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지게차기사
폭풍우 뚫고 매사추세츠로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다. 사실 그 동안 운이 좋았다. 폭풍우 속의 작업.
어제 일기를 쓴 직후 전화가 왔다. 야간 디스패처다. 그 전에 메시지가 왔으나 일기 쓰느라 못 봤다. 리파워를 하겠냐고 묻는다. 내일 아침 7시 배달갈 위치에서 6마일 떨어진 지점에 있는 TA 트럭스탑이다. 거기서 트레일러를 교환해 매사추세츠 보스턴 인근 린(Lynn)에 아침 7시까지 가는 일정이다. 330마일 정도 된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급히 트레일러를 연결해 출발했다. 약속 장소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야드를 나와서 우회전했다. 퀄컴과 가민 모두 좌회전을 표시했고 구글만 우회전을 택했다. 가민의 코스는 유턴을 해야하고 (트랙터 트레일러 트럭에게 유턴은 쉬운 운행이 아니다.) 구글의 코스는 간단해 보였다. 그러나 역시 이유가 있었다. 가다보니 30톤 이상 트럭 진입 금지다. 가민은 아까부터 자꾸 유턴하라고 난리다. 퀄컴으로 코스를 재설정하니 우회 경로를 알려준다. 다행이다. 공연히 구글맵 따르다가 시간만 낭비했다.
TA에 도착해 트레일러 맞교환할 운전자를 만났다. 서류부터 주고 받았다. 트레일러 연결하고 서류 작업한 다음 주유를 했다. 이 트럭스탑은 이상했다. 모든 것이 반대다. 보통은 왼쪽에 메인 펌프가 있고 오른쪽에 보조 펌프가 있다. 펌프 번호도 찾을 수 없었다. 결제도 펌프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했다. 펌프 번호를 묻길래 모르겠다했더니 직원은 창밖을 슬쩍 보더니 11번일 것이라 했다. TA도 가끔 이용하는데 포인트 적립카드가 없다. 즉석에서 발급해주는 다른 곳과 달리 키오스크 단말기에서 별도로 신청을 해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집으로 배달온다. 귀찮아서 그동안 안 했다. 오늘은 등록을 했다. 영수증 종이에 바코드가 인쇄된 임시 카드를 받았다. 트럭에 돌아와서야 내가 거꾸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유 중인 트럭이 없어 몰랐다.
갈 시간이 바쁘지만 15분 더 쉬기로 했다. 처음 8시간 업무 시간 중 5시간 30분 가량 남았는데 가야 할 거리는 7시간 가량 된다. 중간에 30분 휴식을 해야 한다. 이미 15분 쉬었으니 지금 15분 쉬는 게 더 시간절약이다. 트레일러 연결 하느라 걸린 시간을 주유시간으로 기록했으면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었는데 이 생각은 출발하고나서야 들었다. 요령 부족이다.
새벽 3시경 조다리(조지워싱턴 브릿지)를 트럭으로 건널 줄이야. 조다리를 건너 95번 하이웨이로 브롱스를 지났다. 여기서 퀸즈로 연결되는 다리를 건너면 집이다. 집을 지척(咫尺)에 두고도 지나치다니. 승용차로 다닐 때는 몰랐는데 이 길이 이토록 험하고 오르막 내리막도 심했구나. 제한속도도 50마일이라 빨리 달릴 수도 없었다. 나를 추월해 가는 승용차가 두 대 있는데 그 중 한대는 경찰차였다. 앞차는 뒤에 경찰차가 따라 오는 줄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나다를까 곧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더니 앞서가던 차를 세웠다.
커네티컷 들어와서 졸리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밤샘 운전이다.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논스톱으로 가도 시간 맞추기 어렵지만 쉬어야 한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타 마셨다. 다시 출발했다. 8시쯤 도착할 것 같다고 디스패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은 없었다. 자기 알 바 아니겠지. 매사추세츠에 들어서자 더 심하게 졸렸다. 아무 시설이 없는 트럭 휴게소에 멈췄다. 10분 알람을 맞추고 잤다. 방전된 배터리를 잠깐 충전하는 식이다. 8분 지나 저절로 깼다. 그 정도 잠으로도 한결 정신이 맑았다.
