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일전(心機一轉)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참담함 자체였다. 며칠이나 됐다고 또 사고라니. 솔로 데뷔한 지 50여일째 벌써 사고 리포트만 세 번째다. 회사에서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지 않을까. 앞서 두 번의 사고가 자해형이라면 오늘은 피해 상대방이 있는 가해형이라는 점에서 더욱 나쁘다. 세 번의 사고는 모두 예방 가능했다. 순전한 나의 부주의 탓이다. 티 안 날 정도로 사고낸 것은 또 몇 번인가. 이대로는 안 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까다로운 공간이었다는 것은 변명이 안 된다. 다른 드라이버들은 그 공간에 무사히 닥킹하지 않았는가. 정상적으로 셋업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라는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을 해야할 공간이다. 앞서 드라이버들이 후진하는 것을 유심히 봤다.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을 피해 닥킹했다. 나도 따라 흉내를 내봤지만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을 했다. 내가 후진할 공간을 만들어준다고 자리를 비켜주었던 옆 트럭이 내가 대충 자리를 잡는 듯 하니까 어느새 제 자리에 돌아왔다. 한쪽만 신경 쓰며 후진하던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꺾어진 트랙터의 좌측 후면이 왼쪽에 있던 볼보 트럭의 범퍼를 쳤다. 나는 트럭에서 내리며 머리를 감싸안고 탄식을 질렀다. 사고 처리는 나중이고 우선은 닥킹을 마무리해야 한다.
어렵게 닥킹을 마치고 사고 처리 수순에 들어갔다. 사진 찍고, 상대방 차량 정보 수집하고, 면허증까지 교환했다. 퀄컴 매크로로 회사에 사고 보고하고 안전부서에 전화로도 보고했다. 상대방 운전자는 나보다 열 살쯤 많아 보였는데 65년생이었다. 플릿매니저 글렌에게도 연락했다. 나 말고도 누가 사고를 낸 모양이다. 24시간 사이에 사고가 두 건이라 했다. 글렌은 나를 스프링필드에 보내 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겠다고 예고했다.
나는 트럭운전에 소질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내가 안일(安逸)했다. 후진에 문제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완할 노력이 부족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더 자주 내리고, 더 깊이 생각하고, 연습도 필요했다. 드론이라도 사서 공중에서 전송하는 영상을 보며 후진을 익혀야 했다.
심기일전.(心機一轉) 이후 어떠한 사고도 내지 않는 것을 물론이거니와 상위 1% 최고 수준의 트럭 운전 기술을 갖추겠다.
보살행은 자신을 위한 길
스프링필드 본사에 왔다. 핏스톤 터미널을 떠난 지 일주일만이다. 사람 마음이 이상하다. 전에는 이곳이 고향처럼 올 때마다 마음이 푸근했다. 이제는 핏스톤이 있어서 그런가 예전 같지 않다. 스프링필드 터미널은 커서 편리하지만 그만큼 북적거려 불편한 점도 있다. 히마찰의 엔진오일 소모량 때문에 점검을 받으려 트랙터샵에 갔다. 월요일 밤에나 약속이 가능하단다. 그 시간까지 여기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움직여야 돈을 버는 트럭커다. 엔진오일을 또 한 통 받았으니 그것으로 일주일을 버텨보자.
다행인 것은 타이어 베이는 오늘밤 11시로 약속이 잡혔다. 터미널 인바운드 베이에서는 들어오는 트랙터와 트레일러를 검사한다. 몰랐는데 우측 앞 드라이브 타이어 측면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언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번 휠커버가 파손됐을 때 같이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끌고온 트레일러를 야드에 내려 놓는 데 젊은 친구가 따라 와서는 그 사실을 알려줬다.
내일 오전 7시에는 캠퍼스인에서 프라임 안전 코스를 수강한다. 글렌이 나를 등록시켰다. 오클라호마 시티로 가던 트레일러를 본사에 내려놓은 이유다. 교육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르겠으나 그 이후에 짐이 실린 다른 트레일러를 받아 나가면 된다. 이제는 캠퍼스인에서 묵으려면 별도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컴퍼니 드라이버라서 밥테일로 나갈 수도 없다. 아침 일찍 셔틀 버스를 타야 한다. 내일 상황 봐서 월마트에서 식품을 좀 사고, 기회가 되면 한국 마트에 들러 김치와 반찬도 좀 사야겠다.
글렌 얘기로는 지난 주에 우리 플릿에서 사고가 네 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일으켰다.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는 후진만 서툰게 아니라 전진도 서툴다. 특히 좁은 틈에 충분한 각도를 확보하지 않고 파고 드는 버릇이 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트레일러를 다치지 않고 간신히 빠져 나오곤 했다. 그 행운이 계속 된다는 보장은 없다. 회전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의하지 않으면 뒷바퀴가 무엇인가를 밟고 넘거나 트레일러 측면 하단부가 장애물에 부딪히기 쉽상이다.
