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간밤 꿈자리가 뒤숭숭 하더니 종일 일이 어수선하게 진행된다. 내 생각이 맑지 않은 탓이다.
7시에 출발했다. 드랍 앤 훅이기 때문에 트레일러에 연료를 가득 채우려고 했다. 지시문에 그런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머문 곳에서 연료를 채우려고 했다. 승인이 안 났다. 배달처에서 너무 멀어서 그런가?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에 들어갔다. 트럭스탑에 연료 넣으러 들어가면 보통 30분 정도 걸린다. 트럭이 늘어선 경우 더 걸린다. 이 곳에서도 승인 거부. 연료 한계 초과라는데 무슨 소리지? 아마도 리퍼 연료량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져야 주유가 가능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오늘 같이 가득 채워서 오라는 경우에는 어떡하나? 두 번 주유 시도하는 바람에 한 시간 이상 까먹고 소득은 없었다. 모르겠다. 그냥 가자.
배달지에 도착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흑인 처자가 뭐라 묻는데 못 알아 들었다. 알고 보니 내 이름을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은 것이다. 나 보고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이 처자가 한국 광팬이다. 동료들에게 자기는 한국 가서 영어교사 하고 싶단다. 내가 그럼 BTS 좋아하겠네 물으니 반색을 한다. 샤이니도 나오고 내가 모르는 가수들 이름이 줄줄 나온다. 종현이 일은 참 안 됐어. 아는 척을 하니 자기도 그렇단다. 트레일러 내려 놓을 장소를 알려 주고 빈 트레일러 번호도 몇 개 적어서 준다. 한국인 친구를 위한 특별 서비스라며. 다른 직원들도 내게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일 마치고 나오는데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이 근처이긴 하지만 시간이 애매(曖昧)하다. 오전 7시에서 11시 사이에 픽업해서 오후 8시 30분 켄터키 주 런던 월마트 배달이다. 이미 10시가 넘었고. 트레일러 세척하고 가면 11시가 넘는다. 거기다 저녁 9시에는 내 근무 시간이 끝난다. 왜 이런 일감을 줄까? 일단 발송지로 향했다. 오하이오의 시골 풍경을 보며 달렸다. 발송지는 농장이었다. 여기도 드랍 앤 훅이다. 멕시칸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담당이었다. 사람이 사근사근했다. 여기는 그다지 약속 시간을 따지지 않는 분위기다. 트레일러 연결하고 무게 확인하느라 시간을 좀 지체(遲滯)했다.
가면서 네이슨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 월마트 가는데 이런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네이슨은 플릿매니저에게 전화해 스케줄을 바꾸거나 리파워를 하거나 일찍 받을 수 있게 조치를 해달라고 말하라 했다. 플릿 매니저에게 전화해 똑 같이 말했다. 가서 상황 보고 전화하기로 했다. 쉬지 않고 달렸다. 월마트는 원래 1시간 이상 일찍 도착하면 안 된다. 이곳에서는 나를 들여보내 줬다. 내게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잘 하면 시간 내에 마치고 근처 트럭스탑까지 갈 수 있겠다. 주차를 하고 사무실에서 체크인 하고 돌아와 닥 번호를 배정 받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222번 닥에 대라고 연락이 왔다.
그의 이름은 테리였다. Terry Danahoe. 은퇴했다가 트럭을 사서 다시 복귀했단다. 나이는 70세. 손자가 23살이란다. 오하이오주 맥아더에 산다. 양쪽으로 트레일러가 다 있길래 내려서 뒤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프라임 트레일러를 갖고 있길래 같은 화사 사람인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프라임 트럭이 아니었다. 그는 흔쾌히 응해 트럭에서 내렸다. 네이슨에게 배운 대로 셋업하고 후진하니 제대로 들어갔다. 테리가 뭐라 할 일이 없었지만 그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트레일러를 대고, 트럭을 분리했다. 월마트는 항상 그래야 한다.
