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나는 어릴 적 죽음이 무서웠다. 죽음 자체 보다도 죽을 때 당할 고통이 무서웠다. 죽음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도 언젠가는 죽음에 이를 것이다.
죽음을 앞둔 후배에게 해 줄 말이 없다. 대학 후배인 정상훈 이야기다. 그는 나와 동향인 대구 출신이지만 그것은 상관 없다. 나는 내 고등학교 직속 후배 조차도 챙기지 않았을 정도로 출신에 대한 애착심은 없다.
상훈이는 위암 말기로 치료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상훈이의 위암 발병과 관련해 내가 뚜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이외수 선생이 위암 판정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외수 선생은 그 후로도 활발한 집필 및 SNS 활동을 했다. 상훈이도 수술 후 재활 과정을 잘 견뎌내는 듯 했다. 두 사람이 위를 절제하고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구나 생각했다.
상훈이는 호스피스 단계다. 심한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삶의 의지를 잡고 있다. 다행히 그의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 이 과정을 함께 한다. 그가 평소 인간관계를 잘 한 결과다.
몇 달 전 안타까운 마음에 마음으로 불치병을 치료한 심신의학 사례집을 추천한 적이 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상훈이가 사이비로 보이는 민간의학자에게 까지 간 것을 보고 넌지시 권해 본 적이 있다.
종교적 구원이나 천국 내지는 내세(來世)의 희망을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내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데다 이미 많은 이들이 얘기하고 있기도 하다. 힘들어하며 죽어가는 후배에게 실질적 도움은 커녕 위로의 말 조차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답답하다
인생을 살다보니 나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틀은 생겼다. 내 넋두리가 조금의 위로라도 됐으면 싶다.
정신세계에 입문할 당시 나는 전생(前生)에 관심이 많았다. 김영우 박사, 설기문 박사의 전생체험 워크샵에 참여도 했다. 심지어 전생에서 나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떠오른 이미지가 진짜 내 전생인지는 모른다. 그것은 나름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나 린포체 같이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갖고 환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전생에 별 관심이 없다. 내 기본 세계관은 윤회론(輪廻論)이지만 불교적인 것과는 다르다. 세례 받은 기독교인이지만 죽어서 가는 천당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수가 말한 천국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죽음에 관해 내게 가장 많은 위안과 영감을 준 것은 과학이다. 그 중에서도 천문학과 빅뱅스토리다. 빅뱅 이후 200억년이 넘는 시간에 비하면 나의 삶은 극히 짧은 깜박임 조차도 안 된다. 개체의 삶은 그러하지만 나는 빅뱅과 함께 나타났고 앞으로도 계속될 물질로 구성돼 있다. 별의 생성과 죽음이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을 만들었고 그 물질은 잠시 나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말 그대로 별에서 왔고 별로 돌아간다. 우주의 시간에서 각자 삶의 길이는 천미터 밖에서 개미가 한두 걸음 더 걸어간 만큼의 차이도 없다. 우리는 순간(瞬間)을 살 뿐이다. 지금을 살고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시간은 환상(幻想)이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사는 존재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근심하지 마라. 우리는 다시 원소(元素)로 돌아간다. 죽음 이후에 의식이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다. 융의 말처럼 집단 무의식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뭐가 중요하랴. 지금의 일이 아닌 것을. 인류도 사라지고 지구도 사라지고 태양계도 소멸하겠지만 태초의 물질은 그대로 남아 다른 형태가 되리라.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원소가 결합해 다른 무엇이 되었을 때 어쩌면 희미한 기억이 이미지로 남아 있을 지도 모르지. 나는 영원함과 동시에 나라고 할 그 무엇이 없다. 이것이 삶과 죽음이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 그대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사라져 함께 별이 될지니.
