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확산과 허위정보의 관계
'과학의 정치화' '과학적 불확실성'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하나?
1.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는 최근에서야 갑작스럽게 등장한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로마 시대의 프로파간다부터 소셜 미디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막론하고 정보 생태계(information ecosystem)의 오랜 주민이었다. 거짓과 허위정보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고 분노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사실의 날조, 사실의 맥락을 미묘하게 왜곡하는 전언(傳言), 증오심 부풀리기,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선동의 요소였다. 가짜뉴스의 실체는 뉴스 정보를 수용한 이후에 맥락을 재해석하거나 덧붙여서 부정확한 소문을 퍼뜨리는 우리 자신이기도 했다.
인쇄술, 라디오, 무선 전신, 웹브라우저, 포털 사이트 중심의 디지털 뉴스 전달,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인터넷 접속의 폭발적 증가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지는 동안 허위정보의 전파 방식도 그림자처럼 진화를 거듭했다. 따라서 미디어의 역사는 허위정보 전파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16세기 팸플릿의 시대부터 193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 1960년대 TV 뉴스 방송에서도 오보와 허위정보는 흘러나왔다. 완전한 사실만이 뉴스로 전달되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극단적 불신, 이성의 마비, 혐오감, 집단행동, 폭력의 합리화는 허위정보가 의도한 반응이었다.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는 언제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그것은 허위정보가 사람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거나 불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2.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이 크게 늘어난 원인으로는 트래픽을 유도하여 광고 수익을 얻으려는 영리적 목적, 돈을 받고 정치적 여론을 형성하는 트롤링 공장(troll farm), 가짜뉴스 소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소셜미디어를 통한 프로파간다, 대량으로 포스팅을 유포하는 트위터 봇(bots), 가짜 계정을 통한 메시지의 증폭 등을 들 수 있다. 외국 정부기관과 연결된 익명의 여론 조작 세력, 자동화된 프로파간다 기술로 무장한 상업적 홍보회사도 허위정보를 동원한 정보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오늘날 허위정보를 동원한 정치 프로파간다의 특징은 대중을 설득하여 그 정치적 입장을 바꾸는 것이라기보다는 반대 진영을 불신하게 만들고 그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있다. 이런 배경에서 가짜뉴스의 범람은 선거에서 투명하게 결정되어야 하는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하여 민주주의의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허위정보전에 뛰어드는 수많은 얼굴 없는 행위자들은 대중의 인식을 왜곡하거나 여론을 조작하려는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 이익이 극대화되는 시기는 정치권력이 걸려 있는 선거철이다. 트롤링 공장이 돈을 받고 정치적 쟁점이나 후보자에 대한 호감도를 바꾸기 위해 대량으로 가짜뉴스를 뿌린다면 유권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감정이나 반감을 형성할 수 있으므로 정보 조작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3. 그러나 허위정보전은 ‘정치적 도덕성을 결여한 자’와 진실을 지키려는 ‘선한 자’의 대결이 아니며 관심시장(attention market)에서 수많은 행위자들이 경쟁하는 제로섬(zero sum)게임에 가깝다. 그들은 정치적 선택과 연결된 ‘대중의 주목’, ‘여론의 지배’라는 한정된 파이를 차지하려고 경쟁을 펼친다. 과열된 관심시장에서 ‘진실’은 잡음 속에 묻혀버릴 수 있다.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은 민주사회에서 가장 적절한 사상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사상들이 논박하고 싸우도록 두어야 한다는 전제에 있다. 그러나 가명의 홍보 회사, 정부기관, 또는 여론 조작자들이 적은 비용으로도 날조된 사실을 담은 뉴스나 허위정보를 조직적으로 퍼뜨려 대중의 인식을 조종할 수 있게 되자, 진실이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둔다는 전제는 위태롭게 되었다. 즉, 사상의 자유시장은 시장실패(market failure)로 귀결될 위험이 커졌다.
