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 법은 서약자 존중, 현실은 가족 의사 무시 못해
▲ 플로리다주는 미국에서 세번째로 많은 장기 기증 서약자를 지니고 있다. 서약자 의사와 가족 의사가 다를 경우, 법은 서약자 의사를 존중한다. |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기자 = 플로리다주 장기 기증 서약자(장기 및 인체 조직)는 약 1천만명이다. 미국에서 세번째로 많은 서약자를 지니고 있다.
주민들은 흔히 운전면허증 발급시 장기 기증 의사를 묻는 사항에 동의함으로써 기증자가 되며, 면허증에 '장기 기증 서약자’(organ donor)라는 표기가 오른다.
만약 서약자 사망후 가족이 장기 기증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혹시 장기 기증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
하버드대 생명윤리 센터장인 로버트 트루오는 유가족들은 흔히 사망자의 장기 기증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법은 이점에 있어 매우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2006년에 수정된 장기기증 통합법(Uniform Anatomical Gift Act)은 만약 운전면허증에 장기 기증 서약 표시가 있다면 장기 조달 기관이 장기 이식을 위해 장기를 취할 법적 권한을 가진다고 명시한다.
근래 <탬파베이타임스>는 장기 서약자의 가족에게 벌어진 사례를 다뤘다. 클리어워터 야구팀에서 캐쳐로 활약했던 듀안 멀빌은 지난해 6월 15일 조지아주 자택에서 갑자기 쓰러진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당시 48세로 6명의 자녀를 두었고, 건강한 상태였다.
테니스 선수였던 부인 비벌리는 경기를 위해 앨라배마주 모빌에 있다가 남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집으로 급히 돌아오는 길에 의사로부터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남편은 평소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고, 간혹 두통약 정도 복용했을 만큼 건강했던 터라 충격이 컸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비벌리는 장기 조달 기관 라이프링크(LifeLink)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비벌리에 따르면 전화 속 직원은 남편이 장기 기증 서약자임을 환기시키고, 장기를 기관에게 맡기라고 압력을 가했다. 비벌리는 자신이 현재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며, 장기 기증 사안을 자녀들과 상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 시점부터 비벌리에게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검시관으로부터 전화가 빗발치듯 쏟아졌고, 모두가 그녀의 답을 원했다. 비벌리는 결국 남편의 각막을 기증하는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각막은 검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듀안의 검시는 각막이 아니라 심장이 없이 이뤄졌고, 이같은 사실은 장례장에서 비로소 알게 됐다. 당시 장례장 대표는 "어떻게 말 해야 좋을 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심장이 없다"고 전했다. 비벌리 가족들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 살고 있는 비벌리가 라이프링크와 검시관 등 관련자들을 상대로 힐스버러 카운티 순회법원에 제기한 고소장에서 주장한 것이다.
한편 라이프링크 측은 장기 기증자의 서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고, 기관은 기증자의 바램을 최대한 실행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기관은 유족에 대해 민감하면서도 동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장기 기증자의 서약을 지지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라이프링크는 1990년 힐스버러 카운티에서 또한번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시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한 남성이 목과 척추에 총탄을 맞아 탬파 제네럴 병원에 신원 미상자로 실려왔고, 이내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의 연고가 일정 기간 밝혀지지 않자, 라이프링크는 법정으로부터 장기기증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 남성의 연고가 밝혀지고, 그가 장기 기증 서약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가족들 역시 장기 기증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가족들은 라이프링크가 술수를 쓰는 것을 느꼈다며 고소장을 냈다.
라이프링크는 플로리다, 조지아, 푸에르토리코에서 시신과 장기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라이프링크 웹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신장, 췌장, 심장, 간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는 플로리다 5800명, 조지아 530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