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17-118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여운(餘韻)은 절절하다.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면서 더 곡선의 시간, 더 많은 공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모든 욕심을 다 채울 수가 없었다. 삶은 언제나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온전하게 나의 두 다리의 근육에 의존해서 완주하는 일에 더 집중하다 보니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베이징에서 오랜만에 휴식도 취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지고 친구도 만나 즐거운 시간도 보냈지만 베이징의 그 유명한 볼거리들을 보지 못했다. 지금 내게 구경하는 시간보다 더 절실한 것은 휴식의 시간이다. 또 하나의 가지 않은 길을 여운으로 남긴다. 작년 9월 1일 헤이그에서 출발할 때도 형성이와 은수가 부부동반으로 찾아와 자칫 초라하고 쓸쓸했을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에는 경환이까지 같이 와 먼 길 달려온 발걸음을 위로해주니 그 기쁨이 몇 곱절 크다.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달리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는 길에는 일찍이 공자가 설파한 군자(君子)된 자의 삼락(三樂)을 즐기는 시간이기도 하니 딱히 아쉬울 것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매순간 선택과 집중을 강요당하니 말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학이시습지불역열호,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달리면서 나는 많은 공부를 했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알차게 산 공부를 해본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알차게 배운 것을 또 달리면서 익히는 시간까지 가지니 이 아니 기쁨이겠는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 응원해주러 사람들이 오고, 특히 어렸을 때 친구들이 찾아주니 또한 기쁘지 않은가? 그리고 어제 KBS 베이징 특파원과 이곳의 요녕신문, 서울신문 한겨레신문에 내 기사가 나갔어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직 국내외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성낼 일도 아니니 내가 과연 군자답지 아니한가?
같은 무렵 첫사랑에 가슴을 졸여했고, 술도 배우고 담배도 몰래 배웠다.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먼 곳에서 아련히, 눈부시게 빛나는 무언가를 함께 바라보며, 저 깊은 곳에서 일어나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는 혼돈과 같은 방황(彷徨)을 함께 했었다. 촌스럽게 심장이 두근거려 누가 알아챌까 두려웠던 것들을 우리는 서로 알아채고 놀려먹기도 했었다. 두근거리던 시절 두근거리던 심장을 공유한 친구들이다. 그때 10년 후, 20년 후를 꿈꾸고 또 걱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났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속 깊은 곳에서 바람이 일어 옛일이 흔들리는 촛불 앞에 일기장처럼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는 찌질하고 약해서 내가 은숙이를 그렇게나 사무치게 좋아했던 것도 본인도 아닌 친구들에게 조차 얼마 전에야 고백할 수 있었다. 은숙이는 지금껏 나의 모든 그리움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한 번도 그 대명사를 밖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유독 즐겨 사용하니 그 단어가 은숙이를 표현하는 대명사인 셈이었다. 세원이 가저다주는 기억의 카오스 속에서 그리움이 은숙이가 되었다가 은숙이가 그리움이 되는 혼란(混亂)이 일어났다.
그녀에게 나는 한 번도 내 마음을 전해본 적이 없었다. 첫 휴가를 나오자 제일 먼저 한일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1년 전 유라시아대륙에 거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뛰어든 용기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는 가뜩이나 여린 내 심장을 여지없이 꽁꽁 얼려버리고야 말았다. 더 긴 말은 오고가지 않았다. 약속 장소만 정해졌을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믿기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좌절(挫折)을 안겨준 그날 나는 친구와 함께 종로 2가의 음악다방으로 나갔다. 그녀는 미리 친구들과 나와서 앉아 있다가 내가 자리에 앉자 내게로 다가와 편지만 달랑 한 장 내밀고 사라졌다. 그날이 그녀가 내 인생의 무대에서 짧고 슬픈 단역배우의 역할을 마치고 영원히 퇴장해버린 날이다. 나는 두려워서 그 편지를 열어보지 못했다. 정황(情況)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데 구차하게 편지를 읽어볼 필요는 없었다. 이럴 때 친구 앞에서라도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보였다. 성냥을 그어서 편지의 끝부분에 대었고 알 수 없는 언어는 태워졌다.
