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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행] 울란바토르(UB)에서 하르호린(Kharkhorin)을 넘어 후브스굴(Khuvsgul)까지 | |||||||||||||||||||||||||||||||||||||||||||||||||||||||||||||||||||||||||||||||||||||||||||||||||||||||||||||||||||||||||||||||||||||||||||||||||||||||||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 4박 5일 동안 몽골 지방 2,300 km 누비고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B)로 무사히 복귀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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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Mongolia)=Break News GW】
☞주(註)⇒몽골 캠퍼스 방학을 이용해 지난 7월 15일 수요일 아침에 4박 5일의 짧은 몽골 지방 방문에 나섰던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지난 7월 19일 일요일 오후에 무사히 몽골 수도로 복귀했다. 에르. 오윤치메그(R. Oyunchimeg=Р. Оюунчимэг) 몽골인문대학교(UHM) 생활관장의 고향 방문에 동행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의 울란바토르(UB)⇒하르호린(Kharkhorin)⇒후브스굴(Khuvsgul)로 이어진 몽골 지방 방문 여정을 사진으로 싣는다.
지난 6월 에르. 오윤치메그(R. Oyunchimeg=Р. Оюунчимэг) 몽골인문대학교(UHM) 생활관장은 본 기자에게, 자신이 몽골 최대 행사인 7월 나담 페스티벌(Naadam Festival) 연휴 직후 고향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본 기자를 자신의 고향 방문에 정중하게 초청한 바 있다. 본 기자의 후브스굴(Khuvsgul) 행(行)의 토대는 그렇게 마련됐다.
7월 15일 수요일 아침 , 본 기자가 몸을 실은 지프 차는 아침 7시 40분에 울란바토르(UB)를 출발해 1차 목적지인 우부르항가이 아이마그(Uvurkhangai aimag)의 하르호린(Kharkhorin)을 향해 일단 길을 떠났다. 참고로, 본 기자의 후브스굴(Khuvsgul) 행(行)은 울란바토르(UB)⇒투브 아이마그(Tuv aimag)⇒볼간 아이마그(Bulgan aimag)⇒우부르항가이 아이마그(Uvurkhangai aimag)⇒아르항가이 아이마그(Arkhangai aimag)⇒후브스굴 아이마그 (Khuvsgul aimag)로 이어졌으며, 그 뒤의 울란바토르(UB) 복귀 여정은 갔던 길의 역순으로 후브스굴 아이마그 (Khuvsgul aimag)⇒아르항가이 아이마그(Arkhangai aimag)⇒우부르항가이 아이마그(Uvurkhangai aimag)⇒볼간 아이마그(Bulgan aimag)⇒투브 아이마그(Tuv aimag)⇒울란바토르(UB)로 이어졌다. 우부르항가이 아이마그(Uvurkhangai aimag)로 가는 길에 본 기자는 몽골 영화 만도하이(Mandukhai=Мандухай) 촬영지에 잠깐 들러 추억 같은 기념 촬영을 했다.
문득, 일전에 엔. 소브드(N. Suvd=Ардын жүжигчин Н. Сувд) 여사가 본 기자에게 건네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까 했으나 그만 두었다. 괜스레, 바쁜 사람 성가시게 해서 정신 사납게 하기 싫었다. 하지만, 몽골 영화 만도하이(Mandukhai=Мандухай)에서 주연을 맡았던 몽골 영화 배우 엔. 소브드(N. Suvd=Ардын жүжигчин Н. Сувд) 여사가 마치 본 기자 옆에 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져 보기는 했다.
몽골 영화 만도하이(Mandukhai=Мандухай) 촬영지를 지나 한참을 가다 보니, 이번에는 쌍봉 낙타 떼가 눈에 띄는 것이었다. 본 기자는 지프 차에서 내려 쌍봉 낙타 등에 가볍게 올라탔다. 낙타 등이 높긴 높았다. 높디 높은 몽골 하늘이 낮아 보였으니.
참고로, 낙타에서 내릴 때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평평한 말등에서 내리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고 개념없이 낙타 등에서 내렸다가는, 혹시라도, 낙타 혹과 혹 사이에 다리가 걸린다면, 그야말로 아래로 그대로 곤두박질쳐서 찰과상이나 타박상을 입을 수 있다. 몽골 영화 만도하이(Mandukhai=Мандухай) 촬영지를 지나, 쌍봉 낙타에 가볍게 올라타며 여정을 즐기는 사이,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됐다. 본 기자 어느 길가에 있는 몽골 식당에 들러 몽골 음식 초이반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지프 차는 투브 아이마그(Tuv aimag), 볼간 아이마그(Bulgan aimag)를 지나 어느덧 우부르항가이 아이마그(Uvurkhangai aimag)의 하르호린(Kharkhorin)에 들어섰다.
