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연속되는 선택의 과정이자 그 결정의 총 집합이다”라고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i, 1828-1910)는 말했다. 지난 77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숱한 선택의 과정을 거치며 오늘날 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뉴질랜드로의 이민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선택이었고 생활의 변혁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이민을 가야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서 이민을 택했고, 이민 온 것이 잘 한 일이냐, 잘 못된 일이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뉴질랜드 이민 생활이 그렇게 만만 하지는 않는 일임을 고려할 때 무모하게 도전해본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한국과 뉴질랜드는 위도가 정반대인 남반구 끝에 위치해 있고 계절도 반대이며 태양의 진행 방향도 반대일 뿐 아니라 자동차의 진행 방향, 운전석의 위치도 반대이다. 언어도 다르고 민족 구성도 천차만별이며 토착 문화도 다른 딴 세상이다. 이런 나라에 와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꿈같이 느껴지고 있기도 하다.
이민 생활 23년을 회고해볼 때 한국에서의 23년보다는 훨씬 수월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만 54년을 채우고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했는데 한국에서의 고난의 세월에 비하면 이곳의 삶에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고 평가하게 된다. 은퇴 후의 삶은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인습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는 새로운 땅에서 삶의 슬기를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95세를 목표로 생애관리를 해 왔으나 은퇴 나이가 되고 나서 108세까지 살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 평균 수명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시스템이나 자연 환경이 108세까지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만 54년, 다시 태어난 뉴질랜드에서 54년, 합이 108세가 되는 셈이다.
이제 남은 인생 31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이다. 지금까지 살아 왔던 방식 그대로 아어가면 될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살아 온 패턴(Pattern)이 본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 왔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후회 할 일이 있으면 고쳐나가면서 살면 되는 것이고 고쳐서 안 될 일도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서 계획적인 생활을 뿌리내리고 매일 같이 변화하는 모습을 창출해야 되겠다고 다짐한다. 108세에 이르는 내 삶의 편린들을 담아 이번에『108세에 이르기까지』를 출간하게 된 것도 내가 겪은 경험이나 지식, 정보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보다 낳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였다.
출간 기념회에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로 성황을 이루어 준바하느라 고생을 했음에도 마음은 뿌듯했다. 이날은 마침 77세 생일이 되는 날이라서 지나온 삶을 지인들에게 보고하고 앞으로의 삶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지난 70세 생일에는『먼 바다 건너 행복이 있다기에』를 출간한 바 있고 그 때까지 살아 온 행적과 다짐들을 자료들을 이용, DVD 동영상을 만들어 보고한 바 있다. 이번에는 70세 이후 지난 7년 동안의 행적들을 엮어 동영상으로 보고했다.
이어 77세를 맞는 감회를 발표하고 출간 신고에 들어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버랩 되면서 진통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아기의 힘찬 울음소리와 동시에 책이 출간되었음을 알리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이어 책이 배부되고 100세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었다. 마침 축사에 이어 특별 소개된 김인명 어르신의 경험담이 있었다. 김인명 씨는 교민사회 최 원로로서 금년 만 97세이며 지금도 손수 운전을 하고 지팡이 없이 도보가 가능한 것은 물론 젊은이와 같은 자세와 청력을 지니고 있다.
케이크 커팅과 저녁 식사는 일상 있는 일이지만 모임의 주인공과 관련, 에피소드나 경험담을 듣는 순서를 넣어 재미와 함께 주인공의 인간적인 장, 단점을 음미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어 마음먹고 준비했던 피아노 연주가 있었다. ‘쇼팽의 녹턴 2번’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곡 중의 하나이며 전문 피아니스트들만이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까다로운 곡이다. 이를 연주해보겠다고 작정한 시도 자체가 너무 무모한 것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좋아했던 곡을 대중 앞에서 쳐보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어린 소녀를 등장시켜 곡에 맞춰 춤을 추도록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연출한 것이다. 영화 ‘피아노’에 나오는 카레카레 비치에서 주인공 아다의 피아노와 딸 플로라의 춤이 관객을 황홀경에 빠뜨렸던 장면을 상상한 것이다. 그러나 연습할 때마다 다른 음이 나오는 곡의 까다로움과 대형 홀에 맡지 않는 업라이트 피아노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시도로 그친 콜라보레이션이 되고 말았다. 춤을 추었던 어린 소녀가 나의 연주 속도에 맞추느라고 애를 쓰는 모습이 기특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두 번 째 곡으로 ‘오즈의 마법사’를 손자와 함께 4핸드 피아노 듀엣(Duet)으로 연주하였는데 이 또한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에 의미를 둘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 전원이 둥글게 원을 그려 서서 손에 손을 맞잡고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는 것을 다짐하며 작별의 노래, 올드랭 사인(Auld lang syne)을 합창하고 서로 격려의 악수를 교환하며 헤어졌다. 모든 행사에는 시간과 비용을 드려 준비하고 참석하는 만큼 그에 대한 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프로그램의 창의성이 가미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참가자들이 여운을 가지고 행사장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도 의미가 있었다고 자평해본다.
칼럼니스트 한일수