그 후 나는 오래도록 편지의 내용이 문득문득 궁금했다. 내가 태워버린 편지는 내 가슴에서 타지 않고 그리움으로 남아 내 기분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읽혀지곤 했다. 그 편지는 힘들고 고단할 때 용기를 주는 격려의 글이기도 했고, 때론 내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폭력이 되기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도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궁금한 것들이 있다. 그때는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던 것들도 세월이 흐른 후에는 그런 부끄러운 것들과도 정답게 마주앉아 가슴을 데워주는 와인 한 잔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여린 심장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나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던 ‘은숙’이를 평생 호리병에 담아 내 마음속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어 두고 스스로도 옴짝달싹 못하면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유라시아를 출발하기 전 우연한 기회에 용기를 내어 친구들에게 고백했었다. 세월이 내게 그런 용기를 가져다 주었나보다. 이제 유라시아를 거의 다 오면서 강인해진 내 심장은 이제 실명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은 은영이었고, 또 다른 글에서는 그냥 그녀이었다. 이젠 오랜 세월이 흘렀고, 세월 속에 ‘은숙’이는 모든 그리움의 대명사가 되었고, 나의 젊은 날은 달빛에 물든 전설이 되었다. 추억은 책갈피 속에 끼워둔 은행잎처럼 세월을 덧입어 더 깊고 은은한 색이 되어간다.
베이징에서 사흘간의 꿈같은 휴가는 노영민 주중대사의 극진한 환대와 남북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그곳을 통해 내 이야기를 북측에 전달하겠다는 언약과, 베이징 한인회가 준비한 환영만찬과, 그 다음날은 평통에서 주최한 환영만찬, KBS 촬영, 또 원불교 베이징 교당 법회참석 등 바쁜 가운데서도 마지막 날 친구들과 오붓하게 모여앉아 악동시절 즐거웠던 이야기보따리를 베이징 가을 하늘에 풀어 날리는 시간이 단연 소중했다. 그대 또 은숙이 이야기가 화제의 천일야화(千一夜話)처럼 이어졌다.
내 달리기는 그리움을 찾아 나선 맹구의 모험 같은 것이다. 젊은 시절 거의 모든 시간을 그녀를 그리워하면서도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며 애만 태우고 좌절했었다. 그리움이 너무 간절하기에 이 길고 험한 여정에 나는 한 번도 지루해하거나, 두려움이나 불안에 떨지 않았다. 이젠 그리움이 은숙이였다가 조국의 자주 평화통일도 되고, 세계 평화이었다가, 다시 아버지와 화해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할아버지 묘소 참배이기도 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종사촌을 만나고픈 여망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때로 새로운 평화 세상을 여는 가슴 벅찬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 시절 그 큰 좌절은 이제 와서 내 유라시아횡단 마라톤을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정신력의 근원(根源)이요, 내 글의 자양분(滋養分)이 되고, 평화,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실행에 옮기는 영감(靈感)이 되었고, 그것을 추진해나가는 원동력(原動力)이 되었다. 영혼이 허기질 대 언제라도 꺼내서 우려먹는 곰국 같은 존재가 되었다. 기필코 압록강을 건너 평양을 거쳐 판문점을 넘어 광화문에 도착하겠다는 나의 결기의 원천(源泉)이 된 것이 재미있고 통쾌하다. 이제 나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 애만 태우던 그때의 내가 아니다. 새로운 나의 은숙이를 위하여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유라시아가 키워낸 새로운 나이다.