우부르항가이 아이마그(Uvurkhangai aimag)의 하르호린(Kharkhorin)에 들어서자 에르데네 조 사원(Erdene zuu khiid)이 한눈에 들어왔다.
에르데네 조 사원(Erdene zuu khiid) 정문에서 본 기자는 칼과 방패를 든 13세기 몽골군 병사, 그리고 몽골 전통 의상 델(Deel)을 차려 입은 몽골 중년 여인과 딸(몽골 왕비와 공주일는지도 모를 일이다)의 영접을 받았다. 본 기자는 마치 13세기 고려국(高麗國) 사신이 된듯이, 의기양양하게, 이들과 추억 같은 기념 촬영을 했다.
하르호린(Kharkhorin)은 울란바토르에서 남서쪽으로 약400km 떨어진, 오르혼 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몽골 2대 칸인 오고타이(=우구데이)칸에 의해 수도로 정해져, 유라시아 각지의 상인들과 각국의 사신들로 붐볐던 곳이다. 13세기 쿠빌라이(=호빌라이)칸이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짧은 영화(榮華)를 누렸으나, 그 뒤 폐허가 되어버린 몽골 제국의 수도였다. 에르데네 조 사원(Erdene zuu khiid) 안에서 본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곳곳에 재현해 놓은 13세기 목제 방비 시설이었다.
에르데네 조 사원(Erdene zuu khiid)을 둘러 보고 나서, 본 기자는 우부르항가이 아이마그(Uvurkhangai aimag)의 하르호린(Kharkhorin)을 떠나,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로 향했다. 끝없는 대초원의 광활함과 자유로움을 보는 것은 참으로 큰 눈요깃거리였으나, 어느 순간 몽골 초원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길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가다 보니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는, 몽골 중부에 위치한, 몽골 21개 도(道) 중의 하나로서, 최고 해발 고도 3529m, 총 면적 55,313.82㎢, 전체 인구 84,584명(2011년 기준)이며, 도청 소재지는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이다.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에 살고 있는 바트오윤(Bat-Oyun) 여사의 집에 들러, 몽골 음식 보즈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듣자 하니, 바트오윤(Bat-Oyun) 여사는 옛소련 이르쿠츠크 유학생 출신으로서, 오윤치메그 생활관장보다 몇 살 많은 선배이기도 하고, 러시아어 스승이기도 하고, 러시아어 동료 교사이기도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알고 보니,바트오윤(Bat-Oyun) 여사의 딸은 몽골인문대학교(UHM) 일본어학과 출신이었고,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 출신의 일본어학과 바트사이한(Batsaikhan) 교수와 중국어학과 아리온자르갈(Ariunjargal) 교수는 바트오윤(Bat-Oyun) 여사의 초등학교 애제자들이었다.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걸 새삼스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바트오윤(Bat-Oyun) 여사의 집에 들러, 몽골 음식 보즈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본 기자는 이흐 타미르(Ikh Tamir) 군(郡)의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로 출발했다. 안내를 맡은 바트오윤(Bat-Oyun) 여사가 동행했다. 해 질 무렵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이흐 타미르(Ikh Tamir) 군(郡)에 도착했다. 하지만, 숙소인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로 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었음을 굳이 기록으로 남겨 둔다. 폭우가 초원을 덮어버려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가 길이고 초원인지 헷갈리는 순간을 가까스로 넘겼다.
폭우와의 사투 끝에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에 여장을 풀었다. 여장을 풀고 밖을 보니 어느덧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숙소 밖으로 나와 근처에 있는 타이하르 촐로(Taikhar Chuluu)로 산책을 나섰다.
타이하르 촐로(Taikhar Chuluu)와 관련해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은 이러하다. "옛날 옛적 몽골 땅에 부케빌리그(Bukebilig)라는 영웅이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큰 뱀이 땅을 뚫고 나오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큰 뱀이 땅을 뚫고 나오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케빌리그(Bukebilig)는 땅을 뚫고 나온 큰 뱀을 땅 밑으로 힘으로 쑤셔 눌러 땅 밑으로 우겨넣은 뒤, 땅 입구를 이 바위로 틀어막았다. 그 때부터 이 바위는 이 곳에 남게 되었다." 바위 근처에 부케빌리그(Bukebilig)가 휴식을 취했다는 알탄 산달리산(山)(=Mt. Altan sandali (=Golden throne)과, 그가 손을 씻었다는 타미르강(江)(River Tamir)이 위치해 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전설 따라 삼천리!"인 셈인데,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 사장인 오융게렐(Oyungerel) 여사가 안부 인사 차 본 기자의 숙소에 들렀다. 그러더니, 오윤치메그 생활관장 및 바트오윤(Bat-Oyun) 여사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니, 엄밀하게 얘기하면 수다였다.