이팝에 고기를 배불리
10시간 휴식이 끝나 출발했다. 발송처에 트레일러 세척 시설이 있는데 일요일이라 사람이 없었다. 발송 사무실에 가니 10마일 떨어진 곳에 트럭 세차장이 있다고 했다. 가기 귀찮다. 크게 더러운 것도 아닌데. 내가 직접 치우기로 했다. 손바닥만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트레일러에 들어가 나무 부스러기들을 줍고 쓸었다. 어떤 트럭은 트레일러에 쓰레기가 한가득인데 그냥 닥에 대는 모습이 보였다. 헐~
사무실에 가니 벌써 갔다왔냐며 영수증을 보자했다. 크게 더럽지 않아 내가 치웠다. 믿어도 좋다. 알았다며 서류작업을 해준다. 드랍 앤 훅이다. 야적장 한 쪽에 트레일러 내려놓고 새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했다. 요즘에는 주차할 때 쉬운 곳만 찾지 않고 연습 삼아 실전과 비슷한 곳에다 한다. 일단 셋업만 잘 되면 큰 문제 없다. 셋업이 잘 안 됐더라도 수정할 줄 알아야 하는데 거기까진 부족하다. 트레일러를 열어 보니 과일 주스다.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았다. 내가 운반한 것 중 가장 가벼운 측에 든다. 트레일러 저울이 고장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가장 앞으로 당겨도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다. 뒷편에 가로로 로드락 하나를 설치했다.
빈 트럭 마냥 가볍게 달렸다. 가파른 언덕이 없어서인지 오르막길도 속도 저하가 없었다. 8시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마침 한 트럭이 떠나고 있어 그 자리에 댔다. 좀 있으니 다른 트럭도 떠났다. 이 시간에도 자리가 있구나. 야간 배달이 있거나 팀 드라이빙을 하는 경우는 휴게소에서 30분 휴식을 종종 취한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않아 시간이 절약 된다. 많은 트럭커들이 10시간 휴식이나 숙박을 위해서는 트럭스탑을 더 선호(選好)한다. 아무래도 편의 시설이 좋으니까.
배달지에 도착했다. 출발지 기준으로는 새벽 1시지만 현지 시간으로는 자정이다. 2시 약속이다. 회사 내부에 트럭 대기장이 갖춰져 있다. 트럭을 세우고 잠을 잤다. 한 두 시간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69번 닥에 대라고 했다. 다른 트럭들도 몰려갔다. 그냥 조용히 혼자서 해도 잘 될까말까인데 이런 난리통에 잘 될리가 없다. 첫 번째 시도 실패. 돌아서 다시 셋팅했다. 억지로 꾸역꾸역 하고 있자니 왼쪽 옆 칸 트럭에서 할배 트럭커가 내렸다. 자기 트럭을 받을까봐 염려가 됐나보다. 그는 방향 지시는 없이 트럭이 부딪힐만 하면 손짓으로 신호를 줬다. 그것도 큰 도움이다. 막판에 어떻게 돌리라고 조언을 한 번 했다. 그 말을 따르니 그대로 됐다. 후진 중 오른쪽 트레일러를 내가 혹시 건드리지 않았나 모르겠다. 흔적은 없으니 문제 없으리라. 잠시 후 오른쪽 트럭은 떠났다.
이곳의 시스템은 특이해서 일단 닥에 주차하고 출입문으로 닥에 들어가 자기 번호 앞에 선다. 그러면 럼퍼가 와서 서류를 받고 비용도 알려준다. 젊고 잘 생긴 백인 남자였다. 럼퍼들은 대게 남미계나 중년 이상이 많다. 그는 45달러를 얘기했다.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45달러가 맞았다. 지금까지 100달러 이하로 낸 적이 없다. 많게는 300달러도 넘게 냈다. 내가 실은 짐이 가볍기로서니 그래도 팰릿이 22개인데. 수표 끊어 갖다 주니 파란불 들어오면 다시 오란다.
다음 화물 예고가 이미 들어왔다. 나는 기다리며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굴렸다. 일단 내 운전시간은 끝났다. 여기서 10시간 휴식을 취할 것인가? 다른 곳으로 갈 것인가? 오후 5시~8시 사이에 픽업해서 미시시피주로 새벽 3시반까지 배달해야 한다. 운전시간은 5~6시간. 10시간 휴식 끝나고 트럭스탑으로 이동해 다시 10시간 휴식을 취하면 발송처 약속 시간에 늦다. 그렇다고 10시간 휴식을 갖지 않으면 배달지 도착 전에 운전시간이 끝난다.
