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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 195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기념 자택-박물관 및  공동 묘지 전격 방문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icon_mail.gif 기사입력 2016/01/13 [11:58]
 
 
【Seoul(Korea)=Break News GW】
제1회 2016 재외동포언론인협회 유럽 대회 참석 차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에 나섰던,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1월 8일 금요일 오전, 1958년도 노벨문학상(1958 Nobel Prize in Literature)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기념 자택-박물관(돔-무제이 베. 엘. 파스테르나카=Дом-Музей Б. Л. Пастернака)과 그가 누워 있는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 공동 묘지를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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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사진=Wikipedia, 1983. 10).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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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가 누워 있는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 공동 묘지 입구.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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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가 누워 있는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 공동 묘지 입구 안쪽에 눈이 쌓였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모스크바 현지의 쌀쌀한 영하의 날씨를 뚫고, 눈길을 걸어 찾아들어간 1958년도 노벨문학상(1958 Nobel Prize in Literature)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누워 있는 묘지에는, 묘비명은커녕, 달랑 초상화만 새겨져 있어, 너무나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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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1958년도 노벨문학상(1958 Nobel Prize in Literature)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묘지에는, 묘비명은커녕, 달랑 초상화만 새겨져 있어, 너무나 쓸쓸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 공동 묘지에 누워 있는 파스테르나크 곁에는, 1966년 6월 28일에 사망한, 아내 지나이다 (Zinaida=Зинаида)와, 둘째 아들 레오니드 (Leonid=Леонид)가 같이 누워 있었다.

냉전 시대가 끝난 지금, 국가의 명예를 지구촌에 드높인 자국의 문학가에게 꼭 이런 대우로 자존심을 뭉개버려야 하는지 러시아 국민들은 한 번 곰곰이 곱씹어볼 일이다.

본 기자는 진심으로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 (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1890. 02. 10 ~ 1960. 05. 30)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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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1월 8일 금요일 오전, 1958년도 노벨문학상(1958 Nobel Prize in Literature)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누워 있는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 공동 묘지를 방문해 꽃을 바쳤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아울러, 지난 2014년 제16회 재외동포문학상(賞) 국제 공모전 시(詩) 부문 수상을 계기로 현재 순항 중인 본 기자의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 (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가 하늘에서 음우(陰佑)하고 외호(外護)해 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이에 앞서,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36년부터 별세한 1960년 5월까지 말년을 보냈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기념 자택-박물관(돔-무제이 베. 엘. 파스테르나카=Дом-Музей Б. Л. Пастернака)을 둘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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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기념 자택-박물관(돔-무제이 베. 엘. 파스테르나카=Дом-Музей Б. Л. Пастернака)를 배경으로 굳건히 섰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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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사진=Wikipedia).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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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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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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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기념 자택-박물관(돔-무제이 베. 엘. 파스테르나카=Дом-Музей Б. Л. Пастернака) 현관 입구에 굳건히 섰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옛소련의 시인 (詩人)이자 소설가인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 (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1890. 02. 10 ~ 1960. 05. 30)는 1890년 2월 10일 모스크바에서 파스테르나크 가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인 출신인 러시아 후기 인상파 화가 레오니드 오시포비치 파스테르나크이며,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인 로자 카우프만 (Rosa Kaufman)이다. 참고로, 그의 출생일인 2월 10일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던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1837년 세상을 뜬 날이기도 하다.

