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0-91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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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옳은 길을 가려 했다. 옳은 길은 선택하기 위해서 사전에 조사도 하고 다른 사람 조언도 들었다. 일단 갈 길을 결정하면 묵묵히 달렸다. 작은 걸음이지만 옳은 길을 달리다보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커다란 발자취도 남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때론 비에 흠뻑 젖어서도 달리고, 때론 눈보라를 맞으며 달리고, 사막 모래폭풍을 뚫고도 달렸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달리면서도 마음은 충만했었다. 곧고 옳은 길이라 생각한 길도 때론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었다. 판단을 잘못해서 길을 잘못 들은 적도 있었지만 금방 훌훌 털고 되돌아 나왔다.

 

톈산산맥은 위대했다. 이 산맥을 넘기 위해 한 달, 어쩌면 두 달 이상을 계속 오르막길을 달려왔다. 톈산산맥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지만 그 기세는 수천 km까지 뻗쳐있어서 완만하게 펼쳐진 그 길을 달려왔던 것이다. 아마 우즈베키스탄에서부터 그 기운을 느낀 것 같다. 설산(雪山)이 오른쪽으로 보이면서부터는 텐산산맥 자락을 달리고 있었으니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을 반사막, 초원 그리고 가문비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섰다.

 

해발 2,000m 넘어서자 호흡이 가빠지고 계곡의 물 흐름은 우리 호흡보다 더 가쁘게 숨소리를 내며 흐른다. 옆에서 달리는 강 교무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에로틱하게 들린다. 계곡이 휘어지고 구부러져 흐르는 모습 또한 에로틱하다. 6월 초 숲속은 온통 연애질하느라 바쁘다. 새들은 짝을 찾느라 교성(嬌聲)을 내지르고 꽃들은 화류계 여인의 분 냄새보다 진한 향을 뿜는다. 말들도 춘정을 못 이겨 수말이 암말에 올라타려 하고 암말은 앙탈을 부린다. 감정을 가진 자 이렇게 유혹적인 숲 속에서 대자연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니리라!

 

1년 강우량이 우리나라 하룻밤 비에도 못 미친다는 곳이다. 내륙 깊숙한 곳이라 구름도 찾아오기 힘든데 그나마 찾아오는 구름은 톈산 산꼭대기에 걸려 눈으로 내려 쌓인다. 건조한 이곳에서는 지붕도 흙으로 덮어 지붕 위에도 풀이 자라난다. 그 무더운 더위와 그 사나운 추위에 흙집만큼 유용한 집도 없겠다. 이곳의 숲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북향의 산 사면은 가문비나무 숲을 이루고 남사면은 나무가 자라지 않는 초원의 산이다. 그 희한한 대조가 이질적이며 신기하면서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힘든 것 마저 잊고 28km쯤 달려갔다. 숲 속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회족이나 카자흐족의 거주 지역으로 주로 회교도들이 살지만 한족 여행객들이 많아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한족 음식점들을 가끔 찾을 수 있다. 그곳에서 돼지고기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아무튼 중국에서는 음식이 입맛에 맞아서 음식 때문에 고생 하지는 않는다.

 

거의 중무장한 경찰특공대 4명이 식당 안에 들어섰다. 이미 이런 일은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침착하게 그들을 대할 수 있었다. 그들도 침착했지만 입장은 단호했다. 우리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가는 것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확한 설명을 생략했지만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발군타이 지역에 소요가 일어난 것 같았다. 중국은 나라가 큰 만큼 문제도 많은 모양이다. 중국은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 호랑이처럼 어쩌지도 못하는 형국으로 보인다.

 

그들이 내게 두 가지 선택을 던져줬다. 하나는 한 10km 정도 돌아가서 그곳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방법이다. 그 길은 공사 중이라 일주일 정도 후에 열리니 기다렸다 가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300km를 왔던 길을 돌아가서 다시 400km를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한 후 그곳에서부터 달리는 것이다. 맥없이 이 자리에서 일주일을 쉬면서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차로 700km를 이동하고도 당초 예상했던 길보다 150km를 더 달려야하니 나흘 정도 계획에 차질이 생긴 셈이다. 톈산은 톈산대로 못 넘는 형국이 되버렸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텐산산맥 정상을 향해 넘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끝없이 펼쳐진 중국 내륙 깊숙한 곳을 내가 한국인임을 자랑하며 신명나게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일이면 내가 혜초(慧超)의 후배임에 자부심을 느끼며, 고선지(高仙芝)와 한 핏줄임을 상기하며 생명이라고는 하나도 살지 못하는 험한 곳을 넘은 기쁨을 강교무와 만끽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산 톈산’을 두 발로 달려서 넘는 것을 하늘은 허락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그것은 후배 도전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았지만 드러나는 짙은 아쉬움을 속으로 감출 수는 없었다.

