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8-89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이 길은 1219년 칭기즈 칸 20만 군대가 수십 수백만 양과 소들과 함께 지금 넘고 있는 텐산 산맥(天山 山脈)을 반대 방향에서 호레즘을 정복하기 위하여 내려왔던 길이다. 계곡을 끼고 급경사 길을 맞바람을 맞으며 달리면서 800년 전 칭기즈 칸의 군대가 그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텐산 산맥을 넘었을 고초(苦楚)를 생각해본다. 그들은 삶과 죽음, 고통과 희망, 전쟁의 공포, 승리의 환희,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범벅이 되어 이 산을 넘었을 것이다.
그때도 그들이 내려오던 이 길에 포플러나무 가로수가 의장대 사열을 하듯 멋지게 늘어서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역사가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 목을 베었는지만 기록에 남겼다. 800년이 지난 지금, 이 길은 하늘 높이 뻗어 자란 포플러나무가 텐산 산맥으로 빨려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확실한 것은 그의 말발굽 아래에서 전에 없었던 새로운 전쟁 역사가 시작되었고 나의 발걸음 뒤로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것이다.
혹독한 추위에 많은 병사들이 얼어 죽었지만 그 추위를 뚫고 텐산 산맥을 넘어오는 동안 살아남은 병사들은 세계 최강 병사들로 거듭났다. 해발 1500m 이리분지에 있는 ‘이닝’은 예로부터 천산북로의 중요 거점 도시로 칭기즈 칸 군대에 무참히 짓밟힌 첫 번째 도시다. 이렇게 시작한 칭기즈 칸의 정벌은 순식간에 유럽을 초토화(焦土化)시키고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그 후 700년도 못되어 아시아는 유럽 제국주의 세력에 처참하게 유린되고 말았다.
지금도 끈질기고 집요한 잔재(殘滓)가 남아있는 한반도에, 평화의 싹을 움트게 하기 위한 나의 발걸음은 어둡고 침침한 역사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다. 거친 모래바람 맞으며 가파른 텐산 산맥을 넘어가는 나의 발걸음이 힘차면서도 장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종아리를 따갑게 때리는 몽환적인 모래바람 실루엣에 잠시 넋을 잃을 순간 바람을 탄 발걸음에 음악적 리듬이 피어나고 있었다.
음악은 그 상징적 체계를 이해하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내가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작곡가처럼 혼신의 예술혼을 쏟아 달리는 이유는 감동이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고단한 마라톤을 하면서도 계속 글을 쓰는 이유도 내 마라톤 해설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텐산 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고 나면 세게 최강의 유라시아 여행자로 거듭나고 평화운동가로 거듭나게 될까?
‘이닝’을 지나다 개인화기로 무장한 경찰특공대(SWAP)의 검문(檢問)을 받고 호송차에 태워져 1시간 반 동안 경찰서로 동행되어가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6.10 항쟁 때 덕수궁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처음으로 백골단에 잡혀 호송차에 타 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몇 십 년 만에 중국의 공안 호송차에 타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공안들은 비교적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음료수까지 대접하는 호의를 베풀기까지 했다. 이곳에서는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공안에 등록해야 한다.
그만큼 신장위구르 지역은 치안이 불안한 것 같다. 잘 꾸며진 공원에도 담장이 쳐져있다. 공원입구에는 공안이 검문을 해서 공원은 언제나 썰렁한 모습이다. 모든 주유소에도 바리케이드가 쳐져있다. 주유하러 들어가는 차마다 검문하고 들어갔고, 쇼핑몰도 그랬다. 심지어 호텔에서도 공안 검색대를 통과해야했다. 여행자는 이런 상황을 조기에 받아들여야 여행을 그나마 즐겁게 할 수 있다.
신이 만든 산, 텐산 산맥은 중국 북서쪽 끝 파미르 고원에서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까지 2,900km에 걸쳐 뻗어나간 산맥이다.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하늘과 맞닿은 채 동서로 길게 뻗어있다. 나는 장엄하고 웅대한 이 산을 한 달 이상 바라보면서 달려왔다. 바라보면 닮아간다고 하는데 나는 왜 아직도 티끌만도 못한 사소한 일에 역정을 내고 마는가? 어제도 국도에서 40km 이상은 밟지 않는 중국인 운전수에게 그만 화를 벌컥 내고야 말았다.
텐산 산맥의 포베디 봉은 7,439m로 세계 7천m이상 높은 봉우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2,500m까지는 초원과 가문비나무숲이 이어지고 그 지점을 넘어서면 다시 초원이 펼쳐진다. 3,500m가 넘어서면 초원도 사라지고 생명을 가진 식물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산을 덮은 눈이야말로 텐산 산맥 주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 식물들, 동물들, 무릇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생명줄이다. 이곳에서 녹아 흘러내리는 물은 식수로, 농업용수로 이 땅 위의 모든 생령들을 풍요롭게 해준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텐산 산맥을 넘어가는 지금 한국은 세기를 통과하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텐산을 넘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한국도 이 역사의 텐산을 무사히 넘기고 나면 세계 최강 민주국가요, 세상 끝까지 평화를 전파하는 문화선진국이 될 것 같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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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산 풍경 읽어주는 남자
달리며 한 편 영화를 보듯, 거장(巨匠)의 명화가 전시된 미술관을 관람하듯,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풍광을 바라보며 그것이 품고 있는 세월과 생령들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멋진 일이다. 매일 42km씩 똑같은 장소에서 달린다면 뇌와 근육조직은 심심해할 것이다. 더구나 9개월 가까이 매일 42km씩 달리면 과부하가 걸려 무슨 사단이 났어도 진작 났어야 했는데 나의 근육은 아직도 이상이 없다.