파스테르나크는, 예술가인 부모 덕에, 국제적인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그럼으로써, 유년 시절, 그의 집에 들렀던, 방문객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레프 톨스토이 (Lev Tolstoy=Лев Толстой),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등과 조우 (遭遇)할 수 있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파스테르나크는, 그의 이웃이었던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Aleksander Scriabin=Александр Скрябин)의 영향으로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모스크바 음악 학교 (Moscow Conservatory)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돌연 독일 유학 길에 올라, 1910년 마르부르크 대학 (University of Marburg)에서 신칸트주의 (Neo-Kantianism) 철학자인 헤르만 코헨 (Hermann Cohen)과 니콜라이 하트만 (Nicolai Hartmann) 지도 아래 철학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는 철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1914년 독일을 떠나, 소련 모스크바로 되돌아왔다. 그 해 12월 러시아 미래파 시인 (詩人)인 알렉산드르 블로크 (Александр Блок, 1880 ~ 1921)의 영향을 받은 그의 첫 시집이 출간됐으며, 이후, 미래파의 기관지 ‘레프’를 중심으로 많은 서정시를 발표함으로써, 러시아 최후의 순수 예술파 시인 (詩人)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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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1924년 파스테르나크(왼쪽에서 두 번째)가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시인(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같이 섰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파스테르나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신체상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는 대신 우랄 지방의 화학 공장에서 일했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가 쓴 장편 소설 ‘의사 지바고’에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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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는 말(馬)에서 떨어져 다리를 절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파스테르나크가 신었던 왼쪽과 오른쪽의 장화의 굽이  확연히 다르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그의 친척, 대다수의 친구들과는 달리, 그는 혁명 후에도, 소비에트 연방 교육부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조국 러시아를 떠난다는 것을 죽음의 의미로 간주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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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젊은 시절에 찍은 파스테르나크의 사진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 준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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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가 사용했던 1950년대 TV 수상기가 이채롭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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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는 가끔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파스테르나크는 1945년부터, 스탈린이 죽는 1953년까지, 모스크바 외곽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에 틀어박혀, 장편 소설 ‘닥터 지바고 (Доктор Живаго)’의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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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가 책상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Wikipedia).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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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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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앞쪽의 책상은 의자에 앉아서 사용하던 책상이며, 뒤쪽 책상은 자세를 바꿔 서서 사용하던 책상이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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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사용하던 두  책상(장편 소설 닥터 지바고의 산실) 사이에 굳건히 섰다. 파스테르나크의 노벨상 수상 뒤, 5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생사를 초월해, 파스테르나크와 조우(遭遇)하던, 그야말로 감격에 겨워, 가슴이 떨리던 순간이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1956년,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의 유력 월간지에 이 소설을 기고했으나, ‘10월 혁명과 혁명의 주역인 소련 인민과, 소련 정부의 사회 건설을 모독했다’는 비난을 받고, 거절 당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1957년, 이탈리아의 출판사를 통해 서유럽에 알려졌고, 파스테르나크에게서 저작권을 사들인 이탈리아 출판사는 원고를 되돌려 달라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영역본이 출간된 1958년에는 이미 ‘닥터 지바고’는 18개 국어로 번역되었으나, 소련에서는 금지 도서로 찍혀 있었다.

서방 세계에 알려진 그의 소설은 러시아의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했다는 업적을 인정 받아 불과 출판 1년 만에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958년 10월, 스웨덴 한림원 (Swedish Academy)은, "1958년도 노벨문학상 (1958 Nobel Prize in Literature) 수상자로 소련 국적의 작가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 (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Boris Leonidovich Pasternak)가 선정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스웨덴 한림원 (Swedish Academy)은 선정 이유를 "for his important achievement both in contemporary lyrical poetry and in the field of the great Russian epic tradition (현대 서정시 분야뿐만 아니라, 위대한 러시아에서 대대로 전승돼 온 웅장한 서사시 분야에 이르기까지 공 (共)히 그가 이뤄낸 중요한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수상 소식을 접한 파스테르나크는, 수상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역사는 전한다. "Immensely thankful, touched, proud, astonished, abashed. (엄청나게 고맙고, 감동스럽고, 자랑스러우며, 놀랍고,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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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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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가 1958년도 노벨문학상 (1958 Nobel Prize in Literature) 수상 기념 파티에서 포도주 잔을 들고 당당히 섰다. 뒤쪽 맨 위 사진은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직접 그린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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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가 파스테르나크가 베푼 1958년도 노벨문학상 (1958 Nobel Prize in Literature) 수상 기념 파티 현장에 굳건히 섰다. 뒤쪽에 걸린,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직접 그린, 아버지의 자화상이 이곳이 파티 현장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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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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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책꽂이에는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된 그의 장편 소설 '닥터 지바고'가 꽂혀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어판은 없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당시, 독일 뮌헨에 유학 중이던, 전혜린 (田惠麟, 1934. 01. 01 ~ 1965. 01. 10)이라는 우리나라 여자는, 자신의 일기에, 독일 현지 언론에 소개된 파스테르나크의 수상 소감을, 독일어로 이렇게 적어 놓은 바 있다. "Bin unsagbar dankbar, gerührt, stolz, erstaunt, beschämt. (엄청나게 고맙고, 감동스럽고, 자랑스러우며, 놀랍고,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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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田惠麟, 1934. 01. 01 ~ 1965. 01. 10).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하지만, 10월 29일,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이 수상을 이렇게, 전격적으로 거부한다. "Considering the meaning this award has been given in the society to which I belong, I must reject this undeserved prize which has been presented to me. Please do not receive my voluntary rejection with displeasure. (이 상이 수여된 의미를, 제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심사숙고해 볼 적에, 저는 제게 수여된 이 상을 거부함이 마땅합니다. 부디, 저의 이 자발적인 거부 의사를,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길 빕니다.)"