본 기자도 가끔 끼어들어 대화를 나눴다. 한순간 숙소 밖에서 비가 줄기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 밤은 운치있게 술 마시기에 좋은 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아르히(Arkhi=몽골 보드카) 잔치가 벌어졌다. 순식간에 아르히(Arkhi=몽골 보드카) 2병이 동이 났다. 몽골 지방 방문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몽골 지방 방문 둘째날.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 주변을 산책했다.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 주변에 서양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캠프 사장인 오융게렐(Oyungerel) 여사의 말을 들으니 독일 관광객들이란다. 그러고 보니, 독일 번호판이 달린 독일 관광 전용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독일 관광 전용 버스를 타고 독일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육로로 몽골로 들어온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 앉아 있는데, 독일 할머니가 본 기자를 앞을 지나치면서 눈인사를 건넨다. 이거 독일어로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아! 내가 독일어를 배운 게 언제였더냐? 참으로 열심히 공부했었거니! 아니나 다를까! 본 기자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독일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Guten Morgen! Sie sind aus Deutschland? Ich komme aus Korea" (상쾌한 아침입니다. 독일에서 오셨나요? 저는 코리아에서 왔습니다.) 그러자, 이 독일 할머니는 본 기자의 인사말을 이렇게 맞받았다. "Korea? Nord Korea? oder Süd Korea?"(코리아라고? 북쪽? 남쪽?)" 요컨대, "대한민국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를 묻는 거였다. 요즘 들어, 몽골 현지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구촌 사람들이,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이상하게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꼭 따지고 드는 듯한 느낌을 부쩍 갖게 된다. 느낌 상, 북한 당국의 기상천외한 행보가 지구촌 각국 외신 기사를 타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나, 이럴 때면, 본 기자로서는 사실 그리 기분이 유쾌하진 않다. "사람 참, 여보쇼! 독일 할머니! 비교할 걸 비교하셔야지!" 은근히 약이 오른 김에, "북한이라고 한 번 장난 쳐 볼까? 시치미 딱 떼고 그렇게 나가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즉각 생각을 접었다. "장난을 칠게 따로 있지. 조국을 갖고 장난을 쳐? 이건 안 되지!" 이에, 본 기자는 최대한 말속도를 줄여 또박또박 말했다. "Ich komme aus Seoul, Süd Korea!"(저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왔습니다!)" 순간, 이 독일 할머니는,어디에서 배웠는지, "안녕하십니까?" 라는 한국어 인사를 몇 번이나 반복해댔다. 본 기자는 즉시 "예, 안녕하십니까?"로 맞받아 주었다. 이번에는 왠지 기분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본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아챈 독일 여행단 일행이 본 기자 곁으로 몰려 들었다. 한결 같이 "안녕하십니까?"를 외쳐대고 있었다. 기분이 유쾌해진 본 기자는 "Ich wünsche Ihnen eine gute Reise" (여러분, 즐거운 여행 만끽하시기를 빕니다!)는 인사를 건네고 독일 할머니와 서둘러 추억 같은 기념을 촬영을 했다. 숙소로 돌아와 아침으로 고릴테이 슐을 든 본 기자는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에서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타리아트(Tariat) 군(郡)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타리아트(Tariat) 군(郡)은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타리아트(Tariat) 군(郡) 중심지를 향해 한참을 가다 보니, 커다란 협곡이 나타나고, 협곡 사이에는 이름하여 촐로트 골(촐로트 江=Chuluut gol)이라는 강(江)이 흐르고 있었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말에따르면, 800여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긴 협곡이라는 것이었다. 본 기자는 마치 미국 애리조나 주 북부에 있는 고원지대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여진 거대한 계곡인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촐로트 골(촐로트 江=Chuluut gol)을 지난 본 기자는 점심 때쯤 해서 타리아트(Tariat) 군(郡) 중심지에 도착했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애제자이자 현재 몽골 칸 은행(Khan Bank) 타리아트(Tariat) 지점장인 제. 두렌자르갈 여사(J. Duurenjargal)가 은행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현재, 몽골 칸 은행(Khan Bank) 타리아트(Tariat) 지점장인 제. 두렌자르갈 여사(J. Duurenjargal)는 자기 집으로 안내해, 양고기 순대를 한 광주리 담아 푸짐하게 내놓았다. 졸지에, 푸짐한 양고기 순대 파티가 벌어졌다. 본 기자는 눈에 좋다는 양고기 간(肝)만 죽어라고 먹었다.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제. 두렌자르갈 여사(J. Duurenjargal) 칸 은행(Khaan Bank) 타리아트(Tariat) 지점장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숙소로 예약된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로 가는 도중 본 기자는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에 들렀다. 본 기자는 즉시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 등반에 나섰다. 지난 6월 중순 중국에 간 김에 백두산 등정에 나서 천지(天池)까지 올랐음에도 안개와 폭우로 천지의 모습을 보지 못해 그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 등정에 성공한 본 기자는 마치 백두산 천지에 다시 오른 기분이었다.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 등정에 성공한 본 기자는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 정상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추억 같은 기념 촬영에 나섰다. 모르긴 몰라도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 정상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사진 촬영에 나선 한국 사람은 본 기자가 처음이리라! 기록은 이래서 중요하다. 왜냐. 세월이 흐르면 결국 남는 것은 사진뿐이니까.
