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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단속에 ‘얼어붙은 부평초’

[i뉴스넷] 최윤주 발행인/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연못이나 논 어귀에 잔뜩 떠있는 손톱만한 작은 잎. 물 위를 초록으로 가득 덮고 있는 작은 잎을 기실 눈여겨 본 사람은 별로 없다.

이름도 희한한 개구리밥. 잎을 헤집고 개구리가 물 위로 머리를 내밀면 작은 잎이 입 주변이나 머리에 밥알처럼 붙어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구리밥의 또다른 이름은 부평초. 얇고 작은 뿌리가 땅에 내리지 않고 물결따라 바람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데서 유래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이 내 신세 혼자서 기막혀서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고 고복수 선생의 노래 ‘타향살이’는 부평초가 가사로 나오는 유명한 노래다.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한 이후 살 길을 찾아 북간도로 떠나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만주로 넘어간 사람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거나 공산주의가 싫어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에게 고복수 선생의 ‘타향살이’는 노래가 아니라 가슴 절절한 아픔이었다.

 

대부분의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린 후 생명이 사그러질 때까지 평생을 산다. 한 곳에서 뿌리내려 안정감있게 살고픈 마음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타향땅에 자리잡은 이민자들의 삶이 무엇인가를 상실한 삶처럼 느껴지는 것도 뿌리 때문이다. 흙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물 위를 떠돌아 다니는 덧없는 부평초와 이민자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뉴욕 타임즈가 6일 미국 내 불법체류 이민자 현황을 집중조명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미국내 불체자 수는 1100만명. 이중 멕시코 출신은 620만명으로 절반에 달하고, 한국 출신은 19만 8000명으로 추산됐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불체자 인구의 60% 이상이 미국에 거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점. 게다가 약 400만명은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를 두고 있으며, 3명중 1명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초강력 이민단속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명분인 불체자의 범죄여부도 주목할 만한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범죄이력이 있는 불체자는 전체 인구의 7.2%에 불과하다. 중범죄 이력이 있는 불체자는 이보다 훨씬 낮은 2.7%인 것으로 드러났다.

불체자는 범죄자라는 인식과 대부분 국경을 통해 밀입국했다는 선입견이 편견에 가깝다는 반증이다.

 

이민단속의 칼바람은 한인타운이라고 빗겨가지 않는다. 한인들의 왕래가 제일 빈번한 캐롤튼 지역이 이민단속국과 공조체계에 있는 북텍사스 유일의 도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얼음장 같이 차가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소한 교통티켓 하나로 수십년간 어렵게 쌓아온 타향살이 삶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는 끔찍한 부자유는, 꽁꽁 언 얼음에 갇혀있는 부평초의 모습을 닮았다.

 

수많은 부평초들이 유례없는 이민단속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도 지탱하고 있는 물 밑으로 조심스레 뿌리를 담그고 살아내려는 안간힘 마저 차갑게 갇혔다.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부평초에게 타향은 고향이 될 수 없는 걸까. ‘타향살이’의 마지막 노랫말이 못내 가슴 아픈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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