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부터 올 1월이 다 가도록 해를 보기가 어려웠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거나 때론 강풍 부는 날도 많다. 작년 가을까지 상당히 고갈 되었던 지하수도 거의 찼으므로, 많은 비가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 하천 곳곳이 범람하고 있다.
파리를 통과하여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세느(Seine) 강과 그 상류의 지류 마른느(Marne) 강과 욘느(Yonne) 강, 그리고 리옹을 관통하여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론느(Rhône) 강과 그 상류의 지류 손느(Saône) 강 곳곳이 넘치고 있다.
이 강들을 중심으로 한 24개 도에 황색 홍수 경보가 발령되었고, 일-드-프랑스 지역에서는 144개 마을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파리에서는 RER C선과 강변도로가 폐쇄되고, 일-드-프랑스 도로의 상당 부분도 물에 잠겼다.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도 지하 저장고의 예술품들을 대피시키는 등, 만일의 침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세느 강의 수위가 1월 26일 오전에 5.61m에 달했고, 28일 일요일에는 이번 홍수의 최고 수위 6m에 도달했다. 이는 2016년 6월 홍수, 3~4일의 수위 6.10m와 비슷하다.
2016년 피해액이 약 14억 유로였으므로 이번에도 그 정도의 피해가 예상된다.
세느 강 수위를 재는 주아브 동상
오늘날 눈 대중으로 세느 강의 수위를 재는 기준은 알마 다리 (Pont de l’Alma) 밑의 군인 동상 주아브(Jouave)다. 이 동상은 1856년 나폴레옹3세에 의해 제막된 군인 동상이다. 주아브는 수위를 재는 척도 이상의 프랑스 문화에서 역사적인 인물이다.
알마 다리의 교각을 등지고, 총을 집고, 장화를 신고 똑 바로 서 있는 주아브는 발이 물에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군인은 세월이 지나면서 세느 강의 수위를 재는 기준으로 변모했다.
주아브 동상은 조각가 조르주 디보(Georges Diebolt)가 제작했다. 주아브는 1853~1856년 크리이아 전쟁 때 참전한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연대의 군인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이 북아프리카 연대는 1830년에 1862년까지 존속했다.
주아브 동상이 파리 7구 알마 다리 밑에 설치된 것은 나폴레옹 3세가 알마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1854년 9월 30일 크리메의 알마 강 가에서 프랑스, 영국, 오토만 제국의 연합군이 러시아 군 격파를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이 전투에서 주아브들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아브 곁에 포병 1명, 수류탄병 1명, 보병 1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 다리가 1974년에 강철로 재건설되었을 때 곁의 군인 3명은 철거되었고, 주아브만 남게 되었다.
주아브 조각상의 높이는 5.2 m이고 무게는 8톤이다. 전통적으로 주아브의 발이 물에 잠기면 홍수를 의미하는데, 몸의 각 부위가 강물이 불어나는 정도를 나타낸다. 수위가 무릎까지 올라오면 강변도로를 폐쇄하고, 세느 강의 항해를 금지한다. 때문에 파리지앙들은 주아브의 어느 부위까지 물에 잠겼는가를 예의 관찰한다.
그러나 주아브로 재는 수위는 크게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1910에 세느 강의 수위가 기록적인 8,62m였고, 1955년에는 물이 주아브의 어깨까지 찼다. 1974년에 알마 다리를 재건축하면서 주아브의 받침대 높이가 상당히 높아졌다.
오늘날 주아브는 프랑스 문화의 일부분이 되었다. 조르주 브라생스(Georges Brassens)의 노래 ‘튀며 나는 총알’ (Les Ricoshets), 스타니스라스의 ‘주아브’, 등 여러 샹송에 등장한다. 2001년에는 로제 보르디에(Roger Bordier)의 소설 ‘알마 다리의 주아브’로 문학에 등장했다. 에르제(Hergé)의 만화와 그 후의 영화에 등장하는 하독 대위(capitaine Haddock)에 의해 주아브라는 말이 유명해 졌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이진명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