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흑토끼의 해’가 저물고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한 해를 보내며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을 씁니다만, 2023년이 정확하게 그에 해당할 정도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언론계를 포함한 전체 한국사회에 희망을 주는 일보다는 낙심에 낙심을 주는 일들이 허다했습니다.

 

교수신문이 2023년 한국 사회의 위치를 말해주는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 30.1%),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 25.5%), ‘남우충수(濫竽充數,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들 틈에 끼어 인원수를 채운다. 24.6%) 등을 꼽은 것이 이 같은 처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치권을 비롯하여 자격 없고 의롭지 못한 사회 지도층이 저마다 목전의 이익을 좇아 한 해를 보내다 보니 정치•사회•경제•국제관계 등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렸습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만을 더 생각하고,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은 외교적 균형감각을 상실한 채 분단상황 관리에 실패하면서 한반도는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회를 바르게 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언론계의 상황은 지난 1년여 동안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왔습니다. 정치권력의 언론장악, 비판언론에 대한 탄압과 길들이기가 더욱 노골화해 왔습니다.

 

각종 규제, KBS 등 주요 방송사에 낙하산 경영진 꽂아넣기, 방송의 사영화 추진, 연합뉴스와 YTN을 비롯한 주요 매체의 공적 자금 대폭 삭감, 비판적 언론인에 대한 무분별한 고발.고소 등이 그것입니다. 이 같은 정치권력의 언론탄압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지적을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지난 5월 3일 발표한 '2023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80개국 중 47위에 올라 있습니다. 이전 정부에서 2020~2021년 42위, 새 정부가 출범한 2022년 43위에서 1년만에 4단계나 더 떨어진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동티모르(10위), 뉴질랜드(13위), 사모아(19위) 등에도 훨씬 뒤쳐진 순위입니다.

 

이밖에 명예훼손법과 국가보안법, 언론인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 광고수입 감소로 인한 경영난 등 외부 미디어 환경도 한국의 언론자유 하락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의 유혹에 부화뇌동한 언론도 결코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정권의 압력에 침묵과 왜곡을 일삼으면서 권부의 배에 올라탄 언론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2024년에도 정치권력의 탄압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치권력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고 돈줄을 죄며 미디어 환경에 압박을 가하는 한편, 언론인에 고소•고발을 가하는 형국 또한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국의 언론자유는 어디까지 추락할지 알 수 없고, 국격 추락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혹한이 계속된다고 해서 돋아 오를 봄날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추구되는 한, 언론은 늘 살아있는 생명체로 세상을 살리는 기폭제가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자본과 불의에 무릎 꿇지 않은 ‘남은자 언론인들’(remnants)이 있습니다. 전방위적으로 심화할 정치권력의 언론탄압에 맞서 남은자 언론인들이 힘을 모아 곧은 목소리를 낸다면 권력의 폭주에도 언젠가 제동이 걸릴 것입니다.

 

하늬 꽃샘을 뚫고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을 기대하면서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한 CBS의 전설적 앵커 웥터 크롱카이트의 유명한 말을 끝으로 청룡의 해를 맞고자 합니다.

 

“언론의 자유는 단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민주주의다”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장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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