 

내가 이 길을 이렇게 기를 쓰고 달리는 이유는 뻥을 치기 위해서이다. 친구들에게 뻥을 치고 후배들, 후손들에게 뻥을 치기 위해서이다. 뻥을 치는 것보다 재미있고 환희(歡喜)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뻥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내 말에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귀기울여주고 웃고 박수를 쳐주곤 할 것이다. 힘들 때마다 친구들과 술잔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저음으로 깔면서 유라시아를 달려온 이야기, 텐산을 넘어온 이야기를 뻥을 더해서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한고비 한고비를 넘기곤 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말재주는 없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인 강당에서 뻥을 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신라에서 중국으로 갔다가 광저우에서 해상 실크로드를 타고 인도에 갔던 그의 나이 20세 때인 727년 가을, 혜초는 구도여행을 마치고 육상 실크로드를 따라 걸어왔다. 톈산산맥을 넘으면서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시를 한 수 읊는다.

 

“길은 거칠고 산마루는 엄청난 눈으로 덮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떼가 들끓는구나.

새는 날아가다가 깎아지른 산을 보고 놀라고

사람들은 좁은 다리 건너기를 두려워하는구나.

평생에 울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눈물을 천 줄기나 뿌리도다.”

 

지금 1300여 년이 지난 이 봄, 톈산에는 눈이 엄청나게 쌓이지도 않았다. 다만 먼 산에 만년설만 보일 뿐이다. 혜초를 괴롭히던 도적떼도 사라진 산에 잘 닦인 도로를 나는 넘지 못한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톈산에 평화의 봄이 오지 않아 넘지 못한다. 나는 마음의 눈물을 천 줄기나 뿌린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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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장기판을 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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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호르고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모여 장기를 두었다. 장기 알이 우리 웬만한 밥사발만 하다. 유라시아 실크로드는 장기의 길이기도 했다. 체스와 장기는 둘 다 인도기원설이 맞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둘 뿌리는 같다고 봐야한다. 체스 기원은 약 4000년 전 고대 인도사원에서 시작되었다. 6세기경 페르시아를 거쳐 7세기 페르시아를 정복한 아라비아로 들어갔다. 다시 15세기경 유럽 전체로 퍼져나가 19세기에 현대 체스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한편 동쪽으로는 미얀마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갔고, 또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갔다.

 

장기의 역사는 전쟁을 좋아하는 인간본능을 잠재우고 대리만족을 주는 게임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핵단추를 누르겠다고 서로 으르렁대던 두 정상이 마주앉아 평화를 논하겠다고 하니 마주앉은 테이블에 장기판이라도 올려놓고픈 마음 간절하다. 장기 두다가 출출해지면 먹으라고 햄버거도 하나씩 나누어주고.

 

곧 평화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세계적인 장기판이 유라시아 곳곳에서 벌어질 것 같다. 일단 시작은 동쪽 끝의 한반도다. 다음 판은 싱가포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람잡이 역할을 맡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청(靑)을 잡고 트럼프 대통령이 홍(紅)을 잡은 형국이다. 청(靑)은 원앙마포진의 포진을 선택했고, 홍(紅)은 면상포진법을 선택했다.

 

세기의 장기판답게 훈수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훈수꾼들은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훈수(訓手)를 둘 기세인데 제일 꼴불견 훈수꾼은 아베와 존 볼튼 그리고 펜스다. 판이 벌어지기도 전에 이들 고춧가루 훈수로 트럼프의 행마 구상이 꼬이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뭣도 모르면서 훈수를 두는 꼴이 맞아도 한참 맞아야할 것 같다. 아마도 이들은 판 자체를 뒤엎고 싶은 가보다.