오늘 오다가 들른 트럭스탑에서는 경찰차가 서 있었다. 누가 후진을 하다 다른 트럭 범퍼를 친 모양이다. 내가 낸 사고에 비하면 경미해 보였다. 그런데도 경찰을 불렀다. 그러고보니 나는 상대방 운전사도 잘 만난 셈이다. 경찰을 부르면 DMV 공식 기록으로 남는다.
그 당시 만약 상대방 운전사가 내가 후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나서서 뒤를 봐줬더라면 어땠을까?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나몰라라 다른 사람과 잡담을 나눴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남을 돕는 행위는 자신을 위함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터미널에 오면 빨래와 샤워는 기본이다. 스프링필드 카페테리아는 24시간 여는데다 메뉴도 괜찮다.
글렌에게는 9월 12일부터 15일 사이에 집에 가겠다고 예고했다. 아들 녀석 교정치과 라이드 일정 때문에 그리 잡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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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마찰의 새 신발
본사에는 물량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들어오는 트레일러도 많지만 받아서 나가려는 트럭도 많기 때문인지?
어제밤 11시에 시작한 타이어 교체는 12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매카닉이 보더니 옆에 균열이 생긴 타이어보다 트레드가 갈라진 반대편 타이어를 더 염려했다. 둘 다 모두 재생 타이어다. 중고 중에서 상태가 신품에 가까운 것으로 두 개를 골랐다. 그는 처음에는 더 낡은 것으로 추천했다. 리즈 오퍼레이터는 자비 부담이기 때문이다.(트럭 타이어는 상당히 비싸다) 내가 컴퍼니 드라이버라고 하자 그제서야 부담 없이 고르라 했다. 현재 달려 있는 드라이버 타이어보다 상태가 좋았다. 낡은 재생 타이어 두 개는 버리고 뒷 드라이브 타이어를 앞으로 보냈다. 새(?) 중고 타이어를 뒤에 달았다. 지난 번 후진 사고로 머드 플랩도 약간 돌아갔다. 얘기도 안 했는데 그가 작업하며 바로 잡아 놓았다.
7시에 시작한 안전코스는 오전 중에 끝났다. 5시반에 일어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캠퍼스인으로 갔다. 교육을 받는 사람은 20명이었다.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온 경우, 컴퍼니에서 리즈로 바꾼 경우, 리즈에서 컴퍼니로 바꾼 경우, 나처럼 순수 안전교육 등 참가 이유는 다양했다. 교육 내용은 핏스톤에서 업그레이드 할 때 봤던 비디오였다. 다른 점은 시뮬레이터실에서 몇 가지 상황 시나리오에 따른 코스 주행이었다. 이것도 다소 형식적이었다. 20명인데 시뮬레이터는 9대다. 내가 속한 조는 3명이었다. 나는 딱 한 번 운전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방어운전코스(defensive driving course) 수료증을 받았다. 업그레이드를 하는 사람들은 남아서 주행과 후진 테스트를 봐야했다.
걸어서 근처에 있는 월마트로 갔다. 처음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하다가 카트로 바꾸었다. 구입 목록에 있는 것 외에도 눈에 띄는 소소한 몇 가지를 더 샀다. 자꾸 살림이 는다. 운동복 바지는 가볍고 편해서 마음에 든다. 신라면 4봉지 들이 한팩과 사발면 한 개를 샀다. 한국쌀과 맛이 비슷한 칼로스 쌀도 샀다. 다른 월마트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외 야채, 과일. 식빵, 계란, 감자 샐러드 등을 샀다. 작업용 장갑, 양말, 문구, 탈취제도 샀다. 원룸 생활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트럭 내부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 냄새가 밴다. 한인마트는 안 가기로 했다. 김치는 남아 있기도 하고 냉장고에 보관할 공간도 없다. 월마트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출발 채비 후 인아웃 베이 옆에 있는 라인업으로 갔다. 현재는 나갈 트레일러가 없다고 두어 시간 있다 오라고 했다. 트럭에 돌아와 퀄컴으로 일할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월요일 오전 6시까지 테네시 주로 가는 화물이 예고됐다. 그것이 최선이란다. 트레일러는 오늘 밤에 들어올 것이라 했다. 466마일이니 내일 아침에 출발해 적당한 거리에서 밤을 새고 새벽에 발송처로 가면 된다. 오늘은 체육관에서 운동도 하며 쉬어야겠다.
엔진오일을 찍어 보니 최소 라인 가까이에서 찍혔다. 엔진오일을 보충하지 않고 며칠 타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1갤런씩 오일을 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엔진 소리나 진동, 출력으로 봐서 그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 유투브에서 보니 엔진오일 게이지 스틱 문제일 수도 있다고 했다. 정말로 오일이 새거나 먹는다면 엔진오일 압력이 떨어질 것이고 경고등이 들어올 것이다. 트랙터샵에서 점검을 받더라도, 며칠씩 기다릴 필요가 없는 핏스톤 터미널을 이용하자.
