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인륜을 끊는 것보다 잔혹한 범죄는 없다”

 

 

Newsroh=노창현 칼럼니스트

 

 

‘평양시민’ 김련희씨(48).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탈북민들이 있었지만 김련희씨는 참으로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탈북브로커에 속아 중국에서 한국에 오게 되었고 온 직후부터 고향인 북녘으로 보내달라고 눈물로 호소(呼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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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방송 캡처>

 

 

김련희씨 사연을 처음 접한 것은 2015년 8월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NYT는 당시 기사에서 2011년 탈북한 김련희 씨가 자신이 남한에 온 것은 처음부터 실수였다며 북한에 돌려보내줄 것을 탄원(歎願)하는 기구한 스토리를 전했습니다.

 

NYT에 따르면 김씨는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중국에 여행을 갔다가 간질환이 생겨 치료를 하게 됐습니다. 이때 한 브로커가 한국에 밀입국해서 몇 달간 돈 벌고 중국에 올 수 있다는 얘기를 하며 한국행을 권유했습니다. 치료비를 갚기 위해 브로커와 계약을 맺은 그녀는 이내 후회하고 여권(旅券)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브로커는 거부했습니다. 그녀는 여권없이 중국에서 체포되면 남한에 가려고 한 반역자가 될 것이라는 말에 절망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순진했습니다. 겁에 질린 나머지 일단 남한에 가서 자신의 처지를 이해시켜서 집에 돌아올 수 있게 하기로 마음먹었다는군요. 태국을 통해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탈북을 인정하는 서명을 하는 등 남한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남한 도착후 당국에 브로커에게 속아서 잘못 왔다며 북한에 돌려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달간 단식투쟁에, 밀항(密航)을 시도하고, 위조여권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급기야 탈북자 주소를 휴대폰에 저장한 후 자신이 간첩이라며 빨리 잡아가라고 경찰에 자진신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혹시 간첩이라도 되면 이 나라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골치덩어리인 저를 강제추방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어요."

 

그러나 기대했던 추방대신 그녀는 2014년 7월 간첩죄와 여권위조 등의 혐의로 체포 기소돼 2년형이 선고됐고 9개월 복역후 가석방됐습니다.

 

김련희씨가 순간의 실수로 어처구니없는 운명에 처했다면 2016년 4월 발생한 중국의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은 박근혜정권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인권유린 범죄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특기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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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캡처>

 

 

아직도 많은 한국의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 ‘기획탈북’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쓰는데 더도 덜도 아닌 ‘국가기관이 개입된 천인공노할 납치범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JTBC의 탐사보도로 알려졌다시피 국정원과 하수인 내지 공범격인 식당 지배인은 종업원들이 유인 납치 됐다는 사실을 육성으로 증언했습니다. 언필칭 국가기관이라는 국정원은 총선을 닷새 앞두고 북한식당 여종업원 12명을 집단 귀순(?)시키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으로 새누리당에 도움을 주려 했지만 우리 국민들이 언제까지 천치 바보노릇을 하겠습니까. 유권자들은 정권의 속셈을 빤히 꿰뚫어봤고 선거도 여당의 참패로 귀결됐습니다.

 

결국 꽃다운 처녀 열두명만 속아서 창졸간에 사랑하는 부모 가족과 생이별의 고통을 겪고 조국을 배신했다는 엄청난 누명만 쓰게 된 꼴입니다. 민변은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과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 등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 서울 중앙지검 공안2부가 이 사건을 맡았지만 수사 진척 상황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북한에서는 지난 1월 남북대화의 물꼬를 튼 첫 번째 고위급 회담에서 남측이 이산가족상봉 문제를 거론하자 “국정원이 납치한 열두명의 종업원부터 돌려보내라”고 면박을 줬습니다. 그때만해도 남한 당국은 어정쩡하게 발뺌을 했지만 이젠 정보기관이 개입한 최악의 인권유린사건이라는 사실을 부인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것을 보면 북한측이 여종업원 문제를 조건으로 달지 않고 통 크게 나온 것으로 짐작됩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봅시다. 만일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가 해외에 있는 남한식당 여종업원 열두명을 유인납치했다면 우리 정부가 가만 있었겠습니까. 국민들이 분노하고 언론도 생난리가 나서 유엔을 비롯하여 온 세계에 “북한의 악랄한 인권범죄”를 규탄했을 것입니다. 북한을 악마화하고 싶어하는 미국, 일본의 수구세력 힘까지 보탠다면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이 하나 더 추가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리 남북간에 훈풍(薰風)이 분다 해도 과연 우리라면 생이별당한 열두명 처녀의 인권을 도외시한채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요. 만약 북한이라면 4.27 정상회담 전후로 애처로운 열두명의 처녀들을 그리운 고향에 보내줬을거라는 생각은 과도한 착각일까요. 인권을 소리높여 외쳐온 문재인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요. 정황(情況)을 몰라서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나요? 하늘이 알고 땅도 알고 당사자가 아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기때문에 실정법을 위반할 수 없다’는 흰소리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기관이 희대의 인권유린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전 정권에 일어난 일이라 우리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방기(放棄)한다면 오늘의 일본에 대해 과거 위안부성범죄에 대해 인정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요구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많이 늦었습니다. 문재인정부는 더이상 면목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박근혜정권이 자행한 국정원의 납치범죄에 대해 국내외에 공식 사과하고 이들의 자유의사를 확인하여 조건없이 돌려보내야 합니다. 비록 전 정권의 잘못이라도 현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하면 세계는 문재인정부의 진정성을 더욱 높이 평가할 것이며, 북한 또한 그에 상응하는 화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들중 남한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북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때문에 본심을 얘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그들의 선택에 맡겨야 합니다. 작은 우려로 더 큰 피해를 방치해선 안됩니다. 남한정부는 피해자들과 가족에게 어떠한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유인납치된 시점 이전으로 완전하게 되돌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곳 잊지 마십시요.

 

더불어 김련희씨 문제도 개인의 거주 이전이나 여행의 자유를 존중하여 더이상 통제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얼마전 김련희씨는 꿈에도 그리던 여권을 발급받았습니다. 이젠 정부가 그녀가 어떻게 움직이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든, 미국에 가든, 북녘 고향에 가든 그것은 김련희씨의 선택입니다. 이미 여러명의 탈북민이 그런 식으로 재입북을 했습니다. 심지어 재탈북해 남한에 다시 들어온 경우도 있습니다. 공식송환의 선례가 될까봐 주저한다면 눈 질끈 감는 것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일 것입니다.

 

"어떤 자유나 물질적 유혹이 온다 해도 가족과 집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난 굶어죽더라도 가족이 있는 북으로 가고 싶어요."

 

남한에서 홀로 일곱 번째 한가위를 맞은 김련희씨. 그녀는 올해도 보름달을 바라보며 부모와 딸, 남편이 있는 고향이 그리워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을 것입니다. 국가가 인륜을 끊는 것보다 잔혹한 범죄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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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방송 캡처>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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