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는 체면에도 불구하고 볼 발그래한 10대 소년이나 매료될법한 어여쁜 조각상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자기 손으로 조각한 작품인데 말이지요.
하지만 그의 비정상적인 사랑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피그말리온왕이 다스리는 나라엔 모든 것이 풍족했으나, 딱 한 가지.. 정조관념이 매우 부족했고 그래서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그가 정숙한 여인을 만나 결혼할 가능성은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실망한 피그말리온 왕이 자신의 예술성을 십분 발휘하여 어여쁜 여인을 조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조각상을 안아주고 돌보아주고 옷을 입히고 장신구를 갈아 주었습니다. 지극한 정성을 다해 조각상을 돌보았으며 마치 실제 연인을 대하듯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계기를 통해 자신이 이루고픈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조각상이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그의 비현실적인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져 피그말리온 왕과 조각상이었던 여인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보통사람에겐 그저 허황되기 그지없는 그리스 신화의 한 토막일 뿐이지만 심리학자들에겐 이 피그말리온왕의 이야기가 꽤나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저명한 심리학자인 로버트 로젠탈이라는 분도 그 중의 한 명이었던가 보네요.
1964년 교육심리학자였던 로젠탈박사는 지극한 기대와 관심이 인간의 발전에 비치는 영향을 조사하고자 한 가지 실험을 실행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학교를 선정해 ‘하버드식 돌발성 지능테스트’라는 테스트를 실시한 후 (사실은 그리 의미가 없는 단순한 지능테스트였다 합니 다) 그 결과에 관계없이 무작위로 학생들을 뽑아서 담임선생님에게 명단을 건넸습니다.
앞으로 급격한 성적향상이 기대되는 학생들의 명단이니 주의깊게 관찰해 달라는 부탁까지 건네면서 말이지요. 이후 담임선생님은 알게 모르게 그 학생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기대감을 표시했을 테지요. 얼마뒤 도출된 실험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 아이들의 성적이 전원 예외없이 향상했다는 결과를 얻어낸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하나 빠지지 않고 평균이상의 발전을 이루어 낸 것이지요. 이 획기적인 발견 이후 로젠탈 박사는 이러한 ‘긍정적 기대에 의한 실제적 상승효과’를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명명했습니다.
신화속의 피그말리온 왕이 무생물인 조각상을 아끼고 사랑하다보니 결국 실제 사람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듯이 누군가의 지극한 관심과 긍적적인 기대를 받는 사람은 이후 월등한 발전을 이루어 낼 가능성이 농후해진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혹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정도로 결론내릴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그런데 세상에는 이러한 긍정적 기대에 의한 발전적 효과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이에 반대되는 심리현상도 존재하겠지요.
그렇다면‘부정적 기대에 의한 실제적 하강효과’가 될 텐데요. 심리학자들은 이 효과를 ‘스티그마’효과라 부릅니다. 스티그마라는 독일단어가 가축의 소유주를 표시하기 위한 불도장을 의미한다니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낙인효과’쯤 되겠습니다.
그 이름에서 얼추 연상할 수 있듯이 이 스티그마 효과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누군가를 계속 대하면 그 대상이 계속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간다는 심리학적 현상입니다. 그것이 우연이었던 혹은 의도적이었던간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한번 지적을 당하고 낙인이 찍히고 나면 그 사람은 다시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매우 어려우며 오히려 점점 더 안좋은 쪽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비행청소년들이 나중에 철이 들어 자신의 어린시절을 되돌아볼때면 거의 대부분 자신은 부모님에게서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고백을 한다는군요.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 뿌듯함을 느껴본적이 없고 허구헛날 잘못만 들추어가면서 매타작이니 점점 집이 싫어지는 것은 당연지사고.. 뭐 하나만 조금 잘못해도 넌 왜 만날 그 모양이냐면서 자신은 기억할 수 없는 일까지 끄집어내어 비참한 명예형에 처하고..
그렇게 피그말리온 효과를 전무한 상태에서 스티그마 효과를 유발하는 상황만을 계속 경험하다보면 아무리 선했던 아이라 하더라도 결국 악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는 겁니다.