예상보다는 빠른 7시30분 경에 도착했다. 배달지는 주택가 인근에 있었다. 동네 길을 이런 트럭으로 다녀도 되나 싶을 정도다. 건너편 주차장에서 도로를 가로 질러 후진해 닥에 대야 한다. 다른 프라임 트럭이 길을 막고 짐을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에 세우고 사무실로 갔다. 서류 작업을 하고 닥이 나기를 기다리라 했다. 닥킹하고 나서는 트랙터를 분리하라고 했다. 길을 막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 내리는 트럭은 팰릿이 5개 밖에 되지 않지만 나는 20개라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설명이다. 트럭에서 자고 있자니 누가 문을 두드렸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나가보니 비옷을 입은 직원이 닥킹을 하라고 했다. 그는 이미 트레일러에서 씰을 제거했다. 나도 자물쇠를 제거했다. 나는 판초 우의를 걸쳤지만 신발과 바지는 금새 비에 젖었다. 트럭에 타고 후진하는 동안 그 직원은 도로의 차들을 통제했다. 한치도 안 보이는 폭우 속에서 어떻게 거울을 보며 후진했는지 모르겠다. 잘 안 보여 몇 번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동안 간간히 차들을 통과시켰다. 거의 안 보이는 상태에서 닥에 트레일러를 댔다. 내가 하고서도 신기했다. 트랙터를 떼서 다시 주차장으로 건너가 잠을 청했다.
얼마 후 누가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다른 직원이었다. 그는 서류를 내게 건네며 작업이 끝났다고 했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뒤를 봐주는 사람 없이 후진했다. 밥테일 트럭 후진이야 아무 일도 아니다. 트레일러를 연결해 다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오늘 더 이상 일은 못 한다. 어딘가에서 쉬어야 했다. 트럭커패쓰 앱으로 트럭스탑을 검색하니 인근에 하나 있는데 좁은데다 주차비로 20달러를 받는다 했다. 됐고. 고속도로 휴게소를 검색했다. 이곳도 몇 대 공간은 없지만 항상 한 자리는 있다는 리뷰가 있었다. 일단 거기로 가보자. 출발 후 얼마 안 가 생각나 오프 듀티 드라이브로 설정했다. 시간은 금이다.
비가 곧 멈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내렸다. 이 정도로 계속 내리면 홍수가 날텐데. 아니나다를까 홍수가 났다. 앞의 차들이 유턴을 했다. 삼 분의 일 쯤 잠긴 잠긴 차량이 물 속에 서 있었다. 트럭이야 이 정도는 지날 수 있다. 나는 계속 진행했다. 더 가니 아예 소방차로 길을 막았다. 건너편에는 반 이상 잠긴 차량들이 있었다. 큰일 났다. 좁은 동네길이라 유턴할 수도 없다. 다행히 왼쪽으로 우회로(迂廻路)가 있었다. 폭우로 길이 막혀 차량 진행 속도가 느렸다. 휴게소는 25마일 거리인데 이러다 시간을 다 써버릴 것 같았다. 오프듀티 드라이브는 1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드라이브로 바뀐다. DOT 시간도 줄어드는데 자칫하면 시간 위반에 걸릴 수 있다. 다행히 시간 내에 도착했다.