은수야, 경환아, 형성아 먼 길 와서 얼굴 보여줘서 고맙다!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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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라에 든 많은 생각
다시 넘어졌다. 왼발이 못에 걸렸다고 느끼는 순간에서 넘어지기까지 0.5초나 걸렸을까?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뒤쪽에 있는 오른발을 빨리 앞으로 끌어 착지(着地)를 하려했지만 늦었다. 평소에 체력 같았으면 충분히 균형을 잡았을 것이다. 그 순간 길 옆 포플러 가로수에서는 이 가을 첫 낙엽이었을 낙엽이 한 장 나뭇가지에서 분리되어 바람의 파문을 따라 휘청거리면 떨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감지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해결 능력이 없이 당하고 말 때 생기는 쓴웃음이 내 입가에 맴돌았다.
이제 0.5초 사이에 내가 넘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넘어져야한다. 공중그네나 외줄타기 곡예사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넘어지는 방법이라고 한다. 유도나 태권도에서도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기술을 배우기 전에 내가 잘 넘어지는 낙법(落法)을 먼저 배운다. 이제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넘어지되, 잘 넘어지는 수밖에 없다. 충격을 줄여 안전하게 넘어지는 방법이 낙법이다. 이제 나는 멋지게 넘어지고 멋지게 일어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 낙엽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바퀴 22개 달린 괴물 같은 트럭이 사정없이 지나가자 핵폭탄이 터질 때 일어나는 버섯구름이 일어나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먼지 구름에 쌓여서 북적이는 시장의 그 누구도 내가 지금 넘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공포의 삼륜차가 죽음의 검은 매연을 시커멓게 내쏟으면 벽돌을 싣고 통통통 통 소리를 내며 반대 방향으로 지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60년대에 사라져버린 삼륜차가 이곳 매연의 주범이다.
65kg의 내 몸은 바닥을 향해 무너져 내렸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자세를 최대한 낮추어야했다. 전반기, 중반기까지 넘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지난달에 도로에 박힌 못에 걸려 넘어지더니 이번에도 다시 못에 걸려 넘어졌다. 이제 이 평화마라톤이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체력이 조금만 더 있어도 그렇게 허망하게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바로 잡았을 것이다. 내 바로 앞 길 옆에는 즉석에서 전병(煎餠)을 구워 파는 행상이 있었고 그 먼지 속에서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명의 남자가 전병을 받아들고 먹고 있었으며 두 명의 여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위지엔(옥전)을 지나 작은 마을의 시장판을 막 지나려는 참이었다. 어느 나라든지 시장판은 시끌벅적하고 분주하지만 중국의 시장판은 더욱 요란하고 생기가 넘쳤다. 길가를 따라 햇과일을 가지고 나온 과일 장사들이 늘어섰고 나온 개와 염소, 오리와 닭, 거위에 비둘기까지 매물로 나왔다. 그 한쪽에는 자라를 즉석에서 고아서 파는 사람도 보였다. 넘어지면서 조금 전에 본 양의 선한 눈동자와 개의 동공이 풀린 눈동자가 자꾸 눈에 밟힌다.
지금 위지엔(옥전)을 지나 산해관(山海關)으로 가는 길은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이 한양을 출발해 압록강을 건너 박천, 의주 풍성, 요양, 거류하를 거쳐 베이징으로 다시 우리가 피서산장으로 부르는 열하로 건륭제의 칠순잔치를 위해 가던 그 길을 거슬러 가는 길이다. 1780년 음력 6월 24일 280여 명의 대규모 사신단이 압록강을 건넜다. 박지원은 4촌 형 박명원의 제의로 아무 직책도 없이 그가 꿈이었던 베이징 여행길에 나섰다.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발전상을 다각도로 증언하면서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개혁할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한다.
아마 그가 이 길을 갈 때도 강행군이 이어졌었던 모양이다. 연암은 8월8일 일기에서 “객점에 이르니 곧 밥을 내어 왔으나 심신이 피로하여 수저가 천근이나 되는 듯 무겁고, 혀는 백 근인 양 움직이기조차 거북하다”며 “상에 가득한 소채나 적구이가 모두 잠 아닌 것이 없을뿐더러 촛불마저 무지개처럼 뻗쳤고 광채가 사방으로 퍼지곤 한다.”고 적었으니 얼마나 힘든 행군인지 이해가 간다. 지금 내가 그렇다. 힘든 데다가 배탈이 자주 나서 이젠 주기적으로 설사를 한다. 어제 저녁도 오늘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설사를 그렇게 하면서도 하루 42km 달리는 일에는 지장이 없으니 지금 내 몸이 참 신비하다. 참 신비로운 내 몸에 경의를 표한다.
