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신드롬이 일으킨 한국과 베트남 친선 분위기를 영화판에서도 이어가고 싶습니다. 영화는 현실과 가장 밀접한 대중매체라 파급 효과가 크거든요."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출신 `국민배우` 안성기가 밝힌 거대한 포부다.
그는 지난 1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매일경제와 단독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금기된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미술이나 소설과 달리 영화는 현실이 허용하는 한계까지만 보여준다는 점이 다르다"며 "현실을 거울처럼 드러내는 영화 교류가 많아지면 양국 간 서로를 이해하는 수준이 훨씬 깊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성기의 인생에서 베트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국가다.스타 아역배우 출신이었던 그는 베트남 전문가를 꿈꾸며 외대 베트남어과를 선택했다. 대학시절 ROTC로 장교의 길을 밟아 갈 때는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파병돼 멋진 제복을 입은 모습도 꿈꿨다. 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성적도 뛰어났다. 하지만 1974년 졸업 이후 ROTC 임관을 준비하던 중에 베트남전쟁이 끝나면서 파병은 중단됐다. 육군 중위로 제대한 직후 열심히 배운 베트남어를 살리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서 영화배우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갈고닦은 베트남어가 `죽은 언어`가 됐다는 생각이 들자 언어에 대한 감도 빠르게 잃어버리더군요. 다시 베트남과 인연을 맺기까지 한참의 세월이 필요했어요"라고 회고했다.
베트남과의 인연은 다시 찾아왔다. 안성기는 이후 1991년 영화 `하얀전쟁`을 통해 베트남 참전 군인이 겪는 절망과 고통, 공포를 생생하게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쟁의 후유증에서 허우적거리던 `한기주`를 맡아 열연했다.
그는 "당시 영화에서 주로 소비됐던 `귀신 잡는 해병` 같은 천편일률 캐릭터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컸다"며 "베트남을 다루는 영화가 나오면 꼭 역할을 맡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함께해 보자는 제의가 왔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2018년 베트남은 그가 졸업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한국과의 관계가 깊어졌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숫자만 7000개가 넘는다. 베트남 수출의 35%가량을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이 만든 상품이 차지한다. 그가 졸업할 때는 베트남어과를 나와 전공을 살릴 길이 없었지만, 지금은 베트남어 졸업장이 `취업깡패`로 불리며 대접받을 정도다.
그는 "한국과 베트남 간 영화 교류에 앞장서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며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영화를 교류할 수 있는 여러 시도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안성기는 한국·베트남 수교 26주년을 기념해 하노이에서 열린 `2018년 베트남·한국 영화제` 참석차 지난 15일 베트남을 3박4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16일에는 JW메리어트하노이 호텔에서 열린 `외대 베트남어과 동문회`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기도 했다.
3박4일간 짧은 베트남 방문길에 체험한 `박항서 열풍`은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2018년 스즈키컵 우승으로 `사랑해요 한국`을 외치는 베트남의 함성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한층 가까워진 양국의 관계를 온몸으로 느꼈다.
"두 나라 간 영화를 통한 공감대 찾기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이 열려 있는데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오지 않을까요."
안성기는 앞으로 기회가 닿는 만큼 자주 베트남에 다녀올 생각이다.
그는 "한참 펼쳐보지 않던 베트남어 관련 교재도 다시 들여다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옛날에 공부하던 기억을 되살리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영화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를 더 잘 느낄 수 있다면 정말 보람이 클 겁니다"고 말했다.
[호치민 라이프플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