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9-100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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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키웠다./ 양쪽 끝을 단단히 묶어/ 웬만하면 풀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여울물은 흐르는데/ 슬픔 일어나는 대지를 쿡쿡 밟아 누르며/ 고통의 간이 벤 희망의 언덕을 박차고 달린다./ 진저리 쳐지는 절정의 속도로 치달릴 때/ 운동화 끈이 풀어졌다./ 너풀대며 걸리적거리고 나를 주저앉힌다./ 구름 한 점 없는데 먼지구름이 속절없이 덮쳐온다.

 

바닥은 햇살 받아 달구어져도 늘 음습하고 천한 공간/ 넘어지지 않아도 뒤쳐진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손길이/ 애절한 기도가 된다.

 

내 허벅지에는/ 어머니가 키우던/ 거친 바위산을 뛰어넘는 표범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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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본인의 졸시로 시작한다. 유라시아를 달리면서 나는 가끔 내가 과연 무슨 힘으로 이렇게 끈질기게 달리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어머니는 언제나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난 늘 어머니가 가슴에 표범을 키운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키우던 그 표범을 내가 맡아서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표범은 그리움을 아는 표범이다. 먹이를 쫒아 달리지 않고 그리움을 찾아 달린다. 내 마음에 그리움이 생기고부터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마라톤은 그리움의 시원(始原)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다. 내 달리기는 유라시아를 서에서 동으로 달리는 공간의 이동이지만 그리움을 따라가는 감정의 이동이기도 하다.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만나 평화가 온다면 끝없이 달려도 지치지 않으리! 오랜 고통과 외로움 끝에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만나 부둥켜안는 순간 온전한 두 날개를 갖춘 봉황이 된 줄 안다면!

 

몇날며칠을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지났고 또 몇날며칠을 한 포기만 보이는 사막을 지났다. 사막을 지날 때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아도 좋으니 온전히 내 그리움에 나를 묻어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또 몇날며칠을 더 달리니 위먼(玉門)이라는 오아시스 도시가 나타났다. 이제 오른쪽 시야에는 간쑤(甘肅) 성과 칭하이(靑海) 성을 가르는 치렌 산맥이 파란 하늘아래 하얀 만년설(萬年雪)을 이고 길게 뻗어있다. 그 만년설 위에 또 하얀 구름이 머물며 구름과 눈의 구분조차도 무의미해진다.

 

여기부터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시작이다. 아니 끝이다. 하서회랑은 남동쪽의 오초령에서 북서쪽의 옥문관에 이르는 천km에 이르는 황하 서쪽의 복도와 같이 좁은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동쪽의 낮은 산맥 너머에는 고비 사막이 펼쳐진다. 치렌 산맥은 해발 4천~5천m가 넘는 고봉을 거느린 산맥으로 하서회랑의 오아시스 마을에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하서회랑은 월지족이 살던 곳인데 흉노의 침입으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일대에 해당하는 일리가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그곳에 살던 사카족의 이동을 촉발시켜 이들의 북인도의 인도, 스키타이 왕국의 건국에 영향을 미친다. 이곳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 백일홍 밭이 인상적이다. 이 꽃들이 치렌 산맥이 제공하는 물을 머금고 사막의 풍부한 햇살로 곱게 피어났다. 위먼 시는 이 만년설이 제공해주는 물로 농업이 발달했다. 이곳에는 풍력발전기가 사막의 바람을 에너지로 바꾸면서 부지런히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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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무더위 속에 황량한 사막을 달릴 때 최고의 행복감이 밀려온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볼 때처럼 기쁨이 몰려온다. 빛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나는 더없이 맑고 찬란한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나는 달리면서 내 안에 에너지를 채우고 있다. 바람개비가 바람과 마주서서 덧없이 지나가는 바람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듯 고통과 마주서서 그 고통을 삶의 에너지로 바꾼다.

 

내 안에 사는 표범은 오늘도 질주를 한다. 그리움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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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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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그 경계를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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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도 벽돌 한 장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나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이 그렇다. 한걸음부터 시작한 것이 벌써 만 천여km를 치달려 왔다. 그리고 마침내 다툼과 고립을 넘어 소통과 화합이 화려하게 꽃을 피워낸 ‘위대한 길’ 실크로드의 첫 관문 자위관(嘉峪關)을 만났다. 이 길에서 동서양 문명과 문화가 만나서 소통하고 자극하며 보다 나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이 길 위에서 명멸하며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내며 끊어질 듯하다가도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되살아났다.

 

자위관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자 외부 세계로부터 중화를 지키는 최전방이며 만리장성 서단 제 1관문이다. 만리장성의 서쪽 시발점이며, 이곳을 지나면 장에, 우웨이, 란저우, 시안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 발을 들어서면 드디어 목숨을 걸고 유럽에다 비단을 팔고 오는 왕서방들의 위험과 고통은 끝이 난다. 이제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꿈이 현실이 되는 행복한 여행으로 바뀌게 된다. 나의 끝없는 발걸음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 지상최대의 마라톤 전위예술도 멋진 피날레를 준비하여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내 두 다리의 근육의 힘으로 유라시아대륙을 달려서 횡단하겠다는 나의 꿈도 현실이 되어가는 행복한 여행으로 바뀌고 있다. 만리장성은 중국인들의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중국인들은 모든 걸 다 바쳐 성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장벽은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며, 중국의 상징이요 중국인들의 자긍심의 중심에 있다. 만리장성은 순수한 방어 목적 이외에도 중화와 비 중화를 구분 짓는 의식의 경계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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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계선이 내게는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 되어주었다. 흙을 다져 쌓은 무너진 토성의 경계를 넘는 발걸음이 잠시 멈칫한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미치자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경계선을 넘으면서 분단의 경계를 넘는 경계인을 꿈꾼다. 마음으로 ‘세계평화 인류공영’을 외쳐본다. 동으로 동으로 달려가는 길,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긴 그림자는 서쪽으로 뻗어있다. 평화의 한류가 이제 이 경계를 다시 넘어 서쪽으로 뻗어갈 그 길이다.