휴게소는 거의 자리가 없었다. 이거 곤란하다. 다른 곳으로 갈 시간도 없다. 휴게소를 거의 나갈 즈음에 자리 한 곳이 눈에 띄었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갔다. 내려서 살펴보니 트럭에 약간의 파손이 있었다. 우측 에어스커트 하단이 찢겨 덜렁거렸고 우측 드라이브 타이어 커버가 휘어졌다. 언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까 후진하다 그랬는지, 홍수로 잠긴 길을 뚫고 올 때 그랬는지. 에어스커트는 덕 테이프로 붙였다. 드라이브 타이어 커버는 떼서 휘어진 부분을 펴야 하는데 연장이 없다. 나중에 터미널에 가면 트랙터샵에서 수리해야겠다. 컵라면을 끓여서 어제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내일 아침과 오후에 각각 픽업을 해서 글피 아침까지 미시건 주에 배달하는 일정이다. 일단 피곤하니 자자. 저녁 무렵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내일 새벽 4시로 알람을 맞췄다. 오늘 트레일러 세척을 못 했다. 새벽에 문을 여는 곳은 없을 것이다. 트레일러가 그리 더럽지는 않다. 내일 새벽에 전화해보고 세착장이 문을 안 열었으면 손으로 대충 치우고 픽업 가야겠다.
뉴욕 나의 홈스테이트
오늘도 빡센 하루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트레일러를 살펴보니 어제 못 봤던 핏물이 흥건했다. 트레일러 바닥의 통로 몇 줄을 따라 핏물이 고였다. 어제는 폭우에 정신이 없어 나무 조각만 신경쓰고 바닥까지 자세히는 못 봤다. 트럭세차장에 전화를 걸어보니 자동응답기가 받는다. 평일 몇시부터 몇시까지 문 연다고. 트럭 전문세차장이 아니면 대게 주말에도 문을 닫는다.이런 곳은 다른 트럭 관련 사업을 하며 부수적으로 트럭 세차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비가 안 왔어도 어제 트레일러 세척은 할 수 없었다. 키친 타올을 들고 트레일러에 올랐다. 종이를 다 쓰며 최대한 닦았지만 역부족이다. 에라 모르겠다. 냄새는 안 나니 괜찮겠지.
5시에 휴게소를 출발했다. 5시 40분에 발송처에 도착했다. 트럭을 앞마당에 세우니 여자 야드자키가 뒷쪽에 세우라 했다. 사무실은 6시 돼야 문을 연다고 했다. 그녀는 혼자서 부지런히 트레일러를 이리저리 옮겼다. 6시가 넘어 사무실로 갔다. 이곳의 규칙은 짐을 실을 때 트럭 운전사가 닥 내부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런 경우는 SLDC 어카운트라고 한다. Shipper Load Driver Count의 약자다. 보통은 SLC다. 닥 배정되면 전화 주겠다기에 트럭에 와서 기다렸다. 기다리며 읽던 책을 마저 끝냈다. 9시가 넘어도 연락은 없다. 운동도 할 겸 팟캐스트를 들으며 회사 마당과 주차장을 걸어다녔다.
10시 넘어서 연락이 왔다. 24번 닥에 대라고 했다. 내 앞에 서 있던 트럭은 25번 닥에서 짐을 다 싣고 나갈 채비를 했다. 끝났으면 빨랑 나갈 일이지 서류작업 하는지 꾸물거렸다. 할 수 없다. 그 트럭을 옆에 둔 채 후진을 했다. 다 대려고 하니 그제서야 나갔다. 트럭이 멈추는 느낌이 들어 브레이크를 걸고 엔진을 끈채 뒤로 가봤더니 한 뼘 정도 닥과 떨어져 있다. 이상하다? 다시 운전석에 앉아 타이어가 헛 돌 정도로 뒤로 붙인 다음 가봐도 여전히 떨어져 있다. 이게 무슨 곡절인가 싶어 봤더니 닥 외부에서 트럭을 고정시키는 잠금 장치에 트레일러 범퍼가 걸려 있다. 원래는 이 장치가 트레일러가 밀면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중간에 내려가다 말고 멈췄다. 닥 안으로 들어가 보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트레일러가 닥에 밀착해야 문이 위로 열린다.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야드자키가 봐줄 것이라 했다. 야드 자키가 오더니 트럭을 앞으로 약간만 움직이라고 한 뒤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들고 그 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나와서 후진해보라고 했다. 