창작의 즐거움 창작의 괴로움
역시나 한가한 일요일이다. 어제까지 합쳐서 한가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출발 준비 마치고 나가려는데 아웃 바운드 베이에서 제동이 걸렸다. 트레일러 수리가 필요 하단다. 뭐? 어제 저녁에 들어온 트레일러여서 난 이미 수리 마치고 야드에 세워져 있는 줄 알았다. 아예 수리는 시작도 안 했다. 여유롭게 가서 적당한 곳에서 쉬고 내일 새벽 출발하려던 계획은 일단 무산(霧散)됐다. 그래도 오전 중으로 출발한다면 중간쯤에서 쉴 수 있으리라. 다시 야드에 트레일러를 내려 놓았다. 트레일러 샵으로 가서 트레일러 번호를 알려주고 수리가 끝나면 전화를 달라고 했다. 잠을 더 자자.
아침에 일어나서도 트레일러가 야드에서 움직인 흔적은 없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겠다. 지금 출발하나 안 하나 상관 없이 나에게는 하루 24시간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이 시간은 지나간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계획에 없던 여유 시간이 생기면 대부분 그냥 흘려 보냈다. SNS를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했다. 휴식 시간도 중요하다. 재충전은 필요하다. 자발적으로 그런 시간을 보낸다면 좋다. 심심해서 마지 못해 그런 시간을 보내면 우리는 시간을 허비했다고 느낀다. 정치, 연예, 사회 뉴스에 특정인을 질책(叱責)하거나 조롱하는 댓글을 쓰거나 읽으면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는 자책감이 든다. 간혹 좋은 글도 있지만 대부분 말초 감각을 자극하는 저열한 글이다. 모래가 90% 쌀이 10%면 더 이상 쌀이라 부를 수 없다.
오늘 무엇을 할까? 할 일은 넘친다. 운동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그러면 질문을 바꾸자. 오늘 무엇을 하면 가장 즐거울까? 감각을 만족시키는 일은 그 순간에만 즐겁다. 평소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웠나? 내 경우에는 창작활동을 할 때 가장 즐거웠다. 시나리오 쓸 때, 영화 찍을 때, 연기 할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름 카메라가 차르륵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창작활동은 무엇인가? 글쓰기가 가장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자. 일기는 일어난 일을 쓰는 것이니 창작에 넣기 어렵다. 상상력을 총가동 할 수 있는 글이 뭘까?
국민(초등)학생 때부터 SF 소설을 썼다. 당시 SF 소설을 좋아했다. SF전집 60권 세트 중 첫 10권을 부모님이 사주셨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나머지 50권도 사달라고 졸랐다. 부모님은 난처해 하셨다. 우리집은 가난했다. 빈곤을 느끼지 못했기에 나는 자라는 내내 우리집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근검할 뿐이라고. 아무튼 추가로 낱권 몇 권을 더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SF에 대한 관심도 같이 식었다. 그때 60권 세트를 모두 샀으면 SF 작가가 됐을까? 얘기가 빗나갔다. 당시 우주전함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내 배경지식에 한계를 느끼고 중도에 포기했다. 초등학생에게 전함이나 항공기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쓰고 나니 내가 읽어도 너무 부족했다. 그 이후로 소설은 쓰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문집 만든다고 시는 몇 편 썼다. 대학가서는 단편 시나리오를 몇 편 썼다.
몇 십년 동안 한 적이 없는 일을 오늘 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 속에 욕구는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첫 줄을 쓰기 위해 한참을 생각했다. 쓰고 나니 역시 부족하다. 소설가들은 대단하다. 문장을 다루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창작의 즐거움보다는 창작의 괴로움이 더 크다. 운동 후 근육이 결린 것처럼 기분 좋은 고통이다. 남들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읽으며 이리저리 생각과 감정이 떠다닐 수 있겠으나 남는 것은 없다. 오늘 같은 시간이 쌓이면 허접해도 작품이 남을 것이다. 아직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도 모른다. 작품 속의 인물은 나름의 생명력이 있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이라 믿을 뿐이다. 영원히 미공개로 남을 습작(習作)이어도 좋다. 한 편의 이야기를 문학 형태로 마무리를 짓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가 끌 트레일러가 수리창에 들어간 것은 확인했다. 언제 끝날 지는 모른다. 오후 6시 이전에 끝나면 정시 배달이 가능하고, 그 이후라면 배달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아마도 밤새 운전을 할 가능성이 크다. 잠을 좀 자두는 게 좋겠지.
모든 상황을 내 계획대로 만들 수는 없더라도 내 시간을 어떻게 쓸 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그러자면 평소 플랜B, 플랜C까지 생각해 두면 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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