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빌라 사부아(Villa Savoye)’를 파리에서 30km 떨어진 푸아시(Poissy)에서 볼 수 있다.
푸아시는 이블린 주에 속하는 작은 마을로, 센 강가에서 농사와 사냥, 물고기 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골의 한적한 마을로, 휴그 카페(Hugues Capet)의 아들인 로베르 2 르 피외 (Robert II le Pieux)가 1016년에 성을 짓고, 성당을 지어 헌납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노트르담 공주 성직자단 성당 (La Collégiale Notre-Dame)은 12세기에 지어져 종교전쟁과 백년 전쟁의 한복판에서 피해를 입으며 복귀를 반복해야 했던 성당으로 지금의 성당은 건축가 E.E. 비올레 르 뒤크에 의해 복구된 것이다. 마을은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르 코르부지에의 ‘빌라 사부아’를 보기 위해 건축을 공부 사람,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곳이다.
“20세기 대표적인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부아(Villa Savoye)”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1887.10.6~1965.8.27)는 스위스의 시계 산업의 중심지였던 라 쇼드퐁(La Chaux-de-Fonds)에서 태어나 1916년부터 1965년까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프랑스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시계 만드는 일을 했고, 그의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느르 그리(Charles-Édouard Jeanneret-Gris)였지만 파리로 이주한 후 르 코르뷔지에로 이름을 바꾸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기존의 건축 관념을 깨고, 오늘날 현대 건축에 적용되는 이론을 만들어낸 건축이론의 선구자이자 건축가로, 사상가, 화가, 조각가, 가구 디자이너, 도시계획가, 공예가로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이며 라 쇼드퐁 장식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스승이었던 레플라토니에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넌 반드시 다른 일을 하게 될 거야. 건축가 말이야.”라고 했지만 그의 꿈은 화가로 건축가의 길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의 재능이 아까워, 건축가 샤팔라를 소개시켜 주었고, 샤팔라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17살에 팔레주택을 설계했고, 이 설계가 판매되어 르 코르뷔지에는 스승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그는 르네상스의 시대의 건축과 조각을 접하며, 건축에 대한 매력에 빠지며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파리로 가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20세기의 변화에 맞춘 새로운 시대 흐름에 따른 건축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며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메데 오장팡과 함께 ‘에스프리 누보(Esprit Nouveau)’를 창간해 이 잡지에 새로운 건축개념을 구상하며 기고를 했는데, 이 때 잡지에 쓴 필명이 ‘르코르뷔지에’에로 이때부터 르 코르뷔지에로 불리게 되었다. 필명은 이름 없던 건축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이름 ‘르 코르베지에(Le Corbésier)’에서 따온 것이다. 에스프리 누보에 실렸던 그의 글은 ‘건축을 향하여’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고, 이 책은 건축가들의 필독서로 현대 건축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건축 설계와 글을 쓰는 바쁜 와중에도 매일 그림을 그렸는데, 자신의 예술적 건축 창작의 영감은 매일 그림을 그린 덕택이라고 회고했다.
1922년에 사촌과 건축사무소를 열어 1940년까지 함께한 시기에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적용한 개인주택을 주로 설계했다.
건축의 5원칙은 지상층 바닥에서 분리하여 위로 올리는 ‘필로티(pilotis)’, 평평한 지붕층으로 정원이나 거주목적의 생활공간으로 재구성 가능한 ‘옥상정원’, 내력벽 사용을 최소화한 ‘자유로운 평면’, 조명과 환기에 유리한 ‘수평 연속창’, 지지벽이 필요 없이 바닥공간이 방들로 자유롭게 배열되어 벽면과 창문을 구성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입면’을 말한다.
