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남동쪽에서 흐르는 센 강의 지류인 욘 강을 끼고 그림 같은 도시, 오세르가 있다. 파리에서 1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세르는 3세기에 로마의 지방 도시로 설정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700년에 주교 영지가 설정되어 종교의 권위가 높던 도시였지만 단구왕 Pépin(751~768)에 의해 몰수되었다가 그 후 주교 에르베르 (Herbert 1세 971~995)와 주교 위그(Hugues999~1039) 때 회수되며 주교들의 권력이 강해져 봉건 군주역할까지 겸했던 도시였지만 백년전쟁과 종교전쟁을 겪으며 세력은 다시 약화되었다. 18세기에 야세니즘(Jansenism)이 세력이 강력했고, 106대 주교 샹피옹드 씨에 때 교구가 폐쇄되며 상스(Sens)교구로 넘어갔다. 1801년 교정 협정으로 오세르는 트루아(Troyes)로 넘어갔다가, 상스 교구가 대교구로 승격하면서(1822) 욘 지방을 통할하게 되며 오세르는 계속하여 종교적 도시의 위엄을 계승하게 된다.
종교적 도시답게 오세르에는 수십 개의 성당과 종교관련 건축물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13세기에서 16세기의 생테티엔 대성당(Cathédrale Saint-Étienne), 12세기에서 16세기의 생트즈비위 성당(Église St. Eusebius), 16세기에서 17세기의 생피에르성당(Église St. Pierre) 등이 유명하고, 12세기의 주교관, 6세기의 생 제르망 수도원 (l'abbaye Saint-Germain)등도 오세르를 빛내는 역사적 건축물이다.
오세르는 또한 ‘푸리에 변환’을 발견한 수학자 장 밥티스트 조제프 푸리에 (Jean Baptiste Joseph Fourier)가 태어난 곳으로 푸리에의 집은 개방되지 않지만, 그의 이름을 붙인 거리인 ‘Rue Joseph Fourier’에 자리한 집 앞에 그의 생가라는 표석을 두며 기리고 있다.
오세르에서 놓치지 말고 봐야할 곳
오세르는 1995년에 ‘예술과 역사의 도시 (Ville d’Art et d’Histoire)‘로 지정될 만큼 17세기에서 18세기의 오래된 고풍스런 목조건물들 사이로 고딕양식의 성당들이 있으며, 15세기에 세운 시계탑 (Tour de l'Horloge)이 중세시대의 문을 열어주는 고혹적인 도시이다.
생테티엔 대성당은 13-16세기에 건립된 샹파뉴식 고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성 에티엔(스테판)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성 에티엔은 유대교인에 의해 예루살렘 법정으로 끌려간 뒤 돌로 맞아 죽는 형벌을 받고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이다. 성당의 반원 아치와 벽 등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주며, 초기 고딕양식과 다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건축의 예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11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지하실이 유명하다. 지하실은 보물실과 크리프트(Crypte, 지하예배실)로 나뉘고, 크리프트의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정면 북쪽의 종탑에 올라가면 욘 강과 오세르 시가지가 멋지게 펼쳐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생 제르망 수도원(l'abbaye Saint-Germain)은 6세기에 건립된 성당을 베테딕트파의 수도원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858년의 프레스코 화인 ‘성 에티엔의 순교’가 있다. 이 프레스코 화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의 프레스코화이다.
21세기의 기술문명을 탄생시킨 수학자 푸리에
‘푸리에 변환’을 발견한 장 밥티스트 조제프 푸리에 (Jean Baptiste Joseph Fourier 1768~1830)는 오세르에서 태어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8세 때 고아가 되어 베네딕투스파 성직자가 돌봐주었고, 군인양성 학교에서 공부했다. 수학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으나 신분상의 어려움으로 진학을 하지 못하고 군인양성 학교에서 공부하며 군인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독학으로 연구했다. 그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은 결국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것은 천우신조처럼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794년에 신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진 푸리에는 진로를 바꾸어 파리에 창립된 사범학교 교수로 일하며, 재능의 뛰어남을 인정받아 에콜 폴리테크닉의 교수로도 역임하게 된다.
1798년에는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공격할 때 나폴레옹 수행자로 이집트에 갔고, 나폴레옹이 귀국한 후에도 카이로에 체류하여 행정관으로 일을 계속했다. 이런 그의 공적이 인정받아 1801년 이제르의 도지사로 그르노블에서 일을 계속하며 그는 열전도론을 연구했다. 1807년 열의 해석적 이론을 발표하고 1812년 프랑스 학사원 대상을 획득하게 된다. 이 이론에는 푸리에의 정리가 포함되어 푸리에 급수의 전개는 수리물리학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푸리에의 이론들은 실계수 방정식의 해법에 관한 연구로도 인정받으며 1816년에 프랑스 학사원 회원으로 추천되는 명예도 누리다 파리에서 사망했다.
‘푸리에 변환’은 무엇인가?
1820년에 발견한 ‘푸리에 변환’은 시간에 대한 함수를 주파수에 대한 함수로 변환하는 공식으로 주파수를 시간에 대한 함수로 바꿀 때에는 ‘역푸리에 변환’이라고 한다. 즉, 시간 영역에서의 신호를 주파수 영역으로 변환하는 공식으로 이 변환은 빛, 소리, 진동 등 신호 관련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데 특히 20세기의 스마트폰에 적용되며 우리 일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4세대 통신인 'LTE'에 활용되어 인터넷을 통해 사용하는 모든 정보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저장되고 전달되어 데이터가 겹치지 않게 만들어 빠르고 깨끗하게 정보가 전달된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다른 전자통신 기기에도 활용이 되고 있어 3D 컴퓨터, 전화기등도 푸리에 변환을 응용한 기술이고, 영상 이미지 압축, 의료기기 등에서도 응용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라디오 방송국들이 동시에 방송을 해도 특정 주파수를 맞추면 해당 방송만을 들을 수 있는 것도 푸리에 변환과 관련이 있을 만큼 푸리에 변환은 현대 문명의 큰 혁명을 가져온 것이다.
만약,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푸리에는 ‘푸리에 변환’을 발견하여 세상에 발표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며, 프랑스 혁명의 중요성 안에 개인의 역사의 변화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욘 강에 석양이 진다. 오세르를 빛나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강은 붉은 빛을 풀어내며 그림을 그리고, 도시의 건물들도 강의 빛으로 물들다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긴다. 이 때 오세르의 절정이 담긴 아름다운 풍경을 푸리에 변환을 이용하여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담으면 오세르 여행이 마무리된다.
찾아가는 방법 : 파리 리옹역에서 리옹행 기차를 타고 Raroche Migenne에서 하차해 Etang 역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20분정도 가면 오세르역이다.
【한위클리 / 조미진 chomi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