 여성 유학생으로서 미래에 대한 간단하며 복잡한 설명)”
-한마디로 한국남성이던, 프랑스 남성이던, 좋은 남편을 만나셔서 행복한 미래를 꾸미셔야겠네요.“
“맞습니다.”
- 제가 지난 주에 경험한 ‘2014년 한불 합작 신데렐라 커플’ 이야기를 들려 드리지요.
면접은 뒷전으로 돌려놓고, A씨의 미래설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한불 합작 ‘러브스토리’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프랑스인 K씨는 홍콩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의 싱가폴 주재원으로 일했다. 한국인 여성 C씨는 영어 어학 연수차 싱가폴에 갔다.
두 사람이 싱가폴에서 만나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사랑의 열매인 남자아기가 태어나 지금 생후 8개월이다.
- 두 사람은 K씨의 고향 Melun(퐁텐블로 근처의 파리 근교)에서 친지들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였다.
. 신랑은 한국의 장인 장모님과 친척들을 초청하기로 했다.
-지난주, Melun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100명이 넘는 하객들은 오전의 시청 결혼식, 오후 성당 결혼식, 저녁부터 밤까지의 야외만찬, 그리고 새벽까지로 이어지는 디스코텍 파티 등으로 이어졌다.
자, 연 2일간에 걸쳐 한글-불어 통역을 맡았던 통역인이 전하는 현장 분위기를 옮겨본다.
“성대한 결혼식이었습니다. 만찬 비용이 1인당 300유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에게는 대만족이었겠지만, 한국으로부터 날아 온 10명의 신부 가족들은 곤욕을 치루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곤욕?)
“신부님 부모님들이 충남 당진에서 농사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열 분 모두가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셨다는 거예요. 더구나 제가 통역은 했습니다마는 대개 프랑스인들이고, 불어 일색의 진행을 이해하실 수가 없었죠. 프랑스 음식은 더 했습니다. 거위간에 샴페인 등 진수성찬의 프랑스 음식에 손도 못 대신 겁니다. 사나흘 머무는 동안 아마 내내 굶다가 귀국하신 것으로 짐작됩니다.”
-컵 신라면이 제 격이었을 터인데.
“물론이죠. 매큼하고 뜨뜻한 국물이 있는 한식이나 라면이 얼마나 눈 앞에서 아른거렸겠습니다. 시차 피로 신경 스트레스 등 때문에 식장 만찬장 등에서 내내 꾸벅꾸벅- 졸지 않을 수 없는 분들이 많았어요.”
-화려하고 성대한 예식이 아마도 신부님 가족분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고역의 경험이셨을거에요.
“그래도 훌륭한 또 한 쌍의 한불 합작 커플의 탄생입니다.”
-2014년 신데렐라 러브스토리여서 신랑신부는 앞으로 더 행복할겁니다.
“큰 충격이었습니다. 프랑스인 신랑이 한국인 신부와 그 가족들을 위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한국형 효자 사위 수준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헌신적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인 신부-프랑스 신랑의 사랑이란 이토록 진한 것이라구나, 하고 말입니다.”
-A씨도 파리 유학이 아니라 싱가폴 어학연수를 떠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말 그래야 할 것 같네요.”
-하하하.
“하하하.”
이제는 프랑스인 신랑 K씨와 물랭지기의 인연을 소개한다.
1970년대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 할 때다. 자주 파리 출장을 나와서 설계도를 프랑스 건축사무소로부터 받아 왕복했는데, 그때 설계담당자가 Kirchoff (키르쇼프)씨이다. 스트라스부르그 출신의 ‘키’씨와는 그 후 오늘까지 40년을 우정을 가져 오늘까지 자주 만났다. 이제 그의 나이 72세. 은퇴한 왕년의 친구 ‘키’씨의 조카가 새 신랑 K씨다.
몇 달 전에 ‘키’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몽마르트르로 물랭지기를 찾아왔다.
“내 남동생의 아들인 조카가 지금 두바이에서 일하는데, 싱가폴 근무 때 만난 한국인 여성과 결혼식을 프랑스에서 올린다고 해. 통역 차량 가이드 관광안내 등에 대해서 한국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큰 일은 커녕 경사요 경사. 우리가 힘을 합쳐 도와 드립니다.
그 후, 두바이에서 신랑이 파리로 날라와 꼼꼼하게 일정을 따졌고, 한국인 통역 차량 가이드 관광안내 등이 차질없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충남 당진으로부터 오신 10명의 신부님 가족들이 프랑스 음식 때문에 식사를 건너뛰는 강행군을 하다가 귀국한 사연은 아무래도 마음이 걸리는 추억중의 하나이다. (*)
【물랭지기 / hotelmoul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