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새 배달약속이 잡혔다. 내일 오후 4시 15분이다. 그때까지는 꼼짝없이 이 대기주차장에서 기다려야 한다.
어제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는데, 오늘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른 방법이 있었다. 어제 배달을 마치고 새벽 5시까지 주변 트럭스탑에서 머물다가 출발했으면 됐다. 2시간 동안 트레일러 청소, 주유, 배달처로의 이동을 마치고 화물을 받아 곧바로 이동했으면 정시(定時)에 올 수 있었다. 매우 빠듯한 일정이긴 했을테지만 가능했다. 그 생각을 못한 댓가는 크다. 이틀간 대기.
아침에 일어나 트럭을 주차선이 그어진 장소로 옮겼다. 내가 있던 장소는 금새 다른 트럭으로 채워졌다.
오늘은 종일 트럭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밥 지어 먹고, 차 끓여 마시고, 씻고, 닦고, 싸고(?), 자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영화 보는 등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나가서 운동도 하고 산책도 했어야 하는데. 나도 내가 이처럼 트럭 살이에 잘 적응하는 줄 몰랐다.
트럭커는 특이한 직업이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종일 앉거나 누워 있고 트럭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나처럼 여행은 좋아하면서도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에게는 적격이다. 트럭커에게 트럭은 집이다. 달팽이처럼 집을 이고 다니는 셈이다. 어디든 안심하고 세울 곳만 있으면 된다.
트레일러에 달린 냉방장치인 리퍼가 돌아갈 때의 소음과 진동은 대단하다. 소음측정기로 재보면 대도시의 한복판 거리 정도의 소음 수준이다. 그런 길거리에서도 노숙자들은 잘 자듯이 이것도 적응되면 큰 문제가 안 된다. 리퍼 트럭커들 사이에서는 농담으로 이 소음이 없으면 잠이 안 온다고 할 정도다. 물론 나는 조용한 잠을 좋아한다. 빈 트레일러나 냉방이 필요 없는 dry 화물을 실었을 때가 좋다. 트럭스탑에 가서도 플랫베드나 탱커 옆에 주차하는 것이 좋다. 옆에 리퍼가 있으면 시끄럽다. 물론 어떤 때는 플렛베드나 탱커 옆에 주차했는데 그 트럭이 밤새 시동을 켜 놓아 더 시끄러울 때도 있다. 프라임의 모든 트럭은 APU가 달려 있어 주차 중에는 시동을 켜지 않는다. APU의 소음도 만만치 않지만 나는 아주 더울 때를 제외하고는 APU를 잘 틀지 않는다. 히터는 APU와 연계되어 있지만 APU 엔진을 돌리지 않고도 작동한다. 트럭의 배터리 충전 수준이 낮아지면 발전용으로 APU가 얼마간 돌아가다 꺼진다.
트럭스탑 옆에 와플하우스가 있다. 내일은 거기서 한 끼를 해결할 생각이다. 뭘 먹지? 와플하우스니까 와플을 먹어? 와플은 별로다. 소시지, 베이컨 등이 들어가는 미국식 아침은 너무 기름지다.
집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됐지만 13일과 14일 홈타임을 갖기로 했다. 아내는 14일에 미국시민권 선서식을 갖는다. 나보다 늦게 미국에 왔지만 먼저 미국시민이 된다. 이제 드디어 우리집도 국제결혼 가정이다. 내가 미국인과 살게 되다니.
Truck Friendly
눈 뜨니 비가 오고 있었다. 아침은 나가서 먹을까 했더니.
점심 경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미뤘던 숙제를 마쳐야겠다. 윈드 쉴드 수리. 몇 주 전에 고속도로에서 파편이 튀어 앞 유리창에 자그마한 상처가 생겼다. 그냥 두면 유리 전체로 금이 갈 수 있다. 수리 키트를 구입해두고도 시간이 없어 지금껏 미뤘다. 설명서를 두 번 읽고, 유투브 동영상도 봤다. 그대로 따라 했다. 결과는 별 차이가 없다. 얼룩만 생겼다. 짝퉁 제품인가? 용액이 남았으니 다음에 한 번 더 해봐야겠다.
윈드 쉴드 수리를 하다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고정 장치가 빠져 있고 CB 안테나가 부러져 있다. 무슨 일이지? 나는 종일 트럭에 있었는데. 내가 자는 동안 누가 사이드 미러를 쳤고 나는 그것도 몰랐단 얘긴가? 내가 그 정도로 둔하진 않다. 주변을 확인하니 부러진 안테나가 없다. 마을길을 달리다 가로수 가지에 부딪혔을 수도 있다. 나야 CB를 사용하지 않으니 상관 없지만 외관상 더듬이 하나가 부러졌다.
점심은 와플하우스에서 먹었다. 한바탕 바빴는지 테이블이 치워져 있지 않다. 바에 앉았다.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2명과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로 보이는 여자가 일하고 있었다. 맛은 특별히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트럭 실내를 청소했다. 며칠 청소를 안 했더니 먼지가 많다.