닥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닥 내부에 가보니 사람은 없고 서류만 놓여 있다. 이걸로 끝인가? 좀 기다렸다 사람이 오길래 물어보니 가도 좋단다. 밖으로 나와 닥 건너편에 주차를 하려 했다. 누가 손짓으로 말린다. 왜냐고 물으니 거긴 회사 트럭 주차하는 곳이란다. 그럼 나는 어디다 하냐? 들어올 때 대기했던 곳에 주차해라. 가보니 자리가 있었다. 오전 10시경에 10시간 휴식이 끝난다. 알람 맞춰 놓고 자다가 7시에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트럭스탑에도 자리가 있을 것이다. 15마일 떨어진 곳에 150대 규모의 주차장을 갖춘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오프듀티 드라이브를 했다. 하루 1시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업무와 관련해 사용하면 안 된다. 지금처럼 주차를 위해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자리가 몇 곳 있었다. 그 중 좀 쉬운 곳으로 선택해 후진 주차를 시도했다. 역시 잘 안 된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재차 시도를 하며 수정을 하니 답이 좀 나오는 듯 하다. 아 이거였나? 마침 앞 트럭이 떠났다. 후진하다 말고 앞으로 주차했다. 여기서 충분히 쉬다 오후 3시쯤 출발하면 되겠다.
배가 고팠다. 밥을 지어먹기로 했다. 쌀을 잠시 불린 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렸다. 지난 번과 달리 5분 단위로 돌리며 뜨거운 물을 보충해줬다. 그렇게 네 번을 돌리니 괜찮은 밥이 됐다. 밥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전자레인지로서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양은 충분했다. 노국장님의 불고기는 두 번 먹을 분량이 남았지만 한 번에 모두 처리했다. 흰 쌀밥에 고기를 배불리 먹다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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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릴 땐 자라
걸어서 20~30분 거리에 월마트가 있다. 마침 음식도 떨어져 간다. 운동 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역시나 걷는 사람은 나 혼자다. 인도가 아예 없다.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많이 덥지 않아 다행이다.
월마트에 들어갔다. 바구니를 찾았지만 안 보여서 카트를 끌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과일, 샐러드, 빵, 라면, 미국 햇반, 햄, 치즈 등 닥치는대로 담고 있었다. 카트 끌기를 잘 했다. 들고 갈 수 있을 만큼만 사자. 한 일주일은 먹을 것이다.
트럭으로 돌아와 냉장고와 선반에 수납했다. 트레일러 세척장이 가는 방향에 없어 이번에도 직접 치우기로 했다. 어제 보다 부스러기가 조금 더 많았다. 대충 치우고 주유기에서 리퍼 연료 가득 채운 후 출발했다.
약속 시간인 4시에 도착했다. 내 화물은 8시에나 준비 되니 트레일러 내려 놓고 그때 오란다. 밥테일로 나와 트럭스탑으로 향하다가 그냥 주변에서 쉬기로 했다. 큰 도로로 나온 직후라 20~30미터 후진해 다시 진입도로로 들어갔다. 왼쪽에 풀밭이 있길래 들어갔다. 색 바랜 주차금지 표시가 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기다리며 글을 썼다.
8시에 다시 갔다. 트레일러 번호를 알려준다. 161798이다. 그런데 야드에서 찾아도 없다. 161998은 있다. 혹시 오타가 나서 잘 못 알려줬나 싶어 확인했더니 냉동기가 꺼져있다. 그러면 아니다. 제품이 실렸으면 냉동기가 돌아가야 한다. 멀뚱히 트럭에 앉아 있자니 지나가는 야드자키가 와서 물어본다. 트레일러 번호를 알려주니 어딘가 무전을 했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트레일러를 끌고 나왔다. 내가 연결하기 쉽게 마당 중간에 내려놓았다. 트레일러 연결 후 나왔다. 출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다른 공장 마당에 트럭을 세웠다. 출발 확인 메시지 보내고 라이브 로드 콜을 했다. 저녁에는 바로 연결이 안 되고 조금 기다려야 한다. 이번에도 화물이 가벼웠다. 텐덤 타이어를 너무 앞으로 당기면 드라이브 타이어에 무게가 너무 적게 실리니 9번홀에 핀을 맞추었다. 9번에서 12번 사이가 운전에 적당하다. 너무 앞쪽은 회전할 때는 좋지만 주행감은 떨어진다.
