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가을 햇살이 좋은 날에 베르사이유 궁전의 왕실채원에 자리한 ‘서울텃밭’에서 가을 수확제가 있었다. 이날 행사 중에서 서양의 젊은 청년이 진도아리랑을 노래하고 설장구를 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왜? 한국의 전통음악을 노래하고 연주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바질 프비옹(Basile Peuvion. 1992년 생)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어도 잘해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이고, 어머니는 벨기에 사람이에요. 태어나 자란 곳은 벨기에의 리에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13살에 재즈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이기에 자주 프랑스에 왔는데 올 때마다 좋아 21살에 프랑스 브르쥬의 국립음악학교에서 재즈드럼을 공부하며 파리를 오갔습니다. 학업이 끝난 후부터는 파리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재즈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한국 음악과 인연이 닿은 계기는?
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에서 열린 공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처음 한국을 방문을 한 것으로 한국은 제게 아주 생소한 나라였죠. 3일간의 짧은 여정 동안 처음으로 한국의 전통음악을 들었습니다. 사물놀이, 시나위 등의 공연을 보는데 충격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면서 아름다워 사랑에 빠지듯 한국음악에 매료되었습니다. 너무나 감동을 받아 직접해보고 싶을 정도로요. 그리고 한국말을 듣는데 소리, 리듬, 분위기 등이 좋았습니다.
프랑스에 돌아오자마자 비디오와 유튜브를 통해 장구, 판소리를 찾아보고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생소한 음악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재즈는 기존의 틀을 깨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으로 연주를 하는 음악장르예요. 그리고 재즈 드러머로 타악기에 익숙하고 드럼은 연주 시작의 박자를 맞추어주는 악기인 만큼 혼자서 배우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늘 쉬지 않고 연습을 하던 제 실력을 검증 받을 수 있는 시간이 2015년 5월에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물놀이팀의 공연과 워크샵이 있었죠. 김복만, 김경수, 길기옥, 이윤구씨로 구성된 사물놀이팀으로 한국에서 사물놀이 적통 주자로 인정받는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었는데 3일 동안 워크샵에 참여하며 가까워졌습니다. 제게는 중요한 만남으로 지금까지 계속 그분들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2015년 8월에 김덕수 세계 사물놀이 대회에서 장구와 드럼 연주, 그리고 민요 부르기를 첨가한 10분 동안의 솔로 퍼포먼스를 해 2등을 수상해 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판소리 대회에 참가해서 1등을 수상해 한국행 비행기표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행 비행기표와 상금을 받은 덕분에 한국에 갔죠. 여름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이윤구, 김복만 선생님으로부터 2주 동안 장구를 배우면서 다른 전통악기들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실험연주 공연도 했습니다. 제게는 스승이신 이윤구 선생님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멋과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12월에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왔습니다.
돌아와 바로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1년 비자를 받아 2017년 1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지내면서 장구, 괭가리, 북, 판소리, 민요, 경기도 당굿 등을 배우면서 워크샵 참여도 하고, 재즈, 한국 전통음악 공연도 하고 한국 음악가들과 재즈 콜라보 공연도 했습니다.
한국에 체류에 필요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초동 서래마을의 프랑스 학교에서 드럼을 가르치기도 하고 대학에서 샹송 배우기 특강을 하기도 했네요. 한국에서의 일 년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커졌습니다. 사랑이 커지는 만큼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 지난 8월 한국을 다시 찾았습니다. 산 속에서 소리도 배우고, 진도의 국악원에서 진도의 씻김굿 등을 접하며 한국의 한이란 정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 한국의 신명과 한이란 정서를 느낀 것이네요?
네. 사물놀이, 풍물 등의 조금씩 빨라지는 장단이 주는 흥겨움이 더해가며 불러일으키는 신명과 신바람은 음악을 하는 제게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풍물과 같은 음악은 리드미컬하면서 생생한 리듬감으로 흥과 신명을 일으키는 힘이 있죠. 판소리에 해학이 있다면, 씻김굿과 같은 굿에서는 한을 느낍니다. 그러나 음악가로써 신명, 해학, 한이 어우러진 한국의 전통음악은 보편적인 음악적 정서로 누구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전통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유럽에 전파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내 안의 흥과 한을 깨우는 한국 전통음악을 강렬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꼈던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저처럼 공감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한국어를 아주 잘하는데, 비법은 무엇인지..
국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1년 동안 한국문화원에서 공부했지만 늘지가 않아 독학을 했습니다. 혼자서 한 공부여서인지 말하기가 서툴렀는데 한국에 자주 다니면서 많이 늘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2019년 1월 2일에 한국에서 공연이 있습니다. 지금은 공연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에 말한 것처럼 재즈 드러머의 길을 가면서 한국 전통음악의 전통을 계승하여 유럽에 전파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즈와 한국의 전통음악을 접목한 프로젝트로 공연도 할 계획입니다.
음악이란 소리로 내 안의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내 안의 것을 꺼내어 관객의 감정을 터치해야만 하는 것이 음악가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전통음악을 접하면서 제가 모르던 내 안의 신명과 흥을 끄집어 내었듯이 관객들의 감정을 터치할 수 있게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김치찌개, 김치 볶음밥 등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는 서양의 젊은 재즈 드러머로 우리 전통음악을 배우고 지키고 전파하려고 하는 바질 프비옹의 마음이 그윽한 매화 향기 같았다.
자신의 음악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른 장르의 음악을 배우고 또 전파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그가 부르던 ‘진도아리랑’과 설장구 연주에 담겨 있어 더욱 좋았다. 우리 전통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그에게서 느꼈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전통음악도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조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