 

남북으로 기차 레일처럼 뻗어가던 두 산이 이곳에서 좁아진다. 내 짧은 안목으로도 군사적 요충지로 탁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위관은 자위 산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성루 건물이 웅장해 천하제일옹관으로 불린다. 자위관은 만리장성의 성문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었다고 한다. 한 변이 170미터인 이 건물은 명나라 초기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것을 설계한 건축가가 얼마나 정확했는지 예상되는 벽돌보다 한 장 더 준비했는데 다 짓고 나니 벽돌 한 장이 남았다고 한다.

 

인류문명의 위대한 유산 만리장성을 생각하면 역사의 이중성과 대면하게 된다. 이 성을 축조할 때 동원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고통이 담겨있다. 중국의 전설 중 가장 잘 알려진 맹강녀(孟姜女)의 전설은 바로 만리장성을 무대로 한 것이다. 만리장성은 고대 중국인들의 공동묘지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맹강녀의 남편 완치량도 그 성 아래 묻힌 것으로 전설은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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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은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지어졌는지 애매한 건축물이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유목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진 것을 진시황이 연결한 것이다. 자위관 내에는 관우(關羽)의 사당이 있다. 극한의 더위와 추위가 공존하는 이곳은 언제 적이 기습공격을 해올지 모른다. 그 두려움을 맞서기 위해서 성벽 위의 병사들은 관우 장군에 의지했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 하는 두 사람은 공자(孔子)와 관우이다. 두 사람 다 죽어서 신의 반열에 올랐다. 두 사람 다 사당을 짓고 모신다. 특히 관우는 재물의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관우를 참 좋아한다. 서슬이 퍼런 문화혁명 때에도 관우의 사당은 손대지 않았다.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도원(桃園)의 결의를 한다. 이후 세 사람 모두 의협심의 상징이 되지만 그 중에서도 관우가 의협심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이유는 초지일관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고통 받는 약자의 편에 섰고 의형제이자 주군인 유비를 위하여 변함없는 충성과 의리를 보여주었다. 그는 적이라도 야비하게 상대의 허점을 노려 뒤통수를 치지 않았고 자기에게 불리할 지라도 정면승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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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권력욕이나 명예욕, 지나치게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자들이나 작은 재주에 취해 우쭐거리는 자들은 적폐세력으로 반드시 응징하였다. 그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았다. 혼란의 세상을 살면서 자신보다는 동료, 동료보다는 백성을 위했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을 세웠고 그 뜻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런 그는 죽어서 신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시대이건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며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득권층, 권력자, 대재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성들의 탄식과 원성을 뒤로하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취하는 현실에 백성들은 관우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하며 사당을 짓기 시작해 중국에는 관우의 사당이 공자의 사당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명나라 때 세워진 관우의 사당이 있다. 동대문의 동묘(東廟)에도 있고 여러 곳의 사찰에 있다.

 

관우가 신으로 추대된 것은 대체로 당나라 중기 이후였다고 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구국의 영웅을 갈구하는 민중의 심리를 이용해 관우의 지위는 올라가고 마침내 호국신으로 내세워 관왕묘를 짓고 국가주도로 관우를 우상화하였다. 그러던 것이 무신과 재물의 신은 물론 질병과 고통으로부터의 구원, 악귀를 쫒는 일까지 관우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관우는 조인의 궁노수가 쏜 화살을 오른팔에 맞아 당대 최고의 명의 화타(華佗)에게 치료를 받는 장면은 삼국지 최고의 장면이다. 화살에는 독약이 묻어있다. 독은 뼈까지 빠르게 스며들었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되자 부하장수들이 당대 최고의 명의 화타를 수소문해 모셔왔다. 관우는 마량과 바둑을 계속 두는 가운데 화타는 관우의 팔에 칼을 대어 가죽과 살을 갈랐다. 관우는 눈 하나 깜박 안하고 술 몇 잔 마시고 두던 바둑을 계속 두었다.

 

뼈가 드러나도록 살을 가르고 보니 뼈가 이미 시퍼렇게 변했다. 화타가 칼로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들릴 정도였지만 관우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도 관우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마량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수술이 끝날 때까지 두던 바둑을 계속했다. 두 당대의 대가 화타는 관우의 내공에 감탄하고 관우는 화타의 의술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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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의 청룡언월도의 언월은 반달이나 상현달을 의미하고, 관우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의협과 정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폭이 넓은 검신에 용모양이 새겨져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라고 했다. 유비의 군대는 이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가 앞장 서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사기가 충천했다. 나도 이 청령언월도를 보며 지금도 백성들의 피를 빨며 자신들의 이익만 찾는 기득권세력과 권력자 대재벌을 멋지게 응징하는 관우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단순한 마라토너가 아니라 지상최대 전위예술의 예술가로서 어떻게 멋진 피날레를 장식 할 것인가 만리장성을 넘으며 상념에 빠졌다. 평화의 불길을 어떻게 이 유라시아 대륙에 확산 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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