파스테르나크의 노벨 문학상 수상 거부의 곡절은 소련 정부의 엄청난 압력과 동료 작가들의 싸늘한 시선에 기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수상 거부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파스테르나크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소련 작가 동맹은 그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고, 급기야, 소련 정부에 의해 국외로 추방 당할 처지로 몰렸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파스테르나크는 당시 소련 지도자였던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 (Ники́та Серге́евич Хрущёв=Nikita Sergeevich Khrushchyov, 1894. 04. 15 ~ 1971. 09. 11)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이렇게 탄원했다.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저에게 죽음을 의미합니다! ”

뒷날, 이와 비슷하게, 1970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소련의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Aleksandr Isaevich Solzhenitsyn=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 1918. 12. 11 ~ 2008. 08. 03)도, 파스테르나크처럼, 소련 정부의 엄청난 압력과 동료 작가들의 싸늘한 시선 속에
“노벨상 포기냐! 국외 추방이냐”의 기로에 선 바 있다. 파스테르나크와 달리, 솔제니친은 소련을 뛰쳐나와 노벨 문학상을 당당하게 수상했다. 이 후유증으로, 솔제니친은 동서 냉전이 종결되고 소련이 붕괴된 후인 1994년 러시아로 귀국할 때까지 무려 24년 동안 해외를 떠도는 고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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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소련의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Aleksandr Isaevich Solzhenitsyn=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 1918. 12. 11 ~ 2008. 08. 03).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한편, 파스테르나크는, 탄원을 받아들인 흐루쇼프 덕에 국외 추방만은 간신히 면했다.

당시의 파스테르나크의 심리 상태는, 독일 뮌헨에 있던 전혜린의 1959년 2월 11일 수요일 일기에 상세히 묘사돼 있다. "차갑고 축축한 날. 이제 석탄 없이 더 이상 지낼 수 없다. 정오에 나는 라디오 방송에서 파스테르나크가 '노벨상'이라는 시(詩)를 썼으며, 런던 신문이 그것의 발표를 간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스테르나크는 그 안에 자기 자신을 '고통 받고, 사주된 동물'이라고 적고, 마지막 절에서 그는 '선(善)이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을 소망(所望)'하고 있다. 그의 용기를 찬탄해 마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인간이 있다는 것, 그러한 인간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하나의 경이이다. 그는 시지푸스처럼 꼭 그렇게 남자답고 용감하다. 운명에 순종하면서도 그렇게 자유에 충만한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 어제는 그의 예순 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그가 오래 오래 살 것을 바란다. 소비에트의 권력자나 집권자들이 그를 멸(滅)하지 못하게 되기를! 무조건 이 시를 한 번 읽어 봤으면!"