테리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자신이 아는 한국어로 인사했다. 발음이 괜찮았다. 그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중에는 노트를 찢은 종이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주소, 회사 주소까지 적어 내게 줬다. 나한테 편지를 해줘. 너 자신에 대해 적어서 말이야. 테리는 먼저 떠났다.
내 트레일러도 하역 작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전화 연락이 없다. 이미 내 업무 시간은 지났다. 이럴 때 어떻게 하냐고 페이스북 회사 그룹에 올렸더니 즉각 답이 왔다. 짧은 시간에 수십 개 댓글이 달렸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오프두티 드라이빙으로 트럭스탑에 가라는 얘기였다. 웨이스테이션을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다.
10시가 넘어 나오는 바람에 트럭스탑도 꽉 찼다. 꽤 큰 곳인데도 그랬다. 다행히 트럭스탑 바깥쪽 도로변에 세울 곳이 있었다. 다른 트럭 두 대가 이미 그렇게 대고 있었다. 나는 뒷쪽에 주차했다. 화장실이야 자연에 비료 주면 되고, 냉장고와 식품이 있으니 저녁은 여기서 해결하면 된다.
내일은 어디로 가려나? 미주리로 가는 건이 제안 들어왔는데 월마트에서 늦어지는 바람에 취소됐다. 안 늦어졌어도 내가 받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월마트에 야간 주차
일어나니 앞의 트럭들은 가고 없다. off-duty drive로 해서 15마일 남쪽에 위치한 러브 트럭스탑으로 갔다. 주차 하고 샤워 했다. 지난 번 150갤런 주유한 포인트로 겨우 샤워 한 번, 음료수 한 잔이 가능했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미주리주 모넷으로 가는 화물이다. 내일 중으로만 배달하면 된다. 50갤런 주유하고 발송처로 향했다. 중량측정소에 들어오라는 프리패스 신호가 왔다. 빈 트레일러니까 중량 초과 걱정할 일 없다. 그런데 파킹을 하라고 전광판에 나왔다. 무슨 일이지? 출구 앞에서 트럭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고속도로 순찰대 차량 한 대가 옆으로 왔다. 트럭 관련 서류를 모두 갖고 오란다. 빈 트럭이니 다른 서류는 없고 퍼밋북을 갖다 줬다. 내 면허증과 트레일러 등록증도 보자고 했다. 어떤 경로로 움직였나도 물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내 전자로그를 확인하고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규정대로 했기 때문에 문제될 일이 없다. 잠시 후 경찰관은 내게 무슨 서류를 내밀었다. 뭐가 잘못돼 티켓을 받았나? 그는 안전운전하라며 인사하고 갔다. 서류를 보니 인스펙션 리포트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적혀 있었다. 로드사이드 인스펙션 하는 동안에 나는 on duty 상태로 해 놓았다. 이때 off duty 했다가 티켓 먹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이미 들었다. 이런 부분은 네이슨에게 잘 배웠다. 곧이 곧대로는 아니지만 문제가 안 될 정도로 on duty 후 off duty로 바꾼다. 이런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한다. 이 리포트로 뭐하나 알아보니 무사통과한 경우 회사에 보고하면 25달러 현금을 받는다고 했다.
Albany Fresh에 도착했다. 나는 동물의 사체(死體)를 나른다. 보통은 고기라고 부른다. 핏물이 줄줄 흐르고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수련 기간 중에도 한 번 나른 적이 있다. 이거 한 번 나르고 나면 자연스레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 트레일러 바퀴와 트랙터 바퀴의 무게 부담을 거의 같게 했다. 트랙터의 눈금을 보면서 맞추는 요령을 찾았다. 사실 전에 네이슨에게 배운 것이다. 잊고 있었을 뿐.
켄터키 주도 넓다. 켄터키에서 테네시로 들어섰는데 다시 켄터키가 나왔다. 테네시 주가 애매하게 끼어 있는 모양이다. 중량 측정소에 다시 불려갔다. 하루 두 번이나 연속해서 들어가다니. 켄터키는 나를 좋아해. Pre-pass가 있으면 웬만한 weigh station은 그냥 통과다. 이미 어떤 화물이 어떤 중량으로 실려 있는 지 전산으로 통지되기 때문이다. 가끔 랜덤으로 걸리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이번에는 무사통과다.