그제서야 닥에 밀착이 됐다. 이래저래 늦어졌다. 2차 발송지 약속은 오후 2시라 10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닥 안으로 들어가니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 좋은 지게차 기사가 내 담당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말을 한 마디도 안 했다. 지금도 짐을 실을 수 없는 이유를 몸짓으로 설명했다. 내가 가진 안내문을 달라고 하더니 온도 규정을 가리켰다. 35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온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닥에 밀착이 안 된 상태로 한참을 있었으니 당연하다. 그가 들고 다니는 단말기에 온도계 기능도 있는 모양이다. 온도가 내려갈 때까지 잠시 기다리라는 시늉을 했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는 듣나? 소리는 듣는 것인지, 입모양을 보고 읽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직원과도 손짓으로 대화했다. 별로 소통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그는 핏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체크리스트를 보니 냄새와 파편이 중요했다. 핏물만 빼면 내 트레일러는 옆에서 싣고 있는 다른 트레일러보다 깨끗했다. 드디어 짐을 실을 시간이 됐다. 벙어리 지게차 기사는 팰릿을 하나 하나 트레일러에 순서대로 쌓아 나갔다. 나는 부지런히 팰릿 수를 셌다. 중간에 나더러 로드락을 설치하라고 했다. 손짓으로 설치할 방향과 위치를 지시했다. 약간 불안하게 쌓인 부분이었다. 짐을 다 싣고 나서 서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센 팰릿은 19개 정도인데 31개로 기록돼 있다. 중간에 2층으로 쌓은 팰릿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래서야 트럭 기사가 숫자를 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앞에 실었던 트럭들은 기사가 트럭에 앉아 기다렸다. 발송서류를 프린트해서 받고 지게차 기사와 손짓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사람 좋게 미소지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고 일하는데 지장이 없구나.
늦었으니 서둘러 가야했다. 서류 작업 마치고 출발 전화를 했다. 타이어 게이지 수치를 묻는다. 게이지를 재지 않았다. 닥에서 트레일러를 떼지도 않은 상태였다. 아차 싶어 다시 전화하겠다 했다. 닥에서 출발해 마당에 트럭을 세웠다. 트레일러 문을 닫으려는데 안 닫긴다. 마당이 기울어져 트레일러 몸체가 뒤틀린 탓이다. 예전에 네이슨과 다닐 때도 같은 문제로 고생한 적이 있다. 그 곳이 울퉁불퉁한 맨 땅이라 평평한 곳이 없었다. 진입로에 트럭을 대고서야 겨우 문을 닫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래치가 안 잠긴다. 내 온 체중을 실어도 꼼짝 않는다. 내 뒤에 탱커가 섰다. 영감님 기사였다. 혹시 해머 같은 것 있냐고 물으니 있다며 엄청나게 큰 랜치를 꺼냈다. 만화에서나 볼 듯한 크기의 랜치다. 그걸로 내려치니 래치가 잠겼다. 텐덤 타이어를 7번 홀에 맞추니 무게 균형이 비슷하게 맞았다. 약간 아래로 경사로라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자꾸 문자가 들어왔다. 리퍼에서 경고 코드가 떴단다. 설정 온도를 벗어났다는 내용이다. 트럭을 도로켠 비상 주차구역에 세웠다. 내려서 온도를 확인하니 35도로 유지해야 하는데 45도였다. 회사 지원팀에 메시지를 보냈다. 온도가 내려가고 있으니 지켜보라는 답이 왔다. 다시 달렸다.
업스테이트 뉴욕에 들어섰다. 허드슨 강을 건넜다. 뉴욕, 나의 홈스테이트.
