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패러다임 평화패러다임으로 변화해야”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상태이다. 지난 수 세기 우리를 지배해왔던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인류에게 22세기의 도래는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평화학자이자 북녘전문가인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가 회고록 <평화에 미치다>(삼인출판사)를 출간했다.
박한식 교수는 조지아대학 국제관계학과와 국제문제연구소(GLOBIS)를 중심으로 45년간 수천의 청년들에게 평화를 가르치고, 그 평화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약으로 ‘북·미 평화 설계자(architect)’로 불리고 있다.
<평화에 미치다>는 ‘평화에 미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현대사 전체를 돌아보며 인권과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 정치의 기본개념과 오랜 세월 미해결 상태를 답보하고 있는 남북갈등, 남남갈등, 북·미 간 갈등을 비롯한 현안을 심도 있게 성찰(省察)하고 있다.
박한식 교수은 1981년 재미 학자들과 함께 평양 땅을 처음 밟은 이래 50여 차례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현지 실상을 직접 보고 각 분야 리더 및 시민들과 교류하며 이해하게 된 북녘을 ABC·CNN을 비롯한 전 세계 유력 언론들과의 인터뷰·출연·기고문을 통해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렸다.
1994년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북핵 위기를 해결하는데 일익을 맡았고, 2009년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북한에 억류된 미국 기자들이 석방되도록 애썼다. 정부 간 소통 창구가 닫힌 상황에서 남·북·미 간 트랙II 회담을 추진하고, 북의 기아 완화를 목적으로 북한과 미국 농업대표단의 상호 교류를 성사시켰으며, 1980년부터 출생지인 흑룡강성을 매년 방문하여 직접 녹화한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KBS로 내보냈다.
이러한 다방면의 공헌으로 2010년, 예비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받은 그이는 “지난 수 세기 우리를 지배해온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인류에게 22세기의 도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2015년엔 TED콘퍼런스에 초청되어 평화의 개념을 ‘분쟁의 부재(absence of conflict)가 아니라 조화(harmony)’라고 정립했다.
<평화에 미치다>는 2019년 3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한겨레신문에 격주로 연재된 글을 기본으로 편집되었다. 첫 장인 ‘우리가 살아낸 역사, 우리가 꿈꾼 역사’는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박한식 교수의 중재(仲裁)로 처음 방북하여 김일성 주석과 회담한 이야기로 문을 엶으로써, 현재까지도 세계적 중대 사안인 북핵 문제를 다루었으며, 1939년 만주 하얼빈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혼란기에 평양을 거쳐 대구에 정착하기까지 전쟁의 참상과 유랑의 고통을 체감하며 ‘평화병’에 걸리게 된 남다른 성장기를 소개했다.
다음 장 ‘미국에서 배운 미국’은 1965년에 시작된 미국 유학 생활을 통해 그가 바라본 미국과 민주주의에 대해 풀어내면서, 평화를 배우러 온 나라에서 바로 맞닥뜨린 베트남전쟁과 학계를 지배하던 행태주의를 언급한다. 그다음 장 ‘조선을 이해하는 길’은 북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내용과 더불어 주체사상을 연구한 과정을 담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눈으로 보아야 북의 체제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마지막 장인 ‘우리의 평화, 우리의 통일’은 그가 미국을 거점으로 남북을 오가며 터득한 진정한 평화, 그리고 통일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독일식 통일이 아닌 우리만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제시되는 ‘변증법적 통일론’, ‘한 민족, 두 국가, 그리고 세 정부(One nation, Two states, and three governments)’ 통일 모델과 ‘개성 통일·평화대학’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이하 출판사 서평.
중국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넘어오고, 또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을 거점으로 살아온 재외동포 학자로서, 남과 북을 비교적 자유로이 왕래하며 각각의 사회체제와 문화적 배경을 객관적으로 통찰하고 미국이라는 강대국에서 한반도 평화를 일궈가는 데 앞장서온 박한식. 그의 삶과 학문의 여정을 담은 <평화에 미치다>를 읽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내다보며 이 땅과 우리 개개인의 평화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학자의 존재 이유는 우리 시대의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제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것,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안내하는 것에 있다고 박한식은 누차 강조한다. <평화에 미치다>는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말과 글을 넘어 삶으로 보여준 한 학자의 감동적인 초상을 만나게 한다.
