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내 강경파에다 '하마스 2.0' 출현 가능성에 아직은 '머나먼 길'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서 국제사회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중국의 팔레스타인 해법인 '두 국가 방안'(兩國方案)이 탄력을 받는 형국이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전제로 한 중국의 이 해법은 아랍권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의 지상전 공세 강화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한 탓에 궁지에 몰린 미국의 공감도 얻는 모양새다.
중국은 자국이 1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순회 의장국인 점을 최대한 활용해 유엔 무대에서 두 국가 방안을 적극적으로 설파할 것으로 보인다.
중동으로 출발하는 블링컨 美국무장관
(워싱턴DC A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중동으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이번 방문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 모델인 '두 국가 해법'과 '인도적 교전 중지'를 논의할 계획이다. 2023.11.03
danh2023@yna.co.kr
◇ 바이든 이어 교황도 '두 국가 해법' 한 목소리…美 블링컨, 논의 착수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은 미국에도 낯선 방안이 아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간 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의 대응 권리를 재차 확인하면서도 두 국가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전쟁이 발생한 상황에서, 그 이전의 현상 유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다음 단계의 비전이 바로 두 국가 해법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동등하게 안전하게 존엄과 평화 속에서 나란히 살 자격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던 두 국가 해법이 분쟁 해결 대안으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두 국가 해법은 1993년 9월 13일 오슬로 협정 체결로 등장했다. 영토 분쟁을 종식하고 두 국가로 나란히 서서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워싱턴에서 협정 체결 이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10차례 이상의 비밀 협상이 이어졌다.
협정 체결로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하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등의 자치권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측에 이양됐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승인했고, PLO 역시 이스라엘을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
NYT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로부터 '사망 판정'을 받고 묻혔던 평화 협상의 빛바랜 유물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고 짚었다.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20년에 걸쳐 진행됐던 두 국가 해법 기반의 평화 협상이 2014년 이후 중단됐으나, 이제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전 두 국가 해법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고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하되, 유대교와 이슬람교 성지가 몰린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일종의 공동 통치하자는 것이 골자다.
바이든 대통령 이외에도 서방 주요국 정상들도 두 국가 해법을 거론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1일 이탈리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두 국가 해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일 이스라엘로 출발하기에 앞서 취재진에 평화 모델인 '인도적 교전 중지'와 '두 국가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두 국가를 어떻게 달성하지를 논의할 것이라면서 "이것이 안전하고 민주적인 유대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이 가질 자격이 있는 국가를 보장하는 최선의,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용인 속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 건설을 골자로 한 '두 국가 해법' 중재 외교로 중동 패권 복원에 나서려는 심산인 듯하다.
두 국가 해법이 현실화하면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화해 프로젝트를 재추진하는 방안도 염두에 뒀다고 할 수 있다.
◇ 11월 유엔 안보리 의장국 中, '두 국가 방안'에 박차
서방 주요 국가들은 물론 미국도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두 국가 방안에 관심을 보이면서 중국의 기존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중국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이스라엘 편에 선 미국과는 달리 이스라엘과는 거리를 두면서 팔레스타인 편들기로 아랍권 국가들의 지지를 확대하며 두 국가 방안을 설파해왔다.
중국은 자국이 이달 유엔 안보리 순회의장국이 된 걸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안보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과 2년마다 교체되는 10개 비상임 이사국으로 구성되며, 이들 이사국이 매월 돌아가며 순회 의장국을 맡는다.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1일 사이드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중국이 11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이라는 점을 강조한 뒤 두 국가 방안 실현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한 데에서 잘 드러난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2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이 안보리 순회 의장국으로서 "책임 있고 의미 있는 조치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두 국가 방안'(兩國方案)의 궤도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앞서 지난달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을 위해 중국을 찾은 모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두 국가 방안을 해법으로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외교관계를 복원시키는 적극적인 중재 외교로 성가를 높인 데 이어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골자로 한 '두 국가 방안' 중재 외교로 아랍권 지지를 확산시켜 미국의 중동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 현실 장벽 높은 팔레스타인 해법…실현 가능성은 '글쎄'
그러나 두 국가 해법 또는 두 국가 방안이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우선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유대인 정착촌이 깊숙이 뿌리내린 탓에 여차하면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지목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중심의 극우 연정이 지속돼온 가운데 강경론자인 유대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잠재울지도 녹록지 않은 과제다.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에 강력히 대응하며 안보를 중시하는 '매파' 이미지를 내세워 199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역대 총리 중 최장기인 약 16년간 총리로 재임해왔다.
이번 전쟁이 종료되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사전에 탐지하지 못한 허술한 안보 책임을 이유로 네타냐후 총리의 경질 가능성이 크지만, 대(對)팔레스타인 강경론자들의 입지는 더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9월 싱크탱크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유대인 비율은 32%로 5년 전인 2018년(47%)보다 15% 포인트(p) 줄었다.
이에 더해 팔레스타인 내 반(反)이스라엘 감정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하마스가 이번 전쟁으로 괴멸한다고 해도, 그보다 더 강경한 '하마스 2.0'의 출현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통치하는 마무스 아바스 수반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장기 집권과 부패 의혹으로 내부적으로 큰 저항에 직면한 상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두 국가 해법이 "현재로선 먼 꿈"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가자지구 통제권이 요르단강 서안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이양되길 원하는 목소리가 커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