길이 어딘지 낯이 익다 했더니 전에 몇 번 다녔던 길이다. 벌벌 떨며 다녔던 그 길을 이제는 스스럼 없이 달리고 있다. 날이 어두워졌지만 갈 수 있는데까지 최대한 가기로 했다. 전에 우회전을 놓쳐서 그냥 직진했다가 힘들게 돌려서 다시 왔던 길이 나왔다. 이제는 아니까 미리 준비했다. 오늘 보니 그때 회전 안 하고 직진하길 잘했다. 그 속도에서 회전했다면 트럭이 옆으로 자빠졌을 각도였다. 밤길도 다녀 본 길은 가기 수월하다. 2시간 정도를 남기고 주차공간을 찾기로 했다. 트럭스탑 몇 곳을 들렀지만 너무 늦어 자리가 없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월마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전에 네이슨과 중국 뷔페 먹으러 갔던 그 몰에 주차가 가능할 것 같았다.
트럭스탑에 가려고 나온 출구가 월마트가 있는 출구였다. 이런 행운이 있나. 트럭스탑은 자리가 없었고 다시 나와 월마트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24시간 영업이다. 트럭을 세워 두고 쇼핑을 했다. 스프링필드에서는 손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에 많이 사지 못했다. 오늘은 아예 트럭을 가져 왔으니 마음껏 사도 된다. 음식과 수납 도구 등 이것저것 한 카트 가득 샀어도 62달러 정도 나왔다. 월마트에서 산 복숭아부터 먹었다. 과즙이 가득하고 향기롭다. 스시도 먹고,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었다. 바구나와 상자에 잡다한 짐을 담으니 좀 수납이 되는 느낌이다.
월마트에 철야 주차가 되나 페이스북 회사 클럽에 물어보니 전화해서 물어보라는 답변이 많있다. 트럭커패스 앱에서 이곳의 리뷰를 읽어 보니 길 건너 JC-Penny 몰로 가라는 의견이 있었다. 나도 그쪽으로 가려다 semi truck 파킹 금지라고 적힌 것을 보고 월마트로 왔다. JC-Penny 쪽이 훨씬 한산하고 다른 트럭들도 몇 대 주차해 있었다. 월마트에도 트럭들이 있었다. 24시간 영업하는 월마트 보다 일반 차량이 적은 JC-Penny 쪽이 아침에 움직이는데 편할 것 같아 옮겼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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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주차..아직은 요령부득
JC-Penny 주차장에서 10시간 휴식들 다 채우고 났어도 아무 일 없었다. 출발해 쉬지 않고 배달처로 갔다. 이곳은 드랍 앤 훅이다. 여전히 후진 주차는 잘 안 된다. 이곳에서는 직원들이 나서서 도와줬다. 실력이 늘었고 예전 같으면 못 했을 후진이나 주차를 해내지만 어떤 때는 기본적인 것도 잘 안 된다. 실력이 들쭉날쭉이다. 이제 겁 먹는 것은 없다. 어차피 해내야 할 일이다. 빈 트레일러가 없어 얼마간 기다렸다. 직원들이 나를 위해 공터 가운데 빈 트레일러를 가져다 놓았다. 밥테일로 연결하는 것은 잘 하는데.
생고기를 실은 트레일러 치고는 깨끗했다. 팰럿 파편 몇 개만 있었다. 자체 세척시설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냄새가 좀 난다. 확실하지 않을 때는 무조건 세척을 하는 것이 좋다. 다음 화물 발송처가 같은 Monett이지만 트레일러 세차장이 근처에 없다. 다른 곳으로 갔다 와야 한다. 리퍼 연료도 절반이다. 채워서 가라고 써 있다. 주유소는 다른 도시에 있다. 내가 아직 확실히 요령이 없다. 프라임 본사가 50분 거리에 있다. 어차피 밤에는 시간이 지나 일 할 수도 없다. 바로 본사로 가서 트레일러 세척하고 10시간 쉬었다가 나오며 리퍼 연료 채우면 됐다. 아니면 세차장과 주유소가 함께 있는 곳으로라도 갔어야 했다. 무조건 가장 가까운 세차장으로 간 것이 결과적으로는 수고만 많이 하고 시간도 더 걸렸다.
