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자정 쯤에 떠날 생각이었는데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깰 때 출발하려고. 그랬더니 아침 5시까지 잤다. 출발 준비 하고 있는데 주말 디스패처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곧 출발할거냐고? 응 10분내로 갈거야.
출발한 지 한 시간 좀 지나 도로가 막혔다. 앞에 교통사고다. 오늘도 도로에서 시동 끄고 30분 휴식이다.
거의 모든 구간을 77번 도로를 타고 달렸다. 자주 다니다보니 경치(景致)도 눈에 익다.
메이시스 집하장에 도착했다. 경비 아주머니가 어디에 대고 빈 트레일러 찾아서 나오라고 알려줬다. 그 넓은 공간에 움직이는 트럭은 하루 종일 나 혼자였다. 후진연습 최적의 장소네. 트레일러 내려놓고 빈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했다. 문을 열어보니 먼지와 나무 부스러기가 많았다. 주변 트럭 세차장에 전화를 했다. 역시나 자동응답기로 넘어간다. 야간과 주말에는 일 안 한다. 내일 짐을 실어야 한다. 시간도 있겠다 손바닥만한 빗자루로 쭈그려 앉아 트레일러 내부를 앞에서부터 쓸어냈다.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허리도 아팠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 쓸렸다. 다 쓸고 나니 세척한 것 마냥 깨끗했다. 사람들이 낙엽용 송풍기나 큰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 이유가 있구나. 트레일러 세척비야 회사에서 나온다. 돈이 아니라 시간 때문에 그런 도구가 필요하다. 결국 시간은 돈이기도 하다.
나가려는데 남자 경비원으로 바뀌었다. 트레일러 릴리즈 넘버를 대란다. 나는 내가 내려 놓은 트레일러 릴리즈 번호 밖에 모르지. 디스패처에게 연락을 했다. 답이 없다.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여러 번 문자를 보냈다. 그제서야 세일즈에 알아 보고 있다고 답이 왔다. 트럭을 후진해 철책 옆에 세우고 기다렸다. 경험상 주말에 세일즈와 연관되면 하세월이다. 별 기대 없이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아직 멀었냐? 나 14시간 다 돼간다. 그러고는 라면을 끓였다. 어제 먹다 남은 밥과 먹을 참이다. 그런데 번호를 알려왔다. 오늘 담당은 이름을 보니 여자던데. 역시 남자보다 책임감 있게 일을 잘 하는구만.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니. 그러거나말거나 라면에 밥은 말아 먹어야지.
번호를 알려주니 그제서야 통과다. 그냥 봐줘도 되겠구만. 별 걸 다 규정대로 한다. 시간이 1시간 남아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으로 갔다. 반대방향이지만 할 수 없다. 이미 7시라 서둘러야 자리를 잡는다.
파일럿 트럭스탑에 오니 자리가 널널하다. 내가 대고 싶은데 연습 삼아 후진으로 댔다. 샤워하고 나와도 자리가 있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22:45)도 자리가 많다. 이런 트럭스탑은 처음 본다. 오늘 메이시스 집하장에 나 혼자 뿐이었듯이, 이 일대가 주말에는 모두 쉬나 보다. 그러니 트럭도 올 일이 없는 것 아닐까.
근처에 월마트가 있다. 24시간 영업이다.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출발하면서 들를 참이다. 집에 갈 때까지 먹을 열흘치 정도 식량 보충이 필요하다. 큰 빗자루도 있으면 하나 사고.
월마트 김치 대박
월마트에서 김치를 샀다. 요즘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일들이 자꾸 실현된다. 월마트에서 김치만 팔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었는데.
오전 4시 기상해 월마트로 트럭을 몰고 갔다. 24시간 영업하는 월마트다. 새벽은 월마트 가기에 좋은 시간이다. 한산하다고는 해도 승용차 주차장에 트럭 몰고 들어가는 일은 도전이다.
여유롭게 생수, 빵, 과일, 햄 등 필요한 식품을 구입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김치가 있다. 작은 통에 5달러 정도로 싼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냐. 감지덕지다. 두 종류가 있는데 약간 더 큰 것으로 샀다. ‘spicy’ 라고 적혀 있지만 우리 입맛에는 그저 심심한 김치다. 대형 빗자루도 샀다. 이제 발송처로 출발이다.
