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에밀리 미즈(Emily Meades. 18), 제레미 뮬러(Jeremy Muller. 18), 사브리나 트로히디스(Sabrina Trohidis. 16) 학생. 소셜 미디어나 학업성적 순위에 대한 이들의 진단은 호주 청소년들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마케팅 회사인 ‘GPY&R’ 조사, 학업성적도 청소년 의식 지배
“오늘은 내 페이스북에 몇 명이나 찾아왔을까?” “지난 번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몇 명이나 봤을까?” “너는 트위터 팔로워가 몇 명이나 되니?”
호주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른바 소셜 미디어 순위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들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브리나 트로히디스(Sabrina Trohidis) 학생은 최근 참여한 댄스경연대회 무대 뒤에서 다른 소녀들이 가장 효과적인 반응을 끌어내기에 적당한 소셜 미디어 업로드 타이밍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을 들었다.
시드니 북서부에 살고 있는 16살의 트로히디스 학생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시간에 포스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댄스경연대회 옆자리에 있던 한 소녀는 포스팅 이후 ‘좋아요’를 3분 안에 27개나 얻어냈다며 좋아했다”면서 “청소년들이 소셜 미디어에서의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녀의 언급은 마케팅 회사인 ‘GPY&R’의 최근 조사 결과와 일치한다. 14세에서 17세 사이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조사에서 대상자들은 자신들의 삶이 데이터와 벤치마킹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많은 청소년들은 소셜 미디어 브랜드에 따라 언제 어떻게 포스팅을 해야 좋은 반응을 끌어낼지 전략을 짜고 또 그 순위에 관심을 갖는다.
트로히디스 학생은 “말 그대로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1만명을 확보했는가 아니면 페이스북에서 몇백 개의 ‘좋아요’를 얻어내는가의 문제”라며 “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내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는지 의문이 생긴다”고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 실태를 꼬집었다.
순위에 집착하는 현상은 단지 소셜 미디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 안에서는 ATAR와 같은 학업성적 순위 역시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GPY&R’의 루실 바디(Lucielle Vardy) 대표는 이 같은 소셜 미디어 순위 집착이 청소년들의 심리와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청소년들은 매일, 아니 매시간 측정되는 순위에 집착하고 있다”며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하면 결코 건강하고 바람직한 벤치마킹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조사에서 청소년들은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숫자 등 각종 데이터를 서로 비교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바디 대표는 “이들은 이러한 수치를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기도 한다”면서 “이런 사고방식은 절대 건강하지 않으며 우리는 ‘도대체 누가 우리 인생의 심판자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디 대표는 학업성적 순위 역시 마찬가지의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ATRA와 같은 시험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매우 높다”면서 “그렇지만 오직 한 가지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일종의 ‘터널 효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쿼키 아동 클리닉(Quirky Kid Clinic)의 대표 심리학자인 킴벌리 오브라이언(Kimberley O'Brien)씨 역시 소셜 미디어와 학업성적이라는 벤치마킹이 청소년들에게 공황 상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녀는 “청소년들이 또래들의 수준 또는 자신의 기대치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염려하며 불안해하는 위험성이 존재한다”며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바로 심리적 압박의 근원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순위 벤치마킹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 올해 HSC를 치른 18세의 제레미 뮬러(Jeremy Muller) 학생은 “학업성적 결과에 대한 큰 압박이 있지만 결코 부정적인 방식으로 내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성적을 통해 내가 발전했는지 아니면 뒤처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해 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역시 올해 HSC를 마친 18세의 에밀리 미즈(Emily Meades) 학생은 성적 순위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물론 공정한 경쟁은 좋은 것”이라면서도 “순위 시스템이 항상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일정한 순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급우들을 건강하지 않은 수준의 경쟁으로 내몰기도 한다”며 “가끔씩은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만든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녀는 “자신의 발전을 체크하기 위해 순위를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도 있으나 남들과 계속해서 비교하기 시작하는 순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소셜 미디어에 점점 덜 신경을 쓰게 되었지만, 한때는 적극적인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 포스팅 타이밍을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임경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