4. 가짜뉴스 현상의 근저에는 조직적 프로파간다, 수용자의 심리적 편향, 필터링 없는 소셜미디어, 언론사의 노골적인 정파적 보도, 트래픽을 유도하는 클릭 미끼, 마이크로 타겟팅 정치 광고가 자리 잡고 있다.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덩치를 키우는 데만 골몰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가짜뉴스가 널리 퍼져나가기에 좋은 여건을 제공한다. 오늘날 정보 생태계 속에 허위정보를 주입하는 작업은 기계적으로, 대규모로 이루어질 수 있다. 친정부 여론 조종 활동을 하는 키보드 군단, 가짜 계정을 동원한 조회수 조작, 트롤링 공장, 자동화 봇, 돈을 받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프로파간다, 맞춤형 정치 광고,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뉴스 정보가 트위터에서 빠르게 공유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등 거대 플랫폼은 사람들을 자극하여 오도하거나 극단적 양극화로 이끄는 정보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플랫폼들은 ‘클릭’, ‘공유하기’를 유도하고 그럴수록 광고 노출이 늘어나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온라인 정보의 퀄리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이런 구조적 조건 아래에서는 중독적 콘텐츠와 해악적인 허위정보의 생산과 유통은 감소하지 않고 더 늘어나게 된다. 누군가가 왜곡된 뉴스 정보를 증폭하기 위해서 거대한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한다면 그것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5. 조직적으로 생산되어 배포되는 허위정보와 거대한 온라인 플랫폼이 메가폰의 기능을 하면서 증폭되는 가짜뉴스는 정보 생태계를 진흙투성이로 만들기도 하지만 평범한 개인들이 내놓는 오정보(misinformation)만을 가짜뉴스 문제의 진정한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짜뉴스의 해악성을 평가할 때는 조직화된 집단적 프로파간다 활동과 개인들이 생산하는 오정보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개인들이 비조직적으로 온라인 게시판이나 소셜 미디어에 작성하는 허위발언은 착각이나 주관적 의견인 경우가 많고 급박한 사회적 위험을 초래하지도 않는다. 개인들은 저마다 언어 방식이 있고, 세계관과 신뢰 체계도 다르다.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벌어지는 공적 토론에서는 부정확한 이해, 표현의 오류, 배경지식의 부족, 편견이 종종 발생한다.
6. 헌법적 차원에서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진실을 말할 의무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미국 연방대법원과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해석은 비록 그 발언의 내용이 허위였을지라도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뉴스 정보의 생산자들과 의견의 발언자들은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업무 방해, 공공 안전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형사적 처벌은 제한된다. 즉, 허위 발언으로 인한 해악성이 구체적이어야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헌법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날조된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의 범람이 민주적 정치과정을 위협할 수 있지만 그 표현행위를 ‘사상의 시장’에서 퇴출시키려면 분명한 해악성이 요구된다.
7. 가짜뉴스 현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허위정보가 생산되는 유인, 프로파간다와 흑색선전의 상업화, 대중의 심리적 취약성, 플랫폼 알고리듬의 역할, 플랫폼의 수익 구조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허위정보 유포자들은 거짓과 절반쯤의 사실이 혼합된 모호한 회색지대에서 메시지를 반복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허위정보 규제론은 조작된 정보의 범람이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하고 민주적 정치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허위임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뉴스 정보를 전파하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하지만 ‘공론을 위한 보도의 과정에서 비의도적으로 허위를 전파하는 행위’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문제는 양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 결과 의도적 허위정보의 유포까지도 표현의 자유라는 그늘 속에 숨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8.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뉴스 저널리즘은 중립적 관점과 정확한 정보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언론사 마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부분적 맥락만을 강조하는 언론 보도는 날조된 가짜뉴스와 그 효과면에서 그리 다르지 않다. 언론사의 노골적 정파성과 진영 논리에 따라서 뉴스의 맥락을 다르게 보도하는 관행은 여전히 미디어 생태계에서 상수(常數)로 존재한다. 사실과 주관적 논평의 뒤섞기, 팩트체크 없는 소스의 인용, 근거 없는 무책임한 의혹 제기, 과학적 사실(scientific facts)을 무시한 정치적 해석, 착각에 의한 오보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뉴스 미디어에 의한 편파적 기사 작성, 정정보도 명령을 받은 이후에도 온라인에 널려 있는 오보의 잔해들, 부실 보도는 가짜뉴스 현상을 심화시키는 씨앗 정보로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극단적 논조의 유튜브 시사 논평이나 메신저 앱을 타고 떠도는 가짜뉴스는 언론사의 정파적 기사나 부정확한 억측성 보도에 살을 붙이고 주관적 관점을 가미한 형태가 많다.