본 기자가 성공적인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 등정을 끝내고 하산하는 순간,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은 선물을 준비해 주변 이동 상점에서 본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은 게르(Ger=몽골의 전통 가옥) 모형과 타리아트(Tariat) 군(郡) 관광 책자를 건네 주며 자신이 출생한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타리아트(Tariat) 군(郡)을 방문해 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 등정을 마친 본 기자는 호르고 화산(Khorgo volcano)을 떠나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로 향했다. 지루한 여행 끝에 마침내 본 기자는 오후 늦게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에 도착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주변 산책에 나서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를 둘러 보노라니 근처에 이름하여 할아버지 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었다.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 바위를 오르자니, 참선(Buddhist meditation)을 위한 것인지, 피정(避靜=retreat)을 위한 것인지, 산상 기도(Prayer on the Mount)를 위한 것인지, 바위 속에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본 기자의 눈에 보였다. 본 기자는 즉시 바위 속에 마련된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으로 들어 가 경건한 자세를 취한 뒤,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향후, 이곳을 방문하는 그 누구라도, 이 바위 속에 마련된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으로 들어 가, 참선(Buddhist meditation)을 하든, 피정(避靜=retreat)을 하든, 산상 기도(Prayer on the Mount)를 하든, 그건 극히 개인적인 신앙의 자유에 기초한 자발적 행위일 터이니 본 기자가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같잖은(=제격에 맞지 않아 거슬리거나 아니꼬운) 완장문화(腕章文化=권위 의식이나 특권 의식이 만연해 있는 사회의 문화를 비유해 이르는 말)의 타성에 젖어, 무턱대고 할례 (Circumcision=mulah=peritome) 어쩌고 호들갑 떠는 인간들은, 쓸데없이 생식기 양피(표피)를 잘라내거나, 멀쩡한 눈꺼풀 까뒤집는 수술 같은 개떡 같은 헛짓 하지 말고 부디 진정한 마음의 할례(割禮)를 받을지라.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 바위에서 내려온 본 기자는 이번엔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 물가를 향해 다가갔다. 실비가 내려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 물 속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나, 본 기자는 무조건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이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하긴, 비 내리는 상황에서 호수로 기어들어갔으니 본 기자가 오두발광(發狂)(=몹시 흥분하여 미친 듯이 날뛰는 짓)한 줄 알았으리라. 하지만, 본 기자는 결코 오두발광(發狂)(=몹시 흥분하여 미친 듯이 날뛰는 짓)한 게 아니었고 정신이 말짱했다. 본 기자의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기왕,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 바위 속에 마련된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으로 들어 가 경건한 자세를 취했으니, 내친 김에 바이블에 기록된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분위기를 물 속에서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본 기자가 물에서 나오니,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에는 성령(聖靈)이 비둘기같이 내려 임하기는커녕 오히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깜짝 놀란 표정만이 비애 (悲哀)처럼 휘날렸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은 본 기자가 혹시 감기라도 들까봐 노삼초사하는 듯 보였다. 제발 옷을 갈아 입으라고 조언하기에, 본 기자는 입은 바지가 금방 마르는 한국제 특수 등산복임을 설명했다.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 본 기자는 호르호그(Khorkhog=Xopxoг) 시식에 들어갔다. 호르호그(Khorkhog=Xopxoг)는 양고기와 당근, 감자, 양파, 마늘, 허브를 통에 넣고 달군 돌로 1시간 반 정도 푹 익혀 내놓는 몽골 전통 양고기 요리이다.
본 기자는 일부러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래야 음식을 준비해 준 사람들에게 체면치레를 할 것 아닌가? 옛말에 이르기를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계집은 품어야 맛"이라고 했다. 본 기자는 옛말 그대로 양고기 갈비는 쭉쭉 뜯고, 양고기는 꼭꼭 씹어서 그야말로 맛있게 먹었다.
한편, 본 기자의 호르호그(Khorkhog=Xopxoг) 시식 자리에는 오윤치메그 생활관장과 같은 아르항가이 출신인 몽골 유명 개그맨 차피(Chapi=Чапи, 본명 우. 이흐바야르=U. Ikhbayar= Ө. Ихбаяр)가 자리를 같이 했다. 어디에서 배웠는지, 본 기자를, "형님"으로 줄기차게 불러 준, 몽골 유명 개그맨 차피(Chapi=Чапи, 본명 우. 이흐바야르=U. Ikhbayar= Ө. Ихбаяр)는 그 뒤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까지 본 기자와 줄곧 동행했다.
