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권력이 된 교회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전도사로 일하던 교회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입니다.

주일이면 찾아오는 걸인분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분들에게 오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그 사실이 소문 나자 점점 더 많은 걸인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많아지자 교인들은 그분들을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돈을 주는 일은 당시 전도사인 제 몫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 동전을 주는 일이 제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천 원짜리 지폐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도 오백 원을 주시는데 전도사가 천 원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전도사가 좀 잘 산다고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왔습니다. 저는 늦게 신학교를 갔고, 당시 저는 분당에서 48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늘 마음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그분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 드리면서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 마음 상하지 않으시다면 여기 앉으셔서 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요?" 그렇게 그분들과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구걸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구걸을 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만 오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걸인분들이 찾아오자 교회 사모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구걸하러 오시는 분들이 예배에 참석해야 돈도 드리고 식사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주지 않게 되자 한동안 걸인분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걸인분들 가운데 한 분이 정말로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늘 그렇듯이 예배를 준비하던 저는 그분을 교회 중앙에 앉으시도록 안내하였습니다. 기다리던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시간이 되어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운데 앉아 있는 그분의 몸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대부분의 교인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악취가 풍겨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창문을 열었지만 모든 교인들이 고개를 창쪽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그날 예배는 가장 긴 예배가 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식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분에게 식사를 가져다 드리자 그분은 혼자 말없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받아들고 교회를 나갔습니다. 조용했던 교회가 그제야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교인들은 그분이 앉았던 곳들을 매우 여러 번 걸레로 닦고 그분이 사용했던 식기들을 평소보다 공을 들여 세척하였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을 환기를 한 후에야 교인들이 식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날의 식사는 가장 꺼림칙한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모님의 묘책은 그렇게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결코 걸인분들을 예배에 초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나타나기 무섭게 오백 원짜리 동전을 서둘러 전달하고 그분들이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아무 말도 건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래도 그런 분들과 대화나누기를 시도했던 저 자신에 대해 조금은 우쭐한 마음을 지닌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득실대는 교회

 


그런데 어느 날 다시 그 사건이 떠오르며 아무런 역할도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죄를 깨닫고 보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은혜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던 제가 바로 가장 큰 죄인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했던 걸인분을 돕고, 아직 그런 분들을 맞을 준비가 되지 못했던 교인들을 보호해야 할 적임자는 바로 저였습니다.

 

그분을 모시고 나가 샤워를 하게하고 옷을 갈아입혀야 했습니다. 전도사는 나서서 그런 일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해야 했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속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귀찮아 예배에 참석해야 돈을 주고,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말을 한 사모님과 고개를 모로 돌리던 교인들을 빈정대기까지 하였습니다. 죄인과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하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바로 그런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만일 그때 제가 그분을 모시고 나가 샤워를 하게 하고 옷을 갈아입힌 후에 그분을 모시고 왔다면 교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분이 다음 주에도 예배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그렇게 했다면 또 다시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전도사가 주제넘은 짓을 하며 혼자 잘난 척 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교회가 그분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천대받는 무리들이 사람대접을 분에 넘치게 받아 누리는 곳이 교회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구나 하는 생각이지만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사람이 득실거리는 교회를 다니고 싶어 하는 교인들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 교인,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오면 기뻐하고, 동네방네 자랑을 해대지만 가난한 교인이 왔다고 좋아라 하는 교회는 본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감추어진 재능이 발휘되고, 그런 사람들이 교회 때문에 삶의 의미를 되찾은 경우도 본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남편과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힘들게 살아가는 미망인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소원은 돈을 많이 벌어 남부럽지 않게 헌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말에 '떵떵거리며'라는 수식어를 달았습니다. 그 교회는 주보에 헌금한 사람의 이름이 실리는데 그 순서가 헌금액수 많은 순서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헌금을 할 때 십만 원을 하지 않고 십만 천 원을 합니다. 자기 이름이 앞에 나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십만 원을 헌금한 다른 사람은 자신보다 앞에 나온 사람이 한 이십만 원쯤 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런 일이 그 교회 안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성직자들에게 권력을 위탁한 신자들

 


오늘날 교회처럼 서열이 분명한 곳도 없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와 안수집사, 그냥 집사,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형제와 자매까지. 며칠 전에도 어떤 남자분이 주일마다 설거지를 도맡아한다는 말을 듣고 즉각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룩한 장로님이 되시려는 것이겠지요. 추운 날 눈에 띄는 곳에서 차량안내를 도맡아 하는 일도, 가장 늦게 뒷정리를 하는 것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담임목사의 눈도장을 받으려는 '호시탐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현실의 문제점을 보는 이들이 없습니다. 그러려니 하며 경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많아도, 그런 현실이 복음으로부터 동떨어진 잘못된 모습임을 자각하고 지적하는 이들은 보기 어렵습니다. 대세가 기울었습니다. 만일 누군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의를 제기한 그 사람만 그 교회에서 잘려나가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어떤 분의 글에서 이런 대화내용을 보았습니다.

"형, 요즘 같은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젊은 날 내내 교회 안에서 일해 왔던 선배의 대답이다.
"그건 교회를 떠나는 것이지."
무 자르듯 던져진 말에 당황한 나는 다시 물었다.
"그건 왜죠?"
"지금, 교회는 권력이기 때문이지. 예수는 권력과 아무 상관없거든."
"그건 성직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게 아닌가요? 우리 평신도들도 그렇다는 건가요?"
"당연하지. 신자들은 단지 성직자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위탁했을 뿐이야."

선배의 대답에 수긍이 됩니다.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무작정 떠나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떠나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권력이 되었다는 선배의 말은 사실 그리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폭력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권력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약육강식은 단순히 정글의 법칙이 아닙니다. 인간 사회는 정글보다 더 엄격하고, 더 처절한 권력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권력과 아무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그러한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고 무력화시키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교회가 그분의 몸이 분명하다면 권력은 교회에 발붙일 자리가 없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부자가 대접을 받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인정을 받는 것은 교회가 권력이 되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부자들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와 성공한 사람들은 결정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일도 더 어렵습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천대받는 무리들이 사람대접을 분에 넘치게 받아 누리는 곳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가 권력이 되었기 때문에 부자와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주도하고, 결과적으로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걸인분들도, 천대받는 무리들도 분에 넘치는 사람대접을 받는 진정한 교회를 정말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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