9. 과학의 정치화, 줄어드는 과학 전문 기자, 많은 시간과 돈이 소요되는 과학적 사실의 발견은 부정확한 과학 뉴스가 생산되는 요인이다. 복잡한 전문용어로 가득한 연구논문과 독자들이 읽는 간략한 뉴스 사이에는 심연의 골짜기 놓여 있다. ‘과학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science)’는 정치적 이유 또는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인하여 과학적 과정이나 과학적 결론이 부당하게 손상되거나 변경되는 현상이다. 허위정보의 유포가 실질적 피해를 주는 영역은 공중보건과 건강과 직결된 과학 분야이다. 변형 프리온이 인체 광우병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 코로나 19 백신 접종의 부작용, 전자파 위해성, GMO 식품의 위해성을 다룬 뉴스들은 ‘과학적 위험’을 과장했던 사례들이다. 반면 코로나 19 바이러스나 가습기 살균제 화학성분들-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 메칠이소치아졸(MIT)-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한 뉴스, 기후변화의 파괴적 영향력을 무시한 뉴스들은 과학적 사실을 도외시한 사례들이다. 어떤 뉴스는 과학적 연구의 인용도 없이 단정적 논조를 사용하고, 특정한 조건에서 얻어진 실험 결과를 일반적 사실로 포장하여 보도하기도 한다.
10. 허위정보의 생산·배포 비용은 진짜 뉴스에 비해 턱없이 저렴하지만 그 유포자를 찾아내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거짓이 먹혀들었을 때 얻어지는 경제적·정치적 이익은 막대하다. 그 기대 이익은 선거전의 승리, 부정적 여론의 형성, 상대 진영의 지지율 하락, 낚시성 기사를 통한광고 수입 증가 등이다. 반면, 은밀한 프 로파간다 세력이나 가짜뉴스 생산자를 추적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게다가 법적 처벌이나 불이익은 대부분 불확실하다. 이런 구조적 여건에서는 허위정보의 생산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규제를 도입하거나 벌금을 물린다면 허위정보 생산활동에 수반되는 비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판단기준이 모호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공론을 위축시킬 수 있다.
11. 개인들이 접하는 뉴스 정보는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지식과 신념의 체계를 구축하는 재료이며 어떤 뉴스를 받아들이는가는 개인의 인식과 연결된다. 뉴스와 소문이 교묘하게 고안된 거짓이라면 대중을 속여 생각과 행동까지 장악할 수 있다. 선동가가 거짓으로 지지를 얻어 정치권력을 차지했던 국가의 역사는 불행했다. 누군가가 ‘사상의 자유시장’의 작동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이 편협한 토끼굴 속으로 빠져들도록 조직적으로 정보 왜곡을 실행한다면 경고음을 내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란은 허위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선동가에게 정치권력을 안겨줄 수 있다. 거짓으로 극단적 대립을 조장하고, 적과 아군을 구분 짓고, 분노를 조장하는 선동가가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일은 ‘사상의 자유시장’의 실패와 민주주의의 실패를 막기 위한 일이다.
최은창 / eunchang.choi@aya.yale.edu
『가짜뉴스의 고고학』저자,
MIT테크놀로지리뷰 한국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