발송처에 도착하니 아직 화물 준비가 안 됐다. 야드에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갔어야 하는데 몰라서 쉬핑 장소로 갔다. 좁은 장소에서 트레일러 후진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다시 야드로 가니 트레일러 자리가 한 곳만 비었다. 좁은 공간에 후진으로 주차했다. 지금까지 한 것 중 가장 좁은 공간이다. 드랍야드에서 밥테일로 기다리는데 시간이 거의 다 지났다. 경비 직원에게 화장실 있냐고 물으니 없다며 월마트로 가란다. 여기도 월마트가 있냐? 가까운 곳에 있다. 이길로 나가서 T자형 길 나오면 우회전해라. 조금만 가면 월마트다.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과연 그렇다. 철야주차 가능하냐? 밥테일은 가능하다. 밥테일 트럭은 조금 큰 차라고 보면 된다. 길어서 주차공간을 앞뒤로 두 칸 차지한다.
주차하고 어제 못 다한 쇼핑을 했다. 쇼핑의 결정판. 이제는 더 살 것이 없다가 아니라 사도 둘 곳이 없다. 오늘은 40달러 가량 나왔다. 이틀 동안 100달러로 트럭 살림살이는 웬만큼 장만했다.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인데, 이왕이면 내일 아침에 왔으면 좋겠다. 새벽 3시부터 움직일 수 있고, 5시에는 10시간 휴식이 완전히 끝난다.
짐을 실으면 다음주 월요일 새벽까지 펜실베이니아 팟츠빌(Pottsville) 월마트에 배달해야 한다. 총 거리는 약 1,000마일 정도다. 70시간 근무시간도 슬슬 따져봐야 할 시기다. 하루 동안 움직이는 거리와 시간을 잘 계산해봐야겠다.
오늘은 예서 쉬어간다
어두워지려면 세시간 가량 남은 6시, 고속도로변 트럭 주차장에 들어왔다. 자리는 많다. 아직 미주리 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음 휴게소는 어쩐 일인지 수백 마일 뒤에나 있다. 이곳은 트럭 십여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재래식 화장실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수도시설도 자판기도. 트럭에서 내리니 지린내가 풍겼다. 바닥에 얼룩이 졌다. 오줌이 말라 붙은 흔적이리라. 화장실도 있고 그 뒤로는 나무숲도 있건만.
월마트에서 산 Folger 인스탄트 커피 한 봉을 뜨거운 물에 풀어 마신다. 맛이 괜찮다. 마실 물과 먹을 거리가 있으니 트럭스탑이 아니어도 아무 걱정이 없다. 마음 편히 주차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오늘은 몇 시간 달리지 못했지만 일찍 끝내고 내일 일찍 시작하기로 했다. 그 원칙이 지난 이틀간 깨졌다. 월마트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남용(濫用) 할 일은 아니다. 어떤 월마트는 트럭 야간 주차를 금한다.
어제, 새벽에 화물이 실렸다는 전화가 오면 어쩌나 걱정한 것은 기우(杞憂)였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Tyson 공장으로 갔을 때도 화물은 실리지 않았다. 전화를 해 메시지를 남기고 발송 사무실로 찾아도 갔다. 준비되면 전화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 야드 바깥 도로에 밥테일 트럭을 주차하고 쉬었다.
오랜만에 책도 읽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집 앞 도서관에서 빌렸다. 무엇이든 쓰게 되겠지. 굳이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하도 못해 바가지나 덤탱이라도 쓰게 될 것이다. 이미 모자를 썼으니 됐나? 스마트폰을 쓰고 있기도 하다. 아니면 돈을 쓰나? 입맛이 쓰다. 우리말 쓰다의 의미가 많다.