몽골 유명 개그맨 차피(Chapi=Чапи, 본명 우. 이흐바야르=U. Ikhbayar= Ө. Ихбаяр)는, 굳이 우리나라 유명 개그맨으로 치자면, 임하룡하고 최병서하고 배칠수를 섞어 놓은 유명 개그맨쯤 될 것이다. 왜냐. 본 기자가 보기에는, 생김새는 임하룡을 닮았고, 성대 모사는 최병서, 배칠수를 뺨 치는 수준이었으니까! 좌우지간, 입심 하나는 대단했다. 어디에다 내놔도 결코 입심에서는 밀릴 부류가 아니었다. 몽골 유명 개그맨 차피(Chapi=Чапи, 본명 우. 이흐바야르=U. Ikhbayar= Ө. Ихбаяр)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빈다.
호르호그(Khorkhog=Xopxoг) 시식이 마무리 되자,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은 타리아트(Tariat) 군(郡) 중심지에 있는 자기집에 들러 자고 온다면서 아침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숙소를 떠났다. 이에 본 기자는 몽골 유명 개그맨 차피(Chapi=Чапи, 본명 우. 이흐바야르=U. Ikhbayar= Ө. Ихбаяр)와 숙소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몽골 지방 방문 둘째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몽골 지방 방문 셋째날. 본 기자는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를 떠나 후브스굴 아이마그 (Khuvsgul aimag=Хөвсгөл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무룬(Murun=Мөрөн)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오전 11시쯤, 타리아트(Tariat) 군(郡) 중심지에 있는 자기집에 들러 자고 온다며 숙소를 떠났던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이 숙소로 되돌아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숙소 주인 내외, 숙소 주변 상점 아르바이트 점원들이 거의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애제자들이었다. 타리아트(Tariat) 군(郡) 젊은이들이 모두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애제자들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성 싶었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몽골인문대학교(UHM) 생활관장으로 부임하기 전,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타리아트(Tariat) 군(郡)에서 러시아어 교사로 33년 간 재직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는 옛소련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으로서 소련 공산당대학을 졸업한 뒤, 몽골로 귀국해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3개군(郡) 군수를 지냈다고 한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도 당연히 옛소련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이다. 요컨대, 본 기자의 시각으로 이 말을 정리하자면, "웬만한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 사람이면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을 안다"는 얘기이고, 좀 더 축약해 정리하자면,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 사람치고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얘기가 된다. 본 기자의 판단은 맞았다. 본 기자가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를 떠나 후브스굴 아이마그 (Khuvsgul aimag=Хөвсгөл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무룬(Murun=Мөрөн)으로 가는 도중, 알트오치르(Alt-Ochir) 타리아트 군수(郡守)가 오윤치메그 생활관장 배웅을 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알트오치르(Alt-Ochir) 타리아트 군수(郡守)는 빈손으로 배웅을 나온 게 아니었다. 신선한 말젖을 발효시킨 일명 아이라그(Айраг =Airag)라고 불리는 마유주(馬乳酒) 한 통을 선물로 들고 나왔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에서의 존재감이랄까, 위세가 그야말로 빛을 발(發)하는 순간이었다.
테르힌 차간 노르(Terkhiin Tsagaan Nuur)를 떠난 본 기자는 이날 오후 늦게 후브스굴 아이마그 (Khuvsgul aimag=Хөвсгөл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무룬(Murun=Мөрөн)에 도착했다. 무룬(Murun=Мөрөн)에 살고 있는,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애제자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이 식구들과 같이 마중을 나왔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말을 들으니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은 자신의 애제자로서 올해 6월 러시아국립경영대학교(State University of Management in Russia=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управления)를 졸업하고 최근에 몽골로 금의환향한 재원(才媛=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이란다.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을 처음 만난 본 기자는 장난기가 발동해 첫인사를 러시아말로 던졌다. 도브리젠(Добрый день='안녕하세요'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오후 인사) "안녕하세요?" 라는 한국어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본 기자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왜냐.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안녕하세요?"쯤은 웬만한 몽골인이라면 구사가 가능하니까. 상황이 이에 이름에 본 기자는 몽골어로 다시 물었다. "만나서 반갑다! 이름이 뭐지?" 그러자, 뜻밖에도 "제 이름은 아마르자르갈입니다"라는 정확한 한국어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제서야 본 기자는 깜짝 놀랐다. 아니, 러시아 유학한 애가 언제 한국어를 배웠지? 본 기자는 몽골어로 다시 물었다. "너, 한국어 어디에서 배웠니?" "러시아에서 3개월 동안 배웠어요!" 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본 기자는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애제자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집에 여장을 풀었다. 뾰족 지붕을 한 사각 창문이 달린 아담한 통나무 집이었다.