한 4시간 걸려 도착했다. 입구 경비가 트레일러를 확인하더니 깨끗하다고 칭찬했다. 손바닥만한 빗자루로 청소한 결과다. ㅋㅋ 내가 봐도 깨끗하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내가 마지막이란다. 엥? 다른 드라이버들은 벌써 왔다간 모양이다. 나는 10시부터 약속시간이었고 그 시간에 맞춰 온 것인데. 노동절 연휴라 여기도 일 안 하나보다. 빈 트레일러 문 열고 닥에 댔다. 짐이 든 새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했다.
무게가 만만치 않다. 언덕길 오르는데 지옥이다. 운전하는 나도 힘들다.
메릴랜드 고속도로 휴게실 경관(景觀)이 좋아 쉬어가기로 했다. 원래는 1~2시간 더 갈 계획이었다만 시간 여유도 있고, 피곤도 하고. 다 좋은데 전화 신호가 안 잡힌다. 계단을 올라 화장실까지 가면 겨우 잡힌다.
참, 히마찰은 엔진오일을 먹지 않는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오일 게이지 스틱을 찍었을 때 약간 모자라는 게 정상인 모양이다. 일주일 이상 오일을 보충하지 않았는데도 그대로다. 오일을 보충하나 안하나 같은 눈금이 찍힌다. 희한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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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트럭커들
받은대로 갚다
메릴랜드 - 펜실베이니아 - 뉴저지 - 뉴욕 - 코네티컷 - 매사추세츠까지 왔다. 500마일 정도 달렸다. 북동부 지역은 역시 차가 많다.
어제 메릴랜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길 잘 했다. 더 가파르고 어려운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메릴랜드 산악 코스는 펜실베이니아 저리 가라다. 내가 가려고 했던 트럭스탑은 그다지 넓지 않은 곳이었다. 트럭이 일대에 달리 갈만한 곳이 없어 자리가 없을 확률이 컸다.
안개가 짙었다. 영화 미스트(Mist)에 나오는 장면 같다. 동틀 무렵 산 정상에서 운해(雲海)를 봤다. 장관인데 대쉬캠(Dashcam)에는 제대로 안 찍힌다.
코네티컷 고속도로 휴게소는 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다. 매사추세츠 들어서자 마자 쉼터가 있는데 고민하다 그냥 통과했다. 2마일 더 가서 파일럿 트럭스탑에서 쉬기로 했다. GPS에서 250석이라니 자리는 충분하겠지. 그런데 웬걸. 일단 250석은 말도 안 되는 숫자다. 게다가 자리가 다 찼다. 오후 4시에 이럴 수가. 아까 쉼터에 설 걸. 후회 막심했다. 끝까지 들어가니 몇 자리가 남았다. 하지만 내 실력으로 어렵다. 내 앞에 어떤 트럭이 끙끙대며 후진하고 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공연히 사고치지 말고 아까 쉼터로 돌아가자. 트럭 돌리기도 어렵다. 간신히 돌려 나가는데 누가 나와서 주차할거냐고 묻는다. 아까 트럭 후진 도와주던 흑인 청년이다. 아, 그냥 가려고 했는데. 그는 뒤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후진해 보자.
다른 트럭들이 내가 후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로 후진이 될리가 있나. 기다리던 트럭 운전사가 직선으로 만들어 대각선 방향으로 후진하라고 했다. 그대로 하면서 얼추 여기다 싶은 곳 쯤에서 핸들을 돌려 트레일러를 빈공간 쪽으로 꺾었다. 뒤를 봐주던 드라이버가 이런저런 손짓을 했다. 나는 일단 내려서 뒤를 확인했다. 그와 얘기도 나눴다. 그는 트레일러 바퀴가 일단 공간 쪽으로 꺾어진 이후에 직선으로 복귀하라고 했다.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 후진했다. 여기서 또 하나 배웠다. 새로 배웠다기 보다는 예전에 네이슨에게서 배운 것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그냥 배운 것이고 내 것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내 것이 됐다. 아까 그냥 돌아갔다면 얻지 못했을 가르침이다.
트럭으로 돌아와 앉았는데 얼마 후 다른 트럭이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동작이 어설프다. 제대로 돌려서 나가지도 못한다. 예전의 나를 보는 듯 했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트럭이 댈 만한 공간은 한 곳 뿐이었다. 나는 받은 것을 베풀 기회라 생각하고 나갔다. 젊은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에게 여기서 트럭을 돌려 후진으로 저쪽에 대라고 했다. 그녀는 뒤를 봐주겠냐고 물었다. 나는 뒤를 봐줬다. 그녀의 후진 동작은 서툴렀다. 제 방향을 못 잡았다. 예전의 내가 딱 저랬다. 옆 트럭의 드라이버까지 나와서 양쪽에서 도움을 준 끝에 겨우 주차했다.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다가 나도 이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됐다.