오후 4시 40분에 두 번째 발송처에 도착했다. 이곳은 상시로 발송하는 곳이 아닌 모양이다. 회사 규모도 그렇고 분위기도 달랐다. 일반 회사 직원이 예외적인 일을 하는 듯했다. 복장이나 태도, 말투가 그랬다. 아무튼 닥을 갖추고는 있었다. 2번 닥에 대라고 해서 가보니 중형 박스트럭이 있었다. 직원이 트럭을 뺐다. 지금까지 솔로 시작하고 가장 어려운 환경이었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공간은 좁은데 자칫하면 앞쪽에 도랑으로 빠질 수도 있었다. 옆의 트럭도 좀 치워주지. 이 놈은 어디갔어? 각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조금씩 오가며 각도를 맞췄다. 트레일러의 제친 문짝이 트럭에 살짝 흠집을 내고 사이드 미러를 접었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남자 직원은 지게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발송품은 치즈 10상자였다. 팰릿 하나다. 총 중량도 내 몸무게 보다 가벼웠다. 그 정도 분량이었으면 둘이서 같이 들어 날랐어도 됐다. 나를 그 고생을 시켜야했냐? 나는 이제 어지간한 후진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1시간 30분 남았다. 오늘 쉴 곳을 찾아야 했다. 마음이 급해 서둘러 좌회전하다 교차로에서 시동을 꺼트렸다. 하이기어를 로우기어로 바꾸지 않았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까도 오면서 차선 바꾸다 옆에 붙은 승용차를 못 보고 부딪힐 뻔했다. 침착하자. 고속도로에 들어서 얼마 안 가 인포메이션 센터가 나왔다. 들어와보니 트럭 주차장은 텅 비었다. 왜 그런가 보니 앞에 디젤 엔진 공회전하면 티켓 준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리퍼와 APU도 디젤 엔진인데 그건 괜찮나? 다른 트럭은 잠시 섰다가 모두 금방 떠나버렸다. 넓은 주차장에 나 혼자 있기는 처음이다. 혹시나해서 회사 페북 그룹에 질문을 올렸더니 대체로 괜찮다는 의견이다. 리퍼와 APU는 공회전(Idling)이 아니라 원래 목적대로 가동(Run)이기 때문이란다. 트레일러 타이어 하나가 바람이 빠져 보였다. RA에 메시지를 보냈더니 TA에 가서 체크하란다. 시간도 없고 귀찮다. 내일 하겠다 했다. 아침에 상태봐서 결정해야지. 11시간 거리 남았다. 내일 쉴 틈 없이 종일 달려야 모레 아침에 시간 맞춰 배달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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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오늘도 오전 4시 기상. 새벽형 인간이 됐다. 트레일러 바퀴는 여전히 바람이 좀 빠진 상태다. 주차장에 나 말고는 없더니 지금은 트럭이 여럿 들어왔다. 빈 자리도 있었다.
9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트레일러 타이어에는 좋은 일이다. 타이어 공기압이 낮으면 도로와 마찰면이 많아져 높은 열이 난다. 심하면 타이어가 찢어 지거나 불이 나기도 한다. 커다란 분무기 앞을 달리는 것 같다. 가는 빗방울이 와이퍼로 닦아 내기 바쁘게 시야를 가렸다. 그러다가 한동안은 거센 물줄기가 퍼부었다.