 

청(靑)이 먼저 행마를 했다. 모든 훈수꾼들이 세계무대에 혜성(彗星)처럼 등장한 이 신예 기사의 행마에 숨소리도 죽이고 바라보는 가운데 핵시설을 파괴하는 것으로 첫 수를 던졌다. 첫 수는 신예답지 않은 통렬한 한 수였다. 훈수꾼들의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한 수는 앞으로 그의 행마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수였다. 그 수는 앞으로 유라시아에서 펼쳐질 크고 작은 세계적 장기판에 모두 당당히 출전하여 실력을 과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과 다름 아니었다.

 

홍(紅)을 잡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포(包)와 차(車)가 상대보다 몇 십 배 많은 절대적 우위 군사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던 전술에 능통하던 그였다. 똑같은 조건에서 하는 게임이 그에겐 오히려 포(包)와 차(車) 다 떼고 두는 불평등 게임 같은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는 첫 수도 두기 전에 안한다고 일어섰다가 훈수꾼들 야유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애초 한판에 승부를 가리겠다는 그의 호언장담(豪言壯談)은 간데없이 은근히 사라지고 이길 때까지 장기를 두겠다는 말로 바뀌었다.

 

그는 상대방에게 포(包)와 차(車) 다 떼면 돈은 주겠다고 뒷거래를 하는가본데 상대방도 품위유지비가 필요한 궁색한 신예인지라 그 조건에 동의는 한 것 같다. 문제는 먼저 다 떼면 나중에 보상하겠다는 얄팍한 꼼수에 있다. 그런 꼼수는 국제무대에서 수도 없이 사용하여 이제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리비아와 이라크와의 대결에서 그런 꼼수로 승리를 하여 이제 더 이상 그런 수는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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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평화마라톤의 수많은 난관(難關)을 뛰어넘는 장애물 마라톤이다. 현장법사가 제자들과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다녀오는 과정에서 만난 81개의 난간은 이미 다 넘은 줄 알았다. 중국에 들어와서는 마을마다 들어오고 나갈 때 공안 검문검색은 나의 마라톤을 허들경기로 변색시키고 말았다. 지난번에 텐산의 정상을 못 넘고 700km를 우회했는데 이번에는 규이튼 들어가기 전에 19km를 못 통과하고 100km를 우회했다.

 

샤완 현에서 숙소를 잡으려고 호텔에 들어갔는데 직원은 손님을 못 받는다고 하는데 옆에 있던 사장이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공안에 전화를 했다. 아마 공안에 꽌시(인맥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무장경찰 4명이 출동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또 누군가에게 무전을 치고 다시 무장경찰 3명이 출동했다. 결국은 이웃마을인 쓰허즈까지 가라고 한다. 쓰허즈에서 처음 들어간 호텔은 5성급으로 잠만 자는 우리들에게 낭비인 것 같았다. 다시 피곤한 몸이지만 좀 쌈직한 호텔을 찾았다.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려는데 다시 노크 소리가 나서 문을 여니 무장경찰 2명이 찾아와 여권을 보자고 한다. 검문소에서 만난 무장경찰을 빼고도 오늘 나 때문에 출동한 무장경찰이 22명이나 되더라! 그들이 정중하게 경례를 붙이고 나가고서야 나는 비로소 하루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이제는 검문소를 볼 때마다 신경쇠약이 걸릴 정도이다. 검문소에 한번 들어가면 소중한 시간은 훌쩍 지나버리고 만다. 내일을 위해 휴식하고 회복할 시간을 경찰서 철장 너머에서 다 허비하는 것이다. 내가 장기판의 포(包)라면 검문소를 훌쩍 넘어버릴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든다. 차(車)라서 졸이 막고 있으니 못 넘어간다. 손오공이라면 구름을 타고 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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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인민해방군의 점령으로 중국령이 된 이래 신장은 끝없는 분리·독립 요구로 늘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중국 통치와 우리 분단 역사와 비슷한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아마도 우리 평화통일 염원보다도 이 사람들의 독립 염원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통일 의지를 꺾지 못하듯이 이들의 독립 의지를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예상컨대 한반도에서 세기의 장기대결이 끝나면 아마도 이곳에서 또 다시 세기의 장기대결이 펼쳐질 것 같다. 이 지역 평화를 건 세기의 대결, 그때 대국자는 누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곧 평화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세계적인 장기판이 유라시아 곳곳에서 벌어질 것 같다. 일단 시작은 동쪽 끝 한반도에서 판이 벌어지다니 싱가포르로 무대는 옮겨졌다. 과연 트럼프의 첫 수는 무엇일까?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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