예상보다 출발 시간이 지체돼 중간에 오래 쉴 틈이 없다. 5~6시간 거리니 한 번에 가도 된다. 중간에 조금 피곤해 휴게소에 들러 최소한의 휴식만 취하고 바로 출발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돼 30분 휴식은 의미가 없다. 가다보니 졸렸다. 원래는 졸리면 무조건 쉬는 게 좋다. 트럭 세울 곳도 마땅찮고 배달 시간도 가까워 졸음을 깨우며 달렸다. 노래도 부르고 간식도 먹고. 어느 순간 내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욕도 했다. 이건 안 좋다. 중량측정소가 나왔다. 문을 닫았다. 그래도 진입했더니 나가는 방향으로 신호를 준다. 주차장에서 쉬었다가려 했는데. 할 수 없이 중량측정소 진출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진한 커피를 한 잔 만들었다.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도착할 무렵에는 다시 졸렸다. 아무 사고 없이 도착했지만 사실은 잘못했다. 반성한다. 설령 배달이 늦어도 이때는 30분이라도 자야한다. 심야라 주차할 곳이 마땅찮지만 어떻게든 안전한 곳을 찾아 쉬는 게 원칙이다.
미시시피 뉴알바니 월마트 DC. 수련 기간에 한 번 와본 듯도 하다. 월마트DC는 구조가 비슷해서 확실하지는 않다. 333번 닥을 배정받았다. 마당이 넓은데다 주변에 다른 트럭이 없어 닥킹에 문제가 없었다. 후진 시간이 점차 줄고 있다. 밥테일 트럭 주차 공간에 대고 사무실로 가 서류작업을 했다. 버저를 주며 울리면 오라고 했다. 나는 끝나고 이 새벽에 어디에 주차하나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버저는 아침 7시가 넘어서야 울렸다. 서류 받고 트레일러 연결해 나왔다. 아직 운전 못 하는 시간이지만 오프듀티 드라이브로 하고 트레일러 세차장으로 향했다. 1마일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어제 구글맵으로 확인한 트럭스탑이기도 했다. 10대 주차 규모의 좁은 곳이었다. 트럭스탑이 아니라 일반 주유소로 써야 할 크기다. 다른 트럭을 피해 좁은 마당에서 회전해 트레일러 세척부터 했다. 여기는 35달러다. 자리가 한 곳이 남았길래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양 트럭 사이에 주차했다. 이 정도 난이도(難易度)도 해낼 만큼 내 후진 실력도 늘긴 했구나.
트럭에서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샌드위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빵 사이에 무엇이든 넣을 수 있고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므로 비빔밥과 비슷하다. 쉬고 있자니 영감님이 다가왔다. 창문을 여니 냉장고가 있냔다. 있다고 하니 그는 햄 세 봉지를 내밀었다. 이거 반품인데 아직 시원하고 쓸만해. 감사히 받았다. 내가 먹는 것보다 비싸 보였다. 그 영감님도 트럭에 개를 데리고 다녔다. 얼굴과 몸에 갈색 얼룩이 있는데 견종은 잘 모르겠다.
다음 화물은 앨라바마에서 받아 미주리로 간다. 밤 9시 30분 픽업이다. 배달시간은 모레 오전 5시다. 밤운전을 피할 길이 없다. 오늘은 샤워도 해야 하는데. 여기서 쉬다 오후 5시에 출발해 2시간 정도 달린 후 러브 트럭스탑에서 샤워하고 발송처로 가기로 했다. 작은 트럭스탑은 그 나름대로의 운취가 있다. 오늘은 이따가 밤에 졸리면 길가에라도 세우고 무조건 잔다.
멤피스를 지나 아칸소 주에 들어섰다. I-40 고속도로 상의 휴게소에서 10시간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알라바마부터 미주리까지
어제(24일) 오후 5시에 출발했다. 미시시피 주 보다 동쪽에 있는 알라바마 주에서 화물을 싣고 다시 서쪽으로 향하는 동선(動線)이다. 러브 트럭스탑에 들르지 않기로 했다. 배달지가 프라임 본사를 지나는 길에 있다. 본사에서 몇 시간 동안 샤워와 빨래를 하고 엔진오일, 그리즈팩 등 소모품을 보충할 생각이다. 배달지인 조플린은 스프링필드와 1시간 거리다. 샤워는 하루만 더 참자.