저 앞에서 경광등(警光燈)이 번쩍였다. 공사 중이거나 경찰차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왼쪽 차선으로 옮겨 진행한다. 옆 차선에 차가 있어 이동할 수 없을 때는 속도를 줄여 서행한다. 네이슨에게 배운 내용이다. 좌측 깜빡이를 넣었다. 바로 옆에 더블 컨테이너를 단 트럭이 나보다 조금 빨리 달리고 있어 옮겨갈 수 없다. 아예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그 뒤로 붙기라도 할텐데. 속도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경찰차를 지나간 순간 바로 앞에 차량이 멈춰 서 있는 게 보였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옆 차선으로 급히 꺾다가는 뒤에서 오는 차량과 부딪힐 수 있다. 아니 그 전에 트럭이 전복(顚覆) 될 수 있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을 급정차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추돌 사고를 예상했다. 거짓말처럼 충돌 직전에 히마찰이 멈췄다. 충돌 방지 장치가 일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앞서 차량은 사고난 차량을 싣고 움직이려는 토잉 트럭이었다. 그러면 경찰차가 갓길에 서 있어서는 안 된다. 토잉 트럭이 사고 차량을 끌고 길 가로 나갈 때까지 차선을 막고 있어야 한다. 경찰차가 갓길에 서 있으면 다른 차량도 갓길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른 아침이라 정신이 말짱했기에 망정이지 졸음운전이라도 했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꺼진 시동을 켜고 트럭을 움직여 얼마 떨어지지 않은 휴게소로 들어갔다. 대쉬캠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 개인 타임라인과 회사 페북 클럽에 각각 올렸다.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타임라인에는 모두들 놀라며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회사 클럽에서는 우선 순발력 있는 대처를 칭찬하는 반응, 빗길에서 과속을 했다는 반응(실제 과속은 하지 않았다. 동영상이 실제보다 더 빨라 보일 뿐), 경찰차의 위치 오류를 지적하는 반응 등 다양했다. 나는 종일 운전하느라 한 마디도 댓글을 달지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격렬히 토론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일기 쓰고 당시 상황을 댓글로 올려줘야 할 것 같다. (일반인과 트럭커의 반응이 다른 것은 전문영역 차이도 있고, 내가 올린 비디오 버전 차이도 있는 듯 하다. 프라임 그룹에는 사고를 모면한 이후의 상황이 조금 더 들어가 있다. 그래서 더 많은 토론 거리를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펜실베이니아에 들어서 TA 트럭스탑에 들렀다. 트레일러 타이어 좀 점검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단다. 일하는 기술자가 지금 1명 뿐이란다. 그럼 됐고. 다시 출발했다. 타이어를 만져보니 조금 열이 나기는 했지만 금방 어떻게 될 것 같진 않았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목적지에서 5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TA에 갈 수 있을 듯 했다. 운전 중에 졸리면 트레일 믹스로 군것질을 했는데 졸음은 달아나지만 배가 너무 부른 단점이 있다. 오하이오를 지나 미시건에 들어 섰다.
TA 트럭스탑에 들어섰다. 카서비스로 가서 트레일러 타이어 공기압이 낮은 것 같아 체크 좀 해달라 했더니 에어펌프가 무료이니 그냥 넣으라 했다. 종업원이 성의가 없다. 트레일러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처럼 공기를 주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트레일러를 에어펌프에 가까이 대고 일하는 중인 기술자를 불렀다. 트레일러 타이어에 어떻게 공기 넣는 지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흔쾌히 일하다 말고 나와서 봐줬다. 그가 타이어를 보더니 트레일러 밑으로 들어가 무엇인가를 만졌다. 타이어 공기압 조절 스위치가 꺼져 있었다고 했다. 트레일러 타이어는 자동으로 공기압을 조정하는 장치가 있다. 그런데도 공기압이 계속 낮아서 이상하다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스위치가 어떤 것이냐 물었다. 그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한 20분에서 1시간 반 정도 트레일러 브레이크를 푼 상태에서 시동을 켜 놓으면 공기가 찰 것이라 했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수 백대가 들어가는 큰 규모다. 오후 5시면 반도 차지 않을 시간이다. 전진 주차로 편한 자리에 댔다가 멀찍한 곳에 후진으로 다시 댔다. 그 잠깐의 시간으로도 타이어는 눈에 띄게 제 모양을 찾았다. 타이어 가장자리가 마모된 정도로 봐서 한참을 그 상태로 달렸던 모양이다.
