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금융 한류’에 불을 붙일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시장 성숙도는 걸음마 단계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성장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베트남의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융합) 산업과 국내 금융권의 정보기술(IT), 자본력이 빠르게 결합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베트남 금융시장에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 중 터줏대감 격이다. 1993년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외국계 은행 1위 자리를 굳혔다. 올해 3월부터 박항서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신한베트남은행 광고모델로 기용하며 ‘현지화 전략’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9일 신한은행에 따르면 올해 2월 104만여명이던 베트남 현지 고객 수는 광고를 내보낸 지 넉 달 만인 7월 116만여명으로 12%가량 증가했다.
카드업계도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베트남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카드사들은 영업 면허를 확보하기 위해 현지 금융업체를 직접 인수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지난해부터 베트남 소비자금융업체 16곳 중 3곳의 주인이 바뀌었는데, 이 가운데 2곳을 신한카드와 롯데카드가 각각 차지했다. 신한카드는 올해 초 베트남 푸르덴셜소비자금융(PVFC)을 1614억원에 사들이며 현지 시장에 발을 디뎠다. 롯데카드도 최근 베트남 소비자금융회사인 ‘테크콤파이낸스’ 인수 작업을 마무리 짓고 테크콤파이낸스의 신용카드·소비자대출 라이선스 등을 활용해 시장 공략 채비를 갖췄다.
베트남의 소비자금융 발전 속도는 아직 더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베트남 소비자대출 규모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10% 수준인 230억 달러에 그친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성인 인구의 금융서비스 이용률은 59%에 불과하다. 카드단말기 보급대수가 27만대에 그치는 등 신용결제 환경도 좋지 않아 현금 사용 비율이 높다.
그러나 빠른 도시화와 소득 증가에 힘입어 소비자 금융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베트남 소비자대출 규모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45% 늘었다. 베트남 정부도 ‘현금 없는 사회’를 표방하며 금융시장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현금 결제 비율을 오는 2020년까지 10% 이하, 2025년까지 8%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이에 맞춰 신한은행은 지난 7월 베트남 현지 핀테크 업체와 손잡고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았다.
다만 국내 금융권의 ‘베트남 러시’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앞서 베트남에 자리를 잡았던 BNP파리바 등 외국계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하나둘 철수 중이다. 동남아시아 신흥국 리스크 확대, 부실채권 비율 상승 등이 원인이다. 한국의 금융회사들이 베트남 시장에서 지나치게 수익만 추구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과 현지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등 상호 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치민 라이프플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