하지만, 파스테르나크는, 불행하게도 지병인 폐암과 심장병으로 시달리다가, 1960년 5월 30일 월요일 모스크바 외곽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 자택에서 향년 70세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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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가 눈을 감은 침대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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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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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벽에는 파스테르나크의 데스 마스크 (Death mask=죽은 사람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뜨는 안면(顔面)상으로서, 사람이 죽은 뒤 얼굴에 유토(油土)나 점토를 발라 모형을 만든 다음, 다시 그것으로 석고 따위를 사용하여 만듦)가 걸려 있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파스테르나크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조문객이 운집하여, 그의 넋을 기렸으며, 관 (棺)은 그의 맏아들 예브게니 (Evgeny=Евгений)와, 둘째 아들 레오니드 (Leonid=Леонид)가 운구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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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파스테르나크의 장례식에서, 그의 관 (棺)을 맏아들 예브게니 (앞줄 오른쪽, Evgeny=Евгений)와 둘째 아들 레오니드 (앞줄 왼쪽, Leonid=Леонид)가 운구하고 있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 공동 묘지를 나서니, 견공(犬公)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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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문득, 개팔자가 상(上)팔자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 개들에게는 이데올로기 문제가 없을 터이니까.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냉전 시대의 종결 뒤, 이제는 종언을 고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왜냐. 이제는, 이데올로기는커녕, 직업적, 전문적인 정치가, 관료에 의하여 순수하게 생활 향상이 목표로 되는 것이 현대의 대세이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파스테르나크는 확실한 시대의 피해자였다. 왜냐. 글 잘 쓰는 것도 죄악(罪惡)이 되는 황당무계한 세상을 살아야 했으니까.

다시 눈을 들어 보니, 눈(雪) 쌓인 러시아 정교회 교회 전경이 시야에 뚜렷하게 들어왔다. 이번에는 마음이 경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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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승용차는 어느새 철길 건널목을 지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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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외곽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나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쌀쌀한 영하의 날씨를 뚫고, 페레델키노 (Peredelkino=Переделкино) 공동 묘지를 나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귀갓길은 왠지 추웠다. 몸이 얼어 붙은 상태로, 마치,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이 되어, 한겨울 속의 시베리아 설원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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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닥터 지바고'. (사진=영화 화면 캡처).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본 기자는 그렇게 파스테르나크와 짧은 만남, 긴 이별을 했다.

☞파스테르나크의 작품 목록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Близнец в тучах, 1914)
▲시집 '경계를 넘어서'(Поверх барьеров, 1916)
▲시집 '누이는 나의 삶'(Сестра моя-жизнь, 1922)
▲단편 소설 '제냐 류베르스의 어린 시절'(Детство Люверс, 1922)
▲단편 소설 '툴라에서 온 편지'(Письма из Тулы, 1922)
▲시집 '테마와 변주'(Темы и вариации, 1923)
▲서사시 '고상한 병'(Высокая болезнь, 1923)
▲단편 소설 '하늘의 길'(Воздушные пути, 1924)
▲서사시 '1905'(Девятьсот пятый год, 1926)
▲서사시 '슈미트 중위'(Лейтенант Шмидт, 1927)
▲산문집 '이야기'(Повесть, 1929)
▲운문 소설 '스펙토르스키'(Спекторский, 1931)
▲시집 '두 번째 탄생'(Второе рождение, 1932)
▲수필 '안전 통행증'(Охранная грамота, 1932)=>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시인 (詩人)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으며, '제냐 류베르스의 어린 시절', '하늘의 길', '툴라에서 온 편지'가 첨부돼 시판됐다.
▲시집 '새벽 기차를 타고'(На ранних поездах, 1943)
▲시집 '지구의 팽창'(Земной простор, 1945)
▲번역서 '파우스트'(Фауста, 1953)
▲번역서 '셰익스피어 비극집'(Заметки к переводам шекспировских трагедий, 1953)
▲번역서 '그루지야 서정시'(Стихи о Грузии. Грузинские поэты, 1958)
▲장편 소설 ‘닥터 지바고'(Доктор Живаго, 1958)
▲시집 '하늘이 맑게 갤 때'(Когда разгуляется, 1962)
▲수필 ‘사람과 상황'(Люди и положения, 1967)
▲희극 '눈먼 미인'(Слепая красавица, 1969)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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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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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1/13 [11:58] 최종편집: ⓒ 2018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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