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 미국에 왔다’는 분에게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나는 몇해 전부터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스토리 속 대화 중 기억하고 싶은 짧은 말들을 작은 노트에 기록해 왔다. 노트에 적은 것 중에 ‘부끄럽지 않게 살다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언제 어느 드라마에 나온 것인 지 기억할 수는 없으나, 극 중 주인공이 유언으로 남긴 말이었다고 생각된다.
며칠 전 한국 식품점에서 장을 보고 나와 자동차 시동을 걸었을 때 한국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차문을 열라고 한다. 문을 열었더니 자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나는 “남는 것이 시간인 데 그러시지요” 하였다.
우리는 작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않았다. 통성명을 하고 서로 왜 이곳에서 살게 된 연유를 나누게 됐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연상이라 생각했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다섯해 더 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그가 미국에 오게 된 사연을 듣고서이다.
살다 살다 별 사람 다 만난다더니 이 노인의 이민온 이유가 희한하다. 우리 조상의 원수를 갚으러 미국에 왔다는 것이다.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은 원래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 문을 열었다. 빙하기에 우리 조상들이 아시아에서 베링 해를 걸어서 넘어와 이 땅에 살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백인들이 얼마나 많은 인디언을 학살하였는지 아는가” 물었다.
나는 지금도 아메리칸 인디언이 우리의 조상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비록 우리의 조상이라 하여도 원수를 갚으러 미국에 왔다는 말은 정말 막말인 것 같다. 더구나 그는 지금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고 살고 있다.
이민자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일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는 젊어서 미8군 공군 위관장교 숙소에서 젊은 미군 장교들이 한 말을 들은 것이 이민생활의 방향을 정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한국인을 낮게 여기며 한 말들을 했는데, 당시 내가 굴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태평양을 건너 오면서 미국 땅에서 한국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결심했고, 이런 마음을 거의 본능적으로 지니며 살아왔다.
오늘도 정원일을 땀흘려 했는데, 이것이 일손을 놓은 지금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며 동네와 조화를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당일을 마치고 며칠 전 만들어 놓은 받침대 위에 구들장 같은 돌을 올려놓았다. 할멈이 전에 어디선가 구하여다 놓은 것이다. 그 돌에는 "You See My Garden, You See My Love" (나의 정원을 보라, 나의 사랑을 보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정원 마당을 가꾸면서 미국땅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 같이 3D취업 이민자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쉽게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최대한 절약하며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이민생활의 첫 거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국 땅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살려면 이민 1세대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이민 1세대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이민 2세대 3세대가 이곳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과연 죽을 때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다 간다"고 말 할 수 있을 까. 지금부터라도 더욱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