문득, 피천득(皮千得) 선생(1910. 05. 29=음력 04. 21 ~ 2007. 05. 25)의 인연(因緣)이라는 작품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앞 내용 줄임)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예쁜 집! 우리 이 다음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뒷 내용 줄임)" 본 기자는 혼잣말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야, 집 멋있는데!" 본 기자의 말을 귀담아들었던지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이 한국어와 몽골어를 섞어 본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 말친(Малчин) 아녜요! 모장(Мужаан)입니다!" ☞몽골어 말친(Малчин)⇒양치기←가축 치는 사람, 몽골어 모장(=Мужаан)⇒목수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우리 아버지는 양치기가 아니고 목수입니다!"이나,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이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이 통나무 집은 목수인 우리 아버지께서 손수 지으신 집이니 우리 아버지 솜씨 끝내주죠?"였다.
"그래, 너네 아버지 솜씨 끝내준다!"는 대답을 해 주기는 했으나, 본 기자가 자신의 집을 보고 피천득(皮千得) 선생(1910. 05. 29=음력 04. 21 ~ 2007. 05. 25)의 인연(因緣)이라는 작품을 떠올렸음을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은 알 리가 없다. 나중에 얘기해 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피천득의 '인연'⇒
교과서에 실려 많은 사람이 읽은 아사코와의 이야기 ‘인연’부터,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로 시작하는 수필 등 약 80여 편의 수필이 수록되어 있다. 피천득의 아름답고 따뜻한 문체가 잘 드러나 있다.
수필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가벼워지고 있는 현시대에도, '인연'은 분야를 대표하는 서적으로 꿋꿋이 사랑받고 있다.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집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기 전 주변 산책에 나섰던, 본 기자는 몽골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한 무리의 양(羊)떼와 조우(遭遇)했다.
우리나라 신석정(辛夕汀, 본명=辛錫正, 1907. 07. 07 ~ 1974. 07. 06) 시인의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라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어머니 /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 어머니 /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 길 솟는 옥수수 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 어머니 /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 꿩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우리나라 신석정(辛夕汀, 본명=辛錫正, 1907. 07. 07 ~ 1974. 07. 06) 시인이 마치 몽골 초원에 생존해 있어 본 기자와 같이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 집으로 되돌아오니, 손님들이 와 있었다. 체체를레그 소재 초-중-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 중인 투무르추두르(Tumurchudur) 여사가 딸인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애제자인 나란통갈라그(Narantungalag) 양과 함께 아르히(Arkhi=몽골 보드카)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요컨대, 딸의 은사인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이 어려운 걸음을 했으니 당연히 찾아 보는 게 도리라는 게 그 이유였다. 어머니인 투무르추두르(Tumurchudur) 여사는 체체를레그 소재 초-중-고등학교 교장, 딸인 나란통갈라그(Narantungalag) 양은 러시아어 교사로 재직 중이란다.
더욱이 딸인 나란통갈라그(Narantungalag) 양은 은사인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을 기쁘게 하고, 여흥을 돋우기 위해 악기를 들고 나타났다.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이 러시아어 선생임을 감안하여, 나란통갈라그(Narantungalag) 양이 러시아 민요를 연주하고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덧 현장은 그야말로 졸지에 러시아어 판이 됐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이 러시아국립경영대학교(State University of Management in Russia=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управления)의 학사 학위 증서를 가지고 등장했다.
본 기자는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이 인물이긴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1970년대쯤 시골 여고생이 미국 유학을 떠나 학위를 움켜 쥐고 귀국한 꼴 아닌가?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부모가 막내딸의 비범함을 일찍이 눈여겨 보았던 것일까? 고물가의 러시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막내딸의 학비 지원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최근 몇 년 사이 몽골의 환율 폭등으로 몽골 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현실임에야. 본 기자는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러시아 유학을 재정적으로 후원한 부모와, 러시아어를 가르쳐 애제자로 길러낸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에게 진심으로 깍듯한 존경의 예를 표했다.
본 기자가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이 가져온 러시아국립경영대학교(State University of Management in Russia=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управления)의 학사 학위 증서를 살펴 보고 있는데, 이번엔 투무르추두르(Tumurchudur) 교장이 갑자기 나섰다. 투무르추두르(Tumurchudur) 교장은, 본 기자에게, 자신의 모교 교수님이시니 자기가 주는 술은 마셔야 한다며 본 기자에게 아르히(Arkhi=몽골 보드카)를 잔에 따라 극구 권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투무르추두르(Tumurchudur) 교장은 몽골인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석사 출신이었다.
