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여권·국어사전 등 문화재급 소장품 양구군에 기증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지난해 9월 문을 연 강원도 양구군 하리의 양구근현대사박물관. 이곳 뜰에는 '근현대사 자료 기증 기념비'가 전창범 양구군수의 이름으로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양구군 명예군민이자 전 강원도민일보 북미 특파원 송광호(69) 씨를 기리기 위한 것.
그는 평생 수집해왔던 귀중한 자료 4천90점을 이 박물관에 기증했다.
대한제국 고종 때 발급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권 원본(광무 9년·1905년), 최초의 국어사전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년 간), 1840년 영국에서 발행된 세계 최초의 우표(일명 페니 블랙), 일제강점기 이전 대한제국 시대의 엽서 500여 점, 고서적, 북한 우표 및 북한 화폐, 북한 고려청자의 거장 임사준이 제작한 청자 2점, 조선시대 백자 등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다.
송 씨는 2002년 양구군 명예군민으로 위촉된 이후 3차례에 걸쳐 문화재급 자료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내놓았다.
최근 방한한 그는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장해온 고서적, 도자기, 서화 등을 지속적으로 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라며 "특히 해방 후 현재까지 발행된 북한 지폐, 북한 연도별 우표 일체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곧 은퇴할 계획이지만 해외에서 발견되는 우리 역사 자료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캐나다와 미국 등지를 돌며 한국의 근현대사 관련 자료를 수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출신인 송 씨가 양구군에 자료를 기증한 이유는 이렇다. 그는 2002년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고(故) 임경순 군수로부터 박수근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전해 듣자 박수근 그림 2점을 소장한 캐나다 동포를 만나 이 미술관에 기증하도록 설득했다. 이 공로로 그해 11월 양구군 명예군민이 됐다.
"명예군민이 됐으니 뭔가 기여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소장한 자료들을 양구군에 내놨지요. 또 제가 강원도를 대표하는 강원일보 모스크바 특파원(1992∼1996년)과 강원도민일보 북미 특파원(1999∼2012년)을 하면서 강원도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친지들도 있어 양구가 제 고향과도 같은 곳이지요."
강원도 국제자문관으로 2년에 한 번 정기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내기도 하는 그는 박물관에 기증한 대부분 자료를 특파원 시절에 수집했다. 그래서 현재 각국에서 활동하는 특파원들에게 한국 역사 자료 발굴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특히 러시아 모스크바, 일본 도쿄, 미국 워싱턴의 특파원들은 짬을 내 현지 정부 학술기관이나 대학 도서관 등을 뒤져보라"고 강조하면서 "그러면 예상 외의 소중한 자료를 찾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상(賞)이란 것이 별것 아니지만 모스크바 특파원 당시 관훈클럽이 수여하는 최병우기자기념 국제보도상과 한국신문협회의 한국신문상을 받은 일도 모두 자료 발굴 덕분이었어요. 일제강점기 시베리아 관동군으로 강제 징집된 한인 6천334명의 명단을 발굴해 관훈클럽 국제보도상에 뽑혔고, 북한의 소련 군정 사령관 레베데프의 비망록 5권과 다량의 당시 북한 사진을 발굴해 한국신문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그는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명성황후의 생존 당시 초상화(석판화·1894년 일본 신양당 발행) 원본을 2006년 발굴하기도 했다.
송 씨는 1994년 러시아 대륙에서 유랑하는 탈북자들을 모스크바 주재 UNHCR(유엔난민기구)에 처음으로 등록시켜 국제적 난민 지위를 얻도록 했다. 당시 제1호 UNHCR 등록 벌목공인 탈북자 J씨의 추천으로 2013년 국가인권위원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월 30일 방북했다가 억류된 토론토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110여 차례 방북한 임 목사의 활동을 취재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캐나다 정부는 임 목사가 왜 억류됐는지를 파악했지만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상태.
여러 가지 정황을 토대로 그는 임 목사가 억류된 원인을 세 가지로 추측했다.
"장성택과 관계가 있을 수 있고, 북한 체제를 건드리는 위험한 발언을 했거나 캐나다 내 탈북자들의 요청을 받아 북한 현지의 가족에게 편지와 돈을 전달하다 발각됐을 수 있습니다. 과거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도 40여 일간 억류돼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가까스로 풀려나는 등 고초를 겪었는데, 비슷한 상황일 수 있어요. 어쩌면 김 총장과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죠. 죄명은 '북한 체제 전복을 기도했다'는 것이겠죠."
그는 토론토에 돌아가면 '임 목사 억류 100일'에 대한 칼럼과 함께 8차례 방북 취재 경험을 담은 책을 집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