일본의 한 유치원은 독특한 체벌시스템으로 유명합니다. 친구들을 때리거나 못살게 구는 네다섯 살짜리 아이들의 나쁜 행동을 어떻게 하면 심리적인 상처없이 교정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선생님들은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우선 후줄근한 체육복인 일반 유치원 원복과는 아주 다른 멋진 재킷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반짝이는 견장까지 달아서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듯 장식하고 등판에는 유치원의 이름을 자수로 새겨넣어 유치원 공인 복장임을 나타냈습니다.
평소 이 재킷은 원장님 방의 벽에 얌전히 걸려 있지요. 그러다가 말로 타일러서는 안될듯한 잘못을 저지른 원생이 나타나면 데려다가 이 재킷을 입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하루동안 자신이 저질럿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는 보조교사의 임무를 부여하지요. 그럴싸한 임명장까지 손에 들려주면서 원장님이 악수를 하고 나면 그 아이는 이제 잠시전에 제가 저지른 잘못은 기억도 하지 못하고 저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타이르고 다독여서 어떻게든 행동을 고쳐주려 노력한다는 겁니다.
물론 이후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더라도 이 날의 기억때문에 잘 참아내게 되어 어린이 행동교정의 성공적인 사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칫 스티그마 효과의 굴레에 빠질 수도 있는 일탈행동과 체벌의 순화고리를 피그말리온 효과의 선순환으로 전환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긍적적 기대가 일구어내는 변화의 기적인 피그말리온 효과.. 그리고 부정적 편견이 야기하는 불행의 악순환인 스티그마 효과..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양극화된 두가지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한참 공부에 열중해야 할 청소년기엔 이 두가지 효과가 가족이나 친구등의 외부인에 의해 야기되기보다는 자신 스스로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도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 주변인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합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스스로를 격려해 발전을 이루거나 스스로를 비하해 추락의 경험을 하는 일들은 그 결과가 극단으로 치우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가지 양상은 아이들의 학습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곤 합니다.
NCEA External 시험이 막 시작된 요즈음 제게는 생각할수록 걱정이 되는 학생이 한명 있습니다. 이 학생은 다른 모든 과목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보여주는 우수한 재원인데도 유독 물리문제만 접했다하면 자신을 잃고 풀이 죽습니다. 풀어보나마나 자신은 틀릴거라는 거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구요.
그래서 그 학생을 잘 알게되기 전에는 모든과목이 다 그렇게 성적이 안 좋은줄 알았었지 뭡니까. 그런데 알고보니 물리에서만 어려움을 겪고 있더군요.
같이 공부를 하며 점점 상태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경험해보지 못한 문제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 펜도 잘 잡지 못합니다. 아마 그 아이는 자신의 뜻대로 풀어지지 않는 문제를 접할때마다 자책을 하던 중 어느새인가 자신에게 ‘물리를 못 하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어놓았던듯 합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씌운 물리 열등생의 부정적 견해와 굴레는 아이를 계속 위축되게 했고 좌절하게 했으며 결국엔 좋아서 선택한 물리과목을 포기하게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한 해의 노력을 마감하는 연말시험의 초입에서 학부모님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한가지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노력이 탐탁지 않을수도 있고 하루하루 미루기만 하는것이 게을러 보일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불안하고 초조하답니다. 세상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으면 못하는 일도 있는 법, 아이들 또한 그러해서 자기가 잘 해 낼 수 없을법한 과목이나 토픽애 대해 벌써부터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는 중이지요.
그 아이들에게 한 번 긍적적인 기대를 건네보면 어떨까요?
공부하겠다고 도서관가는 아이 뒤꼭지에 ‘놀지만 말고 공부좀 하라’는 말 대신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면 마음도 편하고 서로 도와줄수 도 있으니 좋을거 같다’라고 기대감을 심어주신다면 ‘긍정적 기대에 의한 실제적 상승효과’인 피그말리온 효과를 누릴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 준 원장 JMK 과학전문학원 021-314-432 jmkeduconsul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