본 기자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즉각, "몽골리야 쁘리끄라~스너여 스뜨라나!~~(몽골은 아름다운 나라예요!=Монголия - прекрасная страна!)"로 맞받은 뒤, 아르히(Arkhi=몽골 보드카) 잔을 단숨에 비우고, 모스크바의 밤(빠드모스코브니에 베체라=Подмосковные Вечера)이라는 노래로 즉각 화답했다. 몽골 지방 방문 셋째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몽골 지방 방문 넷째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이 고릴테이 슐을 만드려고 밀가루 반죽을 열심히 밀고 있었다. "아이고, 예쁘기도 해라!"
러시아어라는 언어 장벽을 넘어, 고물가의 외로운 러시아 생활을 이겨 내고, 마케팅 전공의 학위를 취득하고 당당하게 금의환향한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앞날에 부디 영광이 있기를 빈다.
바깥쪽에 있는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아버지 목공 작업실에서는, 근처에 살고 있는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오빠가 새벽 댓바람에 달려 와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이 울란바토르(UB)로 가지고 갈 타루바가(Taruvaga) 고기를 열심히 불에 그을려 손질하고 있었다.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오빠는 말 그대로 몽골 유목민이었다. 현재, 올해로 전체 인구 300만을 겨우 넘긴 몽골 인구 중 약 70만명 정도가 가축을 키우며 이동 생활을 하는 순수 의미의 유목민이다. 이 유목민들은 약 4,500만 마리에 달하는 5대 가축(소와 야크 7%, 말 6%, 양 44%, 염소 43%, 낙타 1%)과 더불어 살아간다. 이들에게 가축은 생활의 바탕이자 생명이다.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이 정성껏 차려내 온 고릴테이 슐을 맛있게 든 본 기자는 베. 아마르자르갈(B. Amarjargal=Б. Амаржаргал) 양의 집을 나서 다시 길을 떠났다.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이흐 타미르(Ikh Tamir) 군(郡)의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를 지나,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에서 하룻밤 묵은 뒤, 울란바토르로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후브스굴 아이마그 (Khuvsgul aimag=Хөвсгөл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무룬(Murun=Мөрөн)을 벗어나, 몽골 관광객들에게 명소로 자리매김했다는 일명 자궁(子宮) 나무가 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자궁(子宮)이 모든 인간들의 원초적 요람이니 자궁(子宮) 나무가 몽골 관광객들에게 명소로 자리매김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자궁(子宮) 나무를 둘러 본 본 기자는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이흐 타미르(Ikh Tamir) 군(郡)의 통갈라그 타미르 투어리스트 캠프(Tungalag Tamir Tourists Camp)를 지나,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에 있는 바트오윤(Bat-Oyun) 여사의 집에 여장을 풀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찰나,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의 선배가 된다는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가 아르히(Arkhi=몽골 보드카) 한 병을 들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본 기자와 첫인사를 나눈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는 "나는 100여명의 남성들과 같이 근무해 본 경험이 있어서 남자들을 잘 안다"더니, 자기 딸이 졸업한 대학(딸이 몽골인문대 중국어학과를 졸업) 교수님이시니 자기가 주는 술은 마셔야 한다며 극구 아르히(Arkhi=몽골 보드카)를 권하는 것이었다. 다시 또 술판이 벌어졌다. 아이고, 이 놈의 술판은 도대체 언제쯤 끝나나!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의 입담은 눈부셨다. "외국어가 필요 없을 경우가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사랑(서로 눈이 맞을 때)! 둘째, 스포츠 경기! 셋째, 음식! 이 세 경우에는 외국어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얘기였다. 듣자 하니 그럴 듯했다.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의 발언은 품위가 있었고, 왠지 자신감이 넘쳤다. 본 기자가 마구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 자신은 지방 세무서 간부 출신이었고,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의 남편은 경찰 간부 출신으로서, 그 지방 유지였다. 요컨대, 환갑이 가까운 나이의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와의 대작(對酌=마주 대하고 술을 마심=대음=對飮)에서 본 기자는 무조건 꼬리를 내렸다. 마실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피곤하기도 했거니와,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의 얘기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몽골 지방 방문 넷째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몽골 지방 방문 다섯째날이자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전날 밤, 자기 집으로 돌아갔던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가 새벽 댓바람에 배웅을 위해 되돌아왔다. 반시테이 슐을 아침으로 들고 울란바토르(UB)로 복귀하려고 길을 나서자니,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가 자기 차로 앞장을 서서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 경계가 끝나는 부분까지 바트오윤(Bat-Oyun) 여사 내외와 함께 배웅에 나서는 것이었다.