이상이 없을 뿐 아니라 피로가 누적(累積)되면 늙고 병이 든다는 기존 의학상식도 나로 인해 깨지는 것 같다. 모든 조직은 심심하면 늙고 약해지고 병이 든다. 그러나 하루하루 호기심, 모험심과 사랑으로 채워진다면 인체기관과 조직은 다시 젊음을 되찾는다. 나는 지금 텐산(天山)을 넘으면서 젊음의 한가운데를 질주하고 있다.
나 같은 체력적으로 평범한 사람이(어쩌면 보통이하인지도 모른다. 나는 늘 열등감 속에 살아왔으니까...) 이런 세계적 도전을 수행하면서 지금껏 잘 달리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매일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조화와,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펼쳐가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의 뇌와 근육을 젊고 생생하게 유지시켜주는 비밀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은 스스로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천천히 달리며 심장이 뜨거워지고 마음은 경건해지고 고요해지면, 늘 제자리에 있으나 아무도 눈여겨 담지 않는 그런 것들이 거장의 명화 속 풍광으로 다가온다. 평화에 새로운 감각이 열리고 삶에 새로운 식견이 트인다. 내가 아름다운 별 위에 서있다는 사실, 그토록 안달복달하며 경쟁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의 풀 내음 진하고, 그 위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말 울음소리 먼 듯 가깝다. 초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물은 먼 길 발걸음이 바쁘다. 날개를 한껏 펴고 하늘에 둥근 원을 그리며 나는 솔개는 기필코 배를 채울 것이다. 가끔씩 마주치는 이국적인 여인의 미소가 치명적인 유혹이 아니라도 모든 유혹은 재미있다. 주름진 노인의 꼬나문 담배 연기가 구름이 산허리에 걸치듯 주름위에 걸친다.
저 멀리 초원이 끝나는 곳에 만년설을 머리에 인 텐산은, 하얀 히잡을 쓰고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이곳 회족(回族) 소녀의 모습 같이 정갈하고 경건하다. 지금 바쁜 걸음으로 달리는 강은 저 만년설이 녹아서 흐르는 강이다. 하늘 푸른빛은 깊고도 가깝다. 가까운 듯 멀리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는 중국 전통악기 ‘훈’의 가락처럼 심금을 울린다. 소울음 소리 말울음 소리가 저음으로 화음을 맞추고, 수많은 무리 중에 어미를 찾는 아기 염소의 아리아가 울려 퍼지면 산중 음악회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엊저녁 미친 듯이 날뛰던 폭풍은 간데없고 산들바람에 포플러 잎새들이 춤을 춘다.
설산을 배경으로 북향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몇 개 ‘게르’는 언제든 떠날 것을 예보한 연인처럼 가슴 아프다. 강렬한 태양아래 바싹 마른 말똥, 소똥이 타는 난로 연기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주고, 떠나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듯 하늘에 오른다. 어디서나 아련한 풍광은 우주적 우수(憂愁)를 불러일으킨다.
이곳에서 낮 동안 그림자를 거느리는 호사를 누리는 것은 포플러나무 뿐, 빛의 통치는 지엄하다. 수많은 생령들과 자연현상은 서로 독립적이면서 상호 복잡하게 어울리고, 서로 교차하면서 조화로운 평화가 유지된다. 이런 곳에서는 시간과 삶이 그대로 흐른들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멋대로 흘러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슬픔과 절망도 다 위로받을 것 같다. 내 정갈하고 경건한 기도도 여기에 섞이니 희망의 노래로 변주된다.
슬픈 현실이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변해간다는 것이다. 새 옷도 금방 싫증이 나고 사랑의 맹세조차도 변한다. 물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바람도 흐른다. 오래 전 무너진 토담은 세월 따라 스치고 간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았을 뿐 아무리 귀 기울여도 아무 이야기가 없다. 수만 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텐산을 마주보고 서니 마음의 결기가 다시 다져진다.
무언가로부터 혹은 나 스스로 억압했던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은 자유를 느낀다. 열을 받아 비명을 지르며 터져야 비로소 제 맛을 내는 팝콘 같이, 이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속엣 것을 터뜨려버리고 나면 나도 제 맛을 낼 것 같다. 발걸음 늦어져도 동행이 있고 내 수고를 덜어주려 가쁜 호흡 마다않고 함께 하여주어 몸과 마음 가벼워지니 신선인 듯싶다.
이 아름다운 초원에서 발이 묶이지 않아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풀을 뜯는 말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 어린 새끼가 집에 묶여있으므로. 자신의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이 말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나와 강석준 교무의 발길도 그렇게 조국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들 가슴에는 말들의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를 바라보는 예사롭지 않은 눈길이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칭기즈 칸 군대는 한밤중에 이곳에 도착했다. 밤새워 험한 골짜기를 타고 넘어온 병사들은 피곤에 절어 곤한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떴다. 동이 트자 펼쳐지는 그 아름다운 초원과 계곡에 놀라 나리티(나랍제那拉提)라고 감탄을 자아냈다. 그 후로 이곳의 지명은 나리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라티 초원은 우루무치까지 460km의 구간에 펼쳐져 있고는 세계 4대 1급 초원 중의 하나다. 나는 앞으로 그 구간을 원 없이 달려갈 것이다.
바람에 풀들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늘 바람과 맞서 헤쳐 나가지만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들판에 불어오는 바람에 무심했던 나도 지금 동쪽에서 세계 질서를 뒤바꾸어 놓을 큰 바람이 물어오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 있다. 사람들 가슴 속에서 조금씩 요동(搖動)치다가 어느 순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커진 바람이다. 한동안 거친 저항에 부딪치겠지만 누구도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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