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달러의 기적 7] 의사 부부의 '보은' 덕에 서울 안착

 

'8달러의 기적'은 재미과학자 한도원 박사(84)의 일대기 입니다. 현재 올랜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도원 박사의 일생은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이면서 귀중한 현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녘에서 보낸 소년기, 혈혈단신 탈출하여 남녘에서 보낸 청년기, 그리고 1955년 8달러로 시작한 미국 유학생활 등에서 삶의 고비들을 극적으로 통과해온 그의 일생은 한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합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33년 동안 재직한 한도원 박사는 1989년 동료 존 맥과이어 박사와 함께 경구 피임약 '제3세대 신약'으로 일컬어지는 노개스티메이트를 최초로 발견.개발하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한도원 박사가 제공한 자료들과 구술을 토대로 기자가 스토리를 재구성합니다. 이 기사는 1인칭으로 서술됩니다.  - 기자 주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믿거라 하고 찾아간 아버지의 두 친구들로부터 냉대를 당하고 쫓겨나듯 길거리로 나서자 화려하기만 했던 서울 거리가 그렇게 황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두고온 고향집과 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목이 잠겨 왔으나 꾹 참고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이제 나는 더 이상 부잣집의 장남도 아니고, 책만 읽던 서생도 아니지 않은가. 어스럼 저녁, 수심에 찬 얼굴로 떠나 보내던 어머니에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걱정말라”며 트럭에 올랐던 내가 아닌가.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하던 마음이 추스려 졌다.

다시 쪽지를 펴 들어 세 번째 아버지 친구 이름을 나직이 읖조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이름을 되뇌이다 보니 왠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손님들이 우리집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였다. 다시 종이 쪽지를 들여다 보니 이름 옆에 주소와 함께 ‘의사’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서야 어렴풋이 ‘의사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모습의 그 아저씨라면 혹 나를 반기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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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직후 서울의 한 동네 모습.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세 번째 아버지 친구집을 찾아 나섰다. ⓒ 위키 피디아 자료사진
 
‘의사 아저씨’가 일하고 있는 병원은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알 정도로 찾기가 쉬웠다. 얼핏 보아도 병원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고 안팎으로 간호사들과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니 꼬불꼬불 긴 줄을 만들 정도로 환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찾는 이름을 대니 여직원이 손짓으로 이리저리 찾아가라고 일러 주었다.

그의 사무실은 병원 규모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작았다. 살짝 열려 있는 문 앞에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슬며시 문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책상 앞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던 중년 남성이 고개를 쳐들고 정면으로 바라다 보았다. 그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더니 “네가 왠일로 여기에 서 있는거냐?”면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때서야 그가 우리집 별채에서 여러해 동안 함께 지냈고 아버지가 상당히 아끼던 아저씨 였다는 것을 확실하게 기억해 냈다.

그는 일찌기 의대를 졸업하고 우리 지역의 보건소에서 묵묵히 봉사하던 엘리트 의사였고, 나와 동갑내기이던 그의 아들과 함께 유치원을 다녔었다. 우리 식구들이 크고 작은 병환이 생겨 보건소에 찾아갈라 치면 특별 대우를 해 주었었다. 언젠가 손아래 동생이 동네 뒷산에서 놀다 다치고 들어왔을 때 겉옷을 들추어 여기 저기를 만져보며 치료해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그의 가족들을 좋게 여겨 명절 때면 음식을 챙겨다 주었고 이런 저런 편의를 제공해 주었었다.

고향집 별채 ‘의사 아저씨’ 부부의 환대

나는 온갖 의학서적들과 잡동사니로 뒤섞여 있는 그의 사무실 간이 의자에 앉아서 지난 수 주일 동안 겪었던 북한 탈주 과정을 들려 주었다. 그는 놀랍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번갈아 지어 보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부드럽고도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탈주 과정과 이러 저런 우리 집안 소식을 다 들은 그는 아내에게 연락을 해 두겠다며 당장 자기 집으로 가서 짐을 풀고 쉬라고 했다.

찾아간 그의 집은 한 눈에 보기에도 굉장한 크기의 저택이었다. 대문을 두드리니 식모인 듯한 여자가 나오더니 무슨 일로 왔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의사 아저씨가 일러 주어 찾아왔다는 얘기를 들은 그녀는 급방 부드러운 표정으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안 채에 도달하는 동안 세개의 문을 거치자 고급스럽고 맵시 있게 옷을 갖춰 입은 여자가 마루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의사 아저씨 부인이었다. 그녀는 반색을 하며 “아니, 도원이 아니냐?”며 마루 아래로 달려 내려 왔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녀의 낯이 익어 보였다. 종종 아들 이름을 부르며 우리집 안채를 기웃거리던 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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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직후 중앙청 앞 거리 모습. ⓒ위키 피디아 자료사진
 
그녀가 부드럽고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하는 것을 느끼고는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는 식모에게 우선 허기를 채우라며 맛깔스러워 보이는 만두를 내오게 했다. 그녀는 평안도 후창 우리집 별채에서 살 때 나의 부모님이 편의를 제공하고 후한 대접을 해 주었던 일들를 말하며 안정이 될 때까지 자신의 집에 기거해도 좋다고 했다. 유치원 동무였던 꾀복동이 친구도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오랜만에 밤을 세워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회포를 풀었다.