디스패처에게 내일 아침에 배달 가능한데 약속 시간 앞당길 수 있냐고 문자로 물었다. 알아본 결과 5일에 배달해야 한다고 답이 왔다. 내일 저녁때까지 여기 있어야 한다. 아예 모레 새벽 2시까지 34시간 휴식을 채우고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이번 트립은 총 1,000 마일 정도인데 나흘에 걸쳐 있다. 하루 평균 250마일 꼴이니 수입은 별로다. 최소 하루 400마일은 달려야 한다.
노동절 연휴로 문 닫은 곳이 많아 배달을 기다리는 트럭들이 많은 탓인지 평소에도 늘 복잡한지는 모르겠다. 구글맵 사진을 보면 평소에는 한산할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내 앞에서 어떤 플랫베드 트럭이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을 한다. 저런 돌려서 정상 후진을 했어야지. 어느 새 다른 드라이버들이 나와서 뒤를 봐준다. 멋진 사람들.
트럭스탑 유배
오전 8시에 일어나니 70% 이상 주차공간이 비었다. 역시 어제는 노동절 연휴 때문이었다. 트럭이 돌려서 나가는 공간도 있었다. 자리가 없으니 트럭들이 그곳에 주차한 것이었다. 어제 내가 흑인여성 드라이버를 안내했던 공간도 그 일부였다.
종일 여기 있어야 한다. 유배생활(流配生活)과 다름 없다. 정약용 같은 이는 유배 시기 목민심서(牧民心書)라는 명저를 남겼다. 나는 무엇을 남길까? 그래 글을 쓰자. 소설을 쓰고는 있지만 생각만큼 즐겁지 않다. 쓴 것을 읽으면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쓰는 과정이 지루하다.구상할 때나 재미있지 실제 작품 구현 과정은 단순노동에 가깝지 않나 싶다. 하루키가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독창성과 꾸준함이라고 했는데 공감한다. 내가 너무 리얼리즘 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지. 소설인지 다큐인지 헷갈린다. 95%의 진실에 5%의 허구를 가미해야 독자가 공감한다지만 나는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한 습작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좀 더 많은 환타지가 아닐까. 남들이 읽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으니 혼자서만 읽어야지.
오후 5시가 넘으니 오늘도 대략 주차공간이 찬다. 세어보니 한 100대 정도 주차가 가능하다. 이것도 큰 공간이다. IOWA 80 같은 400대가 넘는 트럭스탑도 있다고 하니 어마하다.
지난 주 마일리지 리포트가 나왔다. 8.0MPG다. 첫 주 이후로 처음으로 8마일대를 찍었다. 아이러니하다. 엔진오일 보충을 일부러 안 했더니 마일리지가 좋아졌다. 그동안 엔진오일 보충한 것이 역작용을 일으켰단 말인가? 지난 주 가벼운 화물을 운송했고 주로 평지인 탓이 크겠지.
쉬면서 ‘바그다드 카페’를 봤다. 유투브에 풀영상이 있다. 고화질은 아니어도 핸드폰으로 보기에는 충분했다. 1987년 작품이고 나는 대학생 때 처음 봤다. 세상에 볼 영화는 널렸고, 평생 다 못 읽을 책도 쌓인 터라 한 번 본 영화나 책은 다시 잘 안 봤다. 요즘 생각이 좀 바뀌어 예전 영화나 책도 다시 보는데 새롭다.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고, 이런 스토리였나 싶다. 읽거나 봤다는 사실에 대략 이미지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바그다드 카페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의 배경무대가 사막 주유소다 보니 트럭도 많이 등장한다. 캡오버와 컨벤셔널 트럭이 반반이다. 도입부에 당시로서는 신선했을 톡톡 튀는 편집과 기울어진 앵글샷이 눈에 띈다. 후반으로 갈수록 헐리웃 영화의 리듬감을 따라간다. 브렌다와 야스민의 사랑과 우정이 큰 줄기를 구성하는 가운데 가정의 해체,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이 잔가지로 붙어 있다. 스토리가 다소 우화적이니 너무 심각하게 분석하지는 말자. 브렌다가 눈물을 닦고 야스민은 땀을 닦으며 서로를 보는 만남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주제곡 Calling you 처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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