이제 샤워할 시간. TA에는 잘 오지 않았다. 적립카드가 없기도 했고, 다른 트럭스탑으로 모느라 그랬다. 네이슨도 TA에는 잘 안 다녔다. 나는 며칠 전에야 적립카드 만들고 임시 카드를 받았다. 혹시 이것으로 샤워가 가능한지 물어봤다. 키오스크 가서 샤워 신청하면 된단다. TA는 웬만하면 다 무인단말기로 처리하네. 신청할 때도 키오스크에서 했는데. TA의 장점이 있었다. 60갤런만 넣으면 무료 샤워가 가능했다. 현금으로 샤워하려면 15달러다. 러브스나 파일럿은 100갤런 이상을 넣어도 샤워 포인트가 모자랄 때가 있다. 지금은 러브스에서 늘 무료로 할 수 있지만 한시적 혜택이다. 오늘 오면서 파일럿에서도 주유를 해서 1회 샤워권을 확보했다.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가급적 여러 트럭스탑의 샤워포인트를 갖는 것이 운행 계획 짜기에 편리하다.
내일도 새벽 4시 기상이다. 프라임 페북 그룹의 토론이 격화(激化)되는 모양이다. 가서 중재해야겠다.
현진건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역설적 표현이다. 주인공에겐 운수 나쁜 날이다. 아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나도 딱히 좋은 일이 생긴 것은 없다. 나쁜 일을 피했을 뿐이다. 나쁜 일이 안 생긴 것으로 운수가 좋은 날이라면 이 세상 대부분 사람들에게 거의 매일이 운수 좋은 날이다. 사람들은 이럴 때 운수 좋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안 좋은 일이 생기다 말았을 때 운수 좋다고 한다. 고통을 겪지 못한 사람은 행복도 잘 모른다. 고통과 행복은 한 쌍으로 다닌다. 동전과 같다. 이쪽이 나오면 기뻐하고 저쪽이 나오면 슬퍼하고. 고통과 행복이 동전의 양면임을 깨닫는다면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그다지 없다. 오늘 그다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었다면 그대는 운수 좋은 날이었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라.
슬럼프라기에는 미안한 실력
오늘 조짐이 좋지 않았다. 제발 별 일 없이 넘어가기만을 바랬다. 다행히 그렇게 될 것 같다.
언제나처럼 오전 4시 기상. 배달처로 향했다. 5시 15분쯤 도착했다. 그런데 6시에 문을 연다고 했다. 트럭을 돌려 근처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야했다. 6시에 가보니 트럭이 줄을 섰다. 아침마다 이 시간이면 난장판이겠구나. 정문을 통과하고 나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내 컨디션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후진이 잘 안 됐다. 그리 어려운 곳도 아닌데. 파란 불이 들어오면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한참 후에 트레일러가 흔들거렸다. 얼마간 조용하더니 다시 흔들렸다. 일을 띄엄띄엄 하나보다. 나는 밖으로 나가 운동을 했다. 너무 앉거나 누워서만 생활한다. 하체 운동이 필요하다. 30분 정도를 마당에서 걷거나 뛰었다. 그래도 파란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화물 예약이 들어왔다. 오하이오에서 오후 1시가 약속 시간이다. 거리는 80마일이다. 여기서 언제 끝나냐에 달렸다. 트레일러 세척도 해야하고 가는 시간도 1시간 반은 잡아야 한다. 11시가 넘어 디스패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직 짐 안 내렸냐고. 안 내렸다하니 알았다며 예약을 취소했다. 아까워라. 가만히 보니 파란불만 안 들어온 것이 아니라 빨간불도 안 들어왔다. 아까 닥에 댈때는 파란불이 들어왔었다. 다른 트럭들은 다 떠났는데 나만 이렇게 오래 기다릴 리가 없다. 나는 사무실로 갔다. 15번 닥에 아무 불도 안 들어왔는데 작업 안 끝난 것이냐고 물었다. 여직원은 하역 인부들에게 물었다. 다들 잘 모르는 눈치였다. 서류를 찾아보더니 하역이 끝났다고 말했다. 이런 하필 내 자리가 그랬을까. 서류 작업 마치고 짐 받을 준비가 됐다고 알렸다. 1시간 정도 기다려도 금방 작업이 들어오지 않았다. 마냥 있을 수는 없어 가까운 트럭 세차장으로 향했다. 트레일러 세척을 마치자 마자 다음 작업이 들어왔다. 불과 얼마 안 떨어진 거리다. 며칠 전에도 그러더니. 글렌은 내가 향하는 곳 근처에서 화물을 주는 재주가 있나? 그런데 시간이 7시~9시 약속이다. 그 시간은 내 업무시간 이후다. 일단 가보자.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 가면서 4거리 교차로에서 좌회전 하다 두 번이나 시동을 꺼트렸다.