“1970년부터 45년을 조지아대학에 적을 둔 학자로서 나는, 학문의 목적은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에 있고,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발견해내고(identify) 원인을 찾아서 처방을 제시하는 것이 학자의 소명이라는 생각을 평생의 지론으로 삼아왔다. 나에게 있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북 문제였고, 남북 분단과 군사적 긴장을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그 사회를 도안하고 설계하는 것이 학자인 나의 역할이자 책무라고 믿으며 평생을 애면글면해왔다. [...] 한국전쟁 이후, 한국과 조선 모두 체제 경쟁과 안보 패러다임의 포로가 되어 서로를 악마화하면서 통일은 커녕 대화와 교류도 단절된 분단체제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내 살아생전에 한국과 조선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감격과 환희를 누려볼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그것이 시간적으로 어렵다면 평화와 통일의 단단한 초석이 놓이는 것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_‘들어가는 말’에서
“박한식 교수는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젊은이에게 평화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열정적으로 가르친 교육자이자, 북한을 비롯한 전 세계를 발로 뛰어다니며 각 국가가 서로 이해하고 연결되는 장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평화중재자이다. 그의 삶을 회고하는 이 책은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일제강점기부터 돌아보는 책이고, 인권·민주주의·사회주의 등의 개념에 대해서도 정립해볼 기회를 주는 책이다.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통일과 남북 문제에 관한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현실적인 길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화 뒤에 통일이 오는 게 아니라 통일 뒤에야 평화가 가능하다는 그의 이야기는 경청할 만하다.”_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박한식은 미국에 평화를 공부하러 왔으나 도착하자마자 베트남전쟁을 체험해야만 했을 뿐 아니라, 대학도서관은 평화 연구서 대신 전쟁 연구서만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그즈음 미국 정치학계에서 유행하던 ‘행태주의’를 통해서는 그가 염원하던 ‘평화병의 지적 처방’을 배울 수 없었다. 그는 미국이 ‘전쟁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노예제도와 함께 미국의 인디언 정복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볼 때 노예제도와 인디언 정복은 미국의 원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축이다. 그는 미국의 역사,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깊이 있게 파헤치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미국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1981년부터 50회 이상 북한을 방문하면서 바깥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과 북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다르다는 것, 즉 바깥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각으로는 절대로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런 시각으로 조선을 재단하는 행위를 ‘인식론적 제국주의’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아울러 인식론적 제국주의에 입각해 입안된 모든 북핵 위기 해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쪽에서 팀스피리트훈련 기간이 되면 조선 전체가 전시 상황으로 바뀌어 모든 이들이 밤마다 불을 끄고 긴장과 두려움에 떠는 것을 그는 북한에 머물면서 목격했다. 또한 주체사상이야말로 조선의 삶의 양식을 전반적으로 규율하는 살아 있는 이념이라는 사실도, 그렇기에 소련 붕괴 후 동구권이 무너지고 심지어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음에도 북한이 굳건히 건재해왔다는 사실도 이 역지사지의 눈으로 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파악했다.
작금의 한반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1950년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박한식은 말한다. 남북 대치 상황도 여전하고, 북한은 이미 실질적인 핵 국가가 되었으며,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북·미 간에는 변함없이 험악한 말들이 오간다.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고 평화협정은 고사하고 종전선언조차도 요원한 게 현실이다. 왜 지난 70년 동안 남북관계 그리고 북·미 관계는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문제는 미국의 북한 악마화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평화가 통일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통일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남북 상호 대화와 협력을 통해 꾸준히 통일을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만이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그럼에도 종종 언론 기관 등에서 실시하는 통일 관련 여론조사 설문지의 첫 번째 질문이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점을 박한식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바람직한 ‘통일의 길’이 무엇이고 통일 한반도의 이상적인 정치사회 체제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전제 없이 이런 질문들을 묻고 대답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단 이전의 고향을 떠난 이산 1세대는 모두 독립운동가였다는 것이 당시 시대정신이었듯, 그리하여 이 땅에 독립이 찾아왔듯,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정신은 통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 통일 준비 과정에서 남북 양쪽을 모두 접할 수 있는 재외동포들이 그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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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박한식교수 “개성에 통일평화대학 세우자” (2021.5.23.)
박한식사랑방 지상중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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