4시 15분 약속이지만 1시간 먼저 가도 되므로 3시 15분에 체크인했다. 닥을 배정받고, 밥테일 주차하고, 오피스에 가서 서류 접수하고 기다리는 순서는 어느 월마트 DC나 같다. 오늘은 2층 드라이버 라운지에 가서 설거지를 했다. 월마트 접수 사무실 2층에는 화장실이 있고 휴게실도 있다. 화장실 이용할 때 외에는 기사들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늘 비어 있다. 싱크대와 전자레인지가 있어 뭔가 요리를 하자면 가능하다.
다음 화물 예고가 들어왔다.
Fairburn, GA → Athens, TN
거리가 얼마 안 된다. 이틀이나 기다린 끝에 받은 화물치고는 다소 실망스럽다.
주변에 세차장이 있지만 6시가 넘어 문을 닫았다. 세차장 앞에 공터가 있는데 옆 호텔의 예비 주차장으로 쓰는 것 같다. 컴컴한 그곳에서 손전등을 켜고 비질을 해서 나무 조각과 먼지를 쓸어냈다. 양이 많았다.
열심히 달렸다. 자정 무렵 조지아를 벗어나 테네시 주에 들어와서 휴게소 주변에 트럭을 세웠다. 오전 9시 약속이다. 1시간 더 가면 도착이다. 시간이 너무 이르다. 살 것도 있고 시간도 보낼 겸 월마트를 검색했다. Trucker Path 앱에는 각 장소에 대해 트럭 기사들이 쓴 리뷰가 있다. 꽤 유용하다. 어떤 곳은 주차하면 견인(牽引)되거나 티켓을 받는 등의 정보도 올라온다. 어느 월마트는 트럭 주차가 가능하며 우호적이라고 적혀 있다. 이 주변에는 월마트 세 곳이 있는데 한 곳은 트럭 주차는 되지만 24시간 영업이 아니라 아침 6시에 문을 연다. 다른 한 곳은 주차하면 견인, 마지막 한 곳은 자동차 코너 쪽에 주차하면 문제 없다고 한다. 당첨.
그곳은 주차장이 충분히 넓고 트럭 진입도 수월했다. 일반 승용차 주차하는 곳과 떨어져 있어 서로 방해되지 않아 좋다. 한 마디로 트럭 프렌들리 월마트다. 주차하고 마트로 걸어갔다. 목록에 적은 것 외에도 후라이팬 등 몇 가지를 더 샀다. 부엌 살림이 자꾸 늘어만 간다.
새벽 3시다. 6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눈을 붙였다.
둘 다 가본 곳
6시에 월마트를 출발해 7시에 배달처에 도착했다. 일찍 온다고 일찍 내리는 것도 아니었다. 9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곳은 위성 사진으로는 공간이 좁아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닥 맞은편 트레일러가 1대만 있었다.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음 화물은 Shelbyville, TN → Lansing, MI
두 곳다 전에 가 봤다. 타이슨은 트레일러 내리느라 고생했던 곳이다. 메이지스는 트럭스탑 만큼 넓은 주차장을 갖춘 곳이고.
근무 시간이 지나 당장 출발할 수는 없다. 가까운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샤워하고 면도하고 한숨 잤다. 5시 30분에 출발할 수 있는데 이때는 인근의 트럭 세차장이 모두 문을 닫는다. 24시간 문 여는 블루비콘은 반대 방향에 있다. 일단 어찌될 지 모르니 손으로 청소했다. 먼지는 쓸어냈지만 얼룩이 남아 있어 물청소를 하는게 좋다. 발송처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24시간 영업하는 세차장이 있다.
가다가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깐 세우고 타로카드를 뽑아봤다. 세차장에 들르지 말고 바로 가라고 나왔다. 워낙 명확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가는 길이 힘들고 복잡하다. 전에도 그랬나? 오늘 밤이라 더 한 것인가?
타이슨에 도착해 트레일러 내부 검사를 받았다. Good으로 합격이다. 내 성미에 차지는 않지만 화물을 실을 정도로는 깨끗하다.
복잡한 트레일러 주차장에 도착했다. 더 이상 댈 곳도 없어서 이중 주차한 다른 트레일러 옆에 댔다. 이것도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발송 사무실에 가서 체크인을 하니 화물 준비가 안 됐다. 1시쯤에나 될 것 같단다. 같은 테네시지만 이곳은 이미 중부시간이다. 내 시계 기준으로는 오전 2시인 셈이다. 밥테일 주차공간에 세워 놓고 한숨 자야겠다. 내일 가야할 거리가 580마일이다. 하루에 갈 수는 있으나 빠듯하다. 여기서 10시간 휴식을 채우고 5시에 출발해 죽어라 가는 방법이 있고. 화물을 받자 마자 출발해 오전 6시까지 운전하고 10시간 쉬었다가 오후 4시쯤 다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 밤운전이냐 낮운전이냐의 차이다. 일단 자고 생각하자.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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