제 2차 대전 후의 새 도시계획 건물 설계
건축혁명을 일으키던 르 코르뷔지에는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도시계획에 의한 새로운 건축의 필요성에 따라 빛을 발하며 건축가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때의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정부의 요청으로 마르세유에 들어선 ‘유니테 다비타시옹(L'unité d'habitation )’은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현대 아파트의 효시라 불릴 수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1600명이 살 수 있는 아파트로 340여 채로 나뉘었고, 쇼핑가와 편의 시설, 유치원과 체육시설까지 들어선 획기적인 건축물이다. 외부의 다양한 색과 발코니와 넓은 창의 조화에 따른 아름다운 미관으로 예술적이다. 이어
그는 최소한의 공간 속에서 팔을 벌리고 움직일 때 불편함이 없는 황금비율인 모듈러 시스템을 도입해 롱샹에 ‘롱샹 노트르담 성당’을 만들었고, 1951에는 인도 정부가 펀자브(Punjab) 주의 찬디가르(Chandigarh) 시를 행정 주도로 설계할 건축 고문으로 그를 발탁되어 법무부 청사, 국회 의사당, 총리 관저를 직접 디자인하고, 찬디가르 시의 도시 계획안을 만들었다. 1960년에는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 1964년 하버드 대학의 비주얼 아트센터 터와 취리히의 박람회장을 설계하며 쉼 없이 일을 하다, 1965년 8월 27일 아침 11시에 르 코르뷔지에는 작업실을 나와 지중해의 바다로 수영하러갔다. 의사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며 르 코르뷔지에게 해수욕을 금하는 경고를 내렸지만 그는 바다로 들어갔고, 그는 심장마비로 바다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장례식은 루브르궁 안마당에서 치려졌고, 장례 행렬이 샹젤리제 거리를 지날 때는 수많은 파리 시민들이 나와 애도했다. 남프랑스의 로크브륀카프마르탱의 그의 묘지는 매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는 명소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의 묘미 ‘빌라 사부아’
빌라 사부아는 빌이에 거리(Rue de Villiers)의 르 코르뷔지에 공립고등학교(Lycée Le Corbusier)로 둘러싸인 초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저택은 르 코르뷔지에 자신이 말한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적용시켜 지은 건물이다.
저택은 보험회사 중역이었다 사보아 가족이 의뢰하여 세워진 주말 전원주택으로 1931년에 완공되어 1940년까지 주택으로 사용했다. 세계 2차 대전시에는 독일군에 의해, 이어 연합국군에 점령당해 많은 손상을 입었다. 1958년 푸아시가 청소년 센터로 사용하다 복합 교사로 변경하기 위해 철거를 검토 할 때 건축가들의 항의로 저택은 지켜질 수 있었다. 이 때 문화부장관을 지내던 앙드레 말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복원되었고, 1965년에 프랑스 문화재로 등록되어 대중에게 공개 중이다.
빌라 사부아는 석회질로 칠한 흰 벽의 기하학적 형태에 근대건축의 5원칙인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 연속창, 자유로운 입지를 지키면서 자유자재의 조형적인 요소들이 배치되어 현대 건축 5원칙이 가장 적절하게 적용된 주택으로 꼽힌다. 아라비아(Arabia)의 스타일을 착용해 고정된 질서 안에 다양한 변화가 또한 인상적이다.
1층은 차고와 창고이고, 중간에 거실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입구는 곡선의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개성적 경사램프와 원형계단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시각적 효과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의 개성을 보여준다. 내부 중간은 전면 유리로 테라스와 이어지며, 유리를 통해 액자 속의 그림을 보듯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빌라 사보아의 옥상정원에 서면, 르 코르뷔지에가 그의 마지막 저작물을 다듬으며 써놓은 마지막 문장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지도 모른다.
“삶은 현기증이 일 정도로 빨리 지나가 버렸고, 최후가 다가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La Villa Savoye
주소: 82, rue de Villiers 78300 Poissy
Tel : 01 39 65 01 06.
3~10월 10:00~17:00(5~8월은 ~18:00)
11~2월 10:00~13:00, 14:00~17:00
월요일 1/1 11/1 11/11 12/25-1/1
•villa-savoye.monuments-nationaux.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