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야당 지도자 오딩가, 비공식 대통령 취임 강행
케냐GBS=송태진리포터 taylorsong@gbskenya.com
지난해 대선 이후 끊임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온 케냐의 야권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72)가 마침내 비공식 대통령 취임식을 강행했다.
1월 30일(현지시간)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우후루 공원에서 야권연합 국민슈퍼동맹(NASA) 라일라 오딩가 대표의 비공식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그러나 이미 지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57)이 케냐 공식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기에 라일라 오딩가의 취임식은 법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이벤트성 행사로 풀이된다.
야권연합 라일라 오딩가 대표는 지난해 8월 8일 케냐 대통령 선거에서 현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에게 9% 차이로 패한 이후 끊임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 후 대법원 판결에 의해 10월에 진행된 재선거에도 출마를 거부하는 등 부정선거 의혹을 거두지 않았고, 자신이 케냐의 진정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해 왔다.
야당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대통령 선서를 하고 있는 라일라 오딩가 (사진=현지 방송보도 캡쳐)
그러나 회심의 일격을 위해 준비한 행사라고 하기에 취임식은 너무나 허술했다. 격식 있는 축하 공연이나 귀빈의 축사와 같은 그 어떠한 부대 행사 없이 그저 라일라 오딩가 대표와 몇몇 야권 인사들이 무대에 올랐을 뿐이다. 야권연합 주요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리를 비웠고, 심지어 라일라 오딩가 대표와 선서를 함께 하기로 약속된 부통령 후보 칼론조 무시오카 마저 불참했다. 칼론조 무시오카가 탑승한 차량은 그를 추적하는 방송국 취재차량을 교묘히 따돌린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알려졌다.
그는 이번 취임식이 있기 전, 이미 지난해 12월 12일 독립 기념일과 올해 1월 1일 새해에 대통령 취임식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취임식을 진행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아 빈축을 샀다. 급기야 케냐인들 사이에서 오딩가는 겁쟁이로 언급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야권의 결속력 또한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지지자들에게 ‘바바’(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절대적 지지를 받아온 오딩가는 겁쟁이 이미지를 타계하고 지지층을 결속시키기 위해서라도 무리하게 대통령 취임식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몇 차례나 시작 시간이 연기 된 후 오후 2시 50분 취임식이 열렸다. 라일라 오딩가는 마이크 앞에서 "본인 라일라 아몰로 오딩가는 높은 요구에 부응하여 케냐 공화국의 국민 대통령직을 받아들인다"라고 선서했고 이어 짧은 연설을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행사가 종료되었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고 순식간에 마무리 된 취임식이었다. 오딩가 대표가 선서를 하며 성경을 들어 올릴 때 아침부터 운집해 있던 수천 여명의 야권 지지자들은 환호를 외치긴 했지만, 야권 내부의 공조마저 잃고 있는 노회한 정치인의 불법적 선언에 어떠한 힘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부통령 후보 칼론조 무시오카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취임식에 앞서 키투 무이가이 케냐 검찰총장은 라일라 오딩가가 대통령 선언을 할 경우 반역죄에 해당하며 최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해 왔다. 그럼에도 취임식을 강행한 오딩가에게 케냐 정부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 향후 정세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경고를 무시한 오딩가에게 강경한 조치를 취할지, 취임식을 거치며 내분을 드러낸 야권 연합이 자멸하길 기다릴지 현재로서는 알기가 어렵다.
아프리카를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인 케냐에서 야당 지도자가 스스로 대통령을 선언한 현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 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