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여기에 왔느냐, 여기까지 와서 무얼 하려는 것이냐?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심정은 알겠는데, 우리도 너무 바쁘다. 난민 문제도 산적해 있고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해야할 일,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멀리 변방에서 일어난 사건까지 신경 쓸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신경을 써준다 한들 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유럽을 방문하는 세월호 유족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이러한 무심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올까봐, 유럽행을 결정하면서도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유럽의 많은 교민들과 유러피안들은 유족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자신의 일처럼 나서 도와주었다. 그리고 유족대표단은 스스로에게 의문부호를 던졌던, ‘유럽 방문의 목적’을 분명히 확신하게 되었고,마침내 꿈같은 결실을 파리에서 이뤄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언제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있다. 아이 러브 파리~”
파리 소르본느 대학, 바슐라르 강의실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 선 세월호 유족 대표 유경근 씨가 환한 얼굴로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우자 환호와 함께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2주간의 유럽 도시 순회방문 중 3박4일 일정으로 마지막 목적지인 파리에 도착한 세월호 유족 대표단은 5월13일 오전, FENVAC(재난과 테러 희생자 연합), SOS Catastrophes(유럽 재난피해자 네트워크), 박애와 진실(11.13 파리테러 희생자 단체) 대표들과 만났다.
이들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가를 묻지 않았다. 기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명백했으니까.
앞서, 한국의 세월호 유족들이 파리 방문과 함께 자신들을 만나고자 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들은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전에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멀리까지 찾아와준 세월호 유족들을 끌어안고 말없이 위로해주고는 그들이 나눴던 놀라운 제안을 꺼냈다. 전세계에 있는 모든 참사와 테러 재난 재해 피해자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국제연대를 같이 조직하자는 것이었다.
이번 유럽 방문 중에는 이들과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만으로 큰 성과라고생각하고 있던 유족들에게 의외의 놀라운 제안이었다. 더 이상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다. 가능한 한 전세계의 피해자들이 한데 모여서 국제연대 회의를 개최하기로 하고, 그 첫 대회를 올 10월에 서울에서 열기로 잠정 합의를 봤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세월호 유족들이 파리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성사될 수 없는, 아니 애초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국제 공조가 이 작은 만남을 통해 싹트기 시작했다.
국제연대의 목적은 분명하다. 이러한 재난과 재해, 테러에 대해 명확한 진실을 밝히고, 같은 원칙 같은 기준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돕기 위한 것이다. 성사되면 세계 최초의 재난재해, 테러 피해자 국제연대가 조직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한국의 ‘세월호 416가족협의회’와 프랑스의 ‘FENVAC(재난과 테러 희생자 연합)’이 주도, 세부적인 논의를 통해 공동으로 국제회의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2년 전, 불의의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희생자가 났다. 대부분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청소년들이었다.
많은 논쟁들이 휩쓸려 지나 갔지만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고, 사과를 하는 사람도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었다. 예의 그렇듯이 조금씩 세인들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가는듯하다.
그 이전에도 우리에겐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씨랜드, 천안함 사건 등 숱한 재난재해와 참사로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왔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사고에 대해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해 나가고,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보다는 돈 몇푼 더 쥐어 주고 모든 것을 덮는데 급급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제대로 된 진실과 책임규명을 보지 못한 채 고통을 삭이며 오히려 죄인처럼 평생을 자학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보상금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한다. 그리고는 할만큼 했으니 그만하라고 한다. 이제는 잊으라, 가슴에 묻으라 한다.
진실을 밝히고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나서는 가족들의 당연한 권리와 주장 앞에,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수작이니,시체장사를 한다느니 하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모욕하고 호도해 이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심지어는 이들을 종북으로 매도하고, 관변단체를 조종해 터무니없는 여론몰이로 계속적인 물타기와 국론분열을 일삼아 왔다.
그러나 세월호 가족들은 굽히지 않았다. 핏덩이 같은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은 안된다. 진실을 규명해달라. 이런 죽음의 역사를 끊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안전하고, 사람이 존중받는 깨끗한 세상이 되어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만이 하늘로 간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자 마땅한 책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한가지 뜻만 가지고, 그 먼 길을 돌고돌아 이곳 유럽, 파리까지 찾아 왔다.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30주년을 맞아, 이 두 나라가 전 세계의 참사피해자들을 위한 인권선언을 함께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세월호의 진실도 명명백백히 밝히고, 권력자와 가진자의 폭력 앞에 희생되고 능욕당하는 수 많은 피해자들이 보호받고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이 보다 아름답고 값진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엄청난 세월호 참사에도 우리 사회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이같은 비극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별이 된 세월호 아이들이 우리에게 던진,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한위클리 / 이석수 francez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