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각국은 기대수명을 늘리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늘어난 수명만큼의 삶을 위한 대비에는 그 노력의 일부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호주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은퇴자 대비가 없다는 것이다. 사진 : Unsplash / Claudio Schwarz
최대 투자사 ‘BlackRock’ 창업자 Larry Fink의 시선, ‘기후변화’서 ‘고령인구’로
15조 달러 투자자산 운용... 호주 퇴직연금 시스템 주목은 더 많은 자산 관리 목적?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 위기’라는 말이 점차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길어진 수명과 그 기간의 삶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관건이다.
뉴욕에 본사를 둔 ‘BlackRock, Inc’는 38개국에 80여 사무소를 개설하고 100여 국가 고객을 보유한 글로벌 투자 회사이다. 이 업체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핑크(Larry Fink) 최고경영자는 경제적 도전에 대해 의미 있는 의견을 제시해 온 기업인이다. 이제까지 그의 시선은 기후 변화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올해 들어 투자 방향이 ‘고령화 인구’로 옮겨졌다. 그가 최근 내놓은 메시지에서 은퇴 이후의 대비 문제를 제시한 것이다.
물론 BlackRock은 미국 및 전 세계 주요 국가 수백 만 명의 퇴직 저축액을 비롯해 투자자들의 자금 15조 달러를 관리하는 회사이기에 은퇴 후의 보다 안락한 삶을 누리는 방법에 대해 그가 최근 내놓은 메시지의 논지는 충분히 자기 잇속을 차리는 말(there’s no shortage of self-serving answers)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지속적으로 나아지는 우리의 기대 수명은 달리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고령화 인구에 대한 자금지원 문제를 새로운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생명공학’이다. 지난해 두 생명공학 회사가 비만을 거의 없앨 수 있는 신체 코드를 해독하면서 이제 ‘고령’이라는 개념도 바뀌고 있다. 비만과 이로 인해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질병이 기대 수명을 수년이나 단축해 놓았던 탓이다.
‘Ozempic’, ‘Wegovy’를 비롯해 기타 유사품 등 체중감량 약물 보급이 확산되면서 퇴직한 이들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 대한 수학적 문제는 더욱 까다로워지고, 이를 위한 과제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생명공학 기업들이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의학적 돌파구의 다음 성배는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뇌 질환 치료법이다. 이 분야의 일부 연구자들은 이런 노력의 실현이 멀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핑크 CEO에 따르면 이 같은 수명 관련 돌파구는 불만스러운 아이러니를 강조한다(These breakthroughs underscore a frustrating irony).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더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데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집중하지만 그 추가된 삶의 기간을 감당할수록 지원하는 데에는 그 노력(기대 수명 연장을 위한)의 일부조차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대 수명의 연장, 즉 더 오랜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젊은 세대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해 사회적 관점에서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베이비부머와 젊은 세대 사이에 나타나는 불화는 이미 드러난 사안이다.
핑크 CEO는 밀레니얼(1981년에서 1995년 사이 출생자)과 Z세대(1996년 이후 세대들)가 경제적으로 가장 불안하다고 말한다. 이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들 세대가 이제 경제적으로 생산적 노동력의 구성원이 되어 생산적이지 않으면서 더욱 증가하는 은퇴자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전 세대의 경우 은퇴자들이 더 일찍 사망하고 남은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었는데, 이제 은퇴자들의 사망 시점이 늦춰지면서 그들이 가진 자산 중 더 많은 부분을, 은퇴자 본인을 위해 사용하고 중년이 넘은 나이까지 부모에게 상속받지 못한 자녀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핑크 CEO는 “그렇기에 지금 가장 젊은 밀레니얼 및 Z세대가 경제적으로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들은 (핑크 CEO 자신과 같은) 베이비붐 세대가 다음 세대를 희생하면서 자신의 재정적 안녕에만 집중했고 은퇴 후 그들(베이비부머)의 다음 세대 또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현재 일을 하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정부와 회사 측이 제시하는 ‘은퇴 준비’ 메시지는 ‘You’re on your own’이다. 다시 말해 ‘네가 알아서 대비하라’는 것이다.
핑크 CEO는 베이비붐 세대가 여전히 기업 및 정치적 리더십 위치에 있기에 이런 상황을 바꿔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문제들은 지금의 젊은 그룹들로 하여금 점점 더 환멸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15조 달러를 관리하는 세계최대 규모의 투자회사 ‘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사진) 최고경영자. 그는 은퇴자를 위한 젊은층의 부양 부담을 줄이려면 국가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사진 : Wikimedia Commons
그는 “이와 관련한 월 스트리트 저널 데이터보다 더 자신(핑크 CEO)를 불안하게 만든 기사는 없다”고 말했다. 그 내용은, 오늘날 젊은층이 자신의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50% 더 높으며 40%는 실제로 이에 동의한다는 것으로, 20년 전과 비교하면 ‘세상에 희망을 갖기 어렵다’는 뜻이다.
15조 달러 규모의 자산 관리자이면서 투자자인 핑크 CEO가 최근 메시지를 통해 이 같이 언급한 것은, 늘어난 수명을 감당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르면 퇴직 저축 부족은 미국 경제의 재앙이다. 퇴직 연령(65세)을 더 연장하거나 근로자가 퇴직 이후의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동안 점진적으로 저축할 수 있도록 하는, 더 나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핑크 CEO는 그 표준으로 호주의 퇴직연금(superannuation) 모델, 그리고 인구학적 변화에 대한 네덜란드의 보다 유동적인 대응을 예로 제시했다.
네덜란드는 10여 년 전, 은퇴 연량을 점진적으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국가의 기대 수명 변경에 따라 퇴직 연령은 자동으로 조정된다.
호주는 고용주가 18세에서 70세 사이 모든 근로자에 대한 소득의 일부를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해야 하며, 이 계좌는 근로자에게 귀속된다. 이 시스템은 미래 퇴직자 위기를 예상한 정부가 1992년 도입했다.
그리고 32년이 지난 지금, 호주인들은 다른 어떤 국가 근로자들보다 1인당 은퇴 준비 자금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주 인구(2023년 9월 분기 현재 2,682만 명)는 전 세계에서 54번째이지만 네 번째로 많은 은퇴 준비 자금을 갖고 있다.
핑크 CEO는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 경험은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으며, 일부는 이미 그렇다”고 단정했다.
고령화와 수명 연장으로 은퇴자 수가 더욱 늘어난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미국이 호주와 같은 국가 차원의 퇴직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그의 회사인 BlackRock이 관리하게 될 자산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투자 관련 시선이 기후 변화 문제에서 고령화로 전환된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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