세 번째 아버지 친구의 집에서 며칠을 푹 쉬며 지내다 보니 지금껏 헤쳐 나온 길들이 아득하기만 했다.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이 되어 아침 저녁으로 동네 고샅을 산책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가슴 설레게 하는 ‘빅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경복고등학교에서 편입생을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그 당시에 경복고는 전국의 내로라 하는 수재들이 꿈꾸던 학교들 가운데 하나였다. 신문에 난 편입생 모집 공고를 의사 아들 친구에게 보여주며 응시할 뜻을 내비치자, 그는 “농담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날 나는 한 시간 이상 걸어서 경복고등학교에 찾아가 응시원서를 접수시켰다. 편입시험은 그날부터 보름 후에 있을 예정으로 시험과목은 영어였다. 영어 공부라고는 중학교 1,2학년 때 배운 것이 전부였다. 제법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을 집 안팎에서 들으며 중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심신이 지쳐 있었던 데다 날고 긴다는 전국의 수재들과 견줄 것을 생각하니 겁부터 덜컥 났다. 기왕 던져진 주사위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심을 거듭하다가 목숨과 바꿀 정도로 위험한 순간에 쓰려고 꼬깃 꼬깃 꿍쳐둔 돈이 생각났다. 나는 일단 서울 시내의 영어 학원 단기 코스에 등록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밤낮으로 매달렸다.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게 시험일이 다가왔다. 시험 당일 아침 고사장에 가보니 20명의 편입생 모집에 전국에서 모여든 수 백명의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시험은 무사히 잘 치른 것 같았다. 이미 저지른 일이니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합격자는 일주일 후에 학교 게시판에 공고될 예정이라고 했다. 발표일을 앞두고 내 머릿속은 멋진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으로 꽉 차 있어서 밥을 먹는지 걸음을 옮기는지 모를 정도였다. 혹 합격할 지도 모르겠다는 가느다란 희망이 생기는가 하면, 금방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문고 편입시험에 합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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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 나는 입학 며칠 후 이 사진을 북한의 부모님께 인편으로 보냈다. 43년이 지난 후인 1989년 북한의 부모님이 북한을 왕래하던 캐나다의 한 교민을 통해 캐나다 한인신문에 나를 찾는 광고를 냈는데, 그 신문에 이 사진이 올라 있었다. ⓒ 한도원
 
드디어 발표일 아침이 되었다. 발표장으로 가는 내내 방망이질로 요동을 치고 있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교문을 통과하여 게시판 가까이에 다가가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등 뒤에서 슬그머니 상채를 들이밀고는 게시판을 빠른 속도로 훑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 도 원. 거기에 내 이름 석자가 있었다. 흐려진 눈을 들어 다시 게시판을 보았다. 틀림없었다. 내가 경험한 ‘두 번째 기적’이었다. 야밤에 배를 타고 황해바다를 건넌 첫 번째 기적보다 기쁨이 더 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장면을 직접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가슴이 터질 듯했다.

의사 아저씨 식구들은 내가 경복고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기적 같은 일이라며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깐, 곧바로 걱정이 밀려왔다. 자그마치 4천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후창 고향집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가 돈 전대를 만들어 꾸려준 2만원을 산중에서 북한 경비원에게 고스란이 털린 일을 다시 생각하니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돈만 있었다면 2학기 등록금을 내고도 남았을 것이고, 아버지 친구집들을 전전하며 구걸꾼 취급을 받는 대신에 어엿한 하숙집에 들어 있을 터였다.

며칠 동안 근심이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다시 아버지 친구들과 고향의 선후배들까지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으나, 등록금은 빌려주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는 제법 잘 나가는 회사 사장도 있었고, 취직하여 번듯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돈에 관한한 엮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입학식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는데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미칠 것만 같았다. 절망감으로 밤새 뒤척이다 날을 새웠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방안으로 들어와 댓자로 방바닥에 누워 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처량한 신세를 한탄했다. 그때 방문 밖에서 “도원아, 오늘이 입학식 가는 날 같은데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며 친구의 어머니가 물었다. 벌떡 일어나 앉아 “등록금이 없어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왜 그걸 이제 얘기하느냐, 부모님이 알면 얼마나 슬퍼하시겠냐”며 나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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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형제들로부터 받은 부모님 회갑 사진. 어머니는 6개월 전에 돌아 가셨고, 아버지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없었다.
 
그녀는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내게 물었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40원 정도 남아 있다고 하자 딱하다는 표정으로 끌끌 혀를 차더니 “두 번째 학기는 모르겠으나 첫 학기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해 보겠다”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어디서 마련했는지 신문지로 똘똘 말아 묶은 돈뭉치를 건네주며 “이거면 첫 학기 등록금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우선 등록부터 하라”고 재촉했다. 이게 왠일인가 싶었다. 숙식을 제공해 준 것도 모자라 언제 돌려 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와의 친분만으로 첫학기 등록금을 대 주겠다니. 나는 글썽이는 눈으로 거듭 감사를 표하고는 그길로 돈을 들고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 사무처에 등록금을 내고 나니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학교 사무처 직원은 내가 편입생 합격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등록한 학생이라며 빨리 강당으로 가보라고 했다. 강당 안에서는 나를 제외한 합격생들이 자리를 잡은 가운데 입학식이 막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초장부터 암울한 듯 보였던 나의 남한 생활은 ‘천사 부부’의 뜻하지 않은 은혜 되갚기로 극적 반전을 이루며 기대에 부푼 출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에도 올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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