마치, 서울로 과거 보러 떠나는 일가 친척 무운장구를 비는 듯한 분위기였다. 바트오윤(Bat-Oyun) 여사와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는 "강 교수의 울란바토르로의 무사 복귀를 간절히 기원한다!"며 아르히(Arkhi=몽골 보드카)를 잔에 부어 극구 권하는 것이었다. "아니, 아침부터 또야?
아이고, 그 놈의 잔은 크기도 컸다. 하지만, 본 기자는 감사한 마음으로 잔을 깨끗이 비웠다. "아아,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는 바트오윤(Bat-Oyun) 여사와 오트곤(Otgon=Отгон) 여사여!"
본 기자의 가슴에는 우리나라 유행가 노랫말이 물결쳤다. "대장군 잘 있거라 다시 보마 고향 산천 / 과거 보러 한양 천리 떠나가는 나그네에 / 내 낭군 알성 급제 천 번 만 번 빌고 빌며 / 청노새 안장 위에 실어 주던 아아아아 엽전 열 닷 냥" 우리는 그렇게 작별을 했다. 아르항가이 아이마그 (Arkhangai aimag=Архангай аймаг)의 도청 소재지 체체를레그(Tsetserleg=Цэцэрлэг)를 떠난 지프 차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B)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B)로 오는 도중에 오윤치메그 생활관장은 차에서 내려 길가 노점에서 신선한 말젖을 발효시킨 일명 아이라그(Айраг =Airag)라고 불리는 마유주(馬乳酒)를 몇 통 샀다.
젖내와 신맛이 어우러진 발효주인 이 마유주(馬乳酒)는 몸의 열(熱)을 내리는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다. 몽골 초원을 둘러 보았다. 길 잃은 개가 초원을 떠돌고 있었다. "어쩌면, 네 팔자가 상팔자일는지도 모르겠다. 본 기자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자유분방한 몽골 초원에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UB)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천명(盧天命, 본명은 기선=基善, 1911년 9월 1일 ~ 1957년 6월 16일) 시인은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라는 시(詩)를 썼던 것일까?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 삽살개는 달을 짖고 /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한편으로는,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의 울란바토르(UB)라고 해도 돌아갈 보금자리가 있다는 있다는 게 그 얼마나 다행이냐?"는 생각도 들긴 했다. 울란바토르로 들어서니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본 기자가 울란바토르(UB)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4박 5일 동안 지프 차는 모두 2,300km를 달린 셈이다. 그야말로 끔찍한 거리의 축적이다. 서둘러 보금자리로 돌아가 따뜻한 물로 샤워부터 했다. 그리고, 한국 식당으로 나가 따뜻한 밥을 먹었다. 몽골에 오늘도 지구는 돌고, 세월은 하염없이 흐르고, 본 기자는 엄연히 몽골 한 복판에 존재하고 있었다.
☞뱀발⇒지방에 나가면 휴대전화나 인터넷 사정이 그리 양호한 편이 아니다. 게다가, 계속 이동하는 상황이다 보니 기사를 작성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몽골 수도로 귀환하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해 누리편지(이메일)를 살폈다. 몽골 국내는 물론, 서울집, 지구촌 각국에서 본 기자를 찾는 메일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왜냐. 본 기자가 몽골 지방 방문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심지어 식구들한테조차도) 부쳤으니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오두방정을 떨면 될 일도 아니 되는 법! 요컨대, 초란이(하회 별신굿에 나오는 인물로서, 가볍고 방정 맞은 성격을 가진 하인) 입 방정을 떨면 산통 다 깨진다. 몽골 울란바토르 귀환 이후 첫 번째로 김명기 몽골한인회 고문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 왔다. "강 교수, 유라시아 친선 특급 열차 몽골 도착 환영식에도 안 보이고,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개보수사업 착공식에도 안 보이던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가 용건이었다. 본 기자는 "지방에 다녀왔다"고 전제하고, "유라시아 친선 특급 열차 몽골 도착 환영식과 이태준 선생 기념 공원 개보수 사업 착공식 내용은 제 목소리로 곧 KBS 라디오로 송출될 것이니 걱정 붙들어 매시라"고 정중히 알렸다. 하지만, 본 기자가 몽골 울란바토르를 비운 기간은 고작 5일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라면, 앞으로 본 기자가 어디로 몰래 도망(?)가기는 아예 글렀다. 그야말로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이라고나 할까? 박승우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교육 담당 서기관이 두 번째로 전화를 걸어 왔다. 8월 중순 베트남 하노이 부임을 앞두고 있는 박 서기관은 "전화 통화가 안 되던데 어디 다녀왔느냐?"며, "몽골을 뜨기 전에 시일 내에 만나 점심을 같이 하자"는 안부를 전해 왔다. 환율 폭등으로 경제가 어려운 몽골 상황이지만 왠지 가슴이 따뜻해졌다.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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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7/20 [10:32] 최종편집: ⓒ GW Biz 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