정문 통과는 아무 문제 없었다. 야드 자키가 오더니 9번 닥에 대라고 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보였는데 만만치 않았다. 하필 건너편에 트럭이 한 대 서 있어 어떤 각도로 틀어도 진로에 걸렸다. 게다가 오늘따라 후진이 무진장 안 된다. 이걸 슬럼프라고 부르기에는 내 본래 실력이 턱없다. 후진하다 옆에서 훈수 두는 야드자키의 트럭이 트레일러에 부딪혔다. 트레일러 옆 면 테두리가 살짝 휘었다. 야드자키 트럭은 별 탈 없어 보였다. 그 사고를 겪더니 그는 가버렸다. 오늘 제발 하루 아무 일 없기를 바란다. 어렵게 닥에 대고 사무실로 가니 33번 닥에 있는 트레일러를 가져가라고 했다. 작업이 끝나면 연락주겠다고 했다. 밥테일로 주차하고 기다렸다. 여기도 함흥차사(咸興差使)다. 하긴 원래 약속이 7시 이후다. 기다리며 시간 계산을 해봤다. 2시간 30분 남았다. 오늘은 어차피 운전이 힘들다. 1차, 2차 배달처 모두 코네티컷이다. 내일 밤 11시까지 가야할 거리가 710마일이다. 불가능하다. 글렌에게 연락했다. 내일 리파워를 해야 한다고. 휴식 끝나는대로 출발해 최대한 가라고 했다. 자기네들이 리파워를 맞춰보겠다 했다.
근처에 월마트가 있었다. 걸어가도 30분이 안 걸리는 거리다. 운동 삼아 걸어갈까? 그러다 연락이 오면? 밤 12시에 문 닫으니 이따 짐 받고 가볼까? 트레일러 끌고 주차장에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한밤중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잠이 들었다. 자다 생각해보니 밥테일로 지금 그냥 가면 되잖아 싶었다. 밥테일 트럭은 그냥 큰 차일 뿐이다. 얼른 트럭을 몰고 나갔다. 걸어갔어도 20분이면 충분할 거리였다. 주차장에 트럭을 세우고 들어가 쇼핑을 했다. 별로 살 것은 없었다. 티셔츠 두 벌, 청바지 한 벌, 식품 약간을 샀다. 옷 값만 40달러 정도 들어 총액은 70달러가 넘었다.
다시 발송처로 돌아와서도 시간 여유가 있었다. 8시가 넘어서야 전화가 왔다. 화물은 야채였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각각 온 것들이다. BJ와 홀푸드로 간다. 어차피 나는 시간이 지나 못 움직인다. 자정이 넘어야 출발할 수 있다. 여유롭게 서류 작업하고 출발 전화도 했다. 화물이 가벼워 무게 신경 쓸 일도 없다. 무게와 상관 없이 운전하기 편하게 11번 홀에 트레일러 바퀴를 맞췄다. 오늘 트레일러를 바꾼 것만으로도 홀가분하다. 타이어 문제로 신경 쓰게 하더니, 이제는 오른 쪽 문을 혼자 힘으로 닫기 어렵다. 오늘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닫았다. 래치를 잠그기 위해 벽돌까지 사용했다. 막판에는 자키 트럭과 충돌까지 하고 수난의 트레일러다. 새로 연결한 트레일러는 손쉽게 열고 닫힌다. 오늘은 1시간 운전했으니 거의 일을 못한 셈이다. 그래도 아까 화물을 놓친게 다행이겠지? 오늘 컨디션으로는 운전 안 하는 게 좋았을테니. 별 일 없었으니 운수 좋은 날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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