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주는 행복은 수명 짧고, 불행의 씨앗 될 수 있어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어떤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일까요? 복권에 당첨되거나 도박장에서 잭팟을 터뜨리면 행복하겠지요? 사랑하는 자녀가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하거나 고위층 직위에 임명되면 부모들은 무척 행복하겠지요. 사업장에 고객이 붓쩍 늘어서 매상이 급증하면 사업주는 행복하겠지요. 골프를 치시는 분이 홀인원을 치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행복하겠지요.
그렇지만 이런 물질적인 여건에 느끼는 행복은 그 수명이 무척 짧고 때에 따라서는 그런 물질적인 행운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년 전에 TV에 방영되는 단편 영화를 보았습니다. 대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그의 부모에게 항의를 하면서 몹씨 불행한 모습을 보이는 영화이었습니다. 그 사장은 대 회사를 운영하면서 막대한 수입을 얻고 있었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산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부모에게 항의하는 내용인즉 자기가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과 앞으로 받게 될 유산은 자기의 형보다 적다는 불만이었습니다.
그 때 거부로서 은퇴하여 노년기를 편안하게 살고 있는 모친이 하신 말을 저는 기억합니다. “너는 네 일생 동안 갖고 있는 재산을 다 쓰지 못할 만큼 갖고 있는데 그래도 부족하다는 말이냐?” 맞습니다. 물욕과 금욕은 한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독자들께서 미국 주요신문에 게재되는 “피넛?Peanuts”라는 만화를 보셨을 것입니다. “루시”라는 어린 여자 아이와 “챨리브라운” 이라는 남자 아이 사이에 교환하는 대화가 있습니다. 루시가 묻습니다. “우리가 왜 세상에 태어났다고 너는 생각하니?” 챨리가 대답합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이지.” 루시가 또 말합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걸. 그리고 말이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도 없단다. 네 말대로라면 나를 행복하게 해줄 누군가가 제 일을 못하고 있는 가봐.”
많은 사람들이 루시와 같은 사고적 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누군가가 주거나 누구로부터 뭐를 얻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얻어서 행복해진다면 그런 행복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욕은 얻을 수록 늘어가기 때문에 아무도 만족할 만한 재물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축적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과정을 즐기지 못합니다.
행복과 성공은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과정으로부터 얻어진다는 말이 옳다고 저는 봅니다. 노력 없는 꿈의 성취를 기다리면서 하늘에서 파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그렇지만 꿈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은 노력 자체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만으로 행복해지지 않고, 우리가 얻는 것을 고마워하는 자세로부터 행복은 우리것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하고 생산 라인을 중단시키는 노조원들도 원하는 임금을 받아 냈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파업을 하는 노조는 여전히 다음에도 다음에도 파업 소란을 피우지 않습니까?
노력의 대가를 고맙게 여기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고 보시지 않습니까? 자녀들에게 노력없이 용돈을 주시면 자녀들은 고마워 하지 않고 용돈을 더 주지 않는 다고 불평을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 세미나에서 입버릇 처럼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일을 시키고 그 대가로 적당한 용돈을 주라는 권고입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지 부담이 아니라는 인식을 자녀들에게 일찌기 심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하루에 세끼밖에 먹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행복하려면 “범사에 감사하고” 남을 돕는 일을 즐겨야 된다고 저는 획신을 합니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스스로 마음 속에서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