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보트 정부서 산업과학부 장관 역임, 국민당으로 이적 추진
이안 맥팔레인(Ian Macfarlane) 전 산업과학부 장관의 ‘당적 바꾸기 시도’가 캔버라 정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현재 이안 맥팔레인 연방 하원의원은 자유당에서 국민당 입당을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정치 철새’들이 유행하는 한국과 달리 호주에서는 의정활동 중 다른 정당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그만큼 호주 정당들이 이데올로기와 정책 측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맥팔레인 의원의 당적 바꾸기 시도는 우선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수상에 대한 반발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전임 토니 애보트(Tony Abbott) 정부에서 산업과학부 장관을 역임했던 맥팔레인 의원은 턴불이 집권하면서 장관 자리를 유지하지 못한 채 평의원(backbencher)으로 밀려났다. 캔버라 정가에서는 이것이 맥팔레인 의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하나는 자유당과 국민당 사이의 미묘한 관계이다. 자유-국민 연립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두 당 사이에도 다소의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유당 대표로 수상직을 맡고 있는 말콤 턴불이 비교적 공평하게 공동 정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맥팔레인 의원의 국민당으로의 당적 바꾸기 시도가 턴불의 눈에 탐탁치 않게 보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맥팔레인 의원의 개인적인 행동으로 양당 사이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도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의 지역구이다. 그가 출마한 그룸(Groom)은 브리즈번(Brisbane) 서쪽, 즉 퀸즐랜드 주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QLD 주에는 자유당과 국민당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지난 2008년 이미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되어 ‘자유국민당’(Liberal National Party)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QLD 자유국민당은 연방 자유당의 공식 지부로 등록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연방 국민당 내부에서도 입회인(Observer) 자격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맥팔레인 의원의 연방 국민당으로의 이적 시도로 인해 다소 복잡한 소속 문제에 뭔가 꼬여버린 듯한 느낌을 대중들에게 던졌다는 점 역시 턴불 수상 측을 당황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턴불 수상의 측근 중 하나인 조지 브랜디스(George Brandis) 연방 법무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브랜디스 장관은 “맥팔레인 의원의 당적 바꾸기 시도는 기존의 시스템을 함부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언급한 뒤 “유권자들의 입맛을 쓰게 만들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맥팔레인 의원의 당적 바꾸기 소동이 턴불 대표의 자유당에 당혹감을 던진 뒤 나온 반응 중 가장 고위급 인사의 반격이기도 하다.
브랜디스 장관은 “평의원의 당적 바꾸기 시도가 내각에 혼돈을 주고, 심지어 장관 교체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채널 10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맥팔레인 의원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면서 “그의 방식은 시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염증만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같은 좋은 공격 기회를 그냥 보고만 있을 야당이 아니다. 빌 쇼튼(Bill Shorten) 연방 노동당 대표는 “턴불 정부가 붕괴되는 첫 조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안 맥팔레인 의원의 당적 바꾸기 시도는 현재 정부 특별장관인 말 브로우(Mal Brough) 의원의 지난 선거 공천 과정 부정행위에 관한 미덥지 않은 처리에 이어 턴불 정부의 무능력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며 “턴불 수상은 조만간 브로우 장관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겠지만 이번 맥팔레인 의원 건은 자유당 내에서 그보다 더 큰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공격을 퍼부었다.
맥팔레인 의원은 ‘턴불 수상에게 장관직에 복귀시켜주면 자유당에 그대로 남겠다고 협박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부인했다. 흥미로운 것은, 맥팔레인 의원이 퀸즐랜드 주 자유국민당 당원 신분은 유지한 채 연방 차원에서만 당을 바꾸려 시도했다는 점이다. 퀸즐랜드 주 이외의 연방과 각 주에는 자유당과 국민당이 분리되어 있다. 현재 연방 자유당은 맥팔레인 의원의 시도를 무산시키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턴불 수상은 맥팔레인 의원과 함께 참석하려던 후원회 행사 일정을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등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동당 쇼튼 대표는 “턴불 수상은 집권하자마자 전임 수상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과 사이가 좋다고 강조했지만 사실 이면에서는 워런 트러스(Warren Truss) 부수상이 불만을 품은 맥팔레인 의원을 달래고 있었다”면서 “사람들은 이제 정치의 진면목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쇼튼 대표는 이어 “트러스 부수상은 맥팔레인 의원이 당적을 바꿀 경우 턴불 수상을 당혹시킬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노력한 것”이라면서 “결국 일은 터졌고, 이는 절대 간단한 이슈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쇼튼 대표는 “턴불 수상은 맥팔레인 의원에게 다시 장관 자리를 주어 그를 주저앉힐 수도 있겠으나 이는 다른 젊은 자유당 의원들에게 분노를 일으킬 것”이라며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턴불 수상을 조롱했다. 그는 “이제 자유당 사람들은 밤새 일을 해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하겠지만 이것이 위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피터 더튼(Peter Dutton) 연방 이민부 장관은 스카이 뉴스(Sky News)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한 주가 자유당에게 어려운 시기였음을 인정하면서, 맥팔레인 의원 문제뿐 아니라 브로우 장관의 공천 과정에서의 부정행위에 대한 노동당의 공세 역시 막아내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더튼 장관은 맥팔레인 의원 문제와 관련해 “그의 지역구인 그룸이 자유당 몫으로 분류되었기에 맥팔레인 의원이 쉽게 공천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만약 이 지역구가 국민당 또는 퀸즐랜드 주 자유국민당 몫으로 정해졌다면 맥팔레인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많은 경쟁자들을 만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당내 비난 역시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자유당과 국민당, 그리고 퀸즐랜드 주 자유국민당 사이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상징하는 말로 이해돼 턴불 수상이 이끄는 정부에 그다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자유-국민 연립 정부를 혼란에 빠뜨린 이안 맥팔레인 의원의 시도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임경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