9시 30분 약속이라 미리 가도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길에 트럭을 세우고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현장에서 부딪히기로 하고 일단 향했다. 번지오일은 PSD때나 TNT 초기에 네이슨과 온 적이 있다. 진입로에 철망으로 된 차단문이 있고 인터폰으로 연락해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7시 45분 경 도착했다. 차단문 앞에서 스크린에 있는 버튼을 눌러 비밀번호를 눌렀으나 잘못된 번호라고 나왔다. PO 넘버 누르라고 읽은 것 같은데 아닌가? 다른 번호로 시도해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남자가 받는다. 픽업 왔으니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열어주겠다고 했다. 좀 기다려도 열리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여자가 받았다. 문을 열어달라고 하니 조금 더 기다리란다. 시간이 걸린다고. 잠시 후 옆으로 차단문이 열렸다. 마당으로 들어가니 좁다. 왼쪽이 닥이고 오른쪽은 트럭이 대기하는 주차장이다. 아직 닥 번호를 모르니 오른쪽에 주차해야 하는데 이 경우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이 된다. 불가피한 경우 아니면 피해야 한다. 안쪽에서 트럭을 돌릴 여유는 없다. 비어 있는 닥 공간을 이용해 각을 만든 후 몇 번이고 내려가며 뒤를 확인한 후 조심스레 후진해 주차했다. 사무실로 가 체크인을 했다. 괜히 트럭스탑에서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왔어도 되지 않았을까?
트럭에서 기다리며 연구했다. 이 상태에서 닥에 대려면 역시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이 된다. 내려서 야드를 거닐었다. 진입로에서 마당으로 들어서는 지점에 약간의 공간이 있어 유턴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 방법이 최선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약속시간인 9시 30분을 지나서도 닥에 대라는 전화가 없다. 밤새 운전하려면 좀 자는 편이 낫다. 자고 있자니 전화가 왔다. 8번 닥에 대란다. 아까 생각한대로 왼쪽으로 나가 마당 입구에서 유턴했다. 다른 트럭이 들어와 서 있는 바람에 조금 불편했지만 회전은 가능했다. 8번 닥 맞은 편에 다른 프라임 트럭이 주차해있다. 그 트럭만 없으면 오른쪽으로 꺾어 직선 후진을 만들 수도 있을텐데. 평소 공식대로 셋업하고 알리닥을 시도했다. 역시 각이 잘 안 나온다. 내가 주차해 있던 자리 주변으로 비어 있어 그 공간을 이용했다. 어느새 누가 내 뒤를 봐주고 있다. 프라임 트럭도 몇 칸 왼쪽으로 이동했다. 어려운 곳이라 염려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이 풀렸다.
짐 싣고 나오니 12시가 넘었다. 오전 7시까지 운전할 수 있다. 밤새 최대한 많이 가다가 시간이 되면 쉬기로 했다. 알라바마 - 미시시피 - 테네시 - 아칸소 - 미주리로 연결된다. 미시시피를 지나는데 졸렸다. 어제의 다짐대로 쉬기로 했다. 국도라 휴게소가 없다. 길 가장자리도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라 비스듬이 기울어진 풀밭이다. 적당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고속도로로 연결되려면 멀었다. 더 가면 위험할 것 같아 최대한 조심하며 길가에 트럭을 댔다. 트레일러 후미까지 도로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하고서야 시동을 껐다. 30분 알람을 맞추고 침대에 누웠다.
잠깐 잤지만 큰 도움이 됐다. 샤워 포인트가 있는 러브스 트럭스탑에서 쉬기로 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자리가 있을까 모르겠다. 트럭스탑 9마일을 앞둔 지점에서 휴게소가 나왔다. 일단 들어갔다. 자리가 있으면 쉬고 아니면 간다. 일반 휴게소처럼 비스듬이 주차하는 공간이 아니라 통로 양쪽에 평행주차(平行駐車)하는 방식이다. 다행히 오른쪽으로 한 대 댈 공간이 있었다. 화장실 바로 앞이라 편했다. 오늘은 여기서 쉰다. 오전 6시니까 오후 4시가 돼야 출발할 수 있다. 배달지까지는 7시간 거리다. 오전 5시 약속이다. 배달을 마치고도 두 시간 정도 이동할 시간 여유가 있으려면 오후 5시에 출발해야 한다. 프라임 본사에는 밤 11시쯤 도착할 것이다. 필요한 볼 일을 보는데는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오전 3시쯤 출발하면 4시에는 배달지에 도착한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 미리 가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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