태어나서 가장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일기도 이렇게 오래 써본 적이 없다. 페이스북 덕분이고 반응을 남기는 독자 덕분이다. 글쓰기 덕을 많이 봤다. 하루의 생각을 정리하고 매일의 기록을 통해 트럭 일에 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된 네이슨도 자신의 언행이 기록된다는 것을 의식했을 것이다. 서로 행동을 조심하고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택시 처음 시작했을 때 지금처럼 글을 썼더라면 하면 아쉬움이 크다. 그때는 인간군상과 접하는 일이라 온갖 일이 많았고 쓸 것도 풍부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의미하다. 지난 얘기가 됐을 뿐이다. 지금 힘들어도 계속 글을 쓰는 이유다.
시간이 늦어지자 초조해졌다. 느긋해도 되는데. 트럭 일, 그 중에서도 리퍼는 기다림이 일과다. Tyson 직원이 야드에서 내 트레일러를 끌고 나갔다. 한두 시간이면 되리라. ‘아점’을 만들어 먹고 책을 읽다 잠시 누워 잠도 청해봤다. 얼마 후 옆으로 차량 지나가는 소리가 나는데 아무래도 내가 끌고 온 트레일러 같았다. 일어나 창밖을 보니 맞다. 신기하다.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이제 서류를 가져가라는 전화만 오면 된다. 서류를 받고 야드로 들어가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출발이다. 그러나 전화는 한참 지난 후에도 오지 않았다. 사무실로 다시 전화해보니 곧 된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전화를 기다리지 않고 사무실로 찾아 갔다. 이곳은 동물 중에서도 닭을 처리하는 공장이다. 케이지에 잔뜩 실린 닭들이 도축(屠畜)을 기다리고 있다. 오물 냄새가 상당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미 무감각해졌으리라. 사무실에 가서도 얼마를 더 기다린 후에야 서류를 받았다.
내가 어제 받아 끌고 온 트레일러는 구형이다. 뒤에 공기저항을 줄이는 날개가 없다. 상관 없다. 문제는 트레일러 지지대를 올리는 핸들이 엄청 불편하다. 날도 더운데 땀 흘려가며 지지대를 올렸다. 무게 측정을 해봤다. 이상했다. 고기라서 많이 무거울텐데 트레일러 바퀴를 평소와 달리 앞으로 보내야 균형이 맞았다. 5번 핀에 걸렸다. 빈 트레일러 몰 때 외에는 이렇게 앞쪽으로 트레일러 바퀴를 위치한 적이 없다. 짐을 어떻게 실었길래? 혹시나 불안해 공장 옆 별도 건물에 설치된 저울에 무게를 달아보기로 했다. 저울에 무게 달러 가는 일도 수월치 않았다. 입출구 표시가 없어 출구로 들어갔다. 다른 트럭 기사가 손짓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다시 후진해 공장을 한바퀴 돌아 입구로 들어갔다. 각도가 제대로 안 나와 저울에 트럭 전체를 똑바로 올리지 못했다. 담벽에 측면 트레일러 라이트를 부술 뻔했다. 후진으로 다시 저울에 올렸다. 아주머니가 앞으로 가라 뒤로 가라 하더니 종이에 무게를 적어 나왔다. 괜찮다고 했다. 트럭에 설치된 저울과 수치가 달랐다. 더 지체할 수 없어 출발했다. 오후 3시가 이미 넘었다.
새벽 서너시까지도 달릴 수 있지만 그 시간에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렵다. 밤운전은 가급적 피한다는 원칙이다. 내일 새벽에 출발할 즈음에는 아직 어두울 것이다. 내일 500마일 가량 달리고, 모레 400마일 정도 달린 후 월요일 새벽 2~3시쯤 배달지로 출발하면 괜찮을 듯 하다. 무리하지 말자. 트럭일이 익숙해지고 적응될 때까지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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