또 이 길이 몽골의 침략 이후 끌려갔던 수십만의 고려인들이 끌려갔던 길이었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들 중 일부가 힘들게 살아서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여자를 '환향녀'라고 했다. 조국은 살아서 돌아 온 그녀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가족과 이웃들은 그녀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은 '화냥년'이라고 부르고, 더러운 년으로 불렸다. 그녀들은 집으로 돌아 갈 수 없었다. '화냥년'은 고려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6.25 이후에도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다. 잔혹한 전쟁의 역사는 여자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조국은 그녀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군위안부가 그랬다. 그런데 넘어지는 그 화급한 순간에도 왜 미군위안부 문제는 이슈화 되지 않을까? 의문이 생겼다. 미국은 모든 추악한 모습을 잠재우고도 남을 만큼 힘이 세서 그럴까?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을 지나온 이제 와서 사뭇 느끼지만 미국은 참으로 엄청난 힘을 가졌고 그 힘을 간교하게 사용하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뒤에서는 미국을 욕하지만 앞에서 드러내놓고 흉을 보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미국을 드러내놓고 흉보는 이란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확실히 보았고 세르비아가 또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지금은 터키가 당하고 있다. 과연 벌거벗은 임금님 미국에 옷을 입히는 것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보다 더 힘들까?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감쪽같이 미국에게 멋진 옷을 입힐까? 아니면 순진한 소년처럼 미국을 향하여 ‘벌거숭이 임금님’이라고 손가락질을 할까? 그것도 아니면 비굴하게 손바닥을 비비며 멋진 옷을 입으셨다고 아부를 할까? 몸의 중심이 이제 거의 아래로 내려앉아 손바닥을 아스팔트에 대면서 내 머리에 스친 생각들이다. 손바닥을 아스팔트에 대는 순간 손바닥은 까질 것이고 그렇다고 무릎이 아스팔트에 닿지 않게 막을 수도 없었다.
손바닥이 아스팔트에 닿는 순간 손에 통증이 느껴졌고 바로 뒤이어 무릎이 바닥에 닿아서 또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충격을 최소화하려 몸을 비틀어 한 바퀴 뒹굴었다. 그때 길가의 벽에 붙은 수많은 구호와 표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중국 어디를 가나 가장 아름다움 단어는 다 골라 담벼락이고 어디든 공간만 있으면 플래카드를 붙인다. 민주, 자유, 평화, 평등, 부강, 행복, 건강. 등, 수도 없는 공허한 단어들이 울림도 없이 눈에 피로감만 더하는데 표어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불망초심 뢰기사명(不忘初心 牢記使命),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는 뜻이다.
무릎과 손바닥에 약간의 피는 흐르지만 지난번 넘어졌을 때보다 훨씬 잘 넘어졌다. 이 정도면 성공했다. 그러나 역시 바로 훌훌 털고 일어나기에는 통증이 있어서 한참을 바닥에 앉아 있자니 옆에서 전병을 파는 사람이 다가와 뭐라고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넘어져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 손을 내미는 그 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 먼지구름도 가시고 매연도 그 사이 가셨다. 나는 시장판 가운데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고 앉아있었다.
다가오는 재앙(災殃)을 바라보면서도 어쩔 수 없을 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함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긴 0.5초 사이 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자꾸 넘어지는 것이 기력도 떨어져서이겠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이 나의 긴장을 푸는 것 같다. 불망초심 뢰기사명(不忘初心 牢記使命),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 평화가 올 때까지! 이 말을 되 내이며